소설리스트

8화 (9/11)

8.

터미널

“저 남자 누구야?”

갑자기 나타난 이종하에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두통에 머리가 찌릿했다.

“수연아.”

선배가 이종하의 등 뒤로 바짝 다가섰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덩치 큰 남자가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을 경계할 만도 했다.

“누군데.”

“수연이 대학 선배입니다.”

이종하는 내게 물었고, 대답은 선배가 했다.

“그런데요?”

이종하는 선배의 앞을 막아선 채로 따지듯 물었다.

“일 때문에 왔다가 수연이가 밤새 아파서 같이 있었습니다. 괜찮아진 것 같아서 가려던 길이었고요.”

“무슨 대단한 일이길래 이 깡촌까지 와요?”

“정한주 작가님이야. 지금 전시하는 그림 그린 작가님.”

두 사람 사이에 급하게 파고들자 그제야 이종하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정한주입니다.”

“이만 가 주셨으면 좋겠는데.”

이종하는 선배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고는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는 사람처럼 온 방 안을 구석구석 시선으로 뒤졌다. 이종하가 그러는 동안 나는 이종하가 없는 사이, 이 방에서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문란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종하의 행동이 지난 열흘간 이종하를 기다리느라 절절맸던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렸다.

이종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신경질적으로 구겨 넣었다.

“수연이가 괜찮다고 하면 가죠.”

“……선배, 나 괜찮아요. 가도 돼요.”

아무래도 탐탁지 않은지 선배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그는 내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이었다. 제발 부탁이니 이대로 돌아가 달라고, 지금 나를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세 사람의 신경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이 좁은 공간이 미칠 듯이 숨 막혔다. 먼저 물러선 것은 선배였다.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입안에서 씹어 굴리듯 선배의 관자놀이가 움직였다. 마음에 차지 않을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인사는 다음에 제대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선배가 차게 내뱉었다. 이종하는 답하지 않았다. 얼른 꺼지라는 듯 무서운 눈초리로 그를 흘겨볼 뿐이었다. 선배가 나가자 이종하가 숨기지 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새끼 뭐야.”

“말했잖아. 학교 같이 다닌 선배야. 전시 확인하러 잠깐 내려온 거고.”

“지금 그딴 거 묻는 게 아니잖아. 왜 너 혼자 있는 집에 와 있냐고!”

“…….”

“여기 언제 왔는데? 나 없는 내내 와 있었어?”

지난 열흘간 연락 없던 사람이 누군데.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바람피운 여자처럼 날 대한 게 누군데. 지금 화낼 사람이 누군데.

나는 말 대신 책망하는 눈으로 이종하를 봤다.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를 오해하는 이종하도, 이종하를 오해하게 만든 이 상황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웅웅 머리가 울리고, 입안이 가뭄처럼 버석하게 말라간다. 발끝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피가 줄줄 다 빠져 버릴 것처럼 하얀 현기증이 일었다. 쓰러지지 않으려 벽을 짚고 섰다. 씩씩거리고 있던 이종하가 황급히 내게 다가와 부축했다.

“괜찮아?”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벽에 기대앉았다. 이마를 짚어 오는 손을 쳐내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선배의 손이 닿았을 때와 다르다. 몸 안의 열기를 빨아들이듯 시원하고도 또 따뜻했다.

모순적인 감각이었다. 그저 그것이 이종하의 손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가 닿아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된다.

“미안. 이런 말부터 하려던 거 아닌데.”

“…….”

“다른 남자랑 같이 있던 거에 눈이 뒤집혀서. 너 아픈 것도 신경 못 썼어.”

“…….”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

내게서 대답을 듣지 못한 이종하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내 머리를 쓸어 주고 뺨을 어루만지며 이종하가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나는 멍청하게 앉아 손길을 받으며 그 애의 말을 들었다.

