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93화 (93/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산맥의 주인

* * *

"결국 결론이 싸우는 거야? 참으로 미개한 인종이네. 너나 나나."

미아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모험가의 삶이란 결국 강한 자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그건 참 우스운 일이라고 미아는 생각했다.

"네 팔다리 힘줄을 잘라서라도 데려갈 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니까."

"엘프의 구원을 책임진다는 네가 이따위 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도 되겠어? 내가 너를 죽여버리면, 여기서 엘프의 운명이 끝나는 건데도?"

"괜찮다."

파탈리테는 말했다.

"믿을만한 사람한테 반쪽을 맡겨놓고 왔으니까."

미아는 깨달았다. 그걸 전해 받은 사람은 현재라고.

"네가 뭔데!"

미아가 검을 뽑았다.

"이미 충분히 힘든 애한테 네 종족의 운명을 떠넘기고 지랄인데! 그런 건 스스로 해결해!"

"내가 맡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억지로 빼앗아가더라. 그래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왜 네가 현재에게 푹 빠져버렸는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읊조리는 파탈리테의 말에 미아의 눈에 불꽃 같은 투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네가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안다. 질투지 않는가? 나는 예쁘니까. 현재의 마음을 빼앗길까 두려웠겠지."

검과 단검이 부딪혔다. 그 사이로 불꽃이 튀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사랑하기에 짐이 될 수는 없어 떠나간다는 미아와, 그녀가 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싸워 이겨야 하는 파탈리테.

두 여자의 검극이 서로 교차하는 소리가 한참동안 설산 위로 울려퍼졌다.

* * *

"싸우고 있네요."

"알아."

칼 부딪히는 소리는 동굴에서는 아주 작게 들렸지만 드래곤과 초인에게는 아주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말리지 않으시나요? 누군가는 다칠 텐데."

"내가 끼어들면 모처럼 연기한 보람이 없잖아."

"미아 씨가 이길 거라고 믿고 계신 거군요!"

"녀석은 강해. 나 같은 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현재의 힘은 빌려온 힘, 그가 잘 나서가 아니라 신에게 선택되었기 때문에 생긴 영문 모를 힘이다.

그러나 미아의 힘은, 비록 신의 은총 자체는 받았다고 하나 그것은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받은 것이고, 그녀 스스로가 십수 년을 갖은 노력 끝에 손에 넣은 온전한 그녀의 힘이다.

그런 미아를 현재는 강하게 신뢰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도 마음도 강인한 모험가라고.

"모순적이네요. 강하다고 믿고 있으면서 약하다고 쫓아내다니."

"그 강함은 인간 사이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지. 너처럼 끔찍한 괴물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거냔 말이야."

"엥? 저 같은 적을 만날까봐 쫓아내신 거였나요?"

전혀 몰랐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는 벨딜. 현재는 이 어처구니 없는 드래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래."

"하지만 저는 신 중에서도 강한 편이니까 인간계에서 저만한 적을 만날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뭐라고?"

"주인님도 아주 강하시니까, 모험은 평온무사무난무탈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정신병자 드래곤을 믿어도 되는 건가?'

현재는 갑자기 그녀의 말이 매우 솔깃하게 들렸다. 미련이 남아 미아를 도로 붙잡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저희는 언제 출발하나요? 어차피 붙잡지 않기로 했으면 슬슬 가도 되지 않을까요?"

미련이 발목을 붙잡아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현재를, 벨딜은 재촉했다.

"아니 난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누가 이기는지는 보고 가려고."

변명하듯 현재는 그렇게 말했다.

"미아 씨가 이겼네요."

"아직 싸우는 도중이잖아?"

두 사람이 칼을 부딪히는 소리는 팽팽했기에 현재는 벨딜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파탈리테 씨가 훨씬 버거워하는 게 검을 부딪히는 소리에서 느껴지지 않나요?"

확실히, 집중을 최대로 끌어올려 들어보면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은 미아의 검 쪽이었다. 먼저 공격해들어갔던 것과는 반대로 파탈리테의 쌍단검은 오히려 수세에 몰려 방어하는 일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미아 씨가 이기고 떠나겠군요. 그럼 그때 파탈리테 씨를 주워올까요?"

"……잘됐어. 잘된 일이야."

