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양호실은 그런 곳이 아니야(02)
* * *
"......"
대체 의무교미는 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런건 성향에 붙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녀의 성향은 [???]로 표기되어 있었다.
"멜리사가 돌아왔다고 해서 병문안하러 찾아왔는데요."
세리가 셀레스티얼 아카데미 학생의 표시를 나타내는 뱃지를 보여주면서 설명하자 그녀는 손을 들어올려 신전 안쪽에서 떠들고 있던 다른 여사제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야?"
호출된 화려한 느낌의 금발 여사제의 머리 위에는 별다른 직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NPC라거나 아니면 현재로써는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중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교실 안에서는 [3학년 F반 담임 카렌]이라고 표시되지만 외부에서 따로 만나면 [카렌 선생님]으로만 표시가 되거든.
"으음..."
다만 내가 놀란 것은 애정도나 호감도가 0인 상태인데도 얼굴 옆에 성향이 그대로 떠 있는 데다가 그 내용이 노골적이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동정사냥] [난교] [한계절정] [복상사] [???]
나 성향이 5개나 되는거 처음 본다.
게다가 [???]가 몇 개나 남았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하면 5개도 넘어서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거지?
'위험... 위험하다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전신의 감각이 예민하게 변한 것으로 보아 성인모드가 상시 사용되는 지역이었다.
즉, 여기가 여신상만 빼면 정상적인 신전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섹스촌 수준으로 사용되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따라오시겠어요?"
금발의 여사제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가는 도중에도 굉장히 의심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성인모드가 해금된 나와 마리안은 움찔거리면서 놀랐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방은 뭐에요?"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특별기도실'이라고 적혀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세리의 순진한 물음에 금발의 여사제는 후후후 하면서 웃음을 짓더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에서 '특별기도'를 마치신 분들께는 특별히 성실하게 신앙을 수행했다는 문구를 새겨드린답니다. 매일매일 다른 색으로 표시해 드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파란색으로 표시해드리고 있어요."
트여있는 치마 사이로 노출되는 금발 여사제의 허벅지에는 파란색 물감으로 바를 정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 아렌 우리 병문안 끝나면 같이 기도하고 갈까?"
"절대 하지 마!!"
저 특별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대강 알아챈 나는 빠르게 마리안과 오필리아를 낚아채서 내 뒤로 숨겼다.
혹시 몰라서 숨어있는 이노리도 손으로 잡아서 내 뒤로 숨겼다.
그 반응을 보면서 금발 여사제는 오히려 귀여운 재롱을 보는 듯이 나를 보면서 가운데에 피어싱이 박혀있는 혀를 낼름거렸는데, 나 동정 아니니까 제발 노리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 정말 위험한 곳이야......'
"양호실이 어느쪽인가요?"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그나마 얌전해 보이는 검푸른 머리 여사제가 안내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금발 여사제가 우리를 안내하면서 양호실이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수많은 커튼과 침대를 보면서 나는 이곳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금발의 여사제는 들어오자 마자 의사 가운을 입으면서 자리에 앉아 우리를 맞이한다.
"잠시만요. 안내하기 전에 복장을 갖춰야 되겠죠?"
그녀의 머리 위에는 금색으로 빛나는 글씨가 떠올랐다.
임무를 맡고 있는 NPC를 구별하기 위해 나에게만 보여지는 표식이었다.
[양호선생님&성교육 담당 레베카]
일단 여기는 판타지 세계관이다.
치료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사제가 양호선생님도 겸직으로 맡는 것이 기본이었고, 내가 기억하기로도 양호선생님 역할을 하는 NPC가 금발의 미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문제는 그녀의 성향이었다.
'성교육 담당인데 성향이 동정사냥?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인데?'
다만 원본 양호선생님 NPC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몸을 감싸고 있었으며, 치마가 저렇게 터져있어서 그냥 대놓고 골반의 장골과 살짝 보이는 둔덕을 노출하지도 않았으며 허벅지에 저렇게 바르게 살라는 한자가 쓰여있지도 않았다.
아니 뭐 세부 설정까지 아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동정사냥꾼인지 성교육도 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왜 그래?"
내 굳은 표정을 보면서 성인모드가 적용되지 않는 오필리아가 의문을 가지고 물었으나, 차마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병문안은 세리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니까 내가 따로 양호선생님과 얘기할 일도 없었고.
"우리는 병문안으로 온 거라서 아픈 곳은 없어요."
"아하, 멜리사의 병문안이라면 이쪽 침대로 가시면 돼요."
"빨리 가자!"
양호선생인 레베카의 말에 오필리아랑 여학생들은 우르르 몰려서 멜리사의 병문안을 하기 위해 들어갔고 나랑 홀리오, 이렇게 남자 두 명만이 잡혀있었다.
정확히는 같이 들어가려던 내 소매를 레베카 선생님이 붙잡은 거지만.
"참, 홀리오는 들어가도 돼요."
'왜 나만?!'
혹시나 싶어서 팔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이제는 30에 달하는 내 능력치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노리를 부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대련장에서 오필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NPC들은 내가 마리안에게 덮쳐지는 모습을 보고도 제약이라도 걸린 듯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던 것처럼.
'혹시 이거, 강제 이벤트 진행인가?'
이렇게 되면 죽이되건 밥이되건 레베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눠볼 수 밖에 없었다.
"아렌이라고 했나요?"
"예."
"생일이 지났으면 몸에 변화가 왔을 텐데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니?"
