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나를 딸감으로 쓰면...(02)
* * *
별을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다.
별이 속삭이는 소리를 좋아하고, 별빛이 내리쬐는 하늘 아래에서 소근대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좋아하는 소녀.
어린 시절부터 외딴 곳에서 별을 보고 자라온 소녀였지만 그녀는 외로움을 모르고 세상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아가씨가 되었다.
오랜시간 동안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던 그녀는 천문대를 떠나 양과 염소로 가득한 울타리로 이사하게 되었다.
자신과는 다른 양과 염소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누군가는 열정적이고 누군가는 차분하면서도 각자의 색을 띄면서 생활하는 양과 염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빛나는 소년염소들, 빛나는 소녀양들.
지금까지 살아온 십수년의 시간보다 울타리에서 보내는 2년이라는 시간이 신비롭고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소녀는 남들에게 표현하지만 못했을 뿐 양과 염소들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이 싹트고 있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비록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그들도 소녀를 남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소녀도 염소들과 양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아낀다.
하나같이 다들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었다.
하얀 늑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것인 붉은 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하얀 늑대는 처음에는 위협적이지 않은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보였지만 그 실체는 양털에 몸을 숨긴 채 소녀들을 노리는 늑대였다.
양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오두막까지 몰래 따라 들어왔다가 소녀에게 들켜서 쫓겨났지만, 소녀는 양들이 겁을 먹을까봐 차마 그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늑대는 가장 먼저 무리를 이끄는 양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속이며 자신을 동생으로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상냥한 하얀 양은 자신을 속이는 하얀 늑대에게 속아서 자신의 잃어버린 동생으로 착각하며 돌봐주게 되었고 늑대는 그런 하얀 양의 털을 벗기고 살을 씹으면서 그녀를 조금씩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별의 소녀가 양을 구하기 위해 늑대를 쫓기 시작하자 늑대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외부에서 토끼와 여우들을 잡아먹고 입가에 묻은 피를 싹 닦은 채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하얀 양에게서 뜯어낸 양털을 몸에 두르고 양인 것처럼 다른 양들을 속였다.
저 늑대는 위험한 늑대였다.
하얀 양이 늑대에게 물려서 다리를 절뚝거릴 때에도, 늑대 때문에 정신을 잃어서 몽롱한 표정을 지을 때에도 다른 양들은 순진하게도 어딘가 아픈 것이라 생각하며 휴식을 권했지만 오직 한 명 소녀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늑대에게 양털이 벗겨지고 그 속살을 물어뜯겼을 하얀 양을.
어느새 늑대는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별의 소녀를 쫓고 있었다.
시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별의 소녀가 머무르는 천막까지 몰래 접근했다가 일부러 자신의 흔적을 보이며 소녀가 가장 약해지는 시기를 노리기도 했다.
늑대는 소녀에게 말했다.
'인간의 맛은 과연 어떨까?'
자신을 향해 입맛을 자지면서 개과 동물 특유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물건을 세운 늑대를 보면서 별의 소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떨 수 밖에 없었다.
늑대는 여전히 소녀를 맴돌고 있었다.
'네가 양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른 양들에게 알리면 어떻게 될까?'
'네가 별을 보면서 몸이 약해질 때가 알려지면 어떻게 되지?'
'너 지금... 내 것을 보고 흥분한거 아니야?'
하나하나 늑대의 침이 자신의 얼굴에 닿으면서 소녀는 겁에 질렸지만, 늑대는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흉측한 것을......
* * *
"이건 아니지!"
쾅!
나는 탁자를 강하게 두들기며 불만을 표했다.
"아니, 내가 왜 늑대인데?! 남자는 다 늑대라서 그런가?"
건네받은 일기장을 확인하고 있던 이노리의 눈이 가늘게 뜨여진다.
"다른 남학생들은 염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그리고 내가 언제 자기를 핥았다고 그래. 안 그래?"
그 말에 방금 전까지 나에게 입술을 빨리던 것이 생각나는지 복면을 살짝 만지작거리면서 반박한다.
"......별로 틀린 묘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앨리스한테는 안 했잖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그리고 틈만나면 한 발 뽑아달라면서 요구하는 것도 의외로 고증에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주군."
"아니 그것도 앨리스한테는 안 했지. 그리고 뭐가 다른거지 하는 눈으로 나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데."
"네, 주군."
여기까지는 그나마 살짝 소재가 야할 뿐 그냥 소설 같다면, 이 뒤로는 그냥 야설이었다.
별의 소녀가 늑대에게 습격당해서 강제로 스타킹을 물어뜯겨서 찢어지고, 그대로 '인간 주제에 꼴리는 네가 문제라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강제로 늑대에게 덮쳐지는데 처음에는 고통스러워하지만 가면 갈수록 세밀하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묘사해뒀는데...
솔직히 좀 꼴렸다.
그래서 지금도 이노리를 불러서 살짝 풀고 있었지만.
"하. 이것도 어떻게 보면 첫 경험일쎄."
마리안이나 이노리를 보고 딸감으로 써본 적은 있지만 내가 딸감으로 쓰여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다.
