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반 대항전 : E반 대 F반(01)
* * *
오늘은 드디어 반 대항전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뭔가 굉장히 조촐한데'
어차피 사람들의 관심은 A반과 B반의 반 대항전, 즉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두 개의 반이 서로 무예와 마법을 겨루는 것일테니 구경하러 온 사람은 별로 없었다.
C반과 D반도 그럭저럭 학부형과 A,B반 대전에 참가하지 못한 일반 시민들이 구경하러 많이 갔다면 이쪽은 E반과 F반의 관계자끼리 조촐하게 앉아있다고 해야 할까.
그나마 의료 스태프로 레베카 선생님이 앉아서 응원하고 있었는데, 멜리사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멜리사가 상태가 안 좋아지면 케어하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온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는 어느 반의 담당이 아니라 신전에서 파견나온 인원이기 때문에 어디 한 명을 응원하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분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다들 그 동안 고생이 많았어. 오늘 우리가 지더라도 좋은 결과를 보여주자. 알겠지?"
"예!"
"네~!"
사일리안과 오필리아가 대표로 대답하고 있었다.
이번 엔트리를 보았을 때 우리의 승리는 기정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아카데미 역사상 반 대항전에서 실제 대우가 뒤집힌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담임인 카렌 선생님부터 다들 기대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까.
실제로 하이디 선생님도 어차피 이길거라는 생각으로 별로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실전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겠지만'
"이번에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학생에게는 양호선생님이 좋은거 해줄게!"
레베카 선생님의 돌발선언에 E반의 남학생들 몇 명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몇 명은 갑자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쪽의 사일리안과 홀리오는 뭔가 오싹한 느낌에 나를 돌아보았다.
그나마 내가 신전에 자주 다녀서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그런거겠지.
"홀리지 마. 피해. 위험해."
끄덕.
그나마 홀리오는 레베카 선생님을 보면서 뭔가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똑똑한 녀석이라 그런가 고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아직까지 동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레베카 선생님도 성향이 [동남애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귀여운 소년계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적극적으로 건드리지 않아서 살아남은 것 같기도 하지만.
"레베카 선생님이 주는 선물, 이 담임 선생님은 두 배로 줄게!"
카렌 선생님은 레베카 선생님이 뭘 걸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두 배를 걸었다.
'아니지... 정말로 그냥 선물을 줄 수도 있지. 회복약이라거나 무기라거나... 내가 너무 성인모드에 절여져 있는 것일지도'
"그럼 이쪽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나도 이번에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사람이 남학생이면 한 발 뽑아주지. 우리반만 하면 치사하니까 너희들도 승리하면 기대하라고."
하이디 선생님이 자신의 의수를 들어올리며 말했는데 카렌 선생님은 몰라도 저쪽은 100% 그런 의미가 확실했다.
일단은 E반을 거꾸러뜨리는데 집중하자. 고작 E반 따위에게 지면 그야말로 개쪽이니까.
"저쪽의 엔트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누가 좋을까. 좋은 의견 있으면 얘기해봐."
원래는 선생님들이 엔트리를 짜지만 카렌 선생님은 이런거 잘 모른다고 사일리안과 오필리아에게 전권을 맡긴 상태였다.
그리고 사일리안과 오필리아 둘 다 내가 말하는 거라면 들어줄 것이고, 나는 제대로 육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가 선정한 엔트리만으로 3연속 반 대항전을 승리시킨 적이 있는 전략가였다.
"케이를 보내자."
"응? 전력에 비해서 강하지 않나?"
"초반에 기세를 꺾어놓을 사람이 필요하니까. 괜찮지 케이?"
"음."
일단은 검술반과 마법반의 대전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우리가 도전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보정을 받아서 첫 상대를 E반에서 알려주면 우리가 그에 맞춰서 인원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승리하면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내보내고 저쪽에서 사람을 내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렇게 총 12전을 치르면서 승부를 낸다.
마지막에는 승리한 사람들끼리 토너먼트를 진행한다.
토너먼트에서 승리자가 나오면 승점 3점을 얻어서 최대 얻을 수 있는 점수는 15점이고 승점 1점당 포인트를 1000으로 계산하여 참가자에게 균등하게 나눠주게 되어있었다.