이종하가 다녀온 곳은 서울이었다. 제법 시간을 두고 나양을 떠나 있는 것이니 그쯤 될 거라 예상했다. 여권도 없는 이종하가 외국에 나갔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이종하는 지난 열흘간의 일정을 조곤조곤 말했다. 떠날 때와 달리 이번에는 그 애의 입을 막지 않았다.

서울 이모 댁에서 지냈다고 했다. 언제까지 나양에만 있을 생각은 없다고, 서울에서 지내려면 뭐가 필요할지, 돈은 얼마나 필요하고, 일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계획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고.

무얼 위해 이렇게 갑자기 서울행을 결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종하도 나도 알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면 미술관의 전시도 끝이 난다. 습하고 쨍쨍했던 더위가 한 꺼풀 꺾이고 있었다. 계절의 끝을 예고하는 증거였다.

“일부러 안 한 거 아냐. 폰이 완전히 박살 나서.”

망가진 휴대폰을 보여 주는 이종하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만이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내 번호를 기억했다 하더라도 내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는 이종하가 자신의 거처를 말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해. 수연아.”

“…….”

“내가 다 잘못했어. 무슨 말이라도 해 줘.”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멀쩡하게 돌아온 모습을 보니 안심되고 좋다. 그와 동시에 나를 이렇게 안달하게 만든 이종하에게 화도 났다. 그러나 나에게는 화낼 자격도 없다. 내가 무어라고. 애초에 관계를 정의하는 것에 겁을 먹고 미적거렸던 것은 바로 나였다.

지금의 내가 이종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 그 애를 나양에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미련을 주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내게 이런 마음을 먹게 한 이종하란 존재가 놀라웠다.

“많이 아파? 약은. 일단 약부터…….”

“먹었어.”

멀어지려는 이종하의 손을 잡았다. 그냥 그 애가 내 곁에서 멀어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이종하의 손을 잡고 어제 일을 설명했다. 주인 없이 진행되던 전시회에 그림의 주인이 찾아왔다. 선배의 의견에 맞추어 전시 구도를 바꾸느라 고생을 좀 했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살 기운이 조금 밀려온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네가 없어서, 너를 기다리느라 아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람, 그냥 선배 아니지.”

이종하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그림 그린 사람하고 아는 사이란 말 안 했잖아.”

처음 이종하가 미술관을 찾아온 날. 검은 슈트를 빼입은 이종하가 선배의 그림을 보느라 그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선배와 나의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당시엔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이후엔 말할 기회가 없었다.

“다른 누구한테도 작가랑 아는 사이라고 말 안 했어.”

“나는 다른 사람이랑 안 같잖아.”

“……내가 많이 좋아했었어.”

이종하는 말을 고르는 듯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좋아했었다는 말이 뭐가 그렇게 쉽냐.”

“솔직한 말 듣고 싶었던 거잖아. 사귀었었어, 선배랑 나. 처음엔 동경인 줄 알았어. 선배가 가진 재능도 부러웠고, 늘 자신만만한 태도도 멋있고, 다 닮고 싶었어. 내가 먼저 다가갔고 거절당하겠다 싶었는데 받아 주더라. 제법 오래 만났어. 나 혼자 많이 좋아했고, 그 선배는 아니었어.”

“너, 나한테 좋아한단 말한 적 한 번도 없어.”

마음이 덜컹인다. 이종하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겐 확신이 없었다. 이종하를 붙잡아도 될 거라는 확신.

“김수연. 그 남자가 나에 대해 물어보면 넌 뭐라고 할 거야?”

“…….”

“다른 사람이 너한테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거야?”

“…….”

“너는 전혀 아닌데 내가 혼자 매달린다고, 그렇게 말할 정도는 돼? 그 정도도 못 되니까 나한텐 언제 갈 거란 말도 안 하는 거겠지. 난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고, 전시 끝나면 넌 그냥 이대로 떠날 거니까.”

