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6화 (6/91)

〈 6화 〉 배신자는 가까이에 있다(05)

* * *

3급 지역과 2급 지역, 1급 지역이 서로 만나는 원의 중간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신전.

게임 내에서의 역할은 학생들이 부상을 입을 경우 치료해주고 저주를 받거나 독에 중독되면 회복시켜주기 위해 가는 시설이면서 성직자 직업을 가진 캐릭터가 자주 출몰하는 장소였다.

원래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맞춰서 새로운 신관이 파견을 오게 되는데 지금 있는 두 번째 전투로 인하여 시설이 파괴되는 바람에 한 달 간의 수리기간을 거치게 된다.

아직까지는 내부청소와 담당 신관이 파견되어 있지 않아서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렇기에 아카데미 내부에서 누군가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기에는 걸맞는 장소였다.

까앙!

'뭐지? 원래 이렇게 많았나?'

원래는 두 번째 전투이면서 튜토리얼 전투의 심화과정이었기 때문에 별로 어려운 전투는 아니었다.

암살자라고 해도 능력치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고 3명의 암살자를 상대로 차근차근 오필리아를 조종해서 6턴을 버티면 되는 전투였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암살자들만 다섯명... 심지어 이들은 적극적으로 오필리아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아니라 퇴로를 막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들어본다면 실제 암살자의 숫자는 더 많다는 얘기였다.

6턴이 지나면 그 동안 전투의 소란을 듣고 찾아오는 선생님들이 도착하면서 암살자가 도주하는 것으로 끝나는 전투였는데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클리어될 것 같지 않았다.

'원래는 무기를 가지고 암살자들을 처리하는 도중에 내가 난입해야 하는 건데 무기가 없다보니까...'

지금은 마리안의 버그사건 때문에 무기가 없어서 암살자의 숫자를 줄이지 못했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다행히 내부에서 시끄럽게 부서지는 소리와 퇴로를 막고 있는 암살자들이 움찔하는 모습을 본다면 오필리아는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고 맨손으로 회피하면서 버티는 것처럼 들렸다.

튜토리얼 첫 번째 전투에서는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 게임에서의 내 능력이 필요한 때였다.

내 캐릭터는 지휘관이다.

캐릭터 능력치는 절망적으로 낮았고 중반 이후가 지나면 적의 잡몹 하나만 다가와도 게임오버될 정도로 나약한 몸이었지만 친구들이 평가하는 능력은 전투능력이 아니라 지휘능력에 있었다.

맵을 보고 캐릭터를 배치하는 RPG게임이라서 그런 것이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의심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있다면, 그리고 게임과 동일하게 이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면.

"오필리아."

내 목소리는 무조건 닿는다.

전장 끝에서 끝에 있다 할지라도 그 목소리가 닿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 당장, 3급 지역 방향으로 도주해."

그렇게 말하고 나는 내부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암살자에게 달려들었다.

"......!"

내부에서 벌어지는 암살전이 꽤나 치열한 모양인지 내부상황에 집중하고 있던 암살자는 내가 거의 접근하고 나서야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해서 무기를 들어올리며 방어자세를 취했고 원래 스토리대로라면 공격 자체가 페이크라서 그대로 안으로 뛰어들어가 오필리아와 합류하지만.

나는 그냥 암살자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신전 기둥을 후려쳤다.

뻐아아아악!!

형용할 수 없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일반적인 석조건물도 아니고 신성력으로 강화되어서 어지간해서는 파괴되지 않는다는 신전 기둥이 반으로 꺾여버렸다.

'이게 되네?'

­ 낡은 목검 +99999 ­

­ 파괴불가 ­

­ 아렌 전용 무기 ­

­ 공격력 1+99999 ­

"......!"

내가 만들어낸 광경을 보면서 길을 막고있던 암살자조차도 당황하면서 나와 부러진 기둥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뒤에서 빨간 머리의 누군가가 튀어나오면서 암살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퍼억!

그리고는 연결동작으로 무릎을 찍어내려 암살자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킨 뒤 나에세 합류했다.

"아렌! 여기는 왜 온 거야!"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먼저 내가 왜 위험한 곳에 왔는지 탓하는 말투였다.

