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그림자 일족의 저택(02)
* * *
이노리와 눈에 띄는 차이점인 눈물점은 화장으로 가린 것인지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좀 정신을 차리니 이노리랑 닮기는 했지만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 보였다.
'지난번에 이노리가 나로 변장했을 때에도 의외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이것도 그림자 인법을 사용한 변신인가? 아니면 특수한 능력 없이도 이 정도로 비슷하게 변장한 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워낙 닮아서 난이도가 쉽다고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상태창조차 속일 정도라니.
심지어 그 이노리랑 몇 달을 붙어있던 나조차도 순간 이노리라고 착각시키다니 내가 조금만 더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긴가민가하던 상황에서 내가 확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아쉽게도 성인모드에는 그것이 적용되지 않아서 나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저도 주군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가문에서 이렇게 반대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안타깝게 눈물을 글썽이는 연기를 보고 있으니 나는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림자 일족]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내 표정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으니까 조심, 또 조심해야만 했다.
'주군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비운의 그림자 일족을 연기하는 것 같지만... 내가 그 내막을 짐작하고 있으니 그냥 엄마가 주책맞게 딸을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져...'
만약 이노리에게 자매가 있다거나 비슷한 동년배의 여성이 있었다면 그녀가 대신 했겠지만, 꽤 나이차이가 나는 아이들이나 비슷하게 생겼어도 선에서 차이가 나버리는 남자 밖에 없으니 어머님께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 버틸만 해. 그러니까 이노리도 조금만 더 버텨줘."
약간 사오리 어머님의 눈이 실망과 '이놈 봐라?'하면서 이채를 띄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어차피 시간을 끌면 자기들이 유리하니까 계속해서 나를 가둬둔 채 남자 버전 이노리를 데려와서 친근하게 정이 붙도록 만들어서 '나쁜 놈은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이노리의 모습으로 와서 눈물어린 이별을 독촉하겠지.
'단순하지만 효과적이겠지'
그래서 나는 그녀에 대한 반격으로, 이노리를 사칭하는 사오리 어머님의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고 있다가 그녀의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읏?!"
모녀가 이런 면에서 반응은 비슷하구나. 약간 이쪽의 신음소리가 조금 더 굵게 느껴지지만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가서 그런가보다 싶었고.
"주군...?"
사실 사오리 어머님의 임시 성기레벨, 즉 섹스 테크닉은 +20이었다.
즉, 기술적인 면으로 따진다면 거의 이쪽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의무교미사나 신전의 여사제들보다 조금 떨어질 뿐인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이제 겨우 +3짜리 내 손길에 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만져지는 것에 당황해서 빈 틈을 보였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범한 연기를 하고 있지만 역시 어둠 속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예 주군. [그림자 일족]에게는 친숙한 공간이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몇 시간만 갇혀있어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흐윽?"
"그러니까... 조금 위로해주지 않을래?"
복면을 쓰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상태창에 보이는 사오리 어머님의 표정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노리에게 하듯이 가느다란 허리에 손을 얹어보았는데,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라서 그런가 내 손과 코가 더 예민해진 것만 같아서 이노리의 몸과 아주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사오리 어머님의 몸을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노리보다 엉덩이가 조금 더 큰데?'
겉보기에는 똑같아야 하니 사오리 어머님께서는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고 있는데 사이즈로 치자면 반 사이즈 정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노리의 복장을 그대로 입은 것인지 아니면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준비했으나 오차에 들어갈 정도의 엉덩이 차이를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차이가 드러나고 있었는데 이노리는 맨살과 타이즈가 맞닿는 부분에 살짝 살이 올라오는 수준이지만 어머님은 꽤나 살이 뭉쳐있어서 조금이지만 튜브가 잡혔다.
'연세치고는 잘 관리한 편이기는 하지'
이 정도의 사이즈 차이가 있으니 실제로 이노리는 여유롭게 입고 움직이는 타이즈 바지 안쪽에서도 차이가 났는데, 엉덩이를 살짝 더듬는 순간 정확하게 엉덩이를 딱 채우는 탄력이 있는 이노리와는 다르게 조금만 손을 건드려도 터질 정도로 빵빵하게 불어있는 느낌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후훗......"
"주군.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언제 일족들이 올지 모르니까..."
"그건 이노리가 막아주면 되잖아."
어머님은 지금 내가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이노리에게 이렇게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굳어있었고 나는 어머님의 엉덩이를 손으로 잡고 살짝 때려주었다.
짜악.
"여전히 찰지구나."
"......!!"
뭔가 사오리 어머님의 몸에서 뜨끈뜨끈한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발 밑에 살기가 맴돌았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았을 때 어머님은 지금 [그림자 인법]으로 나를 꿰뚫을까 고민했다가 겨우 참고 있는 모양인데.
'뭐... 누적 정액량이 저 정도인데 경험인수가 1이라면 어머님도 남편에게만 충실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거니까'
"주군!"
팍.
결국 버티지 못한 사오리 어머님이 내 가슴을 팍하고 밀어내면서 거리를 벌렸고, 내가 손을 들면서 이불 위로 넘어지자 어머님은 내가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거리를 벌리면서 물러났다.
"죄송... 합니다. 일족이 지금 오고 있기에 본능적으로..."
'아무도 안 오는데?'
내가 상태창이 보이는 것도 모르는 사오리 어머님의 변명을 보면서 나는 방금 전력으로 밀쳐지면서 얻어맞은 가슴을 문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은 잠시 빠져나온 것이니 일단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다만... 주군께서 이곳에 오래 계신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나는 걱정하지 마. 이노리만 있으면 버틸 수 있으니까. 그 대신 가끔... 알지?"
