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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16화 (16/91)

〈 16화 〉 여자기숙사 욕탕 잠입사건(03)

* * *

"너희는 온수라는 개념을 모르니?"

이게 기가 막힌 이유는, 오늘 여학생들이 중간에 다 같이 카페에 가겠다면서 다른 곳에 들렸다 왔는데 분명히 중간에 땡땡이 치고 기숙사에 돌아갔던 데이츠와 사일리안이 온수를 켜놓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덕분에 남자기숙사는 여전히 냉수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어차피 온수 별로 안 좋아해서..."

데이츠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을 하고 사일리안은 당당한 표정으로 이리 말했다.

"찬 물이 남자건강에는 좋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찬 물이면 동상에 걸리지 않을까 싶다.

이 냉수가 얼마나 심각하냐고 묻는다면 그 여자기숙사 잠입사건 바로 다음 날 수업조차 재끼고(그 반장이!) 남자기숙사로 쳐들어온 마리안이 나랑 씻겠다면서 욕실로 들어가서 준비하다가 냉수에 손 한번 담그고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돌아갈 수준이었다.

그 버그터진 마리안이 도망갈 정도로 냉골이라는 거다.

'이거 게임 시스템상 동상데미지 들어오는 물건일 거야'

실제로 아무렇지 않게 냉수로 전신샤워를 하는 케이 같은 경우 몸에 살얼음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하......"

결국 어쩔 수 없이 장작 몇 개를 태워서 물을 끓이는데, 이 주전자 하나만한 온수를 가지고 10명에 가까운 사내놈들이 씻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렌. 이럴 때는 좋은 방법이 있어."

"뭐. 왕실에서 특별지원 장작이라도 주나?"

"아니. 장작은 우리가 구하면 돼."

그렇게 말하면서 사일리안은 빈 방으로 들어가서 바닥재를 뜯기 시작했다.

"......"

어쩐지 남자기숙사가 여자기숙사에 비해서 너덜너덜하더니 범인이 여기에 있었다.

"이럴거면 일찍 온 김에 온수를 틀어!!"

"후후, 잊어버렸다."

그걸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흘 연속으로 잊어버리냐.

오죽하면 내가 검술반이 아니고 마법반으로 배우러 가서 최대한 땀도 안 나고 씻을 일이 없도록 시도했을까.

"그리고 나에게 추울 때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는 포션이 있는데 말이야."

"치워."

술 먹고 저런 냉수에 몸을 씻으면 100% 심장마비 온다.

시무룩해진 사일리안을 뒤로하고 저 주전자 하나 분량의 온수를 차지하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과 함께 내 방으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내가 부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말을 건다.

"이노리. 오늘 올 때 온수 좀 챙겨와."

다행히 나에게는 만능의 이노리가 있었다.

이노리는 자신의 양손에 물통 가득 온수를 담아서 나에게 건네주었고, 나는 방 안에서 이노리의 도움을 받아 간단하게 세면을 마쳤다.

이번주 수업 끝나고 주말에 본격적인 의뢰, 즉 세 번째 전투가 시작되니... 그 때까지만 참자.

'돈만 벌어봐라. 기숙사 시설 싸그리 뜯어고친다 진짜'

뭔가 이노리는 지난번의 잠입사건 이후로 하트게이지가 3번째 하트를 절반 이상 넘기고 있었는데 그 동안 내가 부르고 같이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친밀도가 쌓인 상태였다.

3번째 칸도 더럽게 안 오르는데 마리안은 이걸 4칸까지 꽉 채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내가 취향 저격이었는지 소름돋을 정도였고 그런 마리안에게도 잘 차오르지 않는 다섯번째 하트는 얼마나 많은 애정도를 쌓아야 하는지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었다.

"왜 그래?"

"......! 아닙니다."

그리고 요즘들어 가끔씩 이노리가 멍하니 나를 보면서 멍때리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그냥 모드 여러개 깔면 가끔 렉이 걸리거나 반응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뭐 아직까지 버그라고는 마리안의 애정도가 폭증하고 나를 남동생으로 착각하는 버그나 글자가 깨지거나 정도 밖에는 없지만'

"그러고 보니 이번 주말에 주어지는 현장실습 말인데."

