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조촐한 전투에서 크나큰 사고로(03)
* * *
"아렌...?"
내가 이 정도 위력을 낼 줄 몰랐는지 오필리아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늑대들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검을 꽉 잡았다.
"컹컹!"
사방에서 달려드는 늑대들을 견제하기 위해 오필리아가 자신의 대검을 휘두르며 견제하고, 동시에 틈을 노려서 덤벼드는 한 마리 늑대를 향해 목검을 휘두른다.
'맞추기만 하면 돼'
복잡한 검술, 검의 위력을 살려서 휘두르고 이런거 필요 없었다.
위력은 목검이 대신 채워준다. 나는 그저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늑대가 공격해 들어오면 그 발 끝에라도 목검을 휘둘러서 타격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퍼어엉!
목검이 스치자 다리가 있던 부위가 완전히 함몰되면서 늑대 한 마리가 또 다시 침묵했고 그러는 동안 오필리아도 한 마리의 허리를 반으로 가르면서 총 세 마리를 토벌했다.
턴으로 따지자면 이제 겨우 한 턴이었다.
"후우!"
잠시 숨을 고르면서 주변을 살펴본다.
나랑 오필리아 단 둘만으로도 늑대 무리 정도는 손쉽게 토벌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용 난이도의 전투였으니 위험할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늑대 한 마리를 상대하면 사람도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이곳 세계는 특성과 스탯에 따라서 인간이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판타지 세계관.
전투에 특화된 셀레스티얼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있어서 늑대는 성격만 더럽고 가축을 해치는 약한 생물이었으니까.
'주인공은 제외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스탯도 나름대로 괜찮게 올라있었고 목검이라는 치트 무기를 꺼내들었으니 당할 일이 없었고.
무기를 대충 휘둘러서 패널티를 받더라도 늑대 따위에게 99999강 무기는 스치기만 해도 즉사다.
퍼억!
짐승의 감으로 살펴보았을 때 오필리아보다 내가 약해 보이는지 늑대들은 오필리아에게는 최대한 접근하지 않고 나를 주로 공격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늑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나에게 닿기 전에 목검으로 몸을 건드려주었다.
그러면 지금처럼 가죽부대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늑대 한 마리가 사라진다.
"이러다가 아렌이 다 잡겠는데?"
"끼잉! 끼이잉!"
실제로 오필리아가 3마리를 잡는 동안 나는 벌써 다섯이 넘게 때려잡으며 해치우니 나머지 늑대들이 겁에 질려서 도주하기 시작한다.
'아, 게임에서는 딱 잡을만큼만 나왔지만 실제로는 많이 등장하고 거기서 8마리를 잡으면 무리 전멸로 취급하는 건가'
아니면 진짜로 난이도가 달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선발대인 첫 번째 무리를 전멸시키고 나니 곧이어 아까보다 훨씬 신중하게 자세를 낮춘 늑대들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다.
"그르르릉..."
일부러 낮은 소리를 내며 경고음을 보내는 두 번째 무리를 보면서, 오필리아는 검에 묻은 늑대의 피를 손수건으로 슥 닦아서 바닥에 버리고는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늑대 무리를 두 번 물리치고 나면 늑대 우두머리가 나올 텐데...'
숫자로 따지자면 두 번째 무리에서도 8마리가 넘는 늑대를 물리치면 남은 늑대들이 퇴각하고 자신의 정예 수하들을 이끌고 우두머리 늑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늑대들은 처음 선발대는 사정봐주지 않고 거칠게 달려들지만 두 번째 무리부터는 신중하게 움직인다.
덕분에 밀릴 때에는 두 번째 무리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가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압도할 때에는 모습을 보이면 겁을 먹고 회피하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추적해서 때려잡아야 하는데 나는 굳이 우리를 견제하며 물러나는 늑대들을 추격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자신들이 유리하기 때문에, 그리고 안전상 사냥나온 학생들이 철수하기 때문에 어두워질 때까지만 시간을 벌면 자신들이 이길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지능적이야'
늑대들의 행동은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제한시간이 있었고 그것이라 현실로 치더라도 어두운 곳에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늑대들을 상대하는 건 횃불을 들고 단체로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단 두 명의 검사에게는 꽤나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단지, 문제는
뻐어억!
