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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85화 (85/91)

〈 85화 〉 양호실은 무서운 곳이야(01)

* * *

나는 지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기술가정 시간에 잠깐 만들어 본 이후로는 처음인 걸'

기술가정 시간에도 손재주가 안 좋아서 내 손가락만 잔뜩 찌르고 결국에는 초크로 책상에 낙서만 하다가 끝난 걸로 기억하는데.

어쨌거나 지금 내가 열심히 바느질을 하는 이유는, 이노리에게 [그림자 주머니]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두께가 없이 '면'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자를 내가 직접 겹치고 포개서 주머니로 만들어서 쓴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만으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뭔가 이미지가 제대로 없어서 그런가 그냥 옆구리로 줄줄 새어나오면서 실패했기 때문에 일단은 이노리가 구해다준 천과 바늘을 사용해서 직접 주머니를 만들면서 어떤 구조로 그림자를 접어야 하는지 배우고 있었다.

현재 내가 다룰 수 있는 그림자는 사람 상체 정도의 크기였다.

처음에는 양손을 그림자로 덮는 정도였지만 왜 늘었냐고 하면......

크흠. 아니 뭐... 오는 길에 야외에서 계곡을 발견한 김에 땀 났다고 씻다가 그만...

여하튼 [그림자 인법]의 수치가 35%가 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는데, [그림자 인법]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몸에 덮을 필요가 없었고 이것을 공격적으로 쓰기에는 아직 배움이 부족한지라 보조도구로 먼저 사용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룰 수 있는 그림자의 크기를 넘어서는 공간을 만들려면 [그림자 인법]에 대한 숙련도가 더 올라가야 하는데 대강 감으로 잡았을 때 70%는 넘어야 할 것 같으니 일단은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서 꼭 필요로 하는 물건만 넣어다니려고 한다.

하루 정도 고생 끝에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 주머니는 입구가 좁고 꽤 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내부 체적을 생각한다면 적당한 비율의 직사각형이 좋겠지만 이렇게 길게 만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들어가나... 좋아. 딱 맞구나."

+99999강 목검을 항상 소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목검이 없어서 곤한한 일은 없겠어."

매번 목검을 들고다닐 수가 없거나 깜빡 잊는 바람에 곤란한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데, 이렇게 [그림자 주머니]안에다가 목검을 넣어두면 비상상황에서 목검을 꺼내서 사용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림자 주머니]는 [그림자 인법]으로 공격당하지 않는 이상 손상될 일도 없었고.

"끄으으응~"

[그림자 가문]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난지 사흘째.

[그림자 인법]을 배우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검의 명가]를 위해서 검술도 열심히 배우고.

날이 더워졌다고 덜렁거리면서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금발의 사일리안도 목격하고.

"왕자라는 놈이 함부로 덜렁거리지 마!"

"더워서 그래 더워서."

이럴 때는 성인모드를 꺼놓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열이 나는건 매일 같이 술을 쳐마시니까 몸에 열이 차올라서 더운거지.

"거 참 남자끼리 있는데 시끄럽기는... 알았다 알았어."

물에 젖은 수건을 허리춤에 두르는데 덜렁덜렁 거리는 무언가를 마주치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었다.

"참, 아렌. 얼마 전에 레베카 선생님이 너 찾던데?"

"나를? 왜?"

"몰라. 뭐 받아갈거 있다고 하시더라? 근데 네가 자리에 없어서 못 전해줬지."

'돌발 이벤트인가?'

내가 이틀간 아카데미에서 납치되어 없어졌다는 사실은 의외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사일리안도 맨날 술 구한다고 며칠씩 없어지고, 오필리아도 은근히 자주 사라지는 것을 보면 의외로 출석에 관대한 아카데미라서 그런걸 수도 있고...

하기야 이노리도 가문에 정기보고를 하러 갈 때마다 만으로 하루는 꼬박 비우는데 자주 사라지는지 모르는 애들도 수두룩하지 아마?

그나마 오필리아가 바로 알아채고 어디 다녀왔냐고 묻기는 했지만, 내가 괜찮다고 잘 설득한 덕분에 미심쩍지만 넘어간 듯한 모습이었고.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해?"

"까먹고 있었지."

내가 실종되었던 시기에 찾았으면 벌써 4~5일은 된 일이었다.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면 이미 끝난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내일 신전에 한번 가봐야 되겠다.

* * *

신전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주변에 야릇한 남녀의 신음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나도 익숙해져서 그런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걸어가서 양호실로 향하고 있었다.

'참... 이런 미친 장소에 익숙해질 줄이야'

처음에는 뭔놈의 신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경악했지만 지금은 밖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돌아다닐 정도라니. 역시 사람은 적응의 생물인 모양이었다.

'응? 안에 안 계시나?'

현재는 별다른 외부활동이 없으니 양호실에 계실거라 생각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어차피 금방 돌아오시겠지 뭐'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였다.

"어, 어서오세요... 지금 선생님은 부재 중..."

뭔가 처음 보는 캐릭터가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속옷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짧은 치마에 살짝 가슴골이 보이는 귀여운 복장이었는데, 단발 캐릭터인지 머리카락은 흰색과 검은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섞여서 멀리서 보면 회색으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양산형 NPC의 모습도 아니어서 신전에 이런 NPC가 있던가?하면서 의문을 표하고 있는 동안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너, 너... 네 이노오오옴!!"

우렁찬 고함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나는 드디어 이 캐릭터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캐릭터는 그녀가 아니고 그놈이었다.

