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음란한 잡초(03)
* * *
[그림자 인법]에 의해서 나는 바닥에 깔린 그림자에 몸의 절반이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람의 몸이 똑바로 서있을 때, 몸의 앞과 뒤를 반으로 깔끔하게 잘라내서 반은 그림자 속이고 반은 현실세계에 잡혀있는 느낌.
얼굴과 몸의 전면부는 밖으로, 그리고 엉덩이와 뒤통수 등의 몸은 그림자 속으로 먹혀있는 상태에서 이노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트 게이지를 다섯 칸 최대로 채운 상태로.
"진정해 진정. 도망가지 않으니까 굳이 이런 건 하지 않아도... 어차피 내 말이 들리지 않으려나..."
주변이 불타는 동안에도 이노리의 그림자는 너무 시원해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주군. 주군..."
"그래. 나 여기 있어."
"정말로? 정말?"
"정말로."
믿겨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이노리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내 몸 위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내 입술을 덮치기 시작했다.
쪼오옥...
'이젠 익숙하다......'
마리안에게 입술을 쪽쪽 빨리는 것부터 시작인지라 당하는 상대가 달라졌을 뿐이지 이젠 별로 서럽거나 당혹감이 들지도 않았다.
"꼭... 이러고 싶었습니다... 제가 먼저 주군에게, 이렇게... 감히, 그림자로써 생각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아니 우리 사이에... 키스 정도는 해줬잖아?'
물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을 지상에서 느끼며 나는 이노리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평소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혀를 집어넣으면 받아쳐주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키스는 이노리가 적극적으로 내 입술을 쪽쪽 빨면서 안에 들어있는 혀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마리안의 압도적인 스펙을 동원한 키스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혀를 맞춰온 합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누가 주도한다 하기 어려운 상태로 서로의 입술이 마주치고 있었다.
"잔뜩... 이렇게 침을 나누고, 또..."
그림자 속에 팔이 묻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 셔츠의 단추를 따면서 이노리는 살짝 자신의 송곳니를 세웠다.
'어... 저게 저렇게 뾰족했던가?'
뱀파이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꽤나 눈에 띄게 뾰족한 이빨을 보면서 내가 조금 겁을 먹자 이노리는 자신의 입술을 내 가슴 위에 대면서 핥기 시작했다.
'나 어제 안 씻었는데...?'
심지어 마리안과 같은 침낭에 갇혀서 땀을 흘렸기 때문에 좀 위생적으로 위험하지 않나 싶었지만 이노리는 그런 것과 상관없는지 내 대흉근의 중간부분을 핥으면서 천천히 얼굴을 내리고 셔츠를 손으로 좀 더 벌어지게 만들면서 오른쪽 유두를 입에 물었다.
'이건 보통 내가 빠는 쪽......'
남자거를 물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했는데 이노리는 임시 성기레벨 +4에 달하는 자신의 혀기술로 내 유두를 돌리면서 빨아들이고 있었고, 그 순간 나는 가슴에 독이라도 파고드는 것처럼 짜릿한, 전례없는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아앗...!"
"주군... 귀여워..."
"아, 이노리, 잠깐만...!"
지이익...
이노리는 내가 잠깐 멈춰달라고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발기되어 있는 내 바지의 지퍼를 열고 안에 숨어있던 내 자지를 꺼내보였다.
아직 남은 잔불의 열기 때문에 자지가 꺼내지는 순간 후끈하는 공기가 닿아서 속살이 익는 기분이었지만, 놀랍도록 차가운 이노리의 손가락이 내 자지를 붙잡아서 만져주기 시작하니 더 이상 뜨겁지는 않았다.
찔꺽...
'이건 평소랑 다를 바가 없잖아...?'
내 유두를 이노리가 빨고 있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 평상시에 내가 남자기숙사에서 이노리에게 부탁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이노리는 자신의 손이나 입을 사용해서 내 정액을 뽑아내는 것으로 성기레벨을 올리는 연습상대가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최근 들어서는 내가 만지면서 이노리의 몸으로 연습을 하는 쪽이었지만.
"아... 아!"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평상시에는 내가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그러면서도 빠르게 정액을 뽑아낼 수 있도록 인체구조를 파악한 상태로 정액을 추출하듯이 빼내주던 이노리가 지금은 일부러 정액을 뿜어내지 못하도록 귀두를 살짝 손가락으로 붙잡은 채, 나머지 손으로 내 기둥 뿌리와 고환을 손가락으로 조물조물하면서 약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만져지면서도 그녀가 올려다보는 눈동자와 일부러 약올리듯이 내 가슴을 물었다 떼었다 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고.
'그런데 말이지, 품어도 된다는 말은 마음 속에 애정을 품어도 된다는 허가였지 이런 식으로... 품고 가지고 놀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윽!'
안 그래도 오늘은 꽤 쌓여있는 상태로 시작한데다가 이노리의 혀와 손기술이 평소 패턴과 달라서 얼마 버티지 못했다.
이노리의 손바닥에 뜨거운 정액이 뿌려지고 그것이 반사되어 내 귀두를 다시 적시는 감촉을 느끼면서, 나는 그녀의 손에 꽤나 많은 양의 정액덩어리를 뿜어내었다.
"아아......"
몇 번 이렇게 손으로 내 사정을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노리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격양된 모습이었다.
'하기야 평상시 이노리에게 명령할 때에는 내 마음대로 사정할 타이밍을 조종하거나 일부러 빠르게 뽑아달라고 부탁했지 지금처럼 이노리가 원할 때 뽑아낸 것이 아니니까...?'
