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파티가 너무 강함
* * *
"쉽잖아?"
"정말, 파티의 전력이 말도 안되게 늘었네."
고블린 수십을 도륙하는데 걸린 시간 단 2분. 벨딜은 아예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뭘 새삼."
대규모 전투 경험이 많은 파탈리테가 의아해했다. 만 단위를 넘는 전투를 몇 번이나 반복해본 그녀에게 이런 전투는 몸풀기조차 안됐다.
"고블린이 약한 건 당연하잖아?"
신의 은총이 없는 고블린이 강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명은 겨우 1년, 멸종하지 않은 이유는 말도 안되는 번식력과 약간의 지능, 그 정도 뿐인 하찮은 생물.
"그래도 저주 받은 대지니까 조금은 강할 줄 알았지."
현재는 조금 게임에 가까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게임의 끝자락에 나오는 늑대는 이전에 쓰러뜨린 마왕보다도 세다든가 하는 일.
RPG 게임에서 주인공 일행의 레벨은 계속 오르는데 뒤에 나오는 적이 더 약해선 안되니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심한 경우 뒷 부분의 달팽이나 갈매기가 앞 부분에 나오는 저주 받은 악마들의 왕보다 강해 유저들의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다.
'게임 같지는 않다는 거지.'
레벨도 상태창도 있지만 게임 같지는 않은 세계. 불을 피우는 것조차 부싯돌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한 세계에서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현재는 반성하며 고블린들의 시체를 살폈다.
"얻을 만한 거는 없어보이네."
"하지만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생물을 사냥하는 건 레벨을 올리는데 도움을 주는 일이야."
미아의 말에 현재는 경험치를 약간 쌓았노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던전을 찾으러 가볼까."
그들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던전을 돌파하고 아티팩트를 모으는 것. 발걸음도 힘차게 모험을 시작했다.
* * *
"또 고블린이냐."
바퀴벌레 1마리가 보이면 천 마리는 산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던가. 현재는 고블린들이 꼭 바퀴벌레 같다고 생각했다.
'주방의 천적 같으니.'
반 나절 만에 현재 일행은 3백이 넘는 고블린을 죽였다. 그런데 또 다시 백이 넘는 고블린 부락을 발견하고 말았다.
"이렇게 많은 수의 고블린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냐? 저주 받은 대지라더니 완전 축복 받은 대지잖아?"
"하지만 던전의 수가 수천 개가 넘고 때때로 마수가 튀어나오니,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그 많은 던전을 왜 우리는 한 번도 못 봤냐?"
"글쎄. 저주 받은 대지가 그만큼 넓기 때문이 아닐까."
파탈리테는 칼을 뽑아들려는 현재를 불렀다.
"이 정도 수라면 의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죽이지 않고 생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식?"
"그대가 가진 아티팩트의 능력이 알고 싶다고 했었지? 이 정도 산제물이라면 주술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거다."
"아, 그런 거였지?"
현재는 벨딜을 바라보며 한 번 물었다. 마법이 주술보다 훨씬 나은 기술이라 하니 제물을 모으지 않아도 감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벨딜, 네가 아티팩트를 감정할 수는 없냐? 마법 같은 걸로 팍팍."
"아쉽게도 저는 신들과 사이가 나빠서 안될 것 같네요."
"저주를 받은 파탈리테도 할 수 있는데?"
"죽은 신이 내린 저주를 신경 쓰는 신은 없겠지만, 저한테는 살아있는 주신들의 저주가 걸려있거든요."
"그런가."
벨딜의 말에 파탈리테도 조금 뽐내는 얼굴이 됐다. 남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자랑스러워 할 일이 맞았다.
"미아, 생포할 수 있겠어?"
"일일히 묶는 건 무리일 테고, 기절 시키면 되는 건가?"
"그래."
"팔다리의 힘줄을 끊어도 돼. 네짝 모두 끊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활로 그 정도 묘기를 부리는 것까진 힘들었기에 파탈리테도 이번엔 활 대신 단검을 들었다.
"죽이지 않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은데, 해볼게."
그렇게 전투를 시작하려는 셋을 벨딜이 불러세웠다.
"고블린들을 생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가요?"
"그런데?"
현재의 되물음에 벨딜은 자기 가슴 위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제게 맡겨주세요."
"무슨 수를 쓰려고?"
"광역 수면 마법으로 모두 재우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 기술도 있냐."
현재 또한 어설프게 생포하는 것보다 재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럼 맡길게."
