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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49화 (49/91)

〈 49화 〉 흥 누나 삐졌어(02)

* * *

중급 임무라고 할 수 있는 고블린 부락 퇴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마차 안에서는 냉랭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어차피 마차 안인지라 은신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복면을 뒤집어 쓴 채 무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아있는 이노리.

무언가 불길한 기류를 느끼면서 불편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있는 오필리아.

마지막으로 내가 약속을 잊어버리고 찾아가지 않으면서 애정도에 패널티를 먹은 것인지 적어도 4.0은 유지하던 애정도가 지금은 세 번째 칸에서도 중간을 못 채우고 출렁출렁거리는 마리안.

기가 막힌 점은 애정도가 그냥 쭈욱 떨어진 것이 아니고 네 번째 칸과 다섯번째 칸이 봉인된 것처럼 내부 게이지는 꽉 차있었지만 회색으로 비활성화 되어있는 상태에서 세 번째 칸이 출렁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표시 버그인가 아니면 뭔가 특별한 시스템이 있는 건가...'

그렇게 어색하고 숨막히는 침묵과 함께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는 2시간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서 정해진 임무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다들 내리거라."

이번에는 마부가 역참이 아니라 적당한 공터에 마차를 세우며 우리를 내려주었다.

기본적으로 말들에게 강화마법을 걸고 정해진 마법석으로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거의 현대의 자동차 수준의 속도가 나는 마차였는데, 그 마차를 타고도 2시간이라는 것은 자력귀환이 불가능한 수준의 험지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우리들이 동행하기는 하겠지만 평소보다 멀리 오기도 했고 지원도 느릴 수 밖에 없으니 조심해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알겠나?"

"네~"

따로 말을 타고 온 호위의 경고에 대답한 사람은 오필리아 밖에 없었다.

원체 이노리는 내가 아니면 말수가 드문 편이었고 성실하게 대답할 마리안은 지금 삐져서 한쪽 뺨을 도톰하게 부풀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마리안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어떻게 풀어줘야 하려나...'

"자, 자. 그럼 다들 안으로 들어갈까? 오늘은 조심해야 하는거 알지?"

"흥."

마리안은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어 앞장서고 있었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녀의 옆을 지켜야 하는 나는 매서운 눈빛에 따라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졸졸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분위기가 많이 무겁네. 그렇지 리타?"

"......"

"으응... 알겠어. 리타도 조금 화났구나..."

어색한 웃음과 함께 오필리아는 별 수 없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리타는 처음 말해보는거고 마리안은 자주 대화했는데... 무슨 일 있어? 우리랑 같이 활동하는게 기분이 나빴나?"

"그건 아니긴 한데..."

차마 아무것도 모르는 오필리아에게 애정문제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타도 지금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나봐. 화난 것처럼 보여."

저쪽은 화난게 아니고 그냥 별로 티를 안 내는 것뿐이지만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다 앨리스 때문이야. 돌아가면 딸감으로 10연속 써먹을테다'

앨리스에 대한 분노로 이를 갈면서 고블린이 출몰하는 숲 안으로 들어간다.

"마리안. 조심해."

"흥."

일부러 내가 들으라는 듯이 흥, 소리를 내고 더 거칠게 앞으로 걸어가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문제였다.

'같이 움직이다가 보면 마리안도 지치겠지. 그 때 조심스럽게 사과하자'

지금처럼 내 일상적인 말도 듣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앞선 상태에서는 사과해도 화만 날 뿐이다. 일단은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을 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무언가 선물이라도 줘야 하는데...

'대련이라도 하자 그래서 얻어맞아 주면 속이 풀리려나?'

시원하게 나를 때리고 나면 기분이 풀릴까하는 생각까지 하고있는 동안 수풀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고블린이 나타났다.

"마리안 조심..."

푹.

하지만 마리안은 다리를 살짝 들어올려 고블린의 기습을 피하고는 그대로 굽을 세워서 머리를 밟아 제압한 뒤 자신의 칼을 찔러넣었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정확히 필요한만큼만 데미지를 넣는 모습에 마리안은 이 정도 수준으로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 강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초반 국밥 캐릭터야'

지금 마리안은 그것보다 조금 더 강해서 거의 준 사기급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게 고블린이야?"

