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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17화 (17/91)

〈 17화 〉 조촐한 전투에서 크나큰 사고로(01)

* * *

"무슨 소리지?"

"......"

일단 발뺌을 했지만 앨리스는 대답하지 않았고 빵모자를 눌러쓴 그 특유의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보다 저 게이지는 뭐지?'

거의 밑바닥에 찰랑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게이지라 의문점이 들었다.

원래 내 근처에 있던 여성 캐릭터는 텅 비어있더라도 하트 게이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앨리스처럼 특별한 게이지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게... 애정도가 0 이하로 떨어지면 생기는 그런 표식인가?'

확실히 하트를 대체해서 얼굴 옆에 떠 있는 것도 그렇고 게이지가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찰랑거리는 것도 비슷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성향이 전부 [???]로 가려져 있는 경우도 처음이었고.

마리안은 [남동생애호], 이노리는 [충성소망]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모양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나 애정도가 오르는 성향이 공개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을 때 앨리스가 나에게 적대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건데...

'그럴만도 하지?'

여자기숙사에 몰래 쳐들어가서 욕실에서 난동을 피웠다... 그걸 눈으로 목격했다면 나를 적대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성별을 바꿔서 마리안이 남자기숙사 쳐들어왔을 때에도 내가 이노리한테 긴급속보를 듣고 수업을 째면서까지 찾아가서 말렸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그게 알려졌으면 반장으로써의 권위가 바닥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데?'

원래 첫 번째 하트가 금방 채워지는 것처럼, 저 첫 번째 증오 게이지도 금방 올라야 할 텐데 이상하게 앨리스의 게이지는 거의 밑바닥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런 변태행위를 목격했다면 한 두 칸 정도는 증오가 활활 불타도 이상할 것이 없을 텐데 처음에는 절반 정도 차 있던 게이지가 나와 얼굴을 마주하면서 계속해서 줄어들어 이제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왜 굳이 나랑 단 둘이 있을 때? 게다가 내가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찾아와?'

이렇게 캐릭터의 행동패턴이 이상하게 꼬일 경우는 대부분 성인모드가 문제였다.

게다가 나와 대화하고 있는 동안 앨리스의 입꼬리는 최대한 가리려고 했지만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고, 게이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

앨리스의 시선이 바쁘게 내 몸을 훑어보면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는데, 화를 내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만 같았다.

띠링­

그 순간 증오심 게이지가 완전히 줄어들면서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불타는 듯한 모습의 다섯 개의 칸이 애정을 표시하는 하트 모양으로 변화하면서, 불길한 다홍색의 게이지도 분홍색의 편안한 색으로 변해서 바닥에 깔리고 있었다.

"......"

'마법 캐스팅?'

앨리스가 입술을 달싹달싹하면서 무언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만을 사용해서 마법을 캐스팅하는, 그 방식으로 상대에게 무슨 마법을 사용하는지 들키지 않는 사일런스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상태창에서 그녀의 마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마법을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는데, 고개를 숙여서 내 시선을 회피하면서도 몸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만. 입모양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일런스 캐스팅이 소리는 나지 않을지언정 입술 자체를 위장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독순술에 대비한 특별한 기술을 익히지 않았다면 입 모양 자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독순술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눈 앞에서 앨리스가 뻐끔거리는 입술은 몇 개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속으로 따라하면서 떠올리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쳐... 아니, 미쳤어인가? 미쳤어 위험해 너무 가까이 왔어 이대로는 당해버려...?'

"......!!"

자신의 혼잣말이 그대로 들켜버리자 앨리스는 당황하면서 문을 닫고 도망가려 했다.

덜컹덜컹!

그래봐야 오행무경심법으로 능력치가 늘어난 나보다 신체능력이 낮은 앨리스인데다가 워낙 당황한지라 교실 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하고 덜컹거리면서 멈춰버린 채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뭘 당한다는 거지?"

그 말에 앨리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면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마법사로써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속사고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에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캐스팅조차 사일런스 캐스팅, 즉 소리를 안 내가 영창이 가능하며 쿼드러플 캐스팅으로 마법의 조합을 4개까지 섞어쓸 수 있는 최강의 마법사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나에게 마법을 날려서 죽이거나 제압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당황해서 그대로 얼굴을 붉히며 빵모자로 자기 눈을 가리려고만 했다.

드르륵!

내가 교실 문을 열어버리자 앨리스는 당황해서 문을 놓고 도망가려 했으나, 두 걸음 정도 허겁지겁 도망가다가 패여있는 바닥에 발이 빠지는 바람에 복도에서 화려하게 넘어져 버렸다.

콰당!

"아......!"