그런 수작질을 할 때에는 자신들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한 두 방의 공격을 당할 것은 생각해야 하는데, 오필리아라면 모르겠지만 나에게 걸리면 무조건 한 방에 끝난다는 것이다.
엉덩이 끝을 스친 늑대가 하반신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날아가버리자 늑대들은 아예 내쪽으로 오지 않고 거리를 벌리며 오필리아쪽으로 향했다.
물론 그쪽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고 눈치를 보면서 물러나는 중이었지만.
나무 사이로 몸을 감추고 엄폐하고 있는 늑대들을 보면서 오필리아는 신중하게 검을 들어 방어태세를 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나는 그런 오필리아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바로 목검을 휘둘렀다.
"아렌! 위험..."
쩌어억!
원래는 길 중간을 막고있어서 나와 오필리아가 떨어지거나 일렬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애물인 거대한 나무가 목검을 맞고 부서져버린다.
신성마법으로 강화된 신전의 돌기둥조차 꺾어버리는 미친 위력의 무기를 사람 몸뚱아리만큼 두꺼운 나무 따위가 버틸 수 있을리 없었다.
아렌의 힘이 1 상승하였습니다
'이게... 전투인가?'
훈련으로는 능력치가 오르지 않지만 오행무경심법은 내가 걸을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머리를 쓸 때마다 능력치를 오르게 만들어 주었다.
아직 능력치가 낮기는 하지만 그만큼 1이라는 수치가 오를 때마다 내 몸이 강해지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후... 후후후후...!"
"아렌?"
"가자 오필리아!"
빠악!
부러진 나무를 보면서 겁에 질려 꼬리를 내린 늑대를 후려치며 나와 오필리아는 무작정 달려서 늑대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공포에 질려서 진형이 무너진 늑대들은 나나 오필리아가 공격을 하면 그 틈을 노려서 견제하는 것으로 아군이 당하지 않도록 막는다는 기본적인 협공을 수행하지 못해서 무너지고 있었다.
"끼잉! 끼잉!"
"깨갱...!"
"헉...! 허어억!"
하지만 늑대들이 전력으로 도주하기 시작하마 민첩성 10대 초반인 나로써는 그 뒤를 따라갈 수 없었지만.
게다가 체력도 낮았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전투하고 바로 추격까지 하기에는 스테미나가 부족했다.
이 세계가 턴제 게임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투는 실시간이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젠장! 무기는 센데 도망가면 잡지를 못하네!'
한 대만 맞추면 되는데 도망치는 녀석들은 어떻게 잡을 수가 없었다.
"지쳤어?"
오필리아는 충분히 늑대들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치가 되지만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내 옆에서 내가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후욱... 후욱... 괜찮... 흐아아..."
내가 전투시의 긴장감에 흥분해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두 무리의 늑대를 상대로 싸우면서 너무 날뛴 덕분인지 온몸에 알이 배긴 것처럼 저릿거리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후훗... 그래서 전투시에는 체력분배를 잘 해야 돼. 한 마리 잡고 지쳐 쓰러지면 다음 적한테 죽게 되잖아?"
"그렇... 구만..."
턴제일 때에는 특별한 스킬이 없다면 평등하게 너도 한 방 때리고 나도 한 방 때렸는데 실시간으로 적용이 되니 이렇구만.
다행히 스테미나가 적은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빨라서 목검을 땅에 짚고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회복되고 있었다.
"후아......"
"우리 아렌 잘했다아~"
목검에 기댄 채 쉬고 있는 내 머리를 오필리아가 살살 문지르면서 칭찬해주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귀찮아서 손을 치우려 했지만 왠지 부드럽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줄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머리를 식혀주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가만히 있게 된다.
"요즘 열심히 검술 배우더니 꽤 하네? 물론 나보다는 못하겠지만."
손으로 부채까지 펄럭이면서 내 땀을 식혀주고 있는 오필리아를 보는데 전투 도중에 흐트러진 그녀의 앞섶을 통해 쇄골부터 목까지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생겨 있었다.
