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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게임에 중국산 성인모드 깔지마라-2화 (2/91)

〈 2화 〉 배신자는 가까이에 있다(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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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천천히 거울 속의 모습을 확인한다.

메인 작화가의 취향이 병약한 미소년 스타일이라 그런가 곱상하고 키도 아담한 얼굴이 거울에 비춰지고 있었다.

"꿈이 아니구만......"

현실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내가 손을 움직이고 얼굴표정을 바꿀 때마다 거울 속의 나도 같이 따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현실보다 더욱 꿈 같은 이상한 현실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진짜로... 게임세계에 들어왔다는 건가."

셀레스티얼 아카데미의 기본 설정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셀레스티얼 아카데미 3학년 F반.

F라는 이름에서 직감할 수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카데미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인생 하자품들만 모아둔 반이었다.

당연히 이런 작품이 그런 것처럼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배경이나 재능을 숨기고 있는, 힘숨찐 설정 뭐 그런거였고 주인공은 무력으로는 약하지만 상황파악능력이 뛰어나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기 때문에 F반을 이끌어서 졸업 이후에 벌어질 수많은 전쟁에서 활약하며 선택지를 따라서 대륙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게임이었다.

'당연히 큰 그림을 잘 그리지. 전장을 머리 위에서 보는데'

그냥 세계관 설정이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RPG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연애요소를 몰입시키기 위해서 동급생이지만 지휘하는 자리를 준 셈이다.

본래는 이 아카데미는 고등과정으로 3년간 다녀야 하지만 주인공과 소꿉친구는 각자의 사정으로 중간에 전학을 와서 1년간 친구들과 인연을 쌓고 나중에 도움이 될 사람을 구한다.

이 게임의 문제는 자유도가 높고 어떻게든 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비가 없어서 아카데미에 묶여있는 1년간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하면 스탯도 바닥인데다가 쓸모있는 스킬도 없는 주인공 캐릭터로 쳐맞고 다니다가 붙잡혀서 사형 엔딩난다.

편의성 모드와 난이도 완화 패치가 필수인 이유가 있다.

애초에 주인공이 병약해서 캐릭터의 능력치가 낮습니다, 마법적 재능도 없어서 전투에서는 다른 캐릭터들로 보호하세요라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게이머라는 미친 놈들은 약캐를 키워서 클리어하는 놈들도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 정도로 변태적인 노가다와 버그성 플레이는 하고 싶지 않아서 개발자 의도대로 방치하며 버프와 아이템 셔틀로 사용했다.

물론 내가 주인공이 된 이상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기는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강해지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미처 짐을 풀지 못한 여행가방에는 주인공 전용 아이템인 낡은 목검이 있었다.

주인공만 사용 가능, 공격력 1짜리라서 초반에는 주인공을 공격에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패널티 무기였다.

이거 살펴보니 강화가 99999였다.

"중국애들은... 좀 적당히라는 걸 모르나?"

일단 저건 함부로 휘둘렀다가는 사람을 곤죽으로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땅까지 갈라버릴 기세라서 얌전히 봉인해 두었다.

'목검은 봉인하도록 하고......'

시스템상 맨손공격도 가능한데 공격력이 1이라도 붙은 목검과는 다르게 데미지 보정이 0이라서 안 그래도 낮은 위력이 더욱 낮으니까 그렇지.

목검을 대신해서 쓸만한 것은 무기처럼 대놓고 티가 나는 물건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스킬을 추가해주는 주인공 전용의 무공비급 같은 것이 두 개 들어있었다.

"판타지 게임에 무슨 무공비급이야......"

그래도 익히기로 결심했다.

초반은 주인공이랑 소꿉친구, 단 둘이서만 활약해야 하니까 유의미한 전력증강을 위해서는 강화시키는 편이 좋거든.

게다가 소모품으로 사용하면 스킬을 추가해주는 방식이라서, 지금 나처럼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옆에 게임에서 나오는 상태창이 같이 떠오르는 특이한 체질이 아니라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

­ 주인공은(는) 스킬 '오행무경심법'을 습득할 수 있다. 사용하겠는가? ­

­ 주인공은(는) 아직 조건이(가) 부족해서 해당 스킬을 습득할 수 없다 ­

'이건 또 뭔데?'

