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닌자는 주군의 편리한 도구(01)
* * *
꼬르르륵...
'아... 배고파...'
우리는 지금 한창 돌도 씹어먹을 나이다.
점심을 먹어도 간식이 끝도 없이 들어갈 학창시절인데 점심시간을 모조리 도서실에서 앨리스랑 노는데 써버렸으니 오후 수업동안 내내 배가 고플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예전에 선물로 받은 [달콤한 사탕]을 하나씩 까먹으면서 출출함을 달래는데, 그래도 든든한 빵이나 고기가 없이 사탕만으로 점심을 대체하려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입만 달고 속은 쓰려진다.
"아렌, 배고파?"
"배고파..."
"식당에서 보이지 않길래 외식하는 줄 알았는데. 어디 갔었어?"
"자다가 점심을 걸러버렸지 뭐야."
충분히 가능성 있는 대답이었기 때문인지 오필리아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주었다.
"그래도 밥은 제대로 챙겨먹고 다녀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시설 구경하기 전에 아렌 먼저 찾아서 밥 먹일 걸 그랬어."
아까 있던 일을 생각하면 나를 찾아다니면서 추적하는 것도 좀 곤란했겠지만.
'뭐 앨리스는......'
지금 앨리스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 그대로 고정된 채, 애정도만 하트 게이지가 파도처럼 넘쳐흐르면서 차오르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일주일 뒤라는 시간을 지정한 이유가 내 성기레벨을 앨리스에게 맞춰서 올리기 위해 시간을 번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앨리스는 [망상가]성향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스스로 애정도를 넘치도록 채워놓을 것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숨죽인 채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아까처럼 나를 낚으려는 거짓인가? 하고 보려고 했으나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속기하면서 책장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까 저건 진짜였다.
가짜라면 일부러 나에게 글 내용을 노출하고 있겠지.
'크흠... 자신의 몸에 닿았던 내 물건의 감촉을 기록하고 있는 거려나'
일주일 동안 앨리스의 딸감은 아마 오늘의 문질문질이 되겠지. 나도 지금 신경썼다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내가 못 버틸 것 같아서, 앨리스에게서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하면서 시야를 돌릴 때였다.
까닥까닥.
교실 뒷문 밖에서 이노리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길래 밖으로 나가서 그녀를 따라가니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계단참 구석으로 들어가서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그림자 인법]을 사용한 투명화였다.
"이래봐야 이노리는 보이는거 아니야?"
"이제 둘 정도는 숨길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능력이 성장한 걸까. 확실히 지나가는 데이츠가 나와 이노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쿠키를 씹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저 쿠키 맛있겠다. 초콜렛도 많이 박혀있는 것이...'
꼬르르륵...
이노리는 자신의 가슴 망사를 살짝 들어올리며 [그림자 주머니]를 열어 안에 숨겨두었던 음식을 꺼내주었다.
"주군. 이거라도 드시지요."
주먹밥 이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뭉쳐져 있고 가운데에 김이 박혀있는, 일본 게임에 많이 나오는 그거 말이다.
'이런 아이템이 있었나?'
어쨌거나 나도 동양인이라서 빵보다는 밥이 좋았기 때문에 이노리가 몰래 넘겨준 주먹밥을 먹고 있는데 약간 간이 싱겁기는 하지만 시장이 반찬이라고 두 개의 주먹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하... 이제야 살 것 같네. 고마워 이노리."
평소와 같이 무표정해 보이기는 했지만, 복면 밑의 입술이 살짝 미소짓고 있으리라는 걸 지금은 잘 안다.
"점심시간에 어디 계셨습니까?"
"잠깐 일이 있어서. 그보다 왜? 이노리는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알 수 있지 않던가?"
"같은 건물 안에 있다면 가능합니다. 다만 중간부터 주군의 기척이 파악되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습니다만."
도서실 안에 펼쳐진 앨리스의 결계 때문에 이노리도 나를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만 급한 용무나 위험에 처했으면 주군께서 '칙명'을 사용해 저를 불렀을 것인데 호출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주군께서 무언가 바라는 바가 있다 판단하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잘했어."
실제로 이노리를 부를 일이 딱히 없었으니까.
오필리아가 왔을 때는 이노리를 불러서 시간을 끌어주거나 오필리아를 데리고 나가라 요구할까 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까 생각이 안 났다.