나로 인해 이종하의 삶이 멋대로 바뀌어 버린다고 해도 괜찮을까. 이종하로 인해 내 삶이 바뀌어 버려도 정말 괜찮을까. 나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끝내 이종하가 나를 떠난다면?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이종하는 점점 내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오고 있었다.

“나쁜 년.”

답이 없는 나를 내려다보며 이종하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넌 정말 끝까지 나쁘다. 내가 먼저 말 안 하면 끝까지 모른 척 말 안 하고 가려고 그랬어?”

“이종하.”

“김수연. 내가 널 더 좋아해. 네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했건, 세상 누가 널 좋아하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너 그거 다 알면서도 나한테 이러는 거 억울해. 억울해 죽을 것 같아. 내가 너더러 내가 너 좋아하는 만큼 날 좋아해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어!”

이종하의 고백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종하의 마음을 알아야만 하는 유일한 사람임과 동시에 그 마음을 결코 책임질 수는 없는 못난 사람이었다.

“이제 너 보러 안 와.”

“…….”

“너 안 본다고.”

그 말을 끝으로 이종하가 나를 등졌다. 쿵,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발치로 툭 떨어져 내렸다. 무작정 이종하를 쫓았다. 그 애는 걷고 있었고, 나는 달리고 있었는데도 그 애는 끊임없이 멀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이종하!”

답답한 마음에 이름을 부르자마자 왈칵 넘어졌다. 그렇게 빠르게 달린 것도 아닌데 속도를 못 이긴 채 바닥을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내게 이종하가 다가와 섰다. 이종하는 두 팔로 나를 일으켜 놓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왜 따라와.”

“종하야…….”

“왜 따라오는 척해!”

“…….”

“어차피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할 거면서!”

짙은 녹음을 등에 진 이종하의 눈을 보고 나는 울지도 못했다.

“쫓아오지 마. 거기 서서, 니가 나 가는 거 봐.”

바람이 불어왔다. 그 애의 목소리가 펄럭이며 떠밀려 왔다.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들이 휘날렸다. 이름 모를 풀들이 사방에 피어나 있었다. 꽃처럼 만개한 녹음이, 풀 냄새가 나를 헤집어 놓았다.

그 풀들 사이로 그 애가 성큼성큼 멀어졌다. 바람에 꺾이지 않는 풀처럼 단호하게.

풀이 너인지, 네가 풀인지 모르도록 하염없이 섞여 들어 멀어졌다.

선배는 모처럼 쉬는 김에 전시가 끝날 때까지 나양에서 지낼 생각이라고 했다. 나양에서 그린 그림을 나양에서 전시하니, 선배에게는 특별한 전시이긴 했다.

“휴가라고 해 봤자 딱 일주일이네요.”

선배는 이종하네 여관에서 지낸다고 했다. 동네에 머물 곳이라고 하면 그곳뿐이었다. 어이가 없어 그저 웃었다. 선배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금방 올 것 같던 마지막 전시일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시간이 잘 가지 않아 매일 멍하게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선배가 오면 이야기를 좀 나누다 폐관 시간에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 맥주를 마시고 잤다.

그러고 있노라면 이종하의 마지막 말이 반복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나쁜 년.”

이종하는 제대로 보았다. 나는 나쁜 년이 맞았다.

전시를 하루 남기고 선배는 서울에 올라가게 됐다고 내게 전했다. 은사님의 부름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내게 버스 터미널까지 함께 가 줄 수 없냐고 물어 왔다. 나는 순순히 함께했다. 이것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려 한다.

적막한 터미널에 선배와 나는 나란히 서 있었다. 군데군데 패이고 으스러진 오래된 아스팔트 위로 덩그러니 버스 한 대가 정차되어 있었다. 나는 ‘서울행’ 글자가 적힌 종이에 의미 없는 시선을 주고 있었다. 선배와 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문득 선배와 사귀던 때가 떠올랐다.

