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20화 (20/91)

〈 20화 〉 조촐한 전투에서 크나큰 사고로(04)

* * *

[별의 마법사].

이 낭만적인 명칭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들의 특징을 말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가문은 주력 마법이 메테오 스트라이크다.

그렇기 때문에 앨리스는 광범위 공격을 마구 퍼붓는 최강의 마법사이자 필수 캐릭터로 손꼽히는 것이고.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시스템상 아군이 사용한 광범위 마법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걸.

만약 그랬다면 앨리스는 필수 캐릭터가 아니라 무조건 초기에 꼼수로 암살하거나 사망시켜야 하는 캐릭터가 되었겠지.

적이 되거나 아군이 되거나 전장을 뒤집어버리는 위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스템상 아군에게 광역마법이 걸리는 경우는, 지옥마법으로 따로 분류되는 경우 밖에 없었기 때문에 별의 마법은 최강의 마법인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무시무시한게 떨어지는데 어떻게 안 튀냐!'

멸종당하기 싫은 공룡처럼 나는 오필리아의 팔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으나, 언덕을 거의 구르듯이 내려가면서 느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이 몸은 아직도 허약하기 그지 없다는 것!

이전까지는 툭 치면 죽는 몸이었다면 지금은 그나마 운동부족인 현대인 정도는 되는데, 그 정도만 해도 이렇게 전력질주를 30초만 해도 죽을 것 같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아."

그리고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운석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우리가 달린다고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망했......"

망연자실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는 순간, 오필리아가 내 몸을 밀면서 눕히고는 내 몸 위로 올라탔다.

'어?!'

이런 상황을 얼마 전에 겪어봐서 나는 당황했지만 오필리아는 굳은 얼굴로 내 머리를 자신의 품에 감싸면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잘하면... '이 몸'이라면 혹시라도... 나는 몰라도 아렌만이라도..."

그리고 마침내.

별이 땅에 닿았다.

­­­­­­­!!!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파와 함께 우리가 방금 전에 고생해서 내려온 언덕이 그대로 분해되어 흙먼지가 되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나무들은 꺾이다 못해 그 자리에서 톱밥으로 분해되고 있었다.

숲 사이사이에 남아있던 늑대들은 내 목검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고.

콰아아아아앙­!!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뒤늦게 찾아온 굉음.

충격파가 뿜어지는 속도보다 덜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필리아의 몸을 껴안고 오필리아는 나를 안은 채 버티고 있었다.

"으으으윽...!!"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물들이, 모든 지형들이 분쇄되고 사라지면서도 우리에게는 약간 강풍이 부는 듯한 느낌밖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시스템이 적용... 된다...!'

적용되지 않았다면 우리도 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늑대들과 똑같이 분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물이 분쇄되는 광경에 압도된 나는 눈을 꼭 감은 채 기도를 하듯이 '제발 아렌만은'이라고 중얼거리는 오필리아의 품에 안겨서 떨 수 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

마침내 충격파와 폭음이 끝나고, 먼지로 가득 찬 숲... 아니, 숲 이었던 것이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원래는 이런 운석충돌이 벌어졌을 때 이 정도로 빨리 여파가 끝나지는 않겠지만, 이곳은 현실과 다른 법칙을 가지고 있는 판타지 세계였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하아... 하아..."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오필리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내 머리를 풀어주었다.

"아렌! 아렌! 괜찮아? 다친 곳 없어?"

"무거워."

"손가락 움직여봐. 다리랑, 그리고 몸도..."

"하나도 안 다쳤어. 잘 봐."

직접 오필리아의 손을 잡고 내 얼굴을 만지게 해주자, 그제서야 오필리아는 안심한 듯이 표정을 풀었다.

"오필리아는?"

"응? 나도 괜찮아. 아프지도 않고."

별의 마법에는 다치지 않았지만 그 충격파에 날아가는 사물로부터 보호받지는 못해서 오필리아의 등에는 나뭇가지나 돌조각 같은 것들이 박혀있었다.

"이거? 그냥 먼지야 먼지."

하기야 나도 머리를 한번 털어내니 후두두둑 조각들이 떨어지는데, 아군에게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시스템적 제한 때문에 몸에 박혀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도 충분히 곤란하구만'

목을 움직일 때마다 까슬거리는 것으로 봐서 옷 사이사이에 나뭇조각과 모래가 다 들어간 모양이었다.

