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두 편만 올릴까 하다가 전편이 끊기 너무 애매한 부분이라 그만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티가 너무 강함
* * *
현재와 동료들은 수인 마을을 거점으로 삼아 주변의 고블린 무리와 던전을 싹 쓸어버렸다.
1주일만에 던전 11개를 털었고 고블린은 만 단위에 가깝게 토벌한 것 같았다. 셀 수 없는 숫자의 적이란 건 이런 거구나. 하지만 하나도 어렵지 않았으니, 현재는 고블린은 역시 바퀴벌레 비슷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징그럽고, 더럽고, 기분 나쁘고, 수도 엄청 많고, 하지만 약하고. 딱 바퀴벌레구나.'
아무리 쉬운 전투라도 일주일 내내 했고, 정말 끝도 없이 돌아다니느라 질리는 참이었다. 현재는 하루 휴일을 갖기로 결정하고 수준은 낮더라도 등 붙이고 누울 침대와 바람을 막아줄 집이 있는 수인 마을로 돌아왔다.
'아티팩트는 결국 하나도 안 나왔지. 하긴, 신의 보물이란 게 그렇게 널려 있을 리는 없는 거다. 구하기 어려운 게 당연해.'
던전에서 아티팩트가 나오는 것은 명확한 사실, 그러나 안 나올 확률이 훨씬 높은 것 또한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다음에는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마을 안을 걷는 현재에게 말을 거는 낯선 존재가 있었다.
"근처의 고블린이 씨가 말라서 아무리 멀리 나가 채집을 하고 수렵을 해도 위험할 일이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인이시여!"
겨우 일주일 지났지만 근처에선 도저히 고블린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마을 청년은 그 점에 감복하여 현재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멍청아. 그게 다 나중에 우릴 벗겨먹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현재의 식민지 선언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여자는 청년의 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식량이나 생산물 따위 조금 뺏어가면 어때, 위험에서 지켜주면 된 거잖아. 인간들도 전부 그렇게 하고 살잖아. 영주는 도시를 지키고 시민은 세금을 바친다. 그러니까, 저 분이 우리 영주님이신 셈이지."
그러고 보니 대충 생각했던 일이 봉건제 형태가 되어버렸구나. 청년의 말에 현재는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고마우면 마을 키우는 일을 더 열심히 해라. 사냥과 채집이 전부는 아니잖나? 원시인도 아니고. 가구를 만든다거나 집을 증축한다거나 이주민을 찾아온다거나 할 일은 잔뜩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영주님!"
청년은 뭔가 못마땅해하는 여자를 데리고 일을 하러 떠났다. 미아가 현재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알아주는 사람도 있네. 다행이야."
"시꺼먼 남정네가 좋아해줘봤자 별로 기분 좋을 것도 없지만."
"오호, 예쁜 여자가 와서 감사 인사하면 기분 좋아지는 거구나?"
"이 마을을 구하겠다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할 일 하는 김에 겸사겸사 하는 거잖아. 여관이 없어서 이 마을을 숙소로 쓰고 있는 것 뿐이니까, 누가 감사해도 어 그래? 이 정도 대답 밖엔 못 해주겠지."
"착한 일 하는 게 부끄러워?"
"내가 수고를 들여야 했으면 안 했을 거라니까. 이 근처 던전 지도가 있으니까 거기부터 턴 것 뿐이지.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곧 더 깊은 곳으로 거점을 옮길 테니까 마을놈들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할 시기가 다시 올 테고."
"그럼 그런 걸로 해두자."
미아는 싱긋 웃으며 발돋움하고 팔을 쭉 뻗어 현재의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꼭 말 잘 들은 애완견을 칭찬하는 느낌이라 현재는 그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일곱 살 꼬맹이 때도 아니고 말야.'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는 미아 본인이 꽤 즐거워보여 마음대로 쓰다듬도록 놔두었다. 밤일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이쪽 취향을 강요하니까, 낮에는 대충 맞춰줘도 된다는 기분이랄까.
현재 일행은 오늘도 묵을 촌장의 집에 가서 짐을 풀어놓고 그 뒤에 있는 공터로 나왔다.
"베르딜리온."
"네."
드래곤이 알려준 이름은 처음부터 줄임말 즉 애칭 같은 것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다섯 글자로 마을 사람들에게 마법 무기를 나눠줄 때 현재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티팩트를 사용할 때 신의 이름을 외쳐야 하는 것처럼, 드래곤의 마법 무기를 사용할 때는 그녀의 본명을 외쳐야 하는 것이었다.