"주군의 냄새가 가득......"
자신의 양손에 끈적하게 묻어있는, 요즘 꽤 쌓여서 그런지 살짝 진한 누런색이 보이는 정액을 내려다보면서 이노리는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넣었다.
정확하게는 그림자 주머니 안쪽에 쌓아두는 셈이겠지만.
"후."
이노리는 한참 만끽했다는 듯이 작게 숨을 내쉬고는 내 앞에 넙쭉 엎드리면서 스스로의 팔과 다리를 [그림자 인법]으로 묶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검은 그림자가 팔목과 함께 발목, 허벅지와 정강이까지 꽉 묶어두었기 때문에 그녀는 누가 도와주거나 스스로 결박을 해제하지 않으면 절대 풀려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팔까지 뒤로 넘겨서 자신의 팔뚝을 그림자로 둘둘 말아버리니 죄인을 묶을 때에나 사용하는 결박법이나 다름이 없었다.
"폐를 끼쳤습니다 주군."
어느새 내 몸은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누워 있었고 이노리는 자신이 스스로 팔과 다리를 묶은 채로 내 앞에 결박되어 있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마리안처럼 끝까지 나를 덮치기 마련이었지만 이노리는 자신의 욕망을 아주 조금만 해방한 뒤에 스스로를 결박하여 내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충성심에 한 번 놀랐고, 동시에 나는 몸을 일으키면서 얌전히 스스로를 결박한 채 내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이노리를 보면서 놀랐다.
'혹시 이건 충성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나에게 혼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변태적인 성향을 하나씩 붙여주는 성인모드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부러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녀의 눈빛은 정말 송구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축 가라앉아 있었고 입술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듯이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녀의 애정도는 다섯번째 칸을 가득 채우고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얼굴 옆에서 성향인 [피학소망]을 대신해서 [충성욕망]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진짜인가'
성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성욕 때문에 스스로가 벌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자작극을 한 것이라면 [충성욕망]이 아니라 [피학소망]이 빛나고 있었겠지.
"알겠다. 벌을 내리지."
서서히 불이 잡혀가면서 화재가 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스스로를 묶고 있는 이노리의 얼굴을 다시 잡아들었다.
"주군으로써 명할테니 피하지 마라."
"주군...?"
나는 이노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맞췄다.
보통 키스를 할 때에는 서로 얼굴을 교차시켜서 입술을 닿게 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서로의 코가 마주치기 때문에 제대로 입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입술을 쭉 내밀면 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또한 어차피 상대의 눈을 보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약간 거리를 띄우는 것이 잘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일부러 이노리와 코가 살짝 눌릴 정도로 붙어서 그녀의 입술을 혀로 핥았는데, 살짝 입술을 씹고 있던 이노리의 촉촉하고 작은 입술을 내 혀라는 붓으로 하나씩 침을 발라놓는 것만 같았다.
'이걸 키스라고 해야 할까...'
이노리의 검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시야가 흐릿하게 보여서 그녀의 눈동자에 무엇이 비춰지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이노리도 마찬가지로 내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서로 눈을 감거나 얼굴을 교차하는 것보다 어설프게 입을 맞추더라도 이렇게 내가 지금 이노리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했기에 이러는 것이다.
"아......"
다물어져 있던 이노리가 살짝 입술을 열면서 자신의 혀를 마주 내밀기 시작했고 우리 둘은 입술은 닿지 않았지만 공중에서 혀만 교차하기 시작했다.
이노리의 작은 혓바닥과 거침없는 내 혓바닥이 공중에서 서로를 마주하는데 거리상 끝부분만 살짝살짝 닿을 지경인지라 이노리의 감각을 아슬아슬하게 자극하는 것이 느껴진다.
스르륵...
스스로의 몸을 묶고 있는 [그림자 인법]이 조금씩 풀려나게 되면서 이노리의 팔이 풀어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의 몸을 꾹 억누르고 있었는데, 음란한 잡초로 인해 발정난 상태인 그녀로써는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나를 덮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기생꽃에게 한번 가루를 뿌려졌을 때 정신을 거의 잃을뻔한 것을 생각한다면 흥분효과에 작용하는 도구들은 생각보다 그 효과가 강한데 그것을 의지만으로 참아내는 것이니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하."
약간 아쉬운 느낌의 탄식과 함께 이노리의 얼굴을 놓아주니 그녀는 스스로를 결박하던 [그림자 인법]이 풀린 줄도 모른 채 몽롱한 표정으로 내 앞에 조신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노리."
"......"
평소랑 다르게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신이 좀 나간 것 같다.
"지금 미리 사전에 허락해둘 테니까... 음, 나에게 너무 치명적이거나 누군가 찾아오는 상황이 아니면."
이걸 허락해야하나 망설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이노리에게 떠넘긴 숙제나 곤란한 명령이 몇 개인지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해줘도 될 듯하다.
"그럼, 마음대로 내 몸을 탐해도 돼."
"주군?"
"자고 있을 때 조금 키스를 한다거나, 아니면 잠결에 살살 만져도 되고. 뒷처리는 해줘야 되겠지만."
그 말에 이노리의 표정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다만 수면간 같은 건 좀 봐줘."
"그,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뜨끔한 표정을 보니까 했네 했어.
"최소한 깨워서 요청해봐. 좋은 건 같이 즐겨야지."
그 말에 이노리는 다시 우물쭈물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복면을 다시 얼굴에 덮어썼다.
스르륵...
그런데 그것을 입이 아니라 자신의 눈을 가리는데 쓰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다 보이잖아...'
아, 이노리 누나 은근히 귀엽다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