게임상에서 앨리스로 메테오를 날릴 때 아군 근처에다가 날리면 괜히 호감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툭툭.

옷에 묻어있는 나뭇가지와 돌조각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나니 겨우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쳤네."

잠시 후 방금 전까지 언덕이었던 장소는 이전보다 더욱 깊게 파인 분지... 아니, 크레이터만 남긴 채 주저앉아 있었다.

우리가 도망친 장소가 원래 언덕 아래였지만 지금은 가장 높은 지역이 되어있었고 방금 전까지 늑대가 우글거리던 분지는 나락까지 파헤쳐지면서 바위산이 증발해버렸다.

당연하지만 우두머리 늑대고 그 정예 늑대무리고 전부 한 방에 녹아버렸고.

'앞으로는 신중히 쓰자'

앨리스를 파티로 삼으면 반드시 아군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만 떨어뜨리도록 하자고 마음먹으면서 첫 번째 전투를 최고점수로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먼 곳, 지저 밑으로 무너져내린 늑대의 바위산을 넘어서 보이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오필리아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얘기했다.

"먼저 돌아갈래?"

"왜?"

"화장실 좀 들렸다 갈게."

"위험하니까 안 돼. 옆에서..."

위험하다고 말하려던 오필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백지화 된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진 숲을 보면서 도저히 위험하다고 말할 요소가 없었다.

위협적인 야수도 없지 심지어 나무조차 없이 그냥 평평한 지형만이 남아있으니 위험요소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지형이 되었기 때문에 더 유용한 변명거리도 있었고.

"근처에서 대충 가리고 보면 안 돼?"

"가릴 곳이 없잖아."

"어차피 나중되면 다 보고 지낼건데."

아니 너랑 나는 그럴 일이 없다니까.

"먼저 가서 옷 갈아입을 테니까 빨리 돌아와."

"응."

그렇게 오필리아를 먼저 보냈다.

"이노리."

'목소리'를 사용해 이노리를 부르자 평탄해진 지형 사이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이노리를 볼 수 있었다.

얼굴은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조금 냉정하고 침착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자세히 보면 색기있는 얼굴인데... 이노리라서 그런 것인가 원본이 그런 것인가'

음, 이 얼굴이 미소년형이기는 하지.

"이노리는 괜찮아?"

"예.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기 때문에 물리적인 영향력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긴 나랑 오필리아는 머리에 나뭇조각 들어가고 먼지 뒤집어쓰고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이노리는 멀쩡해 보이기는 했다.

"대신 숨을 그림자가 없어지는 바람에 저 멀리에서 직접 걸어와야 했습니다만."

지형이 평탄화되는 바람에 사물의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움직이는 그림자 인법을 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수고했어. 앨리스는?"

"별의 마법을 사용한 직후 놓쳐버렸습니다."

"뭐... 그래?"

우리보다 일찍 돌아갈 수는 없으니 대강 이 근처... 그러니까 평탄화된 지형 너머에 숨어있단 얘기일 텐데.

"추적합니까?"

"아니, 신경쓰지 말고. 이노리는 먼저 돌아가서 쉬고 있어."

"......"

"오래걸리지는 않아. 잠깐 확인할 곳이 있어서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크레이터 너머에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주군을 호위하고 싶습니다만. 주군의 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양보를 받은 셈이라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 위로 나무조각과 모래들이 쌓여서 이곳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오필리아나 이노리는 그냥 지형이겠지 하고 넘어갔지만 직접 토벌을 시도해본 나로써는 저 자리에 있는 작은 언덕이 오두막이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지붕이 사라지고 반쯤 주저앉은 것처럼 보였지만.

'게임에서는 해당 임무에서 사용되는 맵을 넘어서 영향을 끼칠 수 없었기 때문에, 늑대의 바위산에 메테오를 날려도 영향이 없겠지만은...'

바로 근처라고 알고있기는 해도 메테오에 영향을 받고 무너질 줄은 몰랐다.

시스템 적용이 아주 자기 꼴리는 대로 하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산적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은 해두고 싶었다.

크레이터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적의 오두막을 확인해 보는데 별의 마법으로 지형이 모조리 뒤집어지고 내부에 있어야 할 산적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휘유... 개판이구만."