"너, 에릭이냐?"

띠링­

­ 에릭의 호감도가 '불편'단계가 되었습니다 ­

얼굴 옆에 [에릭]이라는 이름의 상태창이 뜨는 것을 보면서 확정되었는데, 원래는 되게 건방진 남자아이 느낌의 캐릭터가 지금은 귀여운 옷을 입은 채 치마가 들어올려져서 속옷이 노출될까 봐 다리를 교차시키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가 막혀서 말문을 잊었다.

"여기는 뭐하러 왔어! 나 비웃으러 왔냐!"

"......"

이걸 보고 무슨 말을 해야할까.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져 있던 나는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도 치마를 억누르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위로의 말을 꺼냈다.

"존중한다."

"뭐를?!"

"아니 그러니까 네가 그런 취미가 있다는 것을..."

­ 에릭의 호감도가 '적대'단계가 되었습니다 ­

에릭이 버럭 화를 내면서 자신의 검을 뽑으려고 할 때였다.

발바닥으로 내 그림자를 탁 하고 밟는 것을 신호로 목검을 꺼내들어 다시 일격에 날려버리려고 할 때.

"에릭! 손님에게 그 무슨 말버릇이야!"

내 등 뒤에서 잔뜩 화를 내고 있는 레베카 선생님이 우리 사이에 난입하고 있었다.

"항상 바른 말, 고운 말만 쓰라고 했지!"

"자, 잘... 잘못했어요!"

필사적으로 앞을 가리던 손을 갑자기 뒤로 넘겨서 벌벌 떠는 모습과, 레베카 선생님이 내 눈치를 보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대강 짐작해버리고 말았다.

'어우 상상해버렸어. 토 나와'

"제, 제발 그것만은... 잘못했어요 선생님..."

"안에 들어가서 대기해."

에릭이 부들부들 떨면서 우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까딱 잘못했으면 내가 레베카 선생님에게 잡혀서 저 꼬라지가 되었을까봐 소름이 돋았다.

"그래. 무슨 일로 왔니 아렌?"

레베카 선생님이 웃으면서 나를 맞이하는데 나는 이미 소름이 돋은 팔을 비비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사일리안에게 전해들었는데 뭔가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아, 토너먼트 우승 상품 말하는거구나?"

레베카 선생님은 갑자기 탁자를 뒤지더니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잠깐만 기다리렴. 금방 준비해 줄테니까."

"......?"

그녀도 여사제 중 한 명이니까 비싼 포션 같은거라도 주려나 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양호실 안쪽의 빈 침대로 들어간 그녀는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약 15분 정도 지난 후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얼굴로 유리병에 가득 차오른 액체를 건네주었다.

"자, 받아가렴. 선생님의 선물이야."

포션인가 해서 받았는데 이상하게 따끈따끈하다.

약간 노르스름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얀 액체였는데, 뚜껑을 닫아놓기는 했지만 그 입구 주변에 흘러내린 냄새만으로도 살짝 비린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베카 선생님이 입고 있는 셔츠 위에 살짝 젖은 자국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덜덜덜덜...

손이 덜덜 떨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레베카 선생님은 자신의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어머나. 우리 아렌은 그게 뭔지 알아챈 걸까?"

"이, 이거... 나오시는 겁니까?"

큰 충격을 받은 내가 말까지 더듬고 있으니 레베카 선생님은 꺄르르르 웃으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해주셨다.

"필요하다면? 신성마법에는 여러가지 기능이 있거든."

아니 그러니까, 그... 신전에서 팔던 그... 이상하게 기분나쁠 정도로 신선한 우유가 여사제들이 짜는 것이었......

"따뜻할 때 바로 먹는 편이 가장 좋을 거야.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쭉 마셔볼래?"

아무래도 이걸 마시지 않으면 안 보내줄 기색이었다.

'레베카 선생님의 이벤트인데 왜 왔을까'

이 미친 성인모드에서도 제일 미친 수위를 자랑하는 사람이 선물을 준다고 했을 때부터 불안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거, 아이템 창에서 설명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 정체불명의 따끈따끈한 액체 ­

­ 약간 비린내가 난다. 따뜻할 때 마셔야 할 것 같다 ­

"식으면 맛이 없단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붙잡고만 있으니 레베카 선생님은 직접 내 손에 들려있는 우유병의 마개를 열었다.

"어서 마시렴? 선생님이 고생해서 짠... 아니, 준비한 건데 식게 내버려두면 안 되지 않겠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잡고 있던 나는 결국 눈을 딱 감고 입에다 유리병을 대었다.

의외로 비린내는 강하지 않았고, 그것을 입술에 대는 순간 소름끼치도록 따뜻한 감촉이 입술에 전해지기는 하지만......

'어... 맛있다...?'

처음에는 입술을 대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입술에 닿는 순간 너무나도 맛있고 고소한 맛에 유리병을 뒤집어버릴 정도로 벌컥벌컥 마시게 되었는데, 그걸 다 마시고 나니 전신에 활력이 도는 것만 같았다.

­ 강한 신성력이 당신의 몸을 휘감습니다 ­

­ 모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영구적으로 소폭 상승합니다 ­

­ 모든 악에 대한 저항력이 영구적으로 소폭 상승합니다 ­

아니,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선생님, 이건 대체......"

"어때? 효과가 있니?"

아까는 그렇게 먹기 싫었는데 막상 먹고나니 이런 맛과 효능이라면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바라봐도 더 안 나와. 선생님이 젖소인 줄 알아?"

음. 아쉽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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