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여자기숙사 욕탕 잠입사건(01)
* * *
현재 나는 쿠노이치 복장을 입고 앞장서고 있는 이노리의 뒤에 바짝 붙어서 여자기숙사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볼 때는 몰랐는데 목에 걸고 있는 스카프를 조금만 올리면 복면으로 쓸 수가 있어서 이 복장일 때에도 복면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쿠노이치 복장에 복면을 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코스튬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 리타잖아?"
"웬일인지 오늘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네?"
이노리는 평상시에도 그림자 인술을 사용해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지금처럼 은신을 풀고 돌아다니는 모습에 여학생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반응을 보이면서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노리에게 향하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도 나는 비춰지지 않고 있었고.
'와, 이거 신기하네'
내 몸이 그림자에 덮인 것처럼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내가 움직이는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았고 그나마 비춰지는 건 이노리의 등에 딱 붙어있는 내 그림자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자의 형태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이노리의 그림자에 내가 중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노리는 묵묵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옷을 벗고 나오면 잠깐 멈춰서 자기 등으로 내 시선을 가리는 등 최대한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어차피 수영복 차림으로 보이는데'
그것도 비키니가 아니고 원피스 수영복이다. 아, 이 얼마나 건전한가.
생일이 지나면 얄짤없이 알몸이 보이겠지만 그 대상은 F반 여학생 중에서 마리안과 나이를 속이고 있는 이 이노리 누나 밖에는 없었다.
끼이익...
"주군. 발걸음에 주의하시길. 제 자신에게 사용한다면 소리조차 감출 수 있지만 타인에게 사용할 경우 눈속임을 하는 것이 고작인지라."
"......알았어."
"대답하시면 목소리도 들리니 주의해주시기를.
끄덕.
여자기숙사 시설도 남자기숙사에 비하면 구멍이 좀 덜 생겼을 뿐 비슷하게 낡은 건물이었는데, 그나마 욕실은 남자기숙사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탈의실에서 일부러 가장자리로 들어간 이노리는 욕실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려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림자 인법은 계속 유지하겠습니다. 누군가 감지할 수도 있으니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끄덕.
"그러면...... 벗어주시지요."
'어... 아!'
생각해보니 맹점이 있었다.
나는 내가 씻는 동안 이노리가 옆에서 잠깐 있어주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씻는 내가 알몸이 되어야만 했다.
'세, 세수만 하고 나간다 말할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제와서 세수만 할게라고 하면 이노리가 괜히 헛고생을 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고생하고 손가락도 꺾였다가 돌아와서 관절이 퉁퉁 부어있는데, 뜨끈한 물에 몸을 지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이노리는 내 몸을 다 봤으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고 있던 사복을 벗었다.
내 손에 들려있을 때에는 검게 물들어 있던 사복을 구석에 있는 사물함에 넣어두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누군가 사물함을 확인하는 순간 남자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걸리게 된다.
'너무 티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 이노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등에 묶여있는 나비모양 끈을 잡았다.
사라락...
그리고는 자신도 옷을 벗기 시작했다.
"헙...!"
"쉬잇......"
아... 그렇지.
생각해보면 욕실에 옷 입고 들어가서 멀뚱멀뚱 가만히 있고 옆에서 물로 씻는 소리가 들리면 누가 봐도 뭔가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노리도 옷을 벗고 안에 들어가서 씻는 것처럼 위장하고 내가 옆에서 빠르게 씻어버리는 편이 안전했다.
나비형태의 끈을 풀고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고 있는 천을 푼 뒤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를 하나하나 벗고 있는데 그 광경이...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는데 그 소리가 나와 이노리가 동시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서 괜히 상황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
중간에 얼굴이 빨개진 이노리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있기는 했지만, 이내 입술을 꾹 깨물고서 계속해서 옷을 벗어나갔다.
'피학소망은 왜 차오르는 건데'
이거 가학적인 행위로 취급되는 건가?
하기야 주군이 강제로 옷을 벗으라고 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면 가학적인거긴 하지...?
망사로 이루어진 속바지와 상의를 벗고 속옷만 남게 되었다.
몇 번이고 손을 뒤로 넘겨서 속옷의 후크를 풀어서 벗으려는데 이노리의 얼굴에서 빨간 즙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까 정도로 새빨개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치껏 몸을 돌려주었다.
스르륵...
'그런데 왠지... 이게 더... 상상력을 자극해서 위험한데?'
뒤에서 움직이는 이노리의 기척이라던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지금쯤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확인되는 것만 같아서 귀까지 막고 있으니, 잠시 후 내 등을 톡톡 건드리는 손가락이 느껴졌다.
"끝났... 습니다..."
최대한 천천히, 이노리가 대응할 틈을 줄 수 있도록 몸을 돌리니 그곳에는 햇빛 한번 제대로 받지 않은 듯한 하얀 나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뒷모습이었지만 여체 특유의 곡선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와... 이건... 와...! 이 모드 만든 새끼 미친 놈이네 진짜!'
순수하게 감탄어린 칭찬과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망사에 눌려있는 어깨와 팔뚝의 흔적이라거나, 허벅지에 새겨져 있는 오돌토돌한 망사자국을 따라서 '저만큼 옷을 입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굉장히 짧아서 실질적으로 몸통만 겨우 가리는 옷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래서야 나중에 쿠노이치 복장만 입고 나와도 이 광경이 떠오를지도......'
"가겠습니다."