당초의 목적은 미아를 안전한 장소로 돌려보내는 것. 그녀는 수배범도 아니고 엘프도 아니며 명백히 보증된 신분이 있으니까, 국경에서도 어찌어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그거면 된 거야.'

현재는 그리 생각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아, 끝났다."

벨딜의 말과 동시에 계속해서 들려오던 칼 부딪히는 소리는 뚝 끊겨버렸다. 현재는 동굴 바깥의 상황을 생생하게 볼 정도의 능력은 없었으므로 벨딜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됐지?"

"파탈리테 씨의 팔에 긴 검상이 남았네요. 치명상은 아니라도 더 싸우기엔 곤란한 상처죠."

싸움 결과는 벨딜의 예상대로였다.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거냐! 후회 안할 자신 있냐고!"

파탈리테가 크게 소리지른 덕에 동굴 안쪽까지 그 목소리가 전해졌다. 미아의 대답은 여기까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미아 씨가 떠나가네요."

현재는 자해라도 해버릴 것 같이 미칠 듯한 가슴의 아픔을 인내하고 있었다. 위험한 싸움을 하러 가는 자신은, 절대로 미아와 함께 해서는 안된다고 계속해서 되뇌이고 있었다.

'너무 잡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안돼.'

"아……, 이렇게 미아 씨가 죽고 말다니. 악수를 나눈 사이로서 참으로 유감이었습니다."

벨딜의 말에 현재는 눈을 부라렸다.

"뭔 좆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미아가 이겼잖아. 그런데 왜 죽어?"

"하지만 저의 심안에 따르면 미아 씨는 멀리 가서 죽을 생각을 하고 계시는데요?"

"씨발! 그 좆같은 소리 진짜냐?"

"지은 죄가 무거워 견딜 수 없다고, 너무 과분한 사랑을 주어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네요."

현재는 미아의 죄책감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벨딜이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진실인 모양이었다.

현재는 동굴을 뛰쳐나와 피흘리며 주저앉아있는 파탈리테를 지나치고 멀리 떠나가려던 미아를 붙잡았다.

"미아! 제발 그 이상한 죄책감 좀 버리라고 했잖아! 그만 생각하라고! 나는 널 만나서 행복하다고! 조금 거칠게 굴렸던 거, 다 사랑이고 애정이라는 거 확실히 알았다고 했잖아! 내가 잘 적응하고 살아남길 바래서 그랬던 거잖아!"

미아의 입장에선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겨우 몇십 분 전에 쓸모 없다고 쫓아내놓고 갑자기 따라와서 마음을 읽은 듯이 말을 걸다니?

짐이 된다면 떠나가야 한다고, 수천 번 수만 번은 되뇌였지만, 다시금 현재의 얼굴을 보니 미아의 마음 속에도 미련이 뚝뚝 흘러넘쳤다.

"어떻게 내가 그걸 잊어? 현재가 이런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된 것도, 사람을 막 패고 막 훔치고 막 죽이고 막 뺏고 막 겁탈하는 양아치가 된 것도 전부 다 내 탓인데!"

"아니, 요즘엔 자제하고 있잖아."

정확히는 미아가 현재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둘이 짝사랑이 아니라 맞사랑을 하고 있다고 확인한 순간부터 현재는 상당히 얌전해졌다. 대한민국 서울시의 준법시민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 전에 미쳐 날뛸 때 보다는 확실히 이것저것 재면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 죄인인 데다가 자기만 보라 하는 질투 덩어리에 약해빠진 짐덩이인데 정이 떨어지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렇게 버려지는 것도 당연해."

현재는 분명 미아가 이렇게 상처 받아 멀리 떠나가길 바랬었지만, 죽기로 결의할 정도로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에 목이 매여 입을 여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죽느니 내가 죽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할 정도야."

현재는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일부러 모질게 굴어 미아를 안전한 곳으로 쫓아보내려고 했지만, 그 결과로 미아가 자살을 결심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병신새끼, 진짜. 생각은 더럽게 짧아가지고.'

만약에, 미아가 그대로 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면? 뒤를 따라갔을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그런 비극을 재현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늦었다.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이렇게나 커다랗고 무거운 사랑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나는 드래곤한테 졌어. 그대로 짓밟혀 죽거나 노예가 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살아남은 건 녀석의 변덕과 이상한 취향 때문이야. 녀석이 내 노예가 되는 대신, 날 노예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됐겠지. 그 녀석이 내 노예가 된 건 순수하게 스스로의 선택이었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어."

