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강해지고 싶어(01)
* * *
사일리안과 대련장에 올라가는 순간 5초만에 목검을 머리에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처음에 일부러 수비적으로 나서면서 나와 검을 마주한 사일리안은 곧바로 목검의 탄성을 사용해 내 옆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뻐억!
"으아아악!"
이건 진짜로 아프다!
체력수치가 올라가서 생명력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즉시 기절하거나 빈사상태에 걸렸을 정도로 사일리안의 공격은 매섭고 강력했다.
"아렌, 주량은 강한 편인데 검술은 왜 이래?"
"주량이랑 검술이 무슨 상관인데!"
"나 참. 사나이라면 주량과 검술은 챙겨야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싶었지만 눈물이 찔끔 나는 상태에서 열심히 머리를 문지르고 있으니 사일리안은 자신의 목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오오......"
"걱정하지 마. 아까보다는 약하게 때릴게."
결국에는 때린다는 얘기였다.
'젠장, 생각보다 강하네!'
그래서 나는 빠르게 가드를 올리면서 방어적으로 검을 올리고 사일리안에게 대응하려 했지만 그 순간 내 얼굴에 사일리안의 신발 바닥이 보였다.
'아. 이거...'
퍼억!
다행히 콧잔등을 정면으로 걷어차이지는 않았지만 귀 옆을 살짝 스치면서 머리가 핑하고 돌았고, 사일리안의 목검이 내 목을 찌르려는 순간 기를 쓰면서 들고 있던 목검으로 목젖 앞을 튕겨냈다.
따악!
손바닥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팔이 울린다.
"제법!"
하지만 내가 쳐낸 반동을 역이용한 사일리안이 자신의 허리 탄성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하자, 나는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른쪽 팔뚝을 얻어맞고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으어어억!"
팔이 부러질 듯이 아프다.
목검에다가 대련이라서 치명상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진짜 정신이 번쩍 들다가 아찔해지기를 반복할 정도로 지독한 고통이었다.
"허억... 허억..."
"쉬었다 할까?"
"어림도 없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핑핑 돌고 있는 귀를 툭툭 건드려서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사일리안에게 검을 휘두르지만, 이미 사일리안은 몸을 기울이면서 그것을 피하고 내 허벅지를 목검으로 후려치려 했다.
'이번 건 예상했다!'
한손으로 몸을 피하면서 가볍게 반격을 날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맞아도 뼈는 부러지지 않고, 타격점보다 앞서가서 먼저 맞으면 덜 아프다는 생각에 일부러 다리를 들어올려 타격을 흡수하고 목검을 위협적으로 찔러버렸다.
"웃!"
따악!
어찌어찌 검을 회수해서 막아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까 사일리안에게 당했던 대로 튕겨나온 반동을 이용해서 후려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사일리안은 목검을 집어던지고 나에게 인파이팅을 걸었다.
나도 손아귀가 이미 터져버려서 제대로 목검을 쥘 힘이 없었기 때문에 깔끔하게 던져버려서 포기하고 남자답게 주먹을 쥐었다.
'어라?'
그리고 느꼈다.
싸움은 리치라는 것을.
퍽!
'으아아악! 실수했어!!'
목검을 들고 싸울 때에는 거리차이가 약간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걸 주먹싸움으로 바꿔버리니 팔 길이가 그대로 리치차이가 되어버렸다.
100에서 10정도 차이가 나면 90으로 어떻게 따라갈 수 있지만 20에서 10이 차이가 나면 10으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게다가 능력치도 사일리안이 높고 체급도 팔 길이도 기니까 나는 진짜 주먹을 대도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가드를 올리고 있었지만 한 방 한 방이 뼈를 울리는 일격이라 정신이 아찔해지자 사일리안도 흥이 식었는지 주먹에 힘을 풀고 적당히 나를 상대하려 하고 있었다.
"이건 너무 차이난다. 목검 주워. 다시 검술로 가자."
"아니, 봐주지 마!"
"그러면 너 금방 끝나. 그리고 이건 진짜 싸움도 아니고 네 실력을 키워주기 위한 거니까 그거에 맞춰야... 우읏!"
위협적으로 턱을 노리고 날아드는 내 주먹을 보면서 사일리안은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턱에 피슛하고 긁힌 자국이 생겨나자 꽤 놀란 표정이었다.
"후욱... 후욱..."
"흐음...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 눈빛은 매서운거 봐. 누나들이 좋아하겠어?"
안 그래도 자칭 누나에 나이를 속이는 2년 누나에게 사랑받아서 좀 힘들기는 하다.
"하긴 친구가 진지하게 나오는데 내가 건성으로 상대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
사일리안이 다시 주먹에 힘을 주면서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 좀 더 배우고 와야 돼."
날카롭게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주먹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가드를 올렸지만 사일리안은 어느새 무릎을 차올리면서 내 턱을 가격했다.
뻐억!
골이 울리는 고통과 함께 난 정신을 잃었다.
* * *
"괜찮아?"
"끄응......"
턱을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꽤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몸이 뻐근하고 욱씬거리는 것을 보니 대련이 끝나고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니까.
내 목 뒤를 부드럽게 받쳐주는 허벅지의 촉감과 시야에 아른거리는 부드러워 보이는 두 개의 덩어리를 보면서 나는 지금 마리안의 무릎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 얼마나 기절했어...?"
"얼마 안 됐어. 20분 정도?"
"끄응......"