"예."

"이노리도 같이 참가할거지?"

"주군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띠링­

­ 이노리의 호감도가 '주군'이므로 다음 임무에 합류합니다 ­

일단 오필리아랑 단 둘이 고생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이노리가 전투력이 엄청나게 강한 편은 아니지만 초반에는 손 하나라도 중요하니까.

'나도 목검들고 날뛰면 한 번에 하나씩 때려눕힐 수 있겠지만'

그래도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다.

'다음은 마리안인가......'

마리안도 누나누나라고 부르면서 따라와달라고 하면 합류할 것 같은데. 호감도와 애정도는 다른 분야라서 의외로 거부할 수도 있겠다.

이노리는 호감도는 최대치 고정이고 애정도는 차근차근 올라가는 중이라면 마리안은 호감도는 아직 친구단계도 오르지 못했지만 애정도가 높은 거니까.

'오필리아는 당연히 참전할 테고'

애초에 연말에 배신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참전하니까.

'다른 친구들은 일단 호감도만 올려놓고 볼까'

오늘의 숙제도 이노리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고, 밤 늦은 시간에 그림자에 숨어서 복귀하는 이노리를 배웅하며 나도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찾아온 목요일. 이번주도 절반 이상이 지났으며 제대로 된 첫 전투까지는 이틀이 남았다.

어차피 내일은 컨디션 조절을 위한 휴식기간이라 이번주의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 아렌의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

아무리 1이라고 해도 매일매일 잠만 자도 강해진다는 것은 나쁠 것이 없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은 검술반과 마법반 활동을 하면서 능력치가 급속도로 강해져서, 현재 오필리아나 마리안의 능력치는 거의 100에 근접한 능력치가 나올 지경이었지만.

'나도 꾸준히 성장만 한다면야 나쁘지 않지'

오행무경심법으로 오르는 능력치는 단순히 자고 일어나서 1씩 보너스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거나 공부를 할 때마다 능력치가 조금씩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성장속도에 비하면 낮지만... 중반 넘으면 조금 오르지 않을까?'

안 올라도 뭐... 원래 능력치 5로 도배된 주인공보다야 벌써 몇 배는 강하니까.

게다가 원래 셀레스티얼 아카데미에서는 내가 검술반, 마법반 활동을 하면서 달라붙어 있는 캐릭터만 능력치가 증가하는데 현재 세계에서는 내가 옆에 있으면 성장보조를 받는 정도로 변경되었다.

내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거나 이런저런 방식을 제안하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능력치가 조금 더 오르거나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정도?

씨이이잉­!

­ 마리안은 삼연격 스킬을 사연격 스킬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

"와우......"

사연격은 빠른 연타로 상대에게 회피할 기회를 주지 않아 명중률을 올리고 크리티컬 3번과 4번 공격에서는 크리티컬 확률도 올라가는 초반 밥줄 스킬이었다.

"어때?"

연습용 복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마리안.

내가 옆에 있으면 누나로써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면서 미친 듯이 능력치가 오르기는 하지만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내 칭찬을 갈구하기 때문에 거의 강아지 턱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누나 잘했어라고 말하면서 위로해줘야 했다.

"자."

그리고 그 정도는 손쉽게 해줄 수 있지.

마리안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칭찬해주자 다섯번째 하트의 게이지가 아주 찔끔찔끔 오르는데, 여전히 밑바닥에 깔려있는 수준이라 오르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아... 하아..."

가끔 이렇게 몸을 만져주고 있다보면 마리안이 위험한 숨을 내쉬면서 눈이 하트가 되기는 하지만.

"왜 그래 누나?"

"으응. 아니야..."

이럴 때마다 내 포지션이 남동생이고 일부러 마리안을 누나라고 불러주면 얌전히 욕정을 가라앉힌다.

'안전장치가 걸려있으니 이런 방면에서는 편하네'

가끔씩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오필리아의 눈이 매섭게 변하기는 하는데, 어차피 나중을 대비하려면 오필리아와는 서로 정을 떼는 편이 좋아서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수업을 마치고 오후수업시간이 되었을 때 상황을 보러 하이디 선생님이 찾아와서 간단하게 조언을 해주고 다들 자기 반으로 돌아온다.