"그리고 주군."
"응?"
"몸에서 다른 여인의 체취가 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스스로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있다가 이노리의 눈매가 가늘어지고 나서야 함정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마리안 반장은 그 당시 식당에서 주군을 찾고 있었습니다만."
"내가 좀 여러가지로 바빠서."
이노리는 푸욱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애초에 이 게임은... 좀 하렘루트를 타야지 난이도가 쉽다고'
물론 그건 핑계고 내가 욕심삼아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 손을 대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한데, 정석 공략이 모두와 두루두루 친해져서 아군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것이 정석인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 후계 문제로 골치아픈 일을 없애려면... 조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림자 주제에 이런 참견을 하는 것도 주제넘는 일입니다만."
"그래?"
손가락에 묻은 밥풀을 떼어먹으며 깨끗한 왼손으로 장난스럽게 이노리의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이노리가 질투나서 다른 여자 만나지 말아달라고 하면 고민은 해보겠지만."
"......주군을 모시는 사명에 열중하기 위하여 사적인 감정은 가능하면 적용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사적인 감정이 있기는 하단 얘기구나."
이노리가 복면을 내리고 찌릿, 하면서 노려보는데 요즘 왜 이렇게 이노리 놀리는게 귀엽지.
사실 F반에서 제일 연상인데 말이지. 연령만 따지자면 졸업자 선배 정도?
이노리의 눈동자는 그림자 일족 특유의 광택이 부족한 검은 눈동자인데, 지금처럼 째려보거나 화를 내면 조금 더 새까맣게 변해서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방금 전에 앨리스한테 엄청 유혹당한 걸 겨우 참고서 넘겼는데... 이렇게 귀엽게 나오면 어떻게 참으라는 건지'
"뽀뽀해도 돼."
"안 합니다."
그럼 이노리만 손해지 뭐. 나 핥는거 좋아하면서.
"주군을 그런 방식으로 모시는 것은 그림자 일족의 숙명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자제한다고 했지 안 한다는 얘기는 안 했다. 참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낼름.
이노리가 내 입술 오른쪽을 혀로 핥았다.
"안 한다며?"
그렇게 말하니 이노리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혓바닥을 내밀어서 쌀알을 보여주었다.
"주군의 얼굴 위생을 신경쓰는 것도 그림자의 의무이기에."
이래서 주먹밥을 줬나 싶으면서도 나름대로 머리를 썼네 싶어서 귀엽다니까.
"그럼 아~"
"?"
"나 아직 배고픈데 그것까지 넘겨줘."
"굳이 이런 밥풀까지 주군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새로 구해다 드리겠..."
"난 지금 배가 고픈데."
내가 지금 수작을 부린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노리는 대놓고 핀잔을 주거나 뭐라고 하지는 못한 채, 자신의 혀를 오므리며 공손하게 밥풀을 다시 올려놓고는 나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우흡..."
확실히 이노리의 몸집이 아담한 편이라서 키스할 때 눈높이가 잘 맞는다.
세리가 제일 작고 이노리가 그것보다 조금 비율이 좋아서 약간 컸으며 그 다음이 나니까 F반에서 나보다 작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남녀 포함해서 이노리랑 세리 밖에는 없었다.
물론 이노리는 비율이 좋아서 그렇게 어린애 같은 느낌은 들지 않고 오히려 슬림하고 날렵한 모습이지만 이렇게 키스를 하거나 껴안을 때에는 어느 정도 느껴진다고 할까.
지금도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일부러 양손을 뒤로 넘겨서 고정시키고, 얼굴만 내민 상태에서 혀를 내주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했지만 내 혀가 노골적으로 이노리의 입술을 문지르고 비벼대고 있으니 그녀로써도 오랫동안 버틸 수는 없었다.
내 임시 성기레벨도 +3이니 이노리가 +5라고 해도 예전 4레벨 차이보다는 많이 따라간 셈이다.
게다가 이노리는 [민감체질]이라 애무에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임시 성기레벨 어느 정도는 성향차이로 때울 수 있다고 봐야한다.
조금씩 이노리의 혀가 내 혀를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최대한 참아보려고 하지만 조금씩 나를 따라서 움직이면서 어느새 이노리는 나에게 딥 키스를 당하면서 쪽쪽 빨리고 있었다.
