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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84화 (84/91)

〈 84화 〉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날(03)

* * *

"나와. 약속시간이다."

드르륵.

이노리의 오빠는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나오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얼굴을 보고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겠지만.

"......너, 밤 샜나?"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러니까......"

대충 뭘 물어보고 싶어하는지는 알고 있어서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엄청 했다."

굳이 그것까지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표정이 굳었는데 잠시 후 옷과 복면을 챙겨입은 이노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녀석도 표정을 굳혔다.

"안주인께서 찾으신다. 준비는 끝났겠지?"

"물론."

긴장된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며 나는 사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마치 우리가 길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처럼 어두운 복도 안으로 빛이 새어들면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내가 처음 잡혀있던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조그만한 이노리 닮은 여자애들이 그녀의 다리를 양쪽에서 붙잡고는 [그림자 인법]으로 같이 몸을 묶어두었다.

"......"

"신경쓰지 마라. 혹시라도 리타가 몰래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안으로 들어서니 이전의 화려하게 장식된 안주인 복장을 입은 채로 기다리고 있는 사오리 어머님과 그녀의 호위인 두 사내가 보였는데, 나는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안 그래도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준비는 다 끝나셨사옵니까."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쉽게도 정력이 부족해서 [그림자 인법]특성의 30%를 채우지 못했다.

예전에 얻었던 [검의 명가]특성이 아직까지 20%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많이 먹은것이기는 한데 그래도 별다른 훈련 없이 바로 쓸 수 있을까는 별개의 일이었다.

[검의 명가]특성은 패시브에 가까운 물건인지라 검을 사용하면 기본적으로 적용이 되고 마리안의 검술을 복제해서 사용하면 효과가 오르는 것인데 [그림자 인법]은 따로 사용법이 있는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는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법.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사옵니다."

주변을 두르고 있던 커튼이 바뀌면서 어두운 공간에 다시 달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흐릿하게 내 그림자가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이노리와 두 자매들은 서로 묶인 채로 천장에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에 묶여 있었다.

'어차피 이노리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이노리는 이건 설명할 수가 없는,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자전거를 타는 방법처럼 본능의 영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고양이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고 나에게 꼬리를 붙여줬을 때 똑같이 흔들 수가 없는 것처럼, 사용한 적이 없던 기관을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그림자를... 어떻게 움직이지?'

일단 팔을 뻗는다. 그림자도 팔을 뻗는다.

여기에서 몸을 움직이면 똑같이 그림자도 움직이는데, 마치 그림자로 연극을 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바로 사오리 어머님이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

착.

그래서 나는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내 그림자를 상대로 가위를 내니 그림자도 가위를 내고, 내가 바위를 내니 그림자도 바위를 낸다.

원본은 거울 속의 나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다는 내용이지만 그림자를 상대로 해도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손을 펼쳐서 보를 내니 그림자도 마찬가지로 보를 내는데 내 움직임을 보고 있던 사오리 어머님이 한숨을 내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몸 근처로 다가오는 날카로운 그림자 가시를 느낄 수 있었다.

'몰입해야 돼'

이긴다. 이 가위바위보를 이긴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림자와 연달아서 가위바위보를 비기고 있었다.

"이제 그만. 역시나 또 거짓을 말하신 모양이옵니다."

아니, 거짓이 아니었다.

내 특성에는 [그림자 인법]이 29%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흐릿해진 그림자를 보면서 나는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고 연달아서 비기는 모습에, 게다가 내가 혼자 놀고 있는 모습에 다른 그림자 일족들은 복면 안에 감춰진 얼굴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대놓고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였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처음에는 내 착각인 것인가 생각했지만 아주 조금씩, 그림자가 나보다 가위바위보를 늦게 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가 너무 집중해서 시간감각에 오류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대로 이긴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이어나갔다.

"거기까지. 이번에도 거짓을 고한 죄, 목숨으로 받아내겠습니다."

"주군!!"

그리고 마침내.

그림자가 엉거주춤하게 가위를 내는 순간 나는 주먹을 내면서 드디어 그림자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하였다.

'됐다! 내가 그림자를 이겼어!'

그러나 그 순간 이미 사오리 어머님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날아들면서 내 목을 꿰뚫으려 하고 있었고 나는 내 그림자를 보여주기도 전에 죽을 위기에 처해버렸다.

'이건... 위험...!'

푸우욱!

그림자로 만들어진 가시가 내 목을 꿰뚫는다.

아예 '두께'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그림자.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이 뚫어야 하는 그것을.

"아야야야......!"

나는 검은 색으로 물든 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뭐야 이게... 설마... 진짜로 썼다고?"

내 오른손과 왼손에 그림자가 손을 보태주고 있었다.

비록 완벽하게 겹쳐지지 않아서 왼쪽은 손가락 두 개가 그대로 드러나서 가시에 찔리면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고 오른쪽은 손바닥이 어긋나서 내부가 너덜너덜해져 버렸지만, 나는 양손으로 그림자 가시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사오리 어머님도 놀란 채로 자신의 가시를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더... 더... 할 수 있어!'

이전에 이노리의 그림자를 손에 머금었던 것처럼 양손을 완전히 그림자로 덮어내고 난 뒤, 나는 내 목을 찌르려던 가시를 그대로 부러뜨렸다.

