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그림자 일족을 위하여(02)
* * *
"이거 놓으세요! 지금이라도 풀어준다면 죄는 묻지 않겠사옵니다!"
"주군께서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노리도 나름대로 복수하고 싶었던 것인지 단칼에 거절하면서 얼굴을 겹치고 있는데, 사실 모녀덮밥이라기 보다는 자매덮밥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좋은 거지'
성인모드 제작자만 꼴잘알인게 아니다. 나도 이런쪽에 좀 조예가 깊지.
두 모녀가 무방비하게 얽혀있는 상태에서 손을 뻗어 양쪽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살짝 옆구리로 손을 흘려주면, 이노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 만져져서 움찔거리고 사오리 어머님은 화들짝 놀라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노리가 [그림자 인법]으로 꽉 묶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부질없는 흔들림만 줄 뿐이었다.
'엉덩이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가슴은 거의 비슷하네'
"협상합시다."
이 숨막히는 대치상황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상황을 오래 끌 수는 없으니까 제안사항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님, 이노리 데리고 가는 걸 허락해 주시지요."
"안 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기길래 옆구리에 손가락을 문질러 주었다.
+3짜리 손기술이기는 했지만 자기 아랫 사람 앞에서 굴욕당하고 있는데다가 이노리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그림자 인법]으로 자기 어머니의 가슴을 조이거나 허벅지를 꽉 물면서 자극하고 있으니 꽤나 버티기 어렵겠지.
"왜 안 됩니까?"
"이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하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는 일과... 애정을 품는다는 것을 더 잘 구별하게 된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림자로써 주군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옵니다."
나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사오리 어머님은 단호했다.
"이 아이가 주군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림자 가문]입장에서도 환영할 사항이지만 마음 속에 다른 이를 품게되면 나중에 일족의 현실 앞에서......"
"대충 강아지 품종 만드는 것처럼 저 녀석... 그러니까 사촌인지 육촌인지 아니면 삼촌이나 형제쯤 되는지 모르는 놈이랑 섞는거 말입니까?"
내가 정곡을 찌르지 사오리 어머님은 입을 다물었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아..."
객관적으로 보자면 정말 쓸모없는 일이지만, 이 가문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필사적인 일이겠지.
"근데 전 이노리가 좋습니다만. 포기하시죠."
"협상할 생각이 없지 않사옵니까!"
"어차피 이곳까지 외부 사람들의 [그림자 인법]이 들어올 일은 없지요?"
내가 그림자를 만들어주고 있는 이노리와 이 공간에 상관없이 [그림자 인법]을 사용할 수 있는 어머님을 제외하면 외부의 일족들도 함부로 이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그럼 여기서 제가 뭘 하든지 막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이노리를 닮은 사내가 허리춤에서 암살자의 직검을 꺼내들었다.
이노리가 가지고 있는 암살자의 직검은 압수당해 무기가 없었지만 나도 그에 대항할 무기를 꺼내려 했다.
지이익.
"......뭐하시는 겁..."
"움직이기만 해봐. 확... 둘 중 하나는 찔리는 거야."
그 말에 이노리와 사오리 어머님이 동시에 토끼 눈을 떴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닮았네'
"상황이 급하면 한 명은 찔리는 거야. 어?"
"미... 미친 놈이십니까?"
"남자답다고 해라."
"아니 그게 어떻게 남자다운..."
주도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이 기세를 놓치면 안 된다.
"어머님."
"......풀어주시지요. 이렇게 할수록 서로에게 더욱 힘들어질 뿐이옵니다."
"그러니까, 저와 이노리가 안 되나는 이유가. 나중에 이노리가 다시 가문에 돌아와서 [그림자 인법]을 쓸 수 있는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입니까?"
직설적인 내 물음에 사오리 어머님은 이노리로 위장하기 위해 쓰고있던 복면을 스스로의 가시모양 [그림자 인법]으로 끊어버리며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이노리가 저를 좋아하면 안 되는 이유가, 나중에 저 놈이랑 결혼해서 아이들을 숨풍숨풍 낳아야 하는데 괜히 저에게 빠져버리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서 안 된다?"
"[그림자 일족]은 평상 한 명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충성대상과 애정대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그나마 위험할 정도로 연약한 일족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옵니다. 그러니......"
사오리 어머님은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이제 놓아주시옵소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머님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이노리의 몸을 감쌌다.
"놓아줘."
내가 목소리로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이노리는 자신의 어머니를 풀어주었고, 그녀는 이노리를 닮은 사내가 준 자신의 옷을 다시 걸치고 원래의 모습.
[그림자 가문]의 안주인으로 변신하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대의 능력이면 [그림자 일족]을 손에 넣었을 때 대륙을 호령할 자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니......"
"해결할 수 있다면?"
"......무슨 말씀이온지 잘 모르겠사옵니다만."
" 자손에게 [그림자 인법]을 물려줄 수 있게 된다면? 즉, 제가 [그림자 인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상대가 주군이건 나부랭이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 발언을 듣고 사오리 어머님은 자신의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부정했다.
"[그림자 인법]은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철저하게 일족의 혈통 속에서만 발현되는 것이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겠지. 라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뒷말을 아끼는 어머님을 보면서 나는 이노리에게 말했다.
"가능하시겠사옵니까?"
"이노리의 도움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내 신뢰도 자체가 저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이번에도 거짓으로 기만하려 한다면. 다음번 기회는 없사옵니다."
마지막 경고였다. 그래서 나는 이노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이건 무조건 됩니다."
* * *
'밝다......'
등잔 두 개를 설치했다고 이렇게 밝다니 밖에서는 너무 어둡다고 창문도 열고 횃불이라도 들었을 어둠이었는데.