"주군... 지금은 이런거 하려고 부른게 아닙니다마안..."
"입 좀 더 벌려볼래?"
" 지금은... 아직 수업도 다 끝나지 않았..."
그러면서도 혀를 살짝 물어주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주는데 내가 침을 만들면 꼴깍 삼켜주면서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지탱하며 키스를 받아준다.
예전에는 이노리가 자신의 혀기술을 사용해서 나를 리드했다면 지금처럼 내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에는 일부러 기술을 자제하면서 혀를 내주는데 원래대로라면 임시 성기레벨, 즉 섹스 테크닉 차이로 내가 밀려야 하는 걸 본인이 저항할 생각이 없으니 경험치를 팍팍 퍼주는 버그성 플레이라고 해야 할까.
"후. 잠깐 쉬었다가 할까."
이노리의 침은 내 입술에 거의 그대로 들어와서 별로 더럽혀지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기술이 떨어지는 내 침은 이노리의 뺨과 턱에 꽤나 뿌려져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혀도 가끔씩 깨물거나 뺨에 송곳니 자국을 내거나 침을 코에까지 먹였는데 지금 정도면 나름 늘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주군. 여기까지만......"
키스에 너무 열중해서 그런가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수업을 빼먹고 계속 밀회를 즐길까 했지만 이노리가 스스로 [그림자 인법]을 풀어버리니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만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부족한데. 안 그래도 오늘은 제대로 욕정을 풀지 못해서 꽤나 불끈불끈한 상태인데 말이야......'
이노리에게 반쯤 강제로 떠밀리면서 교실에 들어가려던 나는 좋은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잠깐. 이노리. 그러면 지금은 나와 접촉한 상태에서도 투명화가 유지가 된다고?"
"예. 그렇습니다만."
"그렇단 말이지..."
내 음흉한 표정을 본 이노리가 복면을 쓰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아무리 주군의 부탁이라고 해도 수업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주군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응석은 들어드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그림자로써의..."
"그래.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노리의 도움이 필요한 거라고."
나는 이미 바지 위로 튀어나온 내 고간을 슬쩍 어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도와줄 거지?"
* * *
역사시간은 항상 졸린 시간이었다.
귀족이나 왕족 출신의 고결한 출신들은 이미 어릴 때 가정교사를 통해 교육받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아는 내용이라 졸려하고 있었고 평민출신의 캐릭터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머리가 반쯤 벗겨진 역사 선생님도 어차피 F반에는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말 그대로 책 읽는 톤으로 내용을 슥슥 넘겨가는데, 관심을 가지고 듣고 싶어도 진도만 맞추겠다고 읽다가 말고 다음 내용으로 점프를 해버리니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도 중간부터는 포기하고 다른 짓을 하는 과목이었고.
'어차피 능력치도 안 오르니까'
검술이나 마법은 열심히하면 오행무경심법의 효과로 능력치가 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이런 이론수업은 그냥 무시해도 된다.
"......?"
마리안은 무언가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내쪽을 돌아보았다.
"무슨 질문 있니 마리안?"
내가 고개를 돌리면 아주 지랄지랄 생지랄을 하는 인간이 모범생인 마리안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웃으면서 물어보는데, 마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면서 얼버무렸다.
"예? 아니... 아니에요."
마리안은 다시 자신의 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무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냄새를 맡는 것 같았는데 이 위화감이 무엇인지는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휴우... 이거 꽤 스릴있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신호를 보내자, 작은 한숨소리가 책상 아래에서 들려온다.
이노리는 멈추고 있던 손을 움직여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고 있던 지퍼를 다시 열기 시작했다.
지잇...
"......?"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바지의 지퍼를 여는 순간 마리안이 민감하게 냄새를 파악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냄새는 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그녀도 미심쩍은 반응을 보일 뿐 별다른 대응은 하지 않았다.
만약 내 책상 밑에 이노리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리안은 당장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어 덤비지 않았을까 싶다.
'역시나 마리안 근처에서는 위험하겠어'
성인모드가 해금된 친구들을 살펴보면 사일리안은 숙취로 잠들어 있었으니 문제없고 홀리오는 무언가 킁킁거리고 있었으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노리가 내 고간에서 얼굴을 비추며 '진짜로? 여기서?'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나는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손으로 애써 가리면서 '목소리'로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조용히... 물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