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91화 (91/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그아아악!

산맥의 주인

* * *

'움직여.'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은 언제든 황당하고 불합리한 이유로 가진 모든 것을 잃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

'움직여.'

그 이유는 분명, 세계는 너무도 거대하고 개인은 작고 하찮기 때문이겠지.

'움직이라고!'

그래서 커지기를 원했다. 작고 하찮은 개인이 아니라, 누구도 감히 휘두를 수 없는 거대한 존재, 신보다 높은 이가 되기를 바랬다.

'제발!'

겨우 이런 곳에서 뜻밖의 재앙을 만나 죽을 수는 없다.

현재의 팔이 고밀도로 압착된 암반을 찢어발기며 지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온몸이 지하에 파묻히더라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이나 그는 강해졌다.

"윽!"

그러나 숨을 쉴 수 없다. 지하의 암반에는, 호흡이 가능할 만큼의 충분한 공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현재는 의식이 꺼지기 전에 필사적으로 지하를 파고 올랐다. 그러나, 지표면에는 이미 다중의 마법적 결계가 쳐져있었다. 현재는 지표를 뚫지 못했다. 아무리 힘껏 검을 휘둘러도 결계는 부서지지 않았다.

"제발!"

지면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지면 안되는데, 부족한 힘이 혼에 사무쳤다.

"신이시여!"

현재는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가장 깊은 절망에서 자신을 건져주었던 신에게.

"조금만 더, 저 용을 이길 수 있을 만큼만 더 힘을 빌려줘! 이대로는 내가 빌린 만큼도 다 받지 못하게 생겼잖아! 그러니까, 이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한 번만!"

소중한 공기를 낭비해 소리질렀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라 여겼다. 신의 자비를 구하는 것 이외의 빠져나가는 방법은 생각 나지 않았다.

"불합리한 이자라도 좋으니까, 영원히 갚아나가야 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영원히 신의 노예가 되더라도 미아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 자신보다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절절히 느끼면서 현재는 기도했다.

그리고 여신은 응답을 주었다.

[이미 빌린 능력치도 다 갚지 못했으면서, 무얼 믿고 더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냐? 인간.]

"무슨 수를 써서든! 어떻게 해서든 되돌려줄 테니까!"

[그대는 아직 내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이 몸이 그대를 도울 이유는 특별히 없도다.]

"제발!"

[그대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절박함이 모두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간절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고, 구할 수 없는 건 구할 수 없으며, 이길 수 없는 건 이길 수 없으니.]

"으아아아아아악!"

이것은 정말 신벌인가? 황녀를 억지로 범하고 그 기사를 불구로 만들고, 멀쩡한 여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해 범하고, 그저 국경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던 기사를 쓰러뜨려 죽게 하고.

너무 많은 죄목이 떠올라 현재는 자신이 살아야할 정당한 이유를 신에게 부르짖지 못했다.

"하지만, 미아는 아무 죄도 없단 말이야!"

그러나 미아는 달랐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 싸워왔던 품에 안으면 쏙 들어오는 작은 소녀는, 사람을 베어 죽였다 한들 반드시 자기 방어를 위해서였으니 정당방위였고, 오히려 수많은 괴물을 죽임으로써 죽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을 구했다.

그런 착하고 강인한 소녀가 이런 곳에서 뜻밖의 재앙을 만나 죽는 것 따위,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정말로 불합리한 일이었다.

[쓸 데 없는 소리를.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말미암아 죽는 것은 아니다. 벌을 받아 죽는 사람이 있으면, 무고하게 죽는 사람도 있고, 그냥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알고 있지 않느냐?]

원래 세계는 그랬다. 불치병에 걸려 죽는 모든 이들이 죄인일 리는 없는 것이다. 굶어죽는 이들이 모두 악한일 리도 없고, 살해당하는 사람이 전부 살인범일 리도 없다.

토끼가 죄를 지어 여우에게 잡아먹히는가? 벌레는 큰 죄가 있어 새 부리에 쪼여 죽는단 말인가? 아니다.

세계는 태초부터 계속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죄니 벌이니 억울함이니 정의니 하는 모든 것은, 문명 이후에나 생겨난 만들어진 거짓된 개념이다.

모든 생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그런 것을 따진다.

늑대에게 포착된 사슴은 내가 죽을 위기구나 생각할 뿐, 내가 죄를 지어 벌을 받는구나 체념하거나 혹은 내가 왜 죽어야 해? 그런 식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일 따위 없다.

세계는 본래 그런 곳이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물이 알고 있는 이야기.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질 수 없어! 지면 안돼!"

현재는 온힘을 다해 지표면을 두드리고, 그럼에도 결계는 부숴지지 않았다.

분노한다 해서, 간절하다 해서, 억울하다 해서 강해지는 일 따위는 본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몸 안에 숨겨진 힘 따위 없고, 갑자기 찾아오는 기적은 없고, 그대로 분노하고 간절하고 억울한 채 쓰러지는 것이 본래 올바른 결말이다.

저번이 이상했던 것이다. 한 번의 기적이 대단했던 것이다. 두번이나 일어나길 바라는 건, 양심조차 잃어버린 헛소리다.

"으아아아아아악!"

알면서도 부르짖는다. 기적이 있기를. 기적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현재는 마지막까지 지표면의 결계를 두드리다 쓰러지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

몽롱한 의식, 뇌에 무언가가 침범하는 듯한 감각, 자신의 몸이 어찌 움직이는지도 모르고, 입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 수 없다.