두 개의 무공비급 중에서 하나는 익혀지는데 하나는 익혀지지 않는다.

'후반부에 사용하는 물건인가?'

일단 지금 못 익히니까 가방에 넣어두고 나머지 하나인 오행무경심법을 익혔다.

빠라바밤~

실제로 들으니 힘이 빠지는 듯한 게임상 효과음과 함께 심법을 획득하고 설명을 보는데, 오행무경심법은 간단하게 익히는 것만으로도 건강이 증진되고 힘이 강해진다고 적혀있었다.

"이런건 좀 수치로 적어놓으라고."

거울로 내 스탯을 확인해보니 원래는 능력치가 최저치인 5로 맞춰져 있는 주인공이 지금은 7정도로 올라 있었다.

40%가 오른 것인지 2정도 보정해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현재 상황은 게임으로 치자면 프롤로그 단계, 첫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2년간 F반으로써 무시당하면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있는 학생들 사이에 전학생으로 참가하면서 한 명씩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어서 미래의 아군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처음에는 갑자기 게임 세계로 떨어져서 적응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본격적인 시작까지는 1주일이라는 시간여유가 있어서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할 수 있었다.

"냉정해지자. 이 게임은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쓰면 안 되는 게임이니까."

지금도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상황을 파악하느라 하루를 소모했는데, 원래대로라면 1주일간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여자를 꼬시고 남자들도 꼬드겨서 애정과 우정을 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석 아카데미 루트로 간다면 호감도 보정이 생겨서 적당히 해도 되지만, 중간부터는 전쟁통에 호감도가 떨어지는데 시간이 없어서 필요한 몇 명만 챙겨줘야 하니까 최종전쯤 되면 주인공과 결혼할 상대 단 두 명만 남는 경우도 많았다.

나도 노가다를 대충하는 바람에 주인공과 캐릭터 한 명만 남아서 아이템과 되돌리기를 반복한 결과 겨우 엔딩을 본 것이고, 호감도를 못 채워서 결혼도 못 했다.

'준비기간 1주일 동안 다른 건 몰라도 오늘은 나가야 한다고'

오늘은 반장의 생일이었으니 무조건 나가야 한다.

지금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생일파티에 참가하면 호감도가 금방 호감까지 오르고, 다른 선택지에서도 일반적인 캐릭터보다 초반부터 학교를 안내해주는 등 접점이 많은데다가 호감도가 빨리 올라서 공략을 잘 짜면 초반부터 합류시켜 쓸 수 있는 대표적인 효녀 캐릭터였다.

밸런스 잡힌 날렵한 검사인데다가 1회차 때 내가 부인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호감도가 약간 모자라서 결혼에 실패했으니 예비 부인 정도라고 해야 할까.

성능도 좋고 인기도 많고 디자인도 예뻐서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1회차 플레이에서는 생일파티에 대한 정보를 몰라서 영입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미 공략을 파악하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는 최단기간 영입루트를 타면 튜토리얼이 끝나고 바로 다음 전투부터 데려갈 수 있으니 초반부터 능력치 상승 아이템을 먹여서 키워두면 든든한 호위로 삼을 수 있겠지.

달칵.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마침 밖을 지나가고 있던 붉은머리의 미소녀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 소꿉친구 캐릭터이자 초반에 유일하게 동행해주는 한 명.

그리고 중반에 아카데미를 배신하고 중립을 선언한 교장을 죽이며,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는 르넬리안 공작가의 숨겨진 사생아.

자신의 성인식 날, 축하를 받는 것과 함께 르넬리안 공작의 명으로 다시 공작영애로 돌아가면서 반역을 선포하고 왕국을 반으로 가르는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아카데미 루트와 소꿉친구와 반역루트를 가르는 또 하나의, 아니 실질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 내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도 지금 짐정리 끝났구나?"

