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나를 딸감으로 쓰면...(05)
* * *
우리 사이는 지난번보다 더 가까워져 있었다.
심리적인 거리의 얘기가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의 이야기다.
비품창고와 마나수련실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공간은 여학생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몸을 숨길만한 크기의 공간이었는데, 여기에 아무리 몸이 아담하다고는 해도 한 명이 추가되어 있으니 서로 앉지도 못하고 벽과 벽 사이에 몸을 기댄 채 바짝 달라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그건..."
내가 돌려준 자신의 일기장을 들고 당황하고 있던 앨리스였지만 내가 팔을 뻗어서 그녀가 기대고 있는 벽을 잡고 있었으니 힘으로 나를 떨쳐내지 않는 이상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그림자 인법]처럼 물리법칙을 무시한 특성이 있거나 나와 어느 정도 힘으로 드잡이질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힘이 고작해야 6인 앨리스로써는 이제 거의 100에 근접하고 있는 내 팔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은 거잖아?"
"미... 미안해..."
"그러니까 본인 앞에서 얘기해봐."
꿀꺽.
앨리스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퍼질 정도로 우리는 가까이에 붙어 있었다.
일부러 의식해서 등을 벽에 붙여놓지 않으면 앨리스의 가슴이나 배가 내 몸에 스쳐서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으니까.
"어서."
"잘못... 했어..."
"나는 사과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었을 뿐인데."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나를 보면서 앨리스는 몸에서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고, 그녀가 가진 특유의 체취가 이 좁은 공간에 진하게 서리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앨리스는 내 머리 위에 살짝 기울여놓은 새로운 일기장을 펼쳤다.
"별의 소녀는... 자신의 냄새를 쫓아온 하얀 늑대에게 추적당해 잡혀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이렇게 특별한 체취라면 늑대가 아니라 사람이라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얀 늑대는 다른 양과 염소들이 없는 곳으로 소녀를 문 채 끌고가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의 비밀을 들킬 수 없었기에 소녀는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은 채 늑대의 이빨에 물린 채로... 으슥한 늑대의 동굴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계속해."
"작고 작은 하얀 늑대는 자신의 송곳니를 보여주면서 소녀에게 말했는데... 자신은 송곳니 하나만으로도 소녀의 몸을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이건 내가 말한 대사인데.
"소녀의 민감한 몸에 그 뾰족한 송곳니를 박아넣기 시작했다..."
이제 앨리스는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나오고 눈에서는 습기가 가득 차다 못해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고여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이 펑펑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만..."
자신의 일기장이 구겨지도록 강하게 쥔 채 앨리스는 자신이 작성한 일기장에서 고개를 돌렸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해줘...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내가... 마음대로 아렌을... 소재로 삼는 바람에... 미안해... 그, 그저 나는... 아렌에게 피해가는 일도 없을 테니까... 괜찮을 거라고..."
"계속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글에 등장시키고... 또, 그리고..."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빌고 있는 그녀라도 차마 언급하지 못하는 죄라면 아마 내가 예상하는 그것일 것 같은데.
"나에게 당하는 상상을 하면서 자위한거?"
"히익!"
'정답이군'
눈에 띄게 놀라서 벽에 자신의 몸을 붙이는 앨리스였는데 책을 낭독하기 위해 앞으로 살짝 기울였던 몸을 억지로 뒤로 붙여서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니, 당연히 여체의 굴곡상 그녀의 가슴과 살짝 도톰하게 솟아오른 아랫배가 눈에 띄게 나에게 가까워진다.
정확히는 팔이나 다리, 얼굴이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위치가 유지되는 다른 몸들이 나에게 가까이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만.
"하얀 늑대라. 나쁘지 않은 별명이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런데 앨리스. 사과를 할거면 확실하게 말해야지."
나는 이 좁은 공간에서 도망가지도 못하는 앨리스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원래 나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앨리스였지만 지금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벽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녀가 나보다 시선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 천막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지고 난 뒤."
"아렌이, 즉 '내가' 무방비한 상태가 된 앨리스, '너'를 내가 강제로 억누르고..."
나는 내 고간을 손으로 툭 두들겼다.
앨리스의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보지는 못했겠지만, 이 좁은 공간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그 진동이 상대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내가 고간을 툭 쳤다는 사실은 그녀도 알아차리고 있을 것이다.
"이걸 네 여린 구멍에 강제로 삽입했다는 상상을 했다고."
"흐윽...!"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네가 허리가 풀리고 더 이상 원래 몸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따먹고 또 따먹어버렸다고?"
"아니야, 그건... 그렇지 않..."
"더럽혀져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소중한 곳을 보면서 절망하면서도 또 '나'에게 암컷으로 마킹을 당하는 바람에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를 바랬다거나?"
"그렇지 않... 그건... 하얀 늑대의..."
"그게 나지. 네 앞에 있는 늑대 같은 녀석."
나는 일부러 늑대처럼 킁킁, 하고 소리를 내면서 앨리스의 냄새를 맡는 연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서 '내'가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는 조금씩 몰랐던 쾌락을 알게 되면서 어느 순간 암캐처럼 울부짖으며 번식당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털썩.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앨리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물론 똑바로 서 있었기 때문에 주저앉은 앨리스의 얼굴은 그대로 내 바지 부근, 정확히는 내 고간이 있는 곳에 멈춰 있었다.