작업복 셔츠에 먹을 잔뜩 묻힌 채로 붓질을 하고, 그렇게 그린 그림은 내게 가장 먼저 보여 주며 설명해 주고, 같이 맥주를 마시다 내게 입을 맞추던 그가 생각났다. 선배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내게는 잊기 어려운 선물 같은 거였다. 선배를 만나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마음을 꺼내 보여 준 일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다. 의지할 데가 더는 없으니 혼자 모든 것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시기였다. 그런 내 딱딱함을 선배는 억지로 녹이려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었다.

“집에 있던 그림, 그 녀석이 그린 거지.”

선배가 불쑥 물었다.

집에 있던 그림. 크로키북 한가득 나의 얼굴과 몸이 담겨 있었다.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사르륵 종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었다. 선배가 나의 누드를 보는 동안, 나는 당황하기보다 그 순간에도 그림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선배를 만나 느낀 모든 감정들, 그와 함께했던 모든 경험들은 그를 만나기 전에도, 그와 헤어진 후에도 없다. 다시 겪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종하가 내 안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저렸다.

“그 녀석 집에 있는 동안 물어봤어. 그림 더 볼 수 있느냐고.”

내가 그랬듯 선배도 이종하의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내가 알아본 이종하의 능력을 그가 못 알아차렸을 리 없었다.

“수채를 할 줄 알던데. 단색으로만 그리더라.”

“그림을 그냥 보여 줬어요?”

“내키는 눈치는 아니어도 억지로 내놓진 않더라.”

이종하는 무슨 마음으로 선배에게 그림을 내보였을까. 선배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발을 떼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 있기는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 만난 게 아니라면 이종하는 의욕을 가지고 선배에게 작품에 대한 감상을 쏟아 냈을지도 몰랐다.

“감청색으로만 그린 풍경 수채를 봤어.”

“그게 그 애가 처음 그린 수채화예요.”

“혹시 색을 못 보나.”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계절이 지나가도록 모르고 있었다. 그걸 선배는 겨우 그림 몇 장을 들춰 보고 파악했다. 선배에게 부끄러웠고, 이종하에게 미안했다. 자꾸만 나란 인간에 대해 회의가 든다.

“그 말 들으니까 더 갖고 싶네.”

“설마, 그림을 달라고 했어요?”

정색하는 나를 돌아보며 선배가 웃었다.

“선배 진짜 웃기네요.”

“더 배울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어.”

나는 이종하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 애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이 있었다. 선배의 조언 한마디가 나의 백 마디보다 이종하에게 더 효용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종하의 기회를 내가 망치게 될까 두려워졌다.

“혹시 연락 오거든, 그 애한테 연락 오거든 선배가 잘 챙겨 줘요.”

“부탁이야?”

“선배, 이유 없이 남의 부탁 들어주는 사람 아니잖아요. 이종하 실력 있는 애예요. 누구한테 배워 본 적 없어요. 아직까진 감으로 그리는 것 같은데. 시작이 달랐다면 누구보다 빠르고 멀리 뻗어 나갈 수 있었을 거예요. 그 애를 이끌어 줄 누구 하나만 옆에 있었더라도…….”

마음이 앞섰다. 뭐라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이종하에 대해 떠들던 나는 선배의 빤한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많이 좋아하는구나.”

“…….”

“그럴 거면서 왜 그때 그렇게 보냈어?”

그때…….

더 이상 나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종하가 나를 떠났다. 무슨 생각으로 달려 나갔는지 모르겠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뒹군 나를, 이종하는 그 순간에조차 다정하게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리고선 아무 말 못 할 거면 따라오지 말라 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라 했다.

“다 봤어요?”

“의도한 건 아니고.”

“…….”

“너 나한테 그랬었지. 내가 너한테 가진 감정, 사랑 아니라고.”

선배와 나는 3년을 만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나를 사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선배는 나를 아껴 주었고 만나는 동안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많이 울었고, 그럼에도 그 남자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나 자신 때문에 힘들었다. 지금 내가 이종하에게 하고 있는 짓이었다.