나도 어느새 어둠에 익숙해져 버렸나보다.
"그렇게 되어서......"
지금 나는 옷을 갈아입은 채 손님용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머님에게, 그리고 [그림자 일족]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하자 '이 자식 역시 목적이 그쪽이었나!'라는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어머님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차라리 그걸로 미련을 끊는다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옵니다... 라고 하셨지'
내 능력에 대한 설명을 이노리에게는 어느 정도 해줬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이곳에서 시키는 대로 그냥 거부하고 있어도 되고, 아니면 나랑 같이 아카데미로 돌아가도 되고.
아마 다시 가문에서 수련을 쌓아서 자신의 마음을, 애정도를 정리할 수 있게 된다면야 그녀도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동안은 안주인께서 이노리로 변장하여 대신 학교를 다녀줄 것이다.
'솔직히 그것도 궁금하기는 해'
2년 나이 많은 학생이 갑자기 20살은 많은 학생으로 교체된다니. 상황 자체가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노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 식사는 나를 돌봐주던 그 사내가 하고 있었고.
"저녁이다. 먹어."
"아까까지 주군이라고 하더니 말투가 변했다?"
"좋은 말이 나오겠나? 그리고 이제 별 사이도 아닌데 굳이 대우해줄 필요는 없지."
하기야 이 녀석 입장에서는 이노리를 빼앗아 가려는 놈이라서... 금발 양아치는 아니고 은발 양아치잖아?
대놓고 나를 싫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놈이기는 하다.
"리타가 직접 만든 주먹밥이다."
"......"
여기 오기 직전에 먹었던 마지막 음식이 주먹밥이었던가. 기간으로 따지면 아직 이틀 정도인데 굉장히 오래전의 일로 여겨진다.
"한 가지만 묻지."
"응?"
"이번에... 일을 치르고 실패하면. 남자답게 포기하고 가는 거다. 알겠나?"
"싫다면?"
"안주인에게 살해당하는 한이 있어도 네 놈을 죽일거다."
"그럼 [그림자 일족]은 멸족하지 않나?"
"알게 뭐야. 어차피 이렇게 좆같은 방식으로 유지될거면 멸족되는게 나아."
"으음......"
그 말을 듣고 나는 주먹밥을 단숨에 씹어삼키며 말했다.
"알겠다. 네가 이노리 오빠구나."
방금 말투에서 평소에는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여동생 울리면 죽인다고 하는 오빠의 기운을 느꼈다.
"이 안에서 함부로 일족의 진명을 부르지 말라고 했... 하... 그리고 자기것이 아닌 일족의 정보는 알고 있어도 속으로 담아두도록 해라. 그러다가 진짜 죽는다."
"생각해보고."
"뻔뻔한 놈... 이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목숨 걸고 편을 드는 건지."
한숨을 푸욱 내쉰 녀석은 내가 두 번째 주먹밥을 집어들기 전에 자기가 뺏어서 복면을 벗고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이 녀석은 입가에 점이 있네'
점순이 점돌이 집안이구만. 이노리는 얼굴에 점이 없던데... 다른 곳에 있는 건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친남매는 아니고. 어머니는 [그림자 인법]을 쓰지 못해서 외부에 기거하는 다른 분이다. 흔히 말하는 이복남매라는 거지."
안주인과 닮아서 친남매인 줄 알았는데.
"네가 지금도 거짓말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진짜로... 아니, 거짓말을 할거라면 저 ㄲ다로운 안주인을 속일 정도로 기가 막힌 거짓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리타랑 결혼하느니 이런 가문 없어지는게 나을 테니까."
"이노리가 슬퍼할까봐?"
"진명! 부르지! 말라고!"
"이노리 이노리 이노리..."
주먹밥을 거의 부수듯이 입에 쑤셔박은 녀석은 나를 노려보더니 홱, 하고 남은 음식들을 챙기고 몸을 돌렸다.
"가능하면 덜 상처받게 해라. 만약 울리면... 나중에라도 찾아가서 죽여버린다."
"네 매형."
부들부들 떨면서 밖으로 나가는 이노리의 오빠를 돌려보내고 나니, 잠시 후 익숙한 푸른색 상태창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입구에 도착한 이노리는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면서 돌아다니고 있다가,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와 이노리."
드르륵.
공손하게 무릎을 꿇은 채, 하얀색의 얇은 가운만 입은 채로 자세를 낮추고 있는 이노리가 보였다.
'어......'
그런데 그 모습이 평소와는 달랐다.
평상시에는 닌자 복장을 입고 있어서 망사 상의와 몸에 달라붙는 타이트한 바지, 그리고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과 머리에는 두루마리와 비녀를 꽂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머리카락도 얌전히 내리고 복장도 바뀌어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리 와."
내가 부르자 문을 닫고 무릎으로 걸어서 옆으로 다가온 이노리를 보면서, 그 얼굴을 잡고 눈 옆을 살짝 문질러 주었다.
"보, 본인 맞습니다 주군..."
"사오리 어머님이 아니고 본인 맞구나."
사실 애정도가 울렁울렁거리는 모습만으로도 그녀가 맞음을 알고 있었지만 장난을 치고 싶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노리의 우물쭈물하는 손을 잡고 물었다.
"우리 지금부터 뭘 할지 알고 있지?"
"......예..."
"그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허락한다 생각하고 온 거지?"
".......예..."
"그럼 이노리가 이해한 것을 말로 해봐.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말에 이노리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터질 듯이 붉어진 채로 우물우물 거렸지만, 그녀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들을 수 있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저... 타마미 이노리는 주군께 몸을 바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