"말씀드렸죠?"

경악한 호위들에 의해서 달빛 커튼이 열리고 다시 빛이 새어들어 그림자가 흩어질 때에도 내 손에 맺혀있는 그림자만은 마지막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해낼거라고."

* * *

나는 그냥 보여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림자 가문은 대충격에 빠져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은 지금까지 그림자로 덮어서 관리하고 있던 나와 이노리를 방치해둔 채 자기들끼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싸울 정도로.

"안주인! 이렇게 된거 저도 유키에에게 [그림자 인법]을 가르쳐보겠습니다!"

얼굴에 핏대를 세우면서 아마도 일족이 아닌 좋아하는 여성을 가르쳐서 데려오겠다며 대드는 이노리의 오빠라던가 일족이 아닌 사람이 [그림자 인법]을 사용했으니 죽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까지.

'그럼 정말로, 아무도 내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동반수련공의 효과인 성교를 치른 상대의 특성을 가져오는 기능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이 기능이 치트성 편의모드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정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고.

핥짝...

[그림자 가시]로 인해 내 손에 깊게 베인 자국을 보면서 이노리는 열심히 포션을 바르며 치료해주고 있었는데, 포션을 입에 머금고서 자신의 혀로 핥으면서 치료해주고 있으니 자꾸 간질간질하게 된다.

'그냥 물에다가 포션을 풀어서 계속 씻으면 되지 않을까...'

효율적이라기 보다는 이노리가 내 손을 계속 돌봐주고 치료해주느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기는 한데, 좀 간질간질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문제였지.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그림자 가문의 안주인은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어떻게... 하신 것이옵니까?"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해줄 수 밖에 없었다.

"잘."

"......비밀이라는 것이옵니까?"

동반수련공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었고, 설명한다고 해서 이곳 세계의 법칙에 묶여있는 NPC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괜히 버그가 더 벌어지기 전에 얼버무리는 편이 낫겠지.

"......그대의 [그림자 인법]은 완벽하지는 않고 아직 조종할 수 있는 범위가 작기는 하지만, 하루만에 익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그 말에 이번에는 손바닥을 검게 물들인다는 생각을 하니 내 손이 그림자로 물들어갔다.

아직 흐릿하게 형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손을 제대로 그림자로 덮은 모습을 보면서 사오리 어머님은 감탄하는 듯이 일족들을 불렀다.

"외부인이 [그림자 인법]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죽여야 합니다."

"안주인의 이름으로 약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자 인법]이 유출되었다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는......"

강경하게 나오는 호위를 보면서 이노리는 혹시 몰라서 내 손을 감싸안고는 나를 데리고 탈출하려 했으나, 안주인이 손을 들어 호위들의 말을 제지했다.

"이미 약조한 것은 약조한 것. 무엇보다, 이 아이가 주군으로 선택한 사내이다."

"하지만 안주인!"

"그리고, 혈통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그림자 인법]을 재현할 수 있다면... 우리 가문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니겠나? 그러니......"

사오리 어머님은 자신의 복면을 벗고, 웃는 얼굴로 나를 가리고 있는 이노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안심하렴. 이노리."

안주인으로써의 약속이 아니라 어머니로써의 말에 이노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안주인님! 저도, 저도 좋아하는 여인이..."

'지금이 기회라면서 흥분해서 안주인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철 없는 오빠가 왜 동생만! 하면서 따지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아... 이걸로 끝이려나......'

그렇게 만 이틀의 시간을 들여서, 나는 이노리와 [그림자 일족]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다만, 사오리 어머님께서 몇 가지 제약을 걸었는데.

외부인에게 [그림자 인법]을 전수하지 말 것.

그리고 이노리에게 [그림자 일족]의 수련을 받을 것.

두 가지였다.

이곳에 끌려올 때에는 수면가루를 코에 주입당하고 질질 끌려왔는데, 돌아갈 때에는 몇 가지 선물과 함께 이노리와 손을 잡고 가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가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안대를 뒤집어 쓴 채 이노리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걸음수로 외우면 안 되니 조금 돌아갈겁니다 주군."

"아니... 안 외울 테니까 그냥 직선으로 가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이번에 주군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신뢰도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 한 거지 뭐..."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따스한 햇살 속에서 이노리의 손을 잡고 같이 산길을 걷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뭐... 어찌보면 조금 지지부진한 상태였던 이노리와의 관계가 끝까지 진전된 것이지만......'

다만 하트가 다섯번째 칸의 끝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것으로 봐서는 조금 불안하긴 한데.

'뭐 좋은게 좋은거겠지만'

"......합니다. 주군."

"응? 이노리 뭐라고 했어?"

"아무말도 안 했습니다."

아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낙엽 밟는 소리에 취해서 듣지 못했다.

그래도 대강 그 내용은 짐작이 가지만.

"어 그래. 나도 사랑해 이노리."

"드, 들으셨습니..."

"아니 뭐..."

슬쩍 안대를 들어올리며 빨개진 얼굴의 이노리의 코를 콕, 하고 눌러주었다.

"지금 이노리가 할 얘기는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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