미아와 파탈리테는 여전히 그녀를 벨딜이라 불렀지만, 현재는 왠지 애칭을 쓰는 게 쑥쓰러워 파탈리테를 굳이 풀네임으로 꼬박꼬박 부르듯이 벨딜에게도 베르딜리온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마법 수행을 시작하자."
"그러죠."
현재가 처음 이 마을에 와 대접을 받았던 다음날, 현재는 베르딜리온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네 주신의 억지력으로 인해 사람들은 마법을 쓸 수 없다지만, 그 어떤 주신의 영향도 받지 않은 현재는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쉬는 날로 정한 오늘, 현재는 베르딜리온에게 마법을 배워보기로 했다. 파탈리테와 미아에겐 방에서 편히 쉬고 있으라 했지만, 즐기고 놀 거리도 없는 마을인지라 두 사람도 구경을 하러 공터로 따라나와 있었다.
"제가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의 기척을 느끼셨다고 했죠?"
베르딜리온이 마법을 가르치는 스승의 태도에 알맞게 평소보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보이지 않아도, 마력이 허공에 마법진 같은 걸 그리고 있다는 건 알겠어."
"마법진…….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마법진이란 건 아니에요. 꼭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 않더라도 마법은 발동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 쓰였던 마법에 마법진이 있는 건 그것이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법한 쉬운 길이기 때문이에요."
"마법이란 그저 강하게 바라는 것으로, 완벽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실현됩니다. 그렇기에 마법이라 불리는 거죠."
"그럼 내가 불을 피우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불이 피워지는 건가?"
"핵심만 말하면 그렇죠. 하지만 생각한다는 게 조금 다릅니다. 불을 피울 때는 어째서 거기 불이 피어나는지, 불이 어떤 상태인지 기반부터 그 끝까지 온전히 완벽하게 상상해내야만 해요."
"무슨 뜻이지?"
"제가 마력으로 마법진을 그렸다고 착각하셨지만, 그것은 마법을 상상해내는 과정의 일환이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여기서 광역 빙결 마법을 쓰려고 한다면, 그 냉기의 근원이 어떻게 짜올려지는지 기초부터 상상을,"
"미친 놈아! 여기서 그런 마법 쓰지 마!"
"아차! 그럼 주변 사람이 전부 휘말려버리겠네요."
현재의 지적에 베르딜리온이 시범을 보이려던 마법을 취소했다. 현재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진짜 써볼 생각이었어? 중간에 멈출 생각이 아니었던 거냐?"
"혼자 있는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광역 공격 마법을 막 쓰면 안된다는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현재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일단 말려서 다행이었노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구경하던 미아와 파탈리테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드래곤의 진심 공격 마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현재는 베르딜리온과 싸워보았기에 그 마법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알았다.
'하마터면 마을이 소멸할 뻔 했구나.'
"그럼 무난하게 빛을 밝히는 마법으로 할게요."
베르딜리온의 손 위에 마력이 요동치더니 번쩍이는 빛의 구체가 자리잡았다. 맑은 날의 대낮인지라 주변이 크게 달라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빛의 구체 쪽을 똑바로 쳐다보면 태양을 맨눈으로 보는 것처럼 눈이 심하게 부셨다.
"상상이 반드시 현실적일 필요는 없어요. 제가 이 빛을 만들어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요정들이 불빛을 들고 모이는 상상을 했답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나요?"
현재는 베르딜리온의 상상을 상상했다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신과도 맞먹는 힘을 지닌 드래곤이면서, 상상은 그렇게 귀여운 걸로 하는 거냐?"
"저는 난폭한 거 별로 안 좋아하고, 귀여운 것들은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리테 씨와 미아 씨가 참 마음에 든답니다. 귀엽잖아요?"
"나도 벨딜은 마음에 들어."
"동의하는 걸로."
갑자기 친분을 과시하는 세 여자.
'파티 멤버들 사이가 좋으면 좋은 일이지.'
현재는 뜬금 없이 찾아온 화기애애함을 애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도 마법을 써보기 위해 집중했다.
'손에서 마력이 뿜어져, 요정……, 들이 불빛을 모은다…….'