"네 상태나 보고 말해!"

원래는 살짝 지쳐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전투였지만 지금 오필리아는 왼팔을 다쳤는지 축 늘어져 있었고 사복도 군데군데 찢어진 상태인데다가, 이미 지쳐서 온 몸이 땀 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게다가 얼굴 옆에 뜬 생명력 수치만 보더라도 원래 70이 넘는 생명력이 지금은 30이하로 줄어 있었는데 조금만 늦었더라면 암살자들에게 잡혀서 당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다'

턴제로 진행되는 게임 안에서는 생명력만 채워준다면 체력적인 한계가 없지만 지금의 오필리아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극도로 지쳐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목검만 있다면 내가 단신으로 암살자들을 상대할 수도 있었다.

기둥조차 일격에 손상시키는 목검이라면 사람으로써는 막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무슨 소란이냐!"

버그 때문에 내가 도착하는 타이밍이 꼬인 것인지 아니면 이미 충분한 소란을 피워서 선생님이 오고 있는 것인지, 1급 지역으로 통하는 방향에서 어떤 남성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신전 내부에서 시끄러운 전투소리가 들리고 오필리아는 바로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이곳은 위험해. 빨리 벗어나자!"

두 번째 전투가 종료되었다는 표시였다.

'그러고 보니 1회차 때에는 몰랐는데 이 목소리는...'

어쩐지, 인적이 찾아오지 않는 암살현장에 어떻게 선생님이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하나 했는데.

이 목소리를 들어보니 선생님이 아니라 오필리아를 지키기 위해 공작가에서 파견한 심복의 목소리였다.

'하... 그런 거였구만'

단순히 공작가가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도와준 교사에게 입을 다물게 만들었나 했지만 알고보니 암살시도도 공작가에서 알아서 뒷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어쩐지 암살자들이 등장하고 이 난리통이 벌어졌는데 아카데미 내부에서 별다른 소문이 없더라.

"아렌. 지금 여기는 위험하니까 빨리 자리를 피하자. 응?"

다급한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아당기는 오필리아의 표정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이 들었지만, 아무리 무기가 강하더라도 내 스탯은 처참한 수준이었고 암살자들이 자기 목숨을 걸고 우리를 공격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필리아의 손을 꽉 잡고 같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 * *

튜토리얼 마지막 7일차의 날이 밝았다.

원래는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방학 동안에 집에 다녀온 학생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때문에 원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지금부터 안면을 터놔야 하는 바쁜 날이었지만.

아침부터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오필리아가 찾아왔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원래 버그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오필리아가 심복과 접촉하고 소식을 들어서 무기를 소지하고 움직였다면 이런 부상은 입지 않았으리라.

'하...... 결국에는 내 탓이라는거군. 괜히 성인모드를 깔아서...'

조금만 늦었더라면 오필리아가 죽으면서 게임오버가 될 뻔 했다.

애초에 오필리아가 반역과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죽게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내일 아침부터는 옆 방이 아니라 깨워줄 수가 없겠네?"

지금은 손님용 방에 임시로 머무르고 있지만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니 각각 남자기숙사, 여자기숙사 방으로 옮겨갈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다가오는 오필리아였지만, 나는 그녀의 붕대감은 왼팔을 보면서 괜히 마음에 걸려서 평소처럼 시선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팔은 괜찮아?"

"아, 이거? 금방 나을거야. 어제 조금 삐끗하는 바람에 감아두고 있는 거라서 저녁에는 풀어버릴 예정이거든."

그렇게 말하던 오필리아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혹시 아렌, 걱정한 거야?"

"안 했어."

실제로 별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늘 저녁에 심복이 최고급 하이 포션을 가져와서 치료하게 해줄 테니까'

실제로 7일차 초반에는 두 번째 전투결과에 따라서 오필리아가 부상상태로 등장하지만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싹 낫는다. 그래서 오필리아의 한쪽 팔을 못 쓰는 것이나 부상입은 상태에 대해서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걱정하지 않는 것과 군데군데 피가 배어나오는 붕대를 묶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걱정 안 했다고.

"흐응~ 걱정 안 했구나아..."