"그렇지?"

미소녀처럼 변하지는 않은 모습에 혹시라도 다른 쪽으로 성인모드가 적용되나 싶어서 발로 고간을 가리고 있는 가죽을 들춰보았는데, 가죽이 벗겨지지도 않았고 내부를 들어올려도 밋밋한 녹색 피부만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성인모드 적용 대상은 아니구만'

만약 성인모드 적용 대상이면 패배 이벤트를 집어넣으려고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놈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지금 나오는 몬스터들은 마리안이나 오필리아, 그리고 중반 이후에 영입되는 이노리 같은 강캐들을 건드릴 수 없지만 성인모드가 들어가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가면서 이길 수도 있으니 방심할 수 없었다.

당장 기생꽃도 나에게 [의무교미사]특성이 없었으면 나랑 마리안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수정된 기생꽃 씨앗을 뿌리는 괴물체가 되어있지 않았겠나.

여성 캐릭터의 능력치를 절반 이하로 끌어내리는 향이라던가, 아니면 여성 캐릭터 한정으로 공격력이 10배 넘게 적용되는 사기 능력이라거나, 내가 겪었던 야겜 속의 억지패배 이벤트를 생각하면서 나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 미션에서는 성인모드가 적용되지 않았는지 평범한 양산형 고블린들이 덤볐다가 대부분은 마리안에게 썰렸고 가끔 도망가는 녀석은 오필리아가 파이어 애로우를 날려서 처리했다.

"오늘은 여기서 쉴까? 여기가 오늘 저녁 머무르기에 적당한 것 같은데..."

숲이라서 그런가 해가 금방 저무는 것 같아서 적당한 공터를 찾아 휴식을 제안했는데 이노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자리를 펼쳤지만 마리안은 내 말을 무시하고 앞으로 진행하려 했다.

"마리안~ 나도 피곤한데 쉬었다 가자~"

결국 오필리아가 직접 나서서 마리안을 질질 끌고오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다.

마리안도 신체적 능력만 따지면 오필리아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진행할 수 있지만 얌전히 끌려와준 걸 보면 그냥 내가 쉬자고 하니까 삐져서 일부러 반대로 한 것 같단 말이지.

저녁은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건조식량이었는데 별로 맛은 없어서 다들 한 조각씩만 입에 오물거리다가 각자 자리에 누우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가 넘는 임무는 처음이네. 첫 야영인가?'

밤에 대비하기 위해 모달불을 피우고 각자 지급된 침낭을 깔아서 옹기종기 모여든다.

"아렌은 내가 지켜줄게."

"응."

원래 야영하게 되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없는 주인공 캐릭터는 오필리아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보호받게 된다.

오필리아의 배신 이후로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잠자리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초반은 호감도와 상관없이 오필리아의 보호를 받는다.

'어차피 1회차 때에는 배신 전까지 오필리아가 제일 호감도가 높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냥 호감도가 높아서 같이 자는 줄 알았지 시스템상 아카데미 파트에서는 그냥 오필리아로 고정되어 있는지 몰랐다.

시스템상 정해진 내용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삐져서 그냥 태클을 걸지 않는 것인지 마리안은 내가 오필리아 옆에서 안긴 채 잠들려고 하는데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노리는 [그림자 인법]이 밤에 강력해지니까 낮에는 전투에 가능하면 참가하지 않고 체력을 보충한 뒤 지금부터 불침번을 서고 있었고.

"그럼 잘 자..."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토닥거리던 오필리아가 먼저 잠들고 마리안은 그런 나와 오필리아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침낭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15분 정도가 지났다.

오늘 숲을 지나오느라 꽤 피곤해서 눈이 감기기는 했지만, 나는 오필리아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기다린 뒤 내 침낭에서 나왔다.

'이노리는... 저쪽 그림자인가?'

시력으로 그림자 안에 몸을 숨긴 이노리를 찾아낼 수는 없었고 상태창이 떠 있는 장소로 겨우 찾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모닥불로 인해 만들어진 나무 그림자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습격을 대비해서 주변 그림자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이노리가 보였는데, 뭐 이노리는 봐도 상관 없으니까.