처음 듣는 소리에 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죽을 위기일 때, 내 목숨 따위보다 네가 훨씬 더 생각이 나더라. 나는 죽어도 되지만 너는 죽으면 안된다고 몇백 번이나 생각했어. 하지만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어. 나는 졌고 널 지킬 수 없었고, 나와 네가 살아난 건 전부 드래곤의 변덕 때문이었단 말이야. 그게 너무 버거웠어. 내가 너를 위험 속으로 데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는, 그냥 아르젠타 시에서 영웅으로 살아갔으면 충분히 행복했을 텐데."

"아니야!"

미아는 소리쳤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 네가 오기 전까지는, 항상, 외로워도 외롭다고 하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었단 말이야."

영웅을 연기하기로 한 소녀는 모두의 의지가 되어야 했기에 누구에게도 약한 소리를 하지 못했다.

모두의 존경과 응원은 그녀의 마음을 북돋아주었으나 순간일 뿐, 매일 밤 홀로 잠에 들 때면 외로움이 사무쳤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도시를 지켰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도시에 섞여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인이었다.

어린 시절 당했던 너무 아팠던 배신은, 그녀를 누구도 믿지 못하고 어디에도 섞여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온전한 고독이 사라진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이방인과 만난 이후였다.

"널 만나지 못했다면, 난 영원히 외로웠을 거야. 너는 내게 있어 하나 뿐인 기적이고 구원이였어."

미아는 미움 받을 게 두려워 뱉지 못했던 속내를 내뱉었다.

"네가 나보다 더 외로울 걸 알았기에, 그런 부분에 위로 받았어. 어처구니 없지? 남들이 나보고 착하다 정의롭다 그리 말해봤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나쁜 아이였단 말야. 그러니까 나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마. 아끼려고 하지도 마. 그냥, 그냥……."

미아는 아까 하지 못한, 현재의 짐이요 걸림돌이 될까 하지 못했던 순수한 진심을 전했다.

"나는 너 없으면 못 살아. 네가 없이 사느니 죽는 게 나아. 그러니까 못 지킬까봐 떠나보낸다니 그런 선택 하지 말란 말이야. 네 옆에서 죽는 게 네가 없는 곳에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 안돼. 이런 이야기 하지 마. 짐이 될걸 알면서 따라가고 싶다고 하지 말라고!"

미아는 이미 쏟아버린 물잔을 어떻게든 다시 주워담아보려 버둥대지만, 그런 일이 될리가 없다. 이미 입 바깥으로 터져나온 마음은 어떻게 해도 주워담을 수 없었다.

"짐이 아니야. 너는, 내게 있어 너무 소중한 보물이야. 절대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꽁꽁 숨겨두고 싶은. 그래서 부숴지지 않게 안전한 곳에 두고 싶었는데, 그걸 위해 상처를 주다니 나는 병신 머저리야."

"현재야……."

"미아!"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서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뒤늦게 둘을 쫓아온 파탈리테가 그 모습을 보고 한숨 쉬었다.

"하아……, 나는 왜 싸우고 왜 다친 거지?"

"저건 무슨 놀이인가요? 연극?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야기를 흉내내어 재현하고 즐기는 문화가 있다던데. 그것인가요?"

"아니, 그래보이겠지만 쟤넨 저게 진심이야. 전문용어로 쌩쑈라고 하지."

"쌩쑈……, 재미있어보이네요. 저도 끼어달라해도 될까요?"

"그만둬. 네가 끼어들면 장르가 수라장으로 바뀐다."

"수라장?"

"미아는 현재 옆에 미인이 있으면 질투하거든. 그렇다고 내가 파티에서 빠져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참 곤란한 커플이다."

팔을 다쳤다고 투덜대기는 했지만, 파탈리테는 최악의 배드엔딩을 막아낸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자기 숙원을 반이나 멋대로 훔쳐가버린 이상한 도둑이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 대가로 팔에 칼자국 한둘 남는 것 정도야 우습지도 않을 정도로.

'그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내가 없다고 해도 말이지.'

파탈리테는 그 속내를 숨긴 채 싱긋 웃었다. 설산 위에 쌓인 만년설들이 태양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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