깔끔하게 주변 지형이 날아가버렸다면 찾기 쉽겠지만 이곳은 타격범위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라 오히려 날아든 파편들로 개판이 나 있었다.

수염이 덮수룩한 아저씨들로 가득해야 하는 산채인데 몸에 달라붙는 복장을 입은 양산형 여도적들로 변경된 일은 넘어가도록 하자.

원래 인간형 적들을 야한 복장을 입고있는 적들로 바꿔버리는 것이 성인모드의 기본이니까.

정신을 집중하면서 눈에 힘을 주니 하나씩 붉은색의 투명한 창에 양산형 도적 NPC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나에게 호감이 없거나 적대하는 캐릭터의 상태창은 보이지 않지만, 전투 상황에서는 예외지'

전투 상황에서는 상대의 남은 생명력을 확인하거나 이동력, 공격력 등 최소한의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한정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아있는 체력이라거나

'그보다 사망이 아니라 제압?'

앨리스가 떨어뜨리는 별의 마법을 시스템 보정 없이 맞았다면 휘말리는 순간 늑대들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지만 산적들은 체력이 0인 상태로 고정되어 제압당해 있었다.

[제압 : 남은 시간 37분]

셀레스티얼 아카데미의 기본 시스템 중에서 제압은 없었다.

스토리 진행상 상대를 쓰러뜨렸을 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붙잡아서 가둬두었다는 식으로 진행되지 이렇게 직접 제압상태가 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는데 이것도 성인모드에 추가된 기능인가?

'굳이 원작에 없는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제압 상태를 써먹을 상황이 있다는 건데'

제압시간은 폭심지에서 가까울수록 제압시간이 길게 남아있었고 멀수록 짧아서 쓰러뜨릴 때 데미지를 많이 줄수록 오래 제압당하는 모양이었다.

쓰러진 양산형 잡몹들을 피해서 일단 산적의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건물이 무너져 있어서 굳이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파삭!

목검을 사용해 지붕 윗부분을 쳐내니 무너진 윗부분이 박살나면서 사라지고, 벽만 남아있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 산적두목 윌리엄 –

­ 제압 : 남은시간 4분 21초 ­

원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고유조형을 가지고 있는 여도적으로 변경되어 있었지만 한쪽 눈에 착용한 나뭇잎 자수가 새겨진 안대라던가 상태창에 뜨는 이름, 270이라는 생명력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캐릭터는 눈이 멀쩡한데다가 안대가 2m짜리 거구 도적두목 윌리엄의 원래 모습에 맞춰져 있다보니 몸집이 작아진 저 상태로는 안대가 아니라 흘러내린 악세사리로 보이는 문제가 있었지만.

'사실 굳이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산적두목 윌리엄은 나름대로 고유 대사도 있고 한 번에 잡지 않고 수하들만 전멸시켜 도망치게 만드는 방법으로 3번을 쫓아다니면 굴복하여 외부조력자가 되는 특별한 NPC였다.

다만 특성이 없어서 성능이 별로 안 좋았고 윌리엄이 합류할 수준이라면 제대로 키운 친구들이 훨씬 강력하며, 무엇보다 기사가문이나 사일리안 같은 성능 캐릭터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굳이 3번이나 되는 실습기회를 버려가면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컨셉 플레이를 하지 않는 이상 상종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비운의 NPC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3번이 아니라 한 번에 잡는다면 초반 포인트 벌이에 좋지...'

이래서 이노리를 두고 나 혼자만 찾아온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목검을 꺼내들어 윌리엄에게 겨누었다.

[제압된 상대를 정말로 죽이시겠습니까?]

'응?'

아까 늑대를 공격할 때와는 다른 메시지가 귀에 울렸다.

"뭐지? 특수 반응인가?"

다시 검을 들어올리니 똑같이 정말로 죽이겠냐는 확인 메시지가 울려퍼졌다.

'다른 용도가 있는 건가?'

혹시나 싶어서 목검을 내리니 그제서야 다른 선택지가 제시되었다.

[제압된 상대에게 동반수련공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남은횟수 3/3]

벨트에 목검을 돌려놓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빛나는 구슬이 하나 생성되었다.

­ 초급 노예화의 환단 –

­ 제압한 상대를 자신의 노예로 만들 수 있다. 상대는 먹인 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다(레벨 15이하) –

아... 그래. 성인모드면 이런거 있을만 하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