나는 머리 끝까지 지퍼를 올리고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마리안의 침낭에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누나아......"

마리안은 일부러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들어있는 침낭이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는 모습으로 잠도 안 자고 있던게 들통났다.

"누나아아... 나 추워..."

사실 춥지는 않았다.

침낭이 없이 그냥 낙엽만 몸에 덮고 자도 잘만한 적당히 따뜻한 날씨였는데 나는 일부러 엄살을 부리는 중이었다.

"누나아아... 잘못했어..."

마리안은 여전히 지퍼를 끝까지 채운 채로 가만히 있었지만 그녀의 침낭에서 새어나오던 미세한 살기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나아......"

일부러 우는 소리를 하면서 말 끝을 흐리자, 결국 이기지 못한 마리안이 끝까지 채운 지퍼를 올렸다.

여전히 입술을 삐죽 내밀고 삐져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누나 화났어?"

"......."

화났네. 하지만 여기서는 마리안이 화났다는 사실을 지적하면 안 된다.

그건 그냥 싸우자는 얘기니까 나는 살짝 울상을 지으면서 마리안이 열어준 지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누나아아..."

깎여나갔던 애정도가 조금씩 차오르는 감촉과 함께 아까 냉랭했던 태도와는 다르게 지금 마리안은 살짝 손으로 자신의 침낭 윗부분을 들어올렸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원래 다른 사람이랑 한 침낭을 쓰면 안 되는데 말이지...'

특히나 마리안의 뾰로통한 얼굴 옆에서 [감금욕망]이 살짝 반짝거리고 있으면 말이다.

그래도 여기 들어가지 않으면 마리안의 마음을 풀어주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얌전히 마리안이 열어준 침낭으로 들어갔다.

꼬옥.

내가 침낭 안으로 들어가니 마리안은 파리지옥이 파리를 잡아먹는 것처럼 자신의 팔로 내 등을 감싸안았는데, 내가 스탯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마리안의 성장률은 나보다 높았기 때문에 예전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켁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꽉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삐죽 튀어나왔던 입이 많이 들어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이 좋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휴 이 누나 너무 쉬운 여자라니까...'

그것도 귀여운 소년 모습을 하고 있는 나 한정이지만.

"미안해 누나. 이번에 마법반 들어가서, 막 너무 신기하고 막... 그래서 까먹었어."

실제로는 마법반에서 앨리스를 딸감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이걸 얘기하면 이 자리에서 허리가 부러져서 죽는다.

아니 죽지는 않더라도 하반신 마비로 만들고는 마리안의 가문인 드네바린 가에 끌려갈지도 모르지.

"정말로 미안해 누나... 많이 화났어?"

"누나 화 안 났어."

그래. 표정만 봐도 풀어진게 보인다.

오히려 기쁨의 웃음을 참지 못해서 입꼬리가 올라간 표정과 세 번째 하트가 완전히 복구되어 있었고 다시 하트가 네 번째 칸까지 꽉 차오른 상태인 것을 보니까 이번 패널티는 어떻게 풀어낸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된다?"

내 골반 부근을 다리로 살짝 감아서 아까보다 더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나는 모린 척 마리안의 품에 얼굴을 묻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응..."

"그리고 밖에 나와서 잘 때는 누나랑 코 자는거야. 알겠지?"

"응... 그럴... 켁..."

어우 힘 좀 줄여주라. 나 부러진다 부러져.

"누... 누나... 나 죽어..."

결국 참지 못하고 마리안에게 좀 풀어달라고 말했다.

"......"

......대답이 없다. 잠든 모양이다.

마리안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은 상태로, 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켁... 켁켁...!"

복수인가? 이거 복수하는 거지? 이거 뒤끝이지?!

"우응... 우리 귀여운 동생..."

여기서 잠들면 수면무호흡증(물리)으로 진짜 죽는다.

결국 나는 잠 한 숨도 못자고 마리안에게 붙잡힌 채 밤을 지새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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