벨딜이 지팡이를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보이지 않는 마력이 꿈틀거리며 마법진을 그렸다. 현재는 자꾸 근처에서 마법을 쓰는 걸 보다 보니 마력이 보이지는 않아도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허공을 수놓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계속 보다 보면 무슨 마법인지도 판별할 수 있으려나?'
지금 상황 그대로만 간다면 벨딜을 적대할 일은 없겠지만은, 또 마법사라는 직업이 세계에 벨딜 한 사람 밖에는 없겠지만은 그래도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 자체를 익혀두는 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현재는 열심히 구경했다.
대규모 수면 마법은 앞에 대규모가 붙는 만큼 강대한 마법인지 준비 기간이 꽤 걸렸다. 분 단위의 집중이 끝나고 마법이 발동되자 주변을 돌아다니던 고블린들이 픽픽 쓰러져 잠들기 시작했다.
"됐어요."
"그럼 한곳에 모아야겠지?"
"그래."
파탈리테에게 확인을 받은 후 현재 일행은 고블린들을 나무가 자라지 않은 커다란 공터에다 모아놓았다.
"그럼 의식을 시작할 테니 그동안은 날 건들지 말아줘. 잘못했다간 저주가 옮을지도 모른다."
파탈리테는 특히 현재를 바라보며 강하게 경고했다. 그녀의 생각에 현재는 어떤 돌발행동을 벌일지 모르는 사고뭉치였다.
'중증의 변태니까.'
그런 이미지였다.
파탈리테는 공터에 산처럼 쌓여있는 고블린 중 하나를 집어 맨손으로 심장을 뽑아냈다. 그건 상당히 잔인한 광경이라 밥먹듯이 고블린을 썰어왔던 미아에게도 영 보기 거북한 장면이었다.
구토가 나올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음 편히 보고 있기는 힘든 그런 장면.
'그래도 뭔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잘 보고 있어야지.'
파탈리테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주술 도중 뭐가 잘못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심하는 것이 좌우명인 미아는 그 광경을 모두 눈을 통해 기억 속에 새겨넣었다.
고블린의 몸에서 뽑혀나온 심장은 놀랍게도 계속해서 팔딱팔딱 뛰었다. 파탈리테의 피에 대한 지배력이 발동하면서 억지로 팔딱거리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심장 주변을 순환하던 핏물은 다음 고블린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또 다음. 파탈리테가 벌이는 주술은 흡사 수많은 심장을 모두 하나의 심장으로 이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이라는 엔진이 늘어날 수록 피의 순환이 더 거칠고 빨라지겠지. 심장들이 서로 핏물로 이어지며 순환하는 길이 짧아진 만큼 남게 된 피는 주변의 대지에 흩뿌려지며 무언가의 술식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현재가 미리 공터 중앙에 꽂아두었던 거인을 가르는 검과 타워 실드 옆으로 핏물이 그리는 술식이 덮쳐들었다.
그리고, 그 뒤의 땅 위로 무언가 커다란 문자가 새겨졌다. 현재도 읽을 수 있는 문자였다. 그러나 제국에서 쓰는 문자는 아니었다.
"위즌, 아이클레이아?"
그것은 신어로 쓰인 신들의 이름이었다. 검의 주인이 위즌, 방패의 주인이 아이클레이아.
"그대, 신어를 읽을 수 있나?"
의식을 마친 파탈리테가 놀라 현재에게 물었다.
"그러게, 제국에서 쓰는 글자가 아닌데 읽을 수 있네?"
"신의 은총을 빌리기 전부터 이미 이곳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분명 어떠한 힘이 작용했다는 것인데."
현재는 상태창을 얻기 전부터 아르젠타 시의 인간들과 대화가 잘 통했고, 심지어는 모르는 문자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인 일이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았으면 적응이 곱절은 힘들었을 테니. 그러나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신의 은총을 받은 것도 아닌데 모르는 언어와 문자를 알고 있었다니?
"어째서였지?"
현재는 파탈리테로 인해 잊었던 궁금증이 떠올랐으나 당장 해답을 알 수는 없었다.
"생각해봤자 모르겠는 일을 생각하는 건 의미 없지. 그보다는 아티팩트의 능력부터 확인해보자."
"어디 보자, 이 검은 주인의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거대해진다?"
파탈리테가 신의 이름 위에 작게 새겨진 문자들을 읽었다. 현재는 검을 들어 하늘로 향하고 신의 이름을 불렀다.
"위즌!"
본래부터 거대했던 대검은 하늘을 가를 기세로 늘어나 본래보다 10배 이상 커지고 그만큼 무거워졌다.