"잘못... 잘못했어, 다시는 아렌을 소재로 이렇게 쓰지 않을 테니까..."
"아니, 이걸로 탓하는 건 아니야. 사람이 살다보면 자위 정도야...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는다면야 그냥 그러려니 하는 일이지."
물론 '나 지금까지 너 가지고 딸쳤다'라는 것을 들키게 되면 그 뒷감당은 해야하는 법이다.
지금의 앨리스처럼.
"나를 소재로 자위했다... 나쁘지 않아. 야한 소설을 썼다? 외부에 공개한 것도 아니고 습작이라면 상관없지. 다만 내가 조금 화가 난 것은 그 사용료에 관한 것이지."
"사용료...?"
"물론 내가 몸 파는 직업도 아니고 포인트를 받고 나를 소재로 야한 소설을 써도 돼,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없어. 그저 내가 원하는 건 물물교환이야."
점점 부풀어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내 고간이 뚫어져라 시선을 집중한 채로 앨리스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지 우는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물물교환을 하자는 거지."
"물물교환...?"
"내가 앨리스의 딸감으로 쓰인만큼 나도 앨리스를 가지고 좀 뽑아내겠다는 얘기야."
앨리스의 눈에 아주 잠시지만 하트 모양이 떴다가 가라앉았다.
"이 몸을... 가지고...?"
"소설에 나오는 늑대처럼 거친 일은 아니야. 단지, 네가 한 일과 똑같이 조금 쓰겠다는 거지. 다만 나는 소설을 쓸만한 재능이 없으니 단순하게 갈 거야."
나는 주저앉은 앨리스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그녀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부풀어오르고 있는 내 고간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강제로 일으켜세우자 어쩔 수 없이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 안에는 이미 흐릿하게 하트 모양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따먹게 해달라고 하면 바로 허가가 나오겠는데?'
물론 성기레벨이 8에 달하는 앨리스를 바로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성기레벨 차이가 심하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거 베아체 여사제를 통해서 아주 잘 학습했거든.
"가끔씩 나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해줘."
내가 귀에 속삭이는 내용을 들은 앨리스가 움찔하면서 자신의 치마를 누르며 몸을 가리려 했다.
"이 야한 몸뚱이를 보여주고, 가끔씩 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나, 나는... 별로 예쁘지도 않고..."
확실히 마리안이나 오필리아 같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인들에 비하면 수수하기는 하다.
캐릭터성의 어필이 이쪽은 수수하고 얌전한, 별을 보는 소녀에 맞춰져 있으니 그렇겠지만.
"그... 그러니까... 아렌 같이 마리안에게 사랑받으면..."
"하지만 야하기로는 앨리스의 몸이 가장 야한 걸."
"그렇지 않......"
"봐봐. 지금도 자신의 야한 부분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치마를 끌어내리고 있잖아?"
앨리스의 입술이 씰룩거리면서 일그러지는데 웃음을 지으려고 하는지 울상을 지으려고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느 것도 아닌 복잡한 표정이었다.
"하... 하지만... 아렌을... 그렇게 쓴 건 정말로... 미안하지만..."
앨리스는 긴장감과 흥분에 더듬더듬 숨을 헐떡이면서도 내 제안을 거부하려 하고 있었다.
"그, 그런 건 들어줄 수 없어... 만약... 지금 내가 쓴 글에 대한 소문을 다른 친구들에게 퍼뜨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
이러면 곤란하다.
그래 내가 아렌으로 딸 좀 쳤다 어째서 같이 상여자 스타일로 나오면 나는 더 이상 앨리스를 마음대로 공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서로 딸쟁이 공범자 같은 느낌으로 친근감을 불러 일으키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동안 앨리스가 불안한 눈동자로, 그러면서 붉어진 뺨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 옆에서는 [망상가]성향이 눈이 시릴 정도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호, 혹시... 지난번에 보았던 그거... 쓰면 모를까..."
"그거?"
"사, 산적들을... 세뇌시켰던거... 그런 특별한게 아니라면 나... 나는 굴복하지 않..."
'아. 노예화의 환단 말인가?'
현재 앨리스의 레벨은 24가 넘었다. 제한레벨 15짜리 초급 노예화의 환단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현재로써는 제한레벨이 더 높은 노예화의 환단이 없기도 하고 주변의 레벨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이제 잡몹도 레벨 20을 찍을 예정이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져서 남은 2개를 쓰지도 않았건만.
'그러고 보니... 앨리스 소설은 뭔가 말이지...'
앨리스가 쓴 글은 단순히 하얀 늑대에게 별의 소녀가 따먹히는 야설이 아니었다.
남성향이었으면 그냥 늑대랑 헉헉 퍽퍽 이맛에 합니다 이런 내용일텐데 여성향이라 그런가 하얀 늑대가 별의 소녀를 범하는 것은 성욕을 채우기 위한 것을 넘어서 무언가 목적이 있었다.
그녀가 쓴 글에서 하얀 늑대는 항상 그녀를 '굴복'시키면서 강제로 '복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 쪽에 망상을 펼치고 있는 건가?'
이미 [망상가]성향이 발동된 것으로 그녀의 성벽이 자극받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거까지 봤단 말이야?"
초급 노예화의 환단을 획득하였습니다 –
내가 초급 노예화의 환단을 구체화시키자 앨리스는 겁을 먹으면서도 자신의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입막음을 해야 되겠는 걸..."
호두만한 노예화의 환단을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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