내 말에 사오리 어머님은 경멸어린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가 고개를 숙여서 시선을 피하고는 [그림자 인법]으로만 넘어갈 수 있는 벽을 열고는 밖으로 나갔다.
'손가락에 그림자를 두르고 벽에 박아넣은 다음에 여는 방식인가?'
나는 그녀가 빠져나가는 길을 벽 너머로 열심히 지켜보았다.
일단 그녀의 진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누군가를 만나서 섞이더라도 구별이 가능했고, 키타자와 사오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상태창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들어가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땅이 꺼진 것처럼 아래쪽으로 내려간 모습을 보고, 그곳이 이노리를 가둬둔 감금실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통한다면 이노리에게 전달이 가능하겠지?'
* * *
"너는...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녔길래!"
갑자기 자신으로 변장한 어머니가 찾아오더니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노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아니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디까지...!"
"......???"
"요즘 애들은 정말로 발랑 까졌다는 말이 맞구나, 역시 가문 밖으로 내보내면 나쁜 물이 들어온다고 하더니 벌써부터... 주군이라는 녀석을 고를거면 신중하게 골랐어야지 아무렇지 않게 여성의 몸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노리의 눈이 가늘게 뜨여지면서 대강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주군이 어머니의 변장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자신인 줄 알고 건드렸다면 우리 사이가 그 정도였나 하는 서운함과 함께 만약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설마 자기 어머님에게 손을 댔는가 하는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이 엄마는 절대 인정 못 한다! 그림자 주머니를 그런 용도로 사용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이노리. 내 말 들려?]
자신의 귀에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노리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가주가 부재중인 지금 이곳에서 가장 강한 안주인인 자신의 어머니 사오리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슬픈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 어머님과 같이 있어? 들린다면......]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주군이 이상한 명령을 내렸다.
[어머님에게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게 할 수 있겠어?]
주군의 명령이었다.
이노리는 여러가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모시는 주군의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다.
"요즘 애들은 다 그 정도는 해요."
"뭐, 뭐, 뭐라고?!"
자신과 똑같이 닮은 얼굴로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이노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격렬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라 재미있기는 했다.
지금도 뒷목을 잡으면서 화를 참느라 부르르 떨고 있었으니까.
[반응을 보니까 내 목소리는 들릴 것이고. 그쪽에 있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군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노리는 갑자기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군이라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다만 자기 어머니와 뭔가 불순한 관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가슴이 조금 답답하고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이노리는 다시 입을 다물고 묵언의 시위를 재개했다.
* * *
"아침입니다."
능력치가 오르지 않았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렇게 치면 이건 아마 야식이겠지.
내가 시간감각이 없으니 일부러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초조함을 느끼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리타는?"
"저한테는 그녀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안주인의 능력을 보니 상황을 모르고 있을 리 없다 생각해서."
"걸렸습니다. 안주인께서도 설마 몸을 풀어줬다고 탈출해서 주군을 찾아가겠냐 생각한 모양이지만 실제로 찾아왔고... 현재 그녀는 가문 안쪽에서 스스로 숨어서 도망다니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일족은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고, 본인만 잘 숨고 있다 착각하고 있겠지요."
그런 설정이란 말이지.
"다음에 또 보게되면 포기한다고 미리 전달을 해주시거나 자수하라고 해주십시오. 안주인께서는 침착하지만 처벌을 내릴 때에는 자비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러다가 잡히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생각은 해보지."
수면가루가 들어있을 수 있어서 밥을 안 먹고 그대로 돌려주니, 이노리를 닮은 남자는 굳이 강요를 하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쟁반에 식기를 가지고 돌아갔다.
"잠깐 산책 좀 가능할까?"
"내보내드릴 수 없습니다만?"
"어차피 내가 도망가도 일족 한명만 붙으면 잡힐 텐데. 복도라도 잠깐 돌다가 들어오지. 불안하면 눈을 가리거나 팔을 묶어도 좋고?"
"으음..."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도 최소한 집 앞은 산책시킨다고."
그 말을 들은 이노리를 닮은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의 역할을 떠올린 듯했다.
앞으로 이노리를 대신해서 자신이 모셔야 하니 친근함을 가져야 한다고, 적어도 그런 연기를 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다만 위험할 수 있으니 눈은 가리겠습니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지."
꽈악.
여분의 복면을 꺼내더니 그것으로 내 눈을 가렸는데 약간 감정이 담겨있는 것처럼 내 눈을 강하게 조여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그냥 참고 그 뒤를 따랐다.
'어차피 안대가 없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군'
"위험하니 제가 부축해드리겠습니다."
끄덕.
고개를 숙이고 바닥으로 시선을 응시한 채 나는 사내의 뒤를 따라 복도를 움직였다.
나는 당연히 안대를 하면서도 실눈을 뜨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안대 때문에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시스템으로 적용되는 상태창만은 구별할 수 있었다.
"복도만 잠깐 걸었다가 그대로 들어가는 겁니다."
복도가 좁아서 그런지 빙글빙글 돌아서 가지는 않고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주 살짝 파란색의 상태창이 흐릿하게 보이는 장소를 확인했다.
'거리, 위치......'
걸음을 확인한다. 다른 사물이 있었다면 오히려 거리가 헷갈렸겠지만 어둠 속에서 상태창의 크기만 보고서 대략적인 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산책은 끝입니다. 다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식기를 반납한 사내가 나를 다시 안내해주는데, 내가 그림자로 차단된 벽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다시 문을 닫고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노리.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그림자를 보내줄 수 있겠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