물론 거기서 활약을 많이 한 학생에게 몰아주기 마련인지라 대부분은 사일리안이 가져가겠지만.
"예. 그럼 이 시간부로 3학년 E반과 3학년 F반의 반 대항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교사의 호각소리와 함께 양측의 선봉인 남학생들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상대방도 고르돈 정도로 덩치가 큰 기사였고 한 손에는 목검, 한 손에는 나무 방패를 착용하고 있었고 케이는 묵직한 양손 목검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수준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결과가 너무 뻔해서 구경할 마음도 들지 않았기에 우리는 긴장감 없이 시선을 돌려서 수다나 떨고 있었다.
"근데 에릭은 어디 간 거야?"
"응? 없어?"
사일리안의 말을 듣고보니 멜리사마저 다른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서 응원하러 왔고 양호선생님인 레베카 선생님마저 참여했는데 에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레베카 선생님이 온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망갔을 수도 있지'
원래 반 대항전에서는 일단 응원이라도 다 참가하는게 기본인데 그걸 무시하다니 그 놈도 대단하기는 하다.
뻐어억!
약 30초가 지난 뒤 방패가 부서지면서 E반 학생이 바닥을 구르며 항복을 선언하고 케이는 싱겁게 1승을 거두었다.
1승 정도는 내줘도 되겠지라 생각했는지 E반은 약간의 웅성거림이 존재한 이후 바로 마법반의 시합으로 넘어갔는데 오필리아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홀리오는 어때?"
"그래."
이쪽에서 홀리오를 내보내니 저쪽에서도 비슷한 상대를 내보냈다.
'하이디 선생님이 빡대가리라서 그런지 전략적으로 학생들의 강함을 수치로 파악해서 적절하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구잡이로 비슷해 보이는 상대를 내보낸단 말이지'
홀리오도 능력치는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해서 꽤나 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비슷한 실력을 가진 E반의 여학생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겼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홀리오가 기뻐하면서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이마에 바람마법이 스치고 지나가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으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우린데, 그럼..."
"마리안."
"누나 다녀올게."
하이디 선생님도 기울어가는 기세를 잡으려고 할 테니 이쪽도 초장부터 밀어붙여야 한다.
사일리안은 말을 꺼내려다가 머쓱하게 웃더니 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냥 네가 맡는게 어때?"
"그럴까?"
"사양하지도 않는구만..."
사일리안의 지능에 맡기는 것보다는 내가 쓰는게 나으니까.
실제로 하이디 선생님은 앤을 내보냈는데, 마리안과 마주치면서 당황한 그녀는 자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마리안이 마음먹고 검을 휘두르자 여섯번 검을 부딪치는 순간 손목이 꺾이면서 마리안의 승리로 끝났다.
이미 3승이다. 12전 중에서 초반에 3승이 끝나자 하이디 선생님은 점점 당황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저쪽에서도 최강의 전력을 내보내서 이 기세를 어떻게 해서라도 끊으려 하겠지.
"오필리아."
"직접 나가면 될까?"
"응."
그래서 이쪽도 초반부터 몰아붙일 생각으로 오필리아를 보냈다.
상대가 물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오필리아가 화염마법으로 감싸고 항복을 권유하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4승, 다음으로 사일리안, 올리비에의 전력을 동원해서 6승으로 절반을 넘겨버렸다.
이 결과를 보고 있던 세리가 나에게 다가와서 살짝 속삭인다.
"이러다가 정말로 이기는거 아니야?"
"이기는거 아니야가 아니라 이겼어."
이긴다. E반 따위에게 질 정도로 우리는 약하지 않았다.
"다음판은 세리. 네가 나가."
"나? 다들 이겼는데 이번에 지면 어떻게 하지?"
"이미 승기는 기울었어."
E반의 강한 캐릭터들은 이미 모두 소진되었다. 하이디 선생님이 조금 머리를 굴린다면 내가 계속해서 강자들을 내보낼 것이라 판단해서 미끼로 약한 학생을 내보내다가 토너먼트에서 3점을 벌기 위해 반전을 꾀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녀의 머리수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곱번째 대전, 검술반으로써는 네 번째 대전에 세리를 내보냈다.