띠링
성교육 담당자에게서 셁겕겪 tutorial을(를) 듣겠습니까?
'응? 성인모드 관련해서 뭔가 전수해주는 NPC인건가?'
하기야 성교육 담당이라는 직책까지 따로 줬다면 뭔가 모드에 기능을 넣어둔거겠지?
그 대상이 아카데미 양호선생님일 줄은 몰랐지만 안 그래도 성인모드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어서 곤란할 지경이었는데 설명해주는 NPC가 있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You 셍걁su Lv.3, So many along us for you. thank for 셁겕격."
왜 갑자기 흥분해서 영어를 하고 그러세요.
"싥굙's 을(를) 알고있다면 also 시gon좋아 you beast! get off me!"
마지막만 알아들었는데 무슨 소리야 대체.
"아렌 is my 원수! I kill you!"
아이 킬 유가 왜 나오는 건데? 이제는 대사패턴이 어디로 꼬였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해당 설명은 언제라도 신전에서 재확인이 가능하다. made by ??."
그러니까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깨졌냐!!"
평소에는 대사 잘만 나오다가 제일 중요할 때만 깨지더라!
이래서 중국어 〉 영어 〉 번역기 〉 한국어 순으로 번역하니까 대체 원문이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이구... 됐다 됐어'
야매모드가 그렇지 뭐... 하면서 설명을 들을 기회를 날려버리고 포기한 순간.
셁겕겪 tutorial을(를) 완료하다!
아렌의 성기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0〉1)
"어?"
갑자기 들리는 이상한 시스템 메시지를 듣고 나는 내 바지를 살짝 들춰서 안을 확인해 보았다.
"이런 씨...! 이게 뭐야!"
성기레벨 : Lv.1
= 자위횟수 : 13회 =
= 경험인수 : 1명 =
= 잔여 사정량 : 5cc =
= 누적 사정량 : 74cc =
내가 그 고생을 해서 레벨을 3까지 올려둔 성기가 지금은 레벨 1로 돌아가 있었다.
기가 막힌 점은 경험인수가 1이고 자위횟수가 13회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벨이 처음과 같은 1로 돌아갔다는 것인데 이걸 보는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깊은 빡침을 느꼈다.
"아... 으아아아아!!"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셁겕격인지 섹스모드인지 개발한 그 놈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애정도를 올리는데 1달은 필요하고, 그 정도 기간이면 신전의 기능이 개방된다.
그럼 슬슬 애정도가 올라가면서 공략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본격적으로 모드를 즐기기 전에 신전에 찾아온 김에 성교육 담당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나면 성기레벨을 0에서 1로 올려주는 코드를 넣어뒀을 것이다.
일반적인 여성 NPC나 내가 남자의 고간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여성과 같다면 남자도 0부터 시작일 것이다.
성인모드 해금되고 얼마 안 있으면 다들 성기레벨이 0에서 시작인데 나는 어차피 튜토리얼 끝내면 레벨 1부터 시작이라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라고 보너스를 준건데.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내가 좀 빨리 뚫어버렸네?
그게 +1을 더해주는게 아니라 현재 레벨이 얼마건 1로 만들어주는 거였네?
이 새끼가 코드를 +1이 아니라 =1로 넣어 버렸네?!
그 결과 지금 내 성기레벨은 순식간에 1이 되어버렸고?
"아! 으아!"
뒷골이 짜르르 땡기는 것과 함께 나는 내 고간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레벨 3이나 1이나 그게 그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단 1이라도 떨어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때요? 한번 시험해보고 싶으면......"
나는 그녀의 대사패턴이 돌아오는 순간 또 버그가 일어날까 봐 재빠르게 레베카 선생님에게서 물러났다.
"이곳 신전의 기능은 언제라도 애용할 수 있으니 자주 찾아오도록 해요."
안 써. 절대 안 해!
그러다가 또 레벨 초기화시키려고!!
"......주군?"
이제서야 내 표정을 알아차린 이노리가 그림자 속에서 괜찮냐는 듯이 물어봤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렌. 아렌. 빨리 들어와봐."
양호실의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서 나를 부르는 오필리아를 보면서 나는 강제 이벤트가 끝났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레베카 선생님을 돌아보았다.
"볼 일은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세요."
소매를 놓아주는 순간 나는 바로 커튼 안으로 몸을 던졌다.
"표정이 왜 그래? 혼났어?"
"어."
혼났지. 그것도 많이 났지.
I kill you까지 들었다고. 뭘 어떻게 꼬여야 그런 대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부럽네 아렌."
내 표정을 보면서 오히려 홀리오는 부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번 양호선생님께서는 꽤 미인이시니까.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무래도 홀리오 이 녀석 성인모드 해금되면 바로 레베카 선생님에게 사냥당할 예정이었다.
"양호선생님을 처음 보자마자 혼난다니 아렌도 참 불량학생이란 말이야."
뚱한 표정으로 오필리아를 노려보니 더 이상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 안내하는데, 예상보다 넓은 개인실 침대 위에는 금발에 가녀린 소녀가 베개를 등받이 삼아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안녕? 네가 아렌이구나?"
창작물의 병약 미소녀가 그렇듯이 조금 창백한 안색에 색이 빠진 듯한 옅은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미소녀.
[골렘메이커]라는 특성이 머리 위에 떠 있었고 그 옆에서는 골렘 2호가 [골렘]이라는 특성을 띄운 채 멜리사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마지막 12번째 여학생인 멜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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