얼굴에서 열기가 후끈후끈 느껴질 정도로 긴장하고 있는 이노리의 뒤에 바짝 붙어서 나도 살금살금 걸음을 옮긴다.
드르륵
여자기숙사의 욕실은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시설은 그렇게까지는 좋지 않았다.
규모가 작은 동네 목욕탕 정도의 느낌이라면 맞을까?
'남자기숙사는... 그냥 커다란 물통 하나만 놓여있고 바가지 몇 개가 굴러다니는 수준이라 그것보다는 나은 건가?'
하지만 넓이로 치자면 남자기숙사가 더 넓기는 하니까 각각 장단점이 있기는 했다.
사실 어디라도 온수만 나오면 씻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알몸이라서 살짝 춥기는 했지만 다행히 욕탕에서는 따끈따끈한 온수가 올라오고 있어서, 천천히 움직이는 이노리의 뒤를 따라 욕탕으로 들어섰다.
첨벙.
당연히 이런 게임 속의 욕탕은 물에 불투명 처리가 되어있어서 몸이 비춰지지 않았고, 자신의 알몸을 보일까봐 긴장하고 있던 이노리도 내 바짝 솟아오른 작은 주인이 보일까봐 긴장하고 있던 나도 안심하고 물에 몸을 깊이 담글 수 있었다.
'후우우우......'
온몸의 긴장감이 풀리고 욱씬거리던 손가락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이 욕탕에 특별한 치료효과는 없지만 긴장하고 굳어있던 몸을 릴렉스 시켜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제 풀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대부분의 학생들은 목욕을 마친 상황이었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에는 늦은 시간인데다가 은신을 유지하려면 이노리의 옆에 바짝 붙어있어야 했다.
그 거리 사이로 내 불룩한 작은 주인님이 몸에 닿을락 말락하니까 이노리도 신경이 쓰였는지, 혹시나 몰라 다시 주변의 인기척을 확인하고 나서는 그림자 인술을 풀었다.
"오."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과 함께 나는 따뜻한 욕실물에 얼굴을 씻었다.
"으어어... 좋다..."
이노리는 여전히 붉은 얼굴로 어깨와 약간의 윗가슴만 드러낸 상태로 욕탕에 앉아있었고 상대적으로 하반신만 가려도 되는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몸을 눕혔다.
'내일은 반드시 남자기숙사로 온수방향 돌려놓는다'
남자기숙사에 비치되어 있던 비누를 꺼내들고 잠시 욕탕을 나간 뒤, 가장자리에서 바가지로 몸에 뜨신 물을 부으면서 몸을 닦기 시작했다.
"주군..."
"응?"
"목욕시중... 필요하십니까...?"
어깨까지 푹 담근 채로 조심스럽게 묻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노리도 어쩔 수 없이 물어보기는 하는데 하기에는 부끄러운 그런 상황인가 보다.
"아니. 혼자서 팔 닿아."
가볍게 비누칠을 마치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서 씻어내는 것으로 오늘의 목욕은 끝.
얼굴에 묻어있던 불쾌한 침자국이나 대련을 하면서 마리안과 붙어서 삐질삐질 흘렸던 땀을 닦아내고 나니 몸이 노곤노곤해지는 것이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서 잠들면 딱 좋을 상태였다.
"그럼 돌아갈..."
이노리가 욕탕 안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눌러서 말을 못 하게 막아버리고는 강제로 팔을 끌어당겨 욕조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풍덩!
욕탕 표면에 파문이 일어나고 내가 당황해서 바둥거리려고 하자 이노리는 바로 나를 벽쪽으로 밀어붙이고 자신의 등으로 내 몸을 가렸는데, 덕분에 이노리의 몸이 내 허벅지와 가슴 사이에 맞닿고 있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내 피부가 검은 그림자로 물들어가면서 모습이 감춰지고 내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어보려고 할 때 이노리가 쉬잇, 하는 숨소리를 내면서 내 입을 막았다.
'누가 오는 건가?'
찰팍. 찰팍.
실제로 누가 오고 있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촉촉하게 젖은 돌바닥을 밟는 맨발소리가 조용한 욕실 내부에 울려퍼졌다.
"어라, 안녕? 이 시간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스타킹만 벗은 채 아카데미 정복을 입고 있는 오필리아였다.
'수분기 가득한 욕실에 저 복장이라니......'
애초에 세면도구도 없는 것을 보니 씻으러 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리타라고 했었지?"
웃으면서 말을 거는 오필리아를 보면서 리타는 내 무릎 위에 앉은 상태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맨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네."
"......"
"응, 불편하면 대답 안 해도 돼. 세리나 다른 친구들에게 원래 대답 잘 안 해준다고 듣기는 했으니까."
지금 이노리가 굳어있는 이유는 자신의 엉덩이골 사이에 파묻혀 있는 작은 주인님 때문인 것 같은데.
"흐응... 몇 가지 묻고 싶은게 있지만 지금은 곤란하겠지?"
오필리아는 바닥을 굴러다니던 물통을 챙겨서 온수를 퍼냈다.
'현재 남들에게 알몸을 보일 수가 없는 상태이기는 하지...'
"좋은 시간 보내~"
그녀는 방긋 웃는 얼굴로 손인사를 하면서 떠났다.
"휴우... 이제 다른 사람 오기 전에 빨리 나가..."
"쉬잇."
오필리아가 나가고 우리도 도망치자고 하려는데, 이노리의 조용히 하라는 신호에 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꼭 내 무릎에 올라타 있어야 하는 건가?'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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