20분이면 충분히 오래 기절했다 생각하지만, 턱을 그렇게 세게 맞았는데 그 정도면 일찍 깨어났다 싶기도 했다.
"뇌진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잠시 누워있어."
안 그래도 머리가 핑핑 돌아서 일어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몸은... 괜찮나?'
입을 벌려서 손가락을 안에 넣어보니 다행히 이빨이나 혀는 멀쩡했다.
시스템으로 보호받은 것인지 아니면 사일리안이 마지막에 무릎에 힘을 풀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만 금이 가거나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래턱이 욱씬거렸는데 이것도 대련의 성격상 중상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지.
"그런데 마리안은 표정이 왜 그래?"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것이 잔뜩 삐진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한테 화났어?"
"아니야."
하트 게이지가 4개 하고도 10%정도, 애정도가 자연적으로 감소한 분량을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 불만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뭐 사일리안이겠지'
나를 좋아하는만큼 나를 두들겨 팬 사일리안에 대해 불만이 생긴 모양이었다.
'곤란한데'
호감도 시스템은 나한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끼리도 상호간에 적용이 되기 때문에 사소한 일로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프다.
나만 싫어하면 내가 노력하고 선물하고 잘 달래줘서 호감도를 올릴 수 있지만, 서로 나를 좋아하는 캐릭터들끼리 싸우기 시작하면 내가 끼어들 방법이 없거든.
"누나는 마음이 복잡해......"
"응?"
"사일리안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부당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니까 원망할 수는 없는 걸 알아. 누나도 검술명가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련을 받아왔으니까."
검술명가였기에 그녀도 어린 시절부터 검을 잡았고 그렇기에 검술수련이 가혹하다는 사실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누나는 검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검사와... 어쩔 수 없이 숫자를 채우기 위해 끌려나온 사람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해."
마리안이 자신의 무릎에 누워있는 내 턱을 어루만지자 아직도 고통이 남아있어서 좀 저릿저릿한 기분이 울려퍼졌다.
"그래서 누나는... 우리 동생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누나도 있고 사일리안, 케이, 그리고 고르돈까지 승리하면 충분하잖아?"
사실 검술에 별 재능이 없는 세리를 끼워넣은 이유도 그냥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다.
F반 학생들 중에서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학생들도 많았으니까.
마리안의 친구인 홀리오와 세리만 하더라도 비전투 계열의 특성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누나한테 배우지 않을래? 누나가 우리 동생에게 맞춰줄 테니까. 응?"
마리안 입장에서는 나도 세리처럼 형식만 갖추고 적당히 항복해서 자리만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줬으면 할지도 몰랐다.
원래 반 대항전에서 주인공이 맡는 위치도 자신이 직접 참여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순번을 정하고 상대의 능력치를 파악해서 수준을 맞춰 이길 수 있는 결투에 내보내는 방식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적당히, E반 중에서 약한 상대에게 고르돈을 내보내고 나머지는 사일리안, 케이, 마리안의 강한 능력으로 찍어누르면 손쉽게 우승할 수 있었다.
사일리안한테 그렇게 말하면 적당히 구색만 갖춰서 세리랑 같이 수련하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머지 네 명이 수련하는 동안 다른 일을 보고와도 된다고 하겠지.
내가 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강해지고 싶으니까."
"누나가 있는데도?"
"누나도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그 말을 들은 마리안은 내 이마에 손을 얹더니.
딱콩.
"아악!"
자신의 힘을 잔뜩 실어서 딱밤을 날렸다.
"우리 동생은 누나 말 정말로 안 듣네. 누나 조금 화났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하트 게이지가 살짝 올라가는 모습으로 보았을 때.
'반했구만'
내 대사에 조금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사일리안이랑 수련하면서 벌어지는 일은 좀... 참아줘."
"그건 안 돼. 우리 동생을 때리는 건 용서할 수 없는 걸."
단호하구만.
"그래도. 우리 동생이 멋있으니까 참아줄게."
쪽.
자기 무릎에 누운 내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고 마리안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내려놓았다.
다시 세리에게 기초 검술을 가르쳐주기 위해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욱씬거리는 턱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풀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일리안! 2차전 시작하자!"
세리에게 건성건성으로 호신술 정도 가르쳐주고 있던 사일리안이 씨익하고 웃으면서 목검 두 개를 챙겨 올라가고, 나는 굳어버린 목을 뿌득뿌득 꺾으면서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대련장 위에 올라갔다.
"잘 쉬었어? 반장 무릎에 누워있는 표정이 편안해 보이더라 야."
"왜, 부럽냐?"
"청춘에 연애라니 부럽기는 하지만... 뭐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니."
왕위계승권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왕족인지라 연애결혼은 꿈도 못 꾸는 것이 사일리안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좀 제대로 가 볼까?"
"응?"
터진 손아귀에 붕대를 감고 있던 나는 사일리안의 사악하게 웃는 모습에 몸을 떨었다.
"혼자인 남자는 강하다고...? 그것도 눈 앞에서 염장질을 20분간이나 구경하고 있었다면 말이지...?"
뭐지. 이 강렬한 분노는.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외치는 것 같은 사일리안의 불타는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등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커플을 지옥에 직접 떨어뜨릴 각오가 된 표정이었다.
"......정말 내 실력향상을 위해서 대련하는 거지?"
"아니, 이건 지극히 사적인 분노를 풀기 위해서야."
"변경, 변경! 케이! 고르돈! 아니면 누나아아아악!!"
사일리안의 감정어린 목검은 진짜 아팠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맞을 때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기분이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