이번 주의 결과를 각자 정리하면서 카렌 선생님이 수업을 마무리하자 전체적으로 F반 학생들 능력치가 오르는 것을 확인한다.

주간 수업 정산이 끝난 것이다.

마리안은 최고 등급, 데이츠는 최하 등급으로 마리안은 이번 주 내내 수업으로 얻은 능력치에 50%의 보너스를 받아 상승했고 데이츠는 반대로 이번주에 얻은 능력치에서 50%를 까였다.

각자 희비가 갈리는 순간 내 능력치는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역시나 나는 안 오르네'

아무래도 나는 직접 뭔가를 하면 오행무경심법으로 능력치가 오르는데 수업으로는 능력치가 안 오르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수업 들었을 때 주인공의 능력치는 고정되어 있었으니 그렇기야 하겠지만, 다른 애들의 능력치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강해지는 것에 비해서 내 능력치는 일반적인 수준인지라 상대적으로 파워 인플레이션에서 밀리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동반수련공도 단순히 야한 책이 아니라 뭔가 효과가 있을 텐데...'

괜히 주인공 강화 모드에 비급이 두 개 들어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오늘의 수업이 끝나고 다들 각자 기숙사나 미리 약속을 잡은 장소로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마리안!"

다른 사람이 마리안이라고 부르면 꼬박꼬박 대답하면서 내가 마리안이라고 부르면 대답하지 않는다.

"누나!"

"응, 우리 동생. 왜 불러?"

"이번 첫 번째 실습에서 같이 도와줄 수 있어?"

"미안해. 누나가 이번에는 바쁜 일이 있어서..."

띠링­

­ 마리안의 호감도가 '지인'이므로 다음 임무에 합류하지 않습니다 ­

­ 상대를 완전히 조교하면 강제로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잠김) ­

거절당하는 것까지는 상정한 범위였지만 그 다음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내 귀를 거슬리게 했다.

"어떻게 하지? 나중에는 반드시 도와줄게. 우리 동생 이번만 참을 수 있지?"

정말 미안해하는 마리안을 보면서 나는 지금 메시지를 분석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해, 일단 알았다고 하면서 그녀를 보냈다.

'조교? 그런 기능도 있어?'

성인모드에서 나온 기능이기야 하겠다만.

'어떻게 하는 거지?'

하트 다섯 개를 채웠을 경우 자동으로 조교가 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기능이라면 파티 참가를 거부당했을 때 메시지가 뜨지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으음......'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텅 빈 교실에서 어떤 수를 써야할지, 특별한 아이템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드륵...

뒷문이 열리고 누군가 교실을 방문했다.

'응? 원래 시스템상 수업이 끝나면 각자 정해진 장소로 이동하게 되어있을 텐데?'

셀레스티얼 아카데미 게임에서는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수업 종료 후 다들 흩어지게 되어있었고, 공부를 추가로 할 때에도 도서관이나 수련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교실에 찾아올 상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찾아온 건가?'

주인공을 어디에 세워놔도 상대가 나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찾아오게 된다.

절대 출몰할 수 없는 장소인 남자기숙사까지 찾아온 마리안처럼 말이다.

마리안은 오늘 나랑 실컷 있었으니 만족해서 헤어졌고 이노리는 대기시켜 두었으니 나를 찾아올 사람이 없다 생각하고 있을 때.

음습한 분위기의 여학생이 교실문을 살짝 열면서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창문이 열리면서 약한 땀냄새와 책냄새, 풀냄새 같은 미묘한 체취가 흘러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성인모드의 적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별의 마법사]라는 특성이 띄워져 있었다.

"나를 알아?"

나는 당연히 그녀를 안다. 하지만 앨리스는 '공식적으로'는 이번이 첫 만남이었다.

원래는 내일 수업시간에 만났어야 하겠지만.

"전학생군... 지난번에..."

앨리스의 얼굴 옆에는 익숙한 다섯칸의 비어있는 하트가 떠 있지 않았다.

"여자기숙사 욕실에 있었지?"

마치 불화의 불꽃을 형상화 한듯한 다홍색의 아이콘이 보였다.

첫 번째 불꽃에 게이지가 반쯤 차오른 상태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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