안 그래도 성인모드가 적용되어 짧은 치마였기 때문에 치마가 뒤집히면서 속옷이 노출되어 있는데, 한쪽 다리마저도 구멍난 복도 바닥에 빠져버렸으니 앨리스는 당황하며 뭘 먼저 해야할지도 모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당해, 당해, 당해버려... 이대로는..."

"뭘 당한다는 거지?"

갑자기 이상한 대사를 하길래 확인차 물어보니 앨리스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토끼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곧바로 눈동자를 피하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잔상으로만 움직임을 볼 수 있어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골뱅이 모양으로 뺑글뺑글 돌아가는데, 와 나는 만화캐릭터도 아니고 이런 걸 제대로 표현이 가능할 줄은 몰랐다.

이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애정도는 꾸준히 올라가서 이제는 분홍색 게이지가 찰랑거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띠링­

[망상가]

생각하지 못했던 성향이 드러났는데, 내가 알기로 성향은 말 그대로 '성적 취향'인데 망상가라는 애매한 것이 나올 수 있나 싶었다.

내 시선이 자신의 몸을 훑을 때마다 앨리스의 몸은 움찔거리면서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띠링­

­ 앨리스의 호감도가 '불편'단계가 되었습니다 ­

"읏!"

경고성에 가까운 불편 단계의 호감도 변화를 들으면서 내가 뒤로 물러나자, 앨리스는 바로 자신의 다리를 복도 구멍에서 빼내고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봐야 다리를 삐끗했는지 뒤뚱거리는 걸음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호감도가 불편단계에 들어섰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잠깐, 앨리..."

게다가 방금 전에 분홍색으로 차오르던 하트 게이지가 빠르게 줄어들어 다시 불타는 증오 게이지로 반전되어 차오르려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접근했다가는 일이 최악으로 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앨리스의 호감도가 '불편'이므로 다음 임무에 합류하지 않습니다 ­

지금 만남이 시스템적으로는 파티에 합류하라는 스카웃 행위로 받아들여졌는지 영입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끄응..."

무슨 상태인지, 어떤 성향인지 제대로 알아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미움받다가 그것이 미묘한 상황에서 목요일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지만, 다행히 사일리안이 뚫어둔 개구멍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방에는 돌아올 수 있었다.

'일단 상황이 처음부터 꼬인 것 같은데...'

앨리스는 고전적인 문학소녀, 혹은 소심한 캐릭터 성향이었다.

처음에는 겉도는 느낌이지만 한 번 취미가 맞으면 금방 친해지는 그런 스타일인데, 다만 원래 사람을 피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녀가 건물 옥상에서 별을 볼 때 조금씩 찾아가면서 거리감을 줄이고 천천히 접근해서 대화를 트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꼬였잖아?'

필수 캐릭터라서 데려가고 싶었는데 이대로는 곤란했다.

"그리고 망상가 성향은 대체 뭔데? 참 뭔 기능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이래서 모드는 정품을 써야한다.

* * *

금요일. 최종점검의 날이다.

원래 계획대로 이번 실습이 끝나고 나면 신전이 개방된다는 공지가 나왔다.

"저 기둥은 그대로 가는 건가..."

지난번에 목검을 휘둘러서 꺾여버린 기둥은 주변에 바스라지는 파편만 제거하고는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기둥 하나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전의 내구도에는 이상이 없는지, 아니면 내가 99999 목검을 사용한 것 자체가 버그로 취급되어서 없는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대로 간다하는 중이다.

나는 토요일날 나가야 하는 실습을 대비해서 목검을 챙기고 내일 같이 실습을 수행할 일행들을 챙기고 있었다.

원래는

그러고 보니 원래 이노리의 전투복장은 몸을 덮는 검은 옷이었는데 이번의 전투복장은 지금의 쿠노이치 복장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어울리기는 하지'

다음은 장비점검.

­ 암살자의 직검 ­

­ 내구도 45/50 ­

­ 검사/암살자 무기 ­

­ 공격력 86 ­

이노리가 합류하는 시점이 중반 이후라서 그런가 기본 아이템만 하더라도 꽤 강력한 무기였다.

그림자 인법을 사용하면 이노리가 은신취급이 되니까 상대방의 후방을 공격할 경우 2배의 암습 보너스가 붙는데... 뭐 사실 그런거 없어도 이번 전투에 나오는 놈들이야 다 썰겠지만.

'그래도 체력수치가 약하니까 은신은 잘 쓰는 편이 좋겠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무리해서 활약하려 하지 말고."

"......"

"공을 세우겠다고 앞장서다가 다쳐서 오면 화낸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은근히 이노리는 주군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충견 스타일인지라 첫 임무에서 위험한 지경까지 무리수를 둘 수도 있었다.

"내가 시선을 끌면 후방에 남아있는 지휘관이나 위험해 보이는 적들을 한 명씩 따로 암살해서 전력을 줄여줘."

"알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지시는 내가 내릴 거야. 목소리로."