상대는 중장전사였는데 방어력은 좋지만 기동성과 힘, 민첩성이 바닥이라 그냥 버티기만 하는 상대였다.
말 그대로 몸빵용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고 할까?
그래도 세리가 워낙 능력치가 약하다보니 거의 토끼와 코뿔소가 싸우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세리는 올라가자 마자 굳어버리고 말았다.
"세리."
나는 '목소리'를 사용해 긴장한 채 굳어있는 세리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몸이 가볍지만 상대는 무거워 죽고 싶을 걸? 최대한 시간만 끌어봐. 그러면 결과는 모르는 일이지."
끄덕끄덕.
내 '목소리'를 듣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게 내가 말을 건 것인지도 모르는 무아지경으로 세리는 자신의 특성 [재빠른 몸놀림]을 살려서 빙글빙글 무대를 돌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 공격 욕심을 낼 때마다 내가 '목소리'를 사용해서 멈추라고 한 덕분에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세리는 전면전을 포기하고 무조건 뒤만 노리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상대를 어지럽게 만들고는 비틀거리는 순간 허벅지에 일격을 날리면서 넘어뜨렸다.
"나 이겼어~!"
세리조차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방방 뛰면서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래. 말 잘 들으니까 쉽지?"
"나 있지,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그대로만 하니까 이겼어."
"그렇겠지."
"응. 이 목소리... 어?"
내 '목소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마리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세리를 데려가자 그녀는 언니한테 자랑하는 동생처럼 재잘대고 있었다.
"마법인가?"
내가 지시를 내리고 그 때마다 세리가 깜짝 놀라면서 반응한 것이 보였는지 사일리안은 '목소리'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마법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해두지."
"나한테도 가능한가?"
사일리안은 이제 '절친'단계였기 때문에 '목소리'가 닿기는 할 것이다.
"근데 사일리안한테는 방해만 되지 않을까? 세리야 너무 긴장해서 배운 것도 잊어버렸으니 도움이 됐지만."
"누구누구에게 가능하지?"
내가 파티원으로 삼아서 조종할 수 있는 캐릭터... 라고 생각하지만.
"비밀. 그리고 데이츠. 네 차례야."
어느새 내가 반 대항전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한번 분위기가 이렇게 잡혀버리니 다들 반감도 없고 자연스럽게 내 지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데이츠는 아쉽게도 패배했지만, 정말 운빨로 인해 상대가 얼음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공격을 회피하고 데이츠는 운이 없게도 상대가 흘린 마법에 휘말리면서 패배한 것이라 다들 실망은 없었다.
"으윽... 미안해..."
"아니 아니. 질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조금만 결함이 덜했더라면..."
시무룩한 모습을 보니 위로를 해줘야하나 생각했지만, 저렇게 독기를 품어야 나중에 [눈보라 마술사]로써의 위엄을 보일 테니 적당한 절망감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왜 절망감이 사나이를 키운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고르돈."
데이츠에게는 다행히도 그 다음으로 아홉번째 대전으로 고르돈이 나섰다가 접전 끝에 패배하면서 F반의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어차피 나는 전승까지 노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다른 F반 학생들은 우리가 지기라도 할 것처럼 시무룩해지고 E반의 분위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이미 승점을 7점 확보했는데'
여기서 다 져도 토너먼트에서 사일리안이 이기면 승리인데. 다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지금까지 겪은 패배감에 물들어서 어차피 F반은 또 진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판코르."
그런 상황에서 10회전에 [대지술사] 판코르까지 패배하고 나니 다시 분위기가 축 늘어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한 명씩만 남았다. 그리고 11회전은 당연히 검술반의 마지막 엔트리, 내 차례가 되어있었다.
'원래는 에릭이 여기서 나가야 되겠지만......'
가슴 속에 고양감을 채우면서 조금씩 몸에 힘을 주고, 살짝 제 자리에서 뛰는 것으로 몸을 풀어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관객석에서 머리 위에 햇빛을 가리기 위한 양산을 들고 있는 이노리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누나가 여기서 응원하고 있을게."
"아렌 파이팅!"
마리안과 오필리아가 응원해주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카데미 수련용 목검을 집어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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