정확히는 어제 나와서 만나야 하지만 내가 하루 정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서 사태를 파악하느라 날려버렸으니 이제서야 등장한 모양이었다.

가만히 눈에 힘을 주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얼굴 옆에 게임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반투명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반 동행하는 소꿉친구의 스탯 중에서 제일 낮은 힘이 15인데 무공을 배워서 7이라니... 진짜 약캐로구만'

물론 초반 진행을 위해서, 그리고 숨겨진 설정상 소꿉친구는 꽤 강한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건... 뭐지?'

원래 게임상에 있던 캐릭터 상태창에서는 보지 못했던 희미한 글자가 블러처리되어 가려져 있었는데 눈을 찌푸리고 계속해서 살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글자가 흐려지면서 내가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숨겨진 특성인가?'

하지만 나중에 반역과 함께 드러나는 [완성된 혈통의 힘]으로 변화하게 되지만 일단은 소꿉친구의 초반 특성인 [다재다능]은 제대로 보이는데다가, 캐릭터 특성은 각각 하나만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강캐와 똥캐가 나눠지게 되는거고.

'이런저런 복합모드를 깔았으니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추가 특성이 붙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눈쌀을 찌푸리고 자기 얼굴을 노려보고 있으니 소꿉친구가 손을 펼쳐서 내 눈 앞에 흔들어 보였다.

하기야 자기를 쥐잡듯이 노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많이 이상하긴 한가보다.

"아... 그래. 좀 늦었어."

"짐이 워낙 많았으니까. 그치이?"

아직까지 주인공은 주인공이라 불리고, 소꿉친구도 이름이 없고 내가 부르기 직전에 직접 지어주게 되어있었다.

보통은 디폴트 네임이 선정되어 있지만 이 게임은 몰입감을 주겠다면서 디폴트 네임조차 제작하지 않고 주인공과 소꿉친구라는 명칭으로만 불렀으니.

하지만 그건 게임 시스템 아래에 있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처럼 직접 플레이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이름을 지어주게 되는 거지?

"아렌."

"......뭐...?"

"응? 네 이름 불렀을 뿐인데?"

내가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소꿉친구는 이미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1회차 때 내가 입력했던 이름으로.

".....오필리아?"

"응. 왜?"

그리고 소꿉친구의 이름도 1회차 때 내가 입력했던 이름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는 건가...?'

1회차 때 몇 번이고 세이브 로드를 반복했지만 미친듯한 난이도로 인해서 실패.

결국 친구이자 동료들을 몇 명이나 희생시키면서 미끼작전을 벌여 오필리아를 잡아내고 마지막에는 두 명만의 무음으로 처리된 마지막을 장면을 감상했던 나로써는 기분이 이상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2회차 때에는 시작부터 호감도가 나락으로 가버려서 어지간히 친한 상태가 아니면 전부 참전을 거부하는 소꿉친구 반역 루트로 가보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겠지'

게임이라면 아렌이 사망하면서 게임오버가 되어도 세이브를 불러오면 그만이지만 지금처럼 내가 게임세계에 들어온 상황이라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내 목숨을 걸고 위험하고 어려운 길을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안전하게 아카데미 루트를 가려고 하는 것이고.

"아카데미에 관해서 궁금한거 있어? 나는 공부 많이했으니 특별히 지금만큼은 아렌에게 하나씩 설명해줄게."

"필요 없어."

"열심히 공부했는데......"

튜토리얼은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스킵해버리자 오필리아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축 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1회차 때에는 튜토리얼을 들으니까 엄청 기뻐하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줬는데 스킵하면 이렇게 하는구나.

게임상에서 생략되는 대사창으로 볼 때와 이렇게 직접 게임 속 캐릭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느껴지는 감정이나 기분이 전혀 달랐다.

'왠지... 친근한 기분도 들고'

이건 아마 주인공인 아렌의 기분일지 아니면 1회차 때 수백, 수천번을 얼굴을 보면서 적대해오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살짝 슬픈 기분이 든 게이머로써의 내 감상인지 모르겠다.

응. 그래도 아카데미 루트야. 절대 반역루트 안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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