일부러 놀리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에게 묻는 오필리아였지만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그녀의 멀쩡한 오른손가락은 검지와 중지가 교차된 채로 몸 뒤에 숨겨져 있었다.

'거짓말, 하고 있다는 거겠지'

서양권에서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할 때에는 저 손가락을 표현하고는 한다.

평상시에 남에게 거짓말을 할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지만, 자세히 보면 1회차 때에도 오필리아는 아렌에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으면 저렇게 손가락으로 표시를 하고는 했다.

대놓고 보여주는 복선인지라 1회차에서도 그녀가 반역선언을 하기 전에 알아차렸지만 2회차가 되니 그냥 대놓고 그녀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처럼 보여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별로 안 다쳤으니 다행이네."

"응. 아렌은 괜찮아?"

"나야 다칠 일이 없었지."

거대한 석조기둥이 꺾일 정도로 강한 일격을 날렸으면 반동으로 손이라도 터져야 하는데, 이 목검이 사기인 것인지 그냥 파리채를 휘두른 수준의 반동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렌."

"응?"

"혹시...... 어제 일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거 없겠지?"

"무슨 질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지금 상황 자체가, 부상을 입고 뒷처리를 하러 돌아다니던 오필리아를 아득바득 찾아가서 말을 걸었을 때 나오는 패턴인데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내 방에 찾아왔으니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지.

몇 마디를 더 꺼내기 위해 시도하던 오필리아는 다시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아렌은 나에게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니지?"

2회차라서 이런 대사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버그가 터져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그녀는 원래 하지 않았던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본인은 나름대로 연기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촉촉하게 습기가 차오르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건......"

당연히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나도 그녀의 정체를,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정말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건지?'

냉정하게 말하자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안전을 위해서 아카데미 루트로 진행할 예정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오필리아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녀와는 적대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머리로는... 효율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차마 눈 앞에 있는 오필리아에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냐, 없냐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다 할지라도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다.

허나 다행히도 내가 무언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필리아는 몸을 돌렸다.

"이만 실례할게. 오늘 좀 바쁠 것 같아서 지금부터 가봐야 할 것 같아."

­ 오필리아의 호감도가 '절친'단계가 되었습니다 ­

1회차에서는 오히려 두 번째 전투 이후 호감도가 떨어졌었다.

두 번째 전투에서 설마 튜토리얼인데 게임오버 시키겠냐 해서 내가 생각하는 정석공략으로 도움이 안 되는 주인공의 몸을 미끼로 던지면서 인간방패로 삼으며 오필리아로 공격하고, 만약 운 없게 주인공이 죽으면 로드하는 방식으로 깨버려서 오히려 호감도가 내려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부상없이 성공해서 그런가 오필리아의 호감도가 약간 오르며 절친단계에 들어섰다.

'정석 공략이 오필리아를 죽기 직전까지 미끼로 삼아서 주인공이 다치지 않도록 지키는 거라고 했던가...'

오필리아를 방패로 삼아서 6턴을 버티는 것이 정석 공략이고 호감도가 오른다.

"정말이지... 개발자들도 악의적이라니까..."

이렇게 진 히로인처럼 대놓고 코 앞에 들이밀면서 막상 반역 루트를 타버리면 극악의 난이도로 뒤통수를 후려치니까.

일반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다면 2회차이기도 하고 오필리아도 마음에 걸려서 반역 루트를 수행하기도 하겠지만, 이쪽에서도 내 목숨이 달려있었다.

아카데미 루트로 진행하면 절친 이상만 된다면 바로 참전하고 선택지에 따라서 친구 단계에서도 합류하지만 오필리아를 따라서 반역을 선택하게 된다면 연인과 절친단계, 그것도 남자 캐릭터의 경우 시스템상 연인이 될 수 없어서 절친 최대치를 찍었을 때에만 합류하게 되어있으니 난이도가 극악으로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임진행에 따라서 오필리아가 아무리 강력한 보정을 받더라도 아카데미 루트에서 만들 수 있는 동료 숫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편의성 모드가 있어서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성인모드의 기능 중에서 다른 걸 이용하면......'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드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때린다.

"임마, 반역 루트는 절대 아니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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