이상한 점은 앨리스의 하트가 거의 세 번째를 가득 채워간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앨리스랑은 말 몇 번 나눠본 것이 끝이잖아? 그 때 자위목격 사건 이후로는 딱히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뒤로 지나갈수록 늑대의 개과 동물 특유의 물건으로 굴복당해서 억지로 별이 보이는 곳에서 노출을 한다거나, 염소들이나 양들이 있는 곳에서 범해지면서 입을 틀어막고 참으라고 강요한다거나, 이미 사냥당한 하얀 양이 보는 앞에서 굴욕적으로 개목걸이를 차고......
"......"
놀라운 점은 이곳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자신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는 점이다.
보통 이런 야한 내용을 쓰더라도 자신을 모티브로 만든 주인공은 좀 대리만족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던가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생각도 같이 들었다.
'이렇게 당하고 싶다는 건가?'
늑대에게 계속해서 관찰당하고, 쫓겨다니면서 언제 기습적으로 다리를 물리고 질질 끌려가서 따먹힐까 걱정되면서도 점점 그것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늑대 앞에서 개목걸이를 차고 '인간으로써의 존엄성 따위는 던져버렸군'소리를 들으면서 '당신만의 암캐가 되겠어요'라고 맹세할 때는 참...
"다 확인했습니다."
"어땠어?"
"같은 반 친구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굳이 부연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주군께서 원하신다면."
"어차피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굳이 물어 볼 필요도 없지."
끄덕.
이노리의 말대로 이건 좀 생각할 것도 없이 앨리스가 자기 자신을 투영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야설이었다.
"그래서, 앨리스의 상태는?"
"원래 기숙사에 잘 들어오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개인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제가 주군께 찾아오는 시간이 길어져서 알지 못하지만... 지금 조사에 들어갈까요?"
"아니. 이런 중요한 일기를 잃어버렸으니 직접 찾으러 오겠지. 내버려 둬."
그리고 나를 딸감으로 사용한 사용료도 받아야 되겠다.
"네, 알겠습... 흑!"
이노리의 목에 가볍게 키스를 남겨주면서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킨다.
"아무리 봐도 소설 속 늑대와 별반 차이가..."
"쓰읍!"
이게 주군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 * *
실제로 내 예상대로 앨리스는 오랜만에 자기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일부러 약간 늦은 시간에 등교했기 때문에 둘만 남아있는 시간이 없었고, 중간에 자리를 비우거나 이동할 때에는 일부러 오필리아를 끼고 움직이고 있었으니 함부로 말을 걸 타이밍이 없었지만.
앨리스의 표정은 아침에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굳어있었다면 점심이 지나니 계속해서 내 눈치만 보고 있었고, 오후가 되니까 언제라도 터질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됐나?'
오늘 수업이 끝나고 다들 교실을 나갈 때, 나는 앨리스가 내 눈치를 보면서 일어나려는 모습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렌은 벌써 가게?"
오필리아는 오늘부터 중간고사, 즉 반 대항전에 대비해서 검술반과 마법반 수련장을 연다는 말에 저녁에 특별수련을 할 예정인 모양이었다.
"응.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흐응~"
약간 의심간다는 눈빛을 하는 오필리아였지만 굳이 나를 붙잡거나 같이 가자고 제안하지는 않았다.
"내일부터는 같이 수련하자?"
"봐서."
뭐 내일은 어지간하면 마법반 수련장에 찾아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조언해주고 있겠지만.
'그럼... 정해진 장소로 가볼까?'
미리 예상해둔 장소가 있어서 평소처럼 남자기숙사로 바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F반 건물 내부를 따라 움직였다.
끼이이...
낡은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퍼진다.
일단 1차 수리는 마쳤기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는 구멍은 없었지만, 그래도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까지는 2차 수리를 마쳐야 완성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움직일 때마다 듣기 싫은 발소리가 나는 상황.
'역시나 오고 있구만'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앨리스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몸놀림이 날렵한 검술반도 아니었고 이노리처럼 [그림자 인법]같은 특수한 특성도 없는 그녀로써는 누가 보더라도 내 뒤를 따라오면서 아닌 척 연기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눈에 다 보일 지경이었지만.
끼이익.
역시나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도서실 안으로 들어간다.
보통 다른 건물에는 작아도 알맞은 도서관이 만들어져 있지만, 이곳 F반 건물에는 그냥 좀 넓은 방 하나에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놓고 책장을 세워놓은 곳이 바로 도서실이었다.
시설이 좋지 않았고 장서의 숫자도 1000권을 겨우 넘긴데다가 대부분이 누가 예전에 쓰던 교과서라서 이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갑자기 출몰하는 일 없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충분한 장소였다.
"저... 저기......"
그녀는 소리 하나 없이 적막한 도서실에서도 알아듣기 힘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나는 일부러 몰랐다는 듯이 발뺌하는 연기를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앨리스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자신의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무언가를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왜? 나에게 볼 일 있어?"
"저기... 있잖아..."
"응?"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려 주었다.
"호, 혹시... 어제 떨어뜨린 책... 가지고 있지않나 해서......"
"흐응...?"
일부러 오필리아의 습관을 따라해 콧소리를 높이며 나는 아카데미 정복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걸 찾는 거야?"
내 손에 들려있는 일기장을 보는 순간 앨리스의 하트 게이지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