그 말을 들은 이노리는 역시나 주군!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음에는 표정변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았지만, 애정도가 올라서 그런가 아니면 익숙해져서 그런가 이제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대강 알 수가 있었다.

'오필리아와 마리안이 동시에 있으면 그냥 정면승부를 하면 되겠지만 뭐...'

우리의 실습상대는 늑대무리였는데 주변 마을 사람들이 가축을 잡아가는 늑대들을 잡아달라는 의뢰가 우리에게 떨어진 것이다.

늑대를 얼마나 많이 잡느냐에 따라서 보상이 달라지는데 초반부터 있는대로 때려잡고 귀환하면 막대한 포인트를 얻어서 기숙사와 식당을 동시에 바꿀 수 있겠지.

"그럼 들어가 봐."

"밤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오늘은 쉬어. 내일 전투를 대비해야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이노리는 알겠다면서 내 방에서 벗어나 그림자 사이를 뚫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자. 그러면 다음은 오필리아인데......'

오필리아는 기본 참전 캐릭터라서 딱히 챙길 필요가 없지만 시간이 남으니 '목소리'를 사용해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원래는 남자기숙사와 여자기숙사를 오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오늘만은 허락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처럼 혼성으로 파티를 형성할 경우 작전을 짤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게임 시스템적으로는 출전 직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장비를 교환하고 힌트를 얻으라고 주어지는 기능이었지만.

똑똑똑.

"아렌, 있어?"

"들어와."

"실례합니다~ 남자기숙사는 이렇게 생겼구나."

들어오자 마자 자연스럽게 내 짐을 뒤져보는 오필리아였다.

그리고 내 짐 중에서 가장 수상한 동반수련공 비급을 꺼내고 있었다.

"어머? 이거 야한 책 아니야?"

"아니야."

"그래? 진짜로?"

사실 맞다.

내 말을 못 믿은 오필리아는 동반수련공을 펼쳐서 확인해 보았다.

"못 읽겠어!"

그거야 모드로 추가된 책이니까 특별한 무언가가 없으면 오필리아랑 상호작용이 없는게 당연하다.

"흥, 이번엔 잘 숨겼네."

"흐응? 긴장돼 아렌?"

"딱히? 오필리아는?"

"조금은 긴장될지도 모르겠네."

"너무 긴장하지 마. 위험하면 중간에 돌아올 거니까."

실제로는 다 사냥할거지만 일단은 오필리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해주었다.

"흐응... 그렇지. 안전이 최고야. 그치?"

오필리아의 호감도가 오르는 반응이 보였는데 역시나 내가 안전지향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니까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무기는 어떻게 할거야? 내가 이번에 아렌에게 알맞은 검을 구했는데 써볼래?"

­ 낡은 철검 ­

­ 내구도 25/40 ­

­ 검사 무기 ­

­ 공격력 7 ­

초반 무기인 낡은 철검을 건네주는데 나는 어차피 목검을 사용할 예정이라서 쓸모가 없었다.

'정석 공략은 이걸 팔아넘기고 약초를 사서 오필리아에게 발라주는 거였지'

주인공의 공격력은 낡은 철검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아예 99999강 목검 정도로 개사기 아이템을 쥐어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선물을 주는데 이유없이 안 받는 것도 호감도를 낮추는 행위였기에 일단은 받아들었다.

"그럼 내일 보자 아렌."

"그래. 오필리아도 푹 쉬어둬."

오필리아까지 따로 보내고 침대에 몸을 눕혀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평소처럼 깊이 잠에 빠져들거나 오행무경심법이 자동으로 시전되지 않았다.

'뭔가, 내가 빠뜨린 것이 있을 때의 상황인데'

하지만 이번 의뢰에 참가할 사람은 없었다. 마리안도 불참이었는데 누가...

"......난입이다."

가끔씩 호감도가 나쁜 쪽이면 돌발 이벤트로 중간에 난입해서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근데 이 정도가 되려면 '원수'나 '적대'단계여야 할 것 같은데 가끔씩 '불편'단계에서도 신경전 수준으로 난입해서 귀찮게 구는 경우도 있었다.

'괜히 호감도 망겜이 아니지'

현재 F반 인원 대부분은 호감도가 중립~지인 단계였고 나쁜쪽의 호감도는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난입한다는 건가..."

원래는 정석적으로 오필리아와 내가 앞에서 시선을 끌고 이노리를 사용해 지휘관을 암살하면서 공략하려 했는데...

"흐음..."

이렇게 되면 대대적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좋아'

일단은 파티에 끼워서 가는 이벤트니까 난입 캐릭터가 얻는 경험치나 포인트도 내가 통합해서 가져갈 수 있고 거기서 잘 하면 호감도도 챙길 수 있거든.

"게다가 앨리스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지."

나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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