자기 덩치에 요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승이 그렇게 가르친 바람에 현재는 대충 램프를 든 아주 작은 요정을 상상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폐해일까. 자기 방식으로 바꿔 응용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몸에서 마력을 끌어올린다. 마력이 무엇인지 예전에는 감을 잡지 못했지만, 베르딜리온의 초대형 마법들을 보며 꿈틀거리는 마력이 무엇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그렇기에 몸 안에 꿈틀거리는 '비슷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것을 짜낸다는 느낌으로 몸 바깥을 향해 밀어낼 수 있었다.
마치, 본래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또다른 근육이 몸에 생긴 느낌. 그렇게 마력을 짜내어 손으로 뿜어내며 요정의 모습을 상상했다.
스스슥.
무언가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현재의 손 앞에 작은 빛의 구체가 맺혔다.
"오."
"와, 벌써 성공하셨네요. 대단해요."
"현재, 천재야?"
"믿기 힘들다."
오늘은 스승답기로 결심했는지 평소처럼 촐싹대지 않고 진중한 칭찬을 건네는 베르딜리온. 꼭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미아. 엘프의 여왕이자 대전사로서 마법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탓에 놀라 입을 벌리는 파탈리테.
현재는 마법이란 게 너무 쉽게 되는 바람에 당황할 지경이었다.
"보통은 얼마나 걸리는데? 하긴, 보통은 못 쓰니까 보통이라 물어도 모르나?"
최후이자 유일의 마법사 베르딜리온을 제외하고 대륙에 마법사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두번째 마법사가 생겨, 베르딜리온은 최후도 유일도 아니게 되었다.
"마법이 사라지지 않았던 시대에는 입문에만 년 단위가 걸리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한다."
파탈리테가 마법에 대한 지식을 살짝 늘어놓았다. 그녀는 여러 이유로 이미 쓸 수 있는 사람 없는 마법이라도 그에 대해 공부해야 했기에 아는 게 많았다.
"그럼 나는 역시 천재?"
"그렇지? 대단하다! 우리 현재!"
미아가 우쭐해진 현재를 치켜세워줬다.
"주인님은 마력이 꽤나 많은 편이니, 갓 마법에 입문하던 아이들과는 조건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넘치는 마력은 양이 적은 마력보다 훨씬 느끼기가 쉽겠죠."
베르딜리온이 정론을 말했다. 마력이 티끌 수준 밖에 없던 입문자들과 100 단위가 넘는 마력 능력치를 지닌 현재를 비교하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일 터다.
"그리고 저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으니까요! 제자가 대성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랄까요!"
"그래. 고맙다."
"하지만 그래도 십 분도 안 걸려 마법을 써낸 건 정말 대단하네요. 상상력이 어엄청 뛰어나신가 봐요."
"그래, 굳이 제약도 없고 상상하는 그대로 이뤄지는 힘인 거지? 마법이란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과연 신을 죽이고 신들이 두려워할 법한 힘. 현재는 만능이나 다름 없는 마법의 개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조심하세요. 자기 마법에 잡아먹히는 마법사가 옛날에는 아주 잔뜩 있었으니까. 저는 그런 실수 안 하지만요."
씨익 웃는 베르딜리온의 말은 왠지 그 무게가 엄청난 것 같았다. 저 드래곤은 아무 생각 없이 말도 안되는 스케일의 일들을 저지르고는 하니까. 말 한 마디 한 마디의 무게가 상당했다. 현재는 괜시리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경고는 보통 입문하기 전에 말해주지 않아?"
"그런다고 그만 두실 분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해."
현재가 그런 만능의 마법에 입문했다고 지금부터 마법사의 길을 걸을 거란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상태창으로 올라간 마력에 의존하는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것은 상태창 없이도 신과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는 본래의 목적과 크게 어긋나니까.
다만 그는 마법을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떠올렸기에, 그 목적에 맞게 마법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전기나 기계 장치를 까막눈인 내가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마법의 힘으로 대체한다면 그거랑 그걸 할 수 있겠지…….'
현재의 입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후후후……."
그의 모습을 보고 미아와 파탈리테는 눈치챘다.
'어, 현재 또 야한 생각 한다.'
'옷 위로도 티가 날 만큼 발기했네. 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건지…….'
그 시험 대상이 누가 될지는 너무나 뻔했기에, 미아는 조금 기대했고 파탈리테는 걱정하면서 기대했다.
'이건, 그거다. 내가 당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 뿐이니까.'
미아와 달리 현재와 연인이나 부부 관계라고 명확히 하지 않은 파탈리테는 그런 식으로 자기 생각을 부정했다.
왠지 현재와 몸을 섞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