“아니었잖아요, 선배는.”

선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는 꼴이 그때처럼 여전히도 미웠다.

“그땐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

그 말투가 너무도 여상해서 꼭 별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지금 던진 말은 여태 내가 그에게 쌓아 온 모든 감정을 부정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를 미워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날 사랑했었다고?

“네 일에 참견하겠다는 거 아니야.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리 못한 감정 흘리는 건 더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들어. 지금 널 보니까 말해야 할 것 같아.”

“무슨 말을요.”

“너는 후회하지 마.”

후회라는 감정을 평생 느껴 보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이 후회를 말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아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더라도……. 그래도 사랑일 수 있어. 그럴 수도 있더라.”

“왜 그걸 나한테 말하는데요.”

“넌 그러지 말라고.”

“…….”

“그때 그렇게 너 보내서 미안해. 널 사랑 받지 못한 사람으로 만든 것도 미안했다.”

때마침 자리를 비웠던 운전기사가 돌아왔다. 선배는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듯 두드리고는 버스에 올랐다. 절반도 채 승객을 태우지 못한 버스는 크게 바퀴를 굴려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나는 쓸모를 다해 버려진 로봇처럼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머리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는데 심장만 버겁도록 빠르게 뛰었다.

그때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미끌거리는 무언가가 훅하고 얼굴을 때렸다. 뺨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리던 것이 순식간에 발등 위에 툭 떨어졌다. 생선 내장이었다. 그걸 알기도 전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나는 내 앞에서 씨근덕거리는 박미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줌마 대단하다! 새 남자랑 서울 갈 거면 야반도주라도 할 것이지, 대낮에 대놓고 가냐? 이종하 다 알라고? 아주 동네에 소문을 다 내고 가네.”

내가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와 함께 다닌다는 얘기가 시장 사람들에게 퍼졌던 모양이다. 소문은 안개처럼 이 작은 마을을 포위했다. 내가 서울 남자와 버스 터미널엘 간다니. 섣부른 오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재수 없는 년. 이종하만 병신 만들고.”

실컷 내게 욕을 퍼부었던 박미진은 변명 한마디 없는 나를 질린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선 내장을 담았던 통을 신경질적으로 던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소문의 새 남자를 따라 서울을 가지 않았지만 내게 억울할 여지는 없었다. 박미진이 생선 내장을 던지고, 화를 내며 욕을 퍼붓는 게 이해가 안 가지도 않았다. 박미진이 아니라 이종하가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나는 옷에 엉겨 붙어 있는 내장을 대충 털어 내고 선배가 떠난 길을 멍하게 봤다. 선배가 이 꼴을 보지 않고 떠나서 다행이었다. 언제 집에 가서 언제 씻지. 이 옷은 또 어떻게 하고. 차라리 다 벗어 버리면 속이 시원하겠다 싶었다.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대충 씻었다. 물기가 흐르는 얼굴을 닦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어차피 터미널 안에는 아무도 없다. 처음 나양에 왔을 때와 달리 더위는 한 꺼풀 식어 있건만 어쩐지 그때보다 숨이 막힌다. 갑갑한 숨을 내뱉고, 억지로 다시 들이켜 본다.

달라지는 건 없다. 거울 속 나는 초라하다. 꼴이 이래서가 아니다. 가진 것 없고, 그래서 내어 줄 것조차 없기 때문도 아니다.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인간. 남의 진심도 받아 줄 수 없는 나. 누구의 무엇도 될 자격이 없는 한심한 나.

거울을 보고 비웃어 주었다. 그래도 싸다, 너 따위.

나는 터덜터덜 거울 속 나에게서 벗어났다. 꼴 보기가 싫었다. 나를 반기는 것은 텅 빈 터미널이다. 올 때와 같이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고 보면 나양의 모든 것이 참 한결같다. 나 하나 있고 없음에 달라지지 않는 곳.

“김수연!”