"오."
그러나 그만큼 무거워진 후에도 현재는 충분히 검을 들 수 있었다. 오히려 묵직한 감각이 기분 좋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임시로 붙였던 이름하고 너무 잘 맞는 능력이잖아?"
아티팩트에 따로 정해진 이름이 있지는 않다. 보통 발견한 사람이 제멋대로 지을 뿐. 굳이 따지자면 주인되는 신의 이름을 따 '위즌의 검', 혹은 '위즌의 대검'이라 부르는 게 맞겠지.
허나 이 무기는 아르젠타 시의 무기 상인에 의해 거인을 가르는 검이란 별명이 붙어 있었다. 현재도 그 작명이 마음에 들어 내심 그렇게 부르고 있었는데 숨겨진 능력이 거대화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근데, 던전에서 쓸 수 있겠나? 이거?"
그러나 동시에 좁은 던전에서는 쓸 수 없을 듯한 능력이기도 했다.
"아티팩트라 튼튼하고 날이 안 나가는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기도 하지."
파탈리테는 검의 장점을 읊어주었다. 녹이 슬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으며 날조차 나가지 않아 숫돌로 갈아댈 필요가 없다는 건 분명 말도 안되는 이점이었다. 과연 신의 무구다 칭송을 받아도 될만한 부분.
"그래. 언젠가는 이 능력도 쓸 일이 있겠지."
현재는 검의 능력이 별로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애초에 아티팩트인 줄도 몰랐던 검이 아닌가?
"그럼 다음은 방패인가."
"이 방패는 주인의 이름을 외치는 것으로 동료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벽을 세운다?"
"또 거대화냐?"
현재는 방패를 들어올려 자신의 앞에 세우고 방패의 주인이 지닌 이름을 불렀다.
"아이클레이아!"
그러자 방패의 사방으로 무형의 힘이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투명화가 아니네?"
"주변으로 결계가 펴져있다."
통통, 파탈리테가 허공을 두드리며 말했다. 방패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역장이 펼쳐져 이물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넓이가 얼마나 되는 거지?"
그 역장이 보이지 않는 탓에 파탈리테는 직접 걸어가서 방패의 넓이를 확인했다.
벽을 두드리며 걸어본 결과 무려 양 옆으로 50미터 가량은 되는 초대형의 결계였다.
"성벽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군."
"위쪽으로는 얼마나 되지?"
파탈리테는 이번에는 활을 쏘아 어느 높이까지 막히는지 확인했다. 높이도 무려 20미터를 넘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벽이다."
"그래. 전쟁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어."
"현재야! 이거 봐봐!"
감탄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미아가 말을 걸었다.
"왜?"
"이거, 밖에서 안으로는 못 오는데, 안에서 밖으로는 나가진다?"
미아는 투명한 방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도로 안쪽으로 회수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파탈리테가 같은 곳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방패의 반대편에 있어서인지 들어오지 못했다.
"이쪽에선 저쪽으로 공격을 내보낼 수 있는 건가?"
미아는 이번에는 아예 방벽을 넘어갔다가, 이후에는 도로 들어왔다.
"아니, 왜 미아는 통과할 수 있고 나는 안되는 건가?"
파탈리테가 의문을 품었다.
"사랑의 힘일지도?"
미아가 장난스레 한 마디를 던졌다.
"아군이라 인식한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럼 나는?"
"아니 나는 너도 충분히 동료라 생각하고 있는데."
파탈리테의 지적에 현재는 도리질을 쳤다.
"능력이 발동될 때의 위치가 중요한 거 아닐까?"
"그건 확인해볼 가치가 있는 가설이네."
현재는 방패의 힘이 사라지기를 기원했다. 그러자 방벽이 사라지고 파탈리테가 방패의 안쪽으로 올 수 있었다.
"아이클레이아!"
"오, 오?"
파탈리테는 쉽게 방패 바깥쪽과 안쪽을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된 건가?"
"아니, 그냥 방벽이 켜지지 않은 것 같다만."
"재사용 대기시간이군."
아티팩트 중에는 다시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이 방패는 아무래도 그런 부류인 모양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나?"
"아쉽게도."
"불친절한 설명서네."
"이 이상은 직접 사용하면서 확인하는 수 밖에 없겠지."
파탈리테는 왠지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현재는 말실수를 했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네 주술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상처 받은 거 아니다. 그런 것까지 일일히 신경 쓰지 마라. 섬세하기는."
파탈리테는 그런 현재의 태도에 후후, 소리를 내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