'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오필리아는 당황하지 않고 내 머리에서 손을 떼면서 자신의 앞섶을 가리지만 그녀의 목 아래쪽은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수많은 상처가 생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 얘는 또 음흉한 눈을 하고 있네?"
"그런거 아니야."
"숙녀의 속살을 훔쳐보려고 하다니 저질이야. 다른 여자한테 그러면 큰일난다?"
"오필리아는 된다는 거야 뭐야..."
"나.중.에.는 괜찮아. 성인이 되면."
지금 오필리아의 말에는 자신이 성인이 되면 야한 일을 해도 괜찮다는 농담과 함께 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가 되면 혈통이 안정되겠지'
이렇게 농담을 하지만 지금 오필리아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능력치나 체력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능력치를 증진시키기 위해 가하는 시술들이 그녀의 몸 안에 피부를 찢고 밖으로 분출되면서 큰 흉터를 남긴 것이다.
혈통이 강화되면서 그만한 체력수치와 재생능력도 얻었으며 위급상황에서는 곧바로 심복이 그녀에게 최고급 하이 포션을 주입하기 때문에 버텨내는 것이지 지금도 온 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겨우 참으면서 움직이고 있으리라.
움직이는데 지장이 있거나 생명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몸 곳곳에는 저런 식으로 생긴 구멍이 흉측하게 뚫려있었다.
"목의 상처는 신경쓰지 마."
이미 자신의 상처가 보여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친해진 애들과 같이 씻다가 장난치는 바람에 조금 다쳤거든."
"응."
"같이 씻는다는 얘기에 또 이상한 생각 했지?"
애써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는 나로써는 현재 오필리아가 겪는 일들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서 모른 척, 착각한 척 넘어가는 일 뿐이지만.
'참... 비운의 캐릭터야...'
다른 F반의 친구들은 아카데미 루트를 진행할 경우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었고, 오히려 주인공이 그들을 적대하여 죽이려고 시도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과몰입하지 말자'
어차피... 그녀는 나중에 우리들을 배신할 테니까.
"아오오오오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울음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가 들려. 늑대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일까?"
감이 예민한 오필리아의 말로 보았을 때, 아까 우리가 때려잡은 두 번째 무리가 후퇴하면서 우두머리가 소식을 듣고 출몰한 모양이었다.
"가자."
얕은 언덕을 넘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밑으로 가라앉는 분지와 그 중앙에 제단처럼 놓여있는 바위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왔다."
목검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주변에 수많은 정예 늑대를 거느리고 있는 흰 털의 늑대는 가축의 해골을 쌓아서 만들어진 뼈의 언덕 위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려는 어린 인간들을 척살하라면서.
'그런데 벌써 등장한다고?'
두 번째 무리를 나와 오필리아가 힘을 합쳐서 세 마리 정도 토벌했는데 왜 벌써 우두머리 늑대가 나왔을까... 하고 있는 동안.
'아'
나는 구석에서 겉보기에는 멀쩡한 상태로 목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늑대 다섯 마리 정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목검에 맞아서 분쇄되거나 오필리아의 일검에 몸이 잘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목덜미에 얇은 검이 파고들었다 나오는 살인기술.
지금 이 자리에는 없는 것 같지만 도망치던 두 번째 무리와 마주친 이노리가 앨리스를 지키기 위해 늑대들을 처리한 모양이었다.
'음...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앨리스는 겁이 많다. 그래서 저런 거대한 늑대가 수많은 늑대무리를 데리고 모습을 드러낸다면 분명히 손을 쓸 것이다.
우리는 분지 위에서 각자 무기를 들고 있었고 분지 아래에서 적을 찾던 우두머리 늑대는 자신의 이를 드러내며 나와 오필리아를 보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지시를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오필리아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목검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슈우우우욱!!
그리고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꽤 커다란 운석이.
"오필리아."
"응?"
"......뛰어."
"으응?!"
그제서야 오필리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를 보면서 입을 쩍 벌렸고, 나는 당황한 오필리아를 붙잡고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