이름이 불린 것과 동시에 거칠게 어깨가 돌려 세워졌다. 손자국이 날 정도로 내 어깨를 힘주어 잡은 이종하가 등을 굽힌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너 정말……. 너는 정말.”

“종하야.”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어떻게 이렇게 인사도 없이 가려고 했어? 넌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아무리 내가, 내가 너 안 본다고 했어도, 그래도 그렇지! 내가 어떤 맘으로 안 본다고 그랬는지 너 정말 몰라? 몰라서 나한테 이래?”

젖은 목소리에 말이 뭉그러졌다. 이종하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 덜덜 떨리는 턱 끝을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미안해.”

“미안하기는 해? 잘못한 건 알겠어? 그러지 말고 너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 봐. 그럼 내가 보내 줄게. 너는 나 조금도 안 좋아했어? 조금도 그런 맘 아니었어?”

“…….”

“차라리 안 좋아했다고 말해. 그 말이라도 들어야 내가 속이 시원하겠어.”

이종하의 모습이 꼭 예전 내 모습 같았다. 선배는 나 사랑 안 하잖아. 그러니까 인정해. 선배에게 소리치던 어린 내 모습이, 사랑받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던 내가 이종하와 겹쳐 보였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상처 받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사랑 따위에 목매고 싶지 않아.

“너 이렇게는 못 가. 난 너 못 보내.”

그런데 너를 못 놓겠다. 이기적이고 저열한 겁쟁이인 내가 감히 너를 탐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종하야, 네 손을 잡고 싶다. 다시 상처 받더라도 이종하, 너를 사랑하고 싶다. 네가 날 사랑해 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네가 준 사랑이 얼마나 달았는지 네게도 맛보여 주고 싶어.

“가지 마. 아니다! 가도 돼! 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내가 너 따라갈게. 그냥 같이 있게만 해 주면 안 돼? 지금 가도 되니까…….”

이종하는 울며 빌었다. 어깨를 흔들며 소리치던 이종하가 내 몸을 끌어안았다.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도 아랑곳없이 힘주어 나를 품었다. 목덜미에 닿는 불규칙한 호흡에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흐느낌에 어깨가 흔들리고 가슴이 들썩였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수연아, 말 좀 해 봐. 이종하는 그 말을 하고, 또 했다.

목구멍이 꽉 막혀 들었다. 이종하가 흘린 눈물이 꼭 내 목구멍으로 콸콸 흘러들어 오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나 같은 게 널 이렇게 울게 만들 수가 있어?

너는 어떻게 나 때문에 이렇게 울 수가 있어?

“종하야.”

종하야, 하고 나는 다시 한번 그 애를 불렀다.

“나랑 갈래?”

“…….”

“같이 있어 줘. 함께 서울 가자.”

이종하는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세 달 뒤에도 너랑 같이 지낼 수 있을지, 반년 있다가는 또 어디로 갈지 나도 아직 몰라. 내년 여름에는 네가 날 지금처럼 안 좋아할지, 네가 날 버릴지 그것도 몰라. 근데 너랑 지금 헤어지면 나는 내년 여름까지도 너 못 잊을 거야.”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지금만큼 무언가를 확신해 본 적 없었다.

“여태 네 마음 모른 척할 정도로 못나고 이기적이어서 미안한데, 내가 너한테 정말 못되게 군 것도 너무 잘 알겠는데. 그래도 나랑 있어 줄래?”

이종하의 손이 내 뺨을 쓸었다. 나는 내가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정한 손길이 사무치게 좋아 그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이종하의 얼굴에 미소가 올랐다.

“같이 있을게. 지금보다 더 좋아할게. 안 버릴게.”

사랑한단 말이 없어도 좋았다. 이종하는 아무런 말을 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나에게 온 마음을 주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이종하의 허리에 팔을 감아 그를 꽉 끌어안았다. 어떤 때보다 가까이 가슴이 마주 닿았다.

한여름 내내 그렇게나 진동하던 매미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나양의 여름이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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