"."

누군가가 무언가의 이름을 불렀다. 아티팩트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그 이름은 복종의 고리. 어떤 생물을 발동시킨 자에게 영구히 복속시키는 지배의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

"윽!"

갑자기 현재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온몸을 흐르는 피의 실감,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흥분, 뜨겁게 달아오른 몸. 현재는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뭐냐!"

그는 당황하며 목을 손으로 훑었다. 복종의 고리가 채워졌다면 분명 거기일 것이기 때문. 그러나 목에서 만져지는 것은 맨살 뿐이었다. 발달한 근육으로 인해 칼도 잘 안 박힐 듯이 부풀어오른 목.

그제서야 현재는 눈 앞을 보고 드래곤의 모습을 확인했다. 검은 머리에 하얀 드레스, 터질듯한 가슴, 넓은 골반에 말이 안 나오는 미인상, 그런 것은 모두 사소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목에 걸린 목걸이. 미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투박한 검은 색의 고리는 마치 족쇄처럼 그녀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설마 나한테 아티팩트를 쓰게 만들었어?"

"정답! 기절하신 사이에 정신지배 마법을 사용해서 아티팩트를 발동하게 만들었답니다."

"미친."

이 모든 것이 환상이고 본체는 이미 저 드래곤의 노예가 되어있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현재의 머리를 채웠다.

"이제 저를 받지 않으실 수는 없어요. 주인님."

싸워 이겼으니 기절한 현재에게 고리를 채우고 강제로 노예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드래곤은 스스로 고리를 차고 노예가 되기로 하였다. 현재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노예 페티쉬가 있나?'

세상에는 수많은 기인이 있는 법, 개중에 노예가 되는 일을 좋아하는 정신병자가 있다고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그 상대가 4천년을 산 드래곤이라니 믿기 힘들 뿐.

"그 목걸이의 효과가 대체 뭔데? 내가 너는 여기 남아있어라. 그렇게 명령하면 꼭 따라야 하는 거 아닌가?"

"맞아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마법사인 저를 두고 가실 리는 없겠죠?"

드래곤은 그리 말하면서 방긋 웃었다.

"가장 유능하고 자시고, 이 세상에 마법사는 너 하나 밖에 없잖아."

신들이 쓰는 힘은 마법이라 부르지 않고,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사라졌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이 세상 유일한 최후의 마법사!"

"너는 정말 내 명령은 뭐든지 다 듣는 건가?"

현재는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며 드래곤에게 물었다.

"맞아요! 이 목걸이가 발동한 순간부터 저는 주인님의 명령에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그럼 자살해라."

휘이익, 콰아아아아앙!

드래곤의 마법이 즉시 발동되며 수많은 불꽃이 그 몸을 뒤덮었다. 얼음송곳들이 그 몸에 적중했고 허공에서 번개마저 떨어졌다.

직격하지 않은 현재조차 여파에 밀려날 정도.

그러나 폭발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직 부족하다는 듯, 계속해서 주변에서 마법적인 공격들이 나타났다. 그 공격이 그치지 않자 현재가 다시금 명령했다.

"그만! 멈춰!"

"너무하세요! 첫번째 명령이 그거라니!"

피부는 커녕 옷조차 찢어지지 않은 채로 멀쩡하게 서서 우는 소리를 하는 드래곤.

"왜 안 죽었냐?"

"아무래도 저의 지금 전력으로는 이 몸을 부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노예가 주인보다 강할 수는 없는 법. 지금 저의 능력치는 주인님 이하로 내려가버린 거지요. 하지만 육체의 강도는 그대로라 저는 저를 파괴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결국 나는 무슨 수를 써도 애초에 저 녀석을 이길 수 없었다는 건가?'

현재는 당황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도가 되었다. 패배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에 감사해야할 기적이었다.

"이제 내 일행들을 재운 마법을 풀어도 되는 거냐? 사람이 너의 곁에 있으면 죽거나 미쳐버린다면서?"

"본래의 저였다면 그렇겠지만, 지금의 약화된 저라면 무서워하는 정도로 끝날 거에요."

"그럼 가자."

미아와 파탈리테가 걱정된 현재는 일단 그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부터 날아가겠습니다."

드래곤이 지팡이에 힘을 불어넣자 두 사람의 몸이 떠올랐다. 그들은 고속으로 날아올랐는데, 상당히 빠른 속도였음에도 아까 나온 동굴까지는 한참 날아야만 했다.

'진짜 무지막지한 높이네.'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그 타워도 500미터대 중반을 조금 넘을 뿐인데, 아까 뛰쳐나온 동굴의 높이는 4천미터 가량을 넘었다. 허공으로 4km를 날아오르는 건 흡사 투명한 비행기를 탄 느낌이었다.

"도착이네요."

동굴 안에 안착한 드래곤은 곧장 조명 마법을 켜 주변을 밝혔다. 그 불빛의 밝기에 현재는 매료되었다.

'이게 마법사지.'

그가 3년간 의존해왔던 횃불이나 기름 램프 따위는 얼마나 칙칙하고 어둡던가. 마법사의 불빛은 동굴을 꼭 형광등 켠 안방처럼 밝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되는 건가?'

속셈을 알 수 없는 드래곤의 행동에 현재는 도저히 덮어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막상 애들 앞에 가면 난동을 부리는 거 아니야?'

이미 한 번 패배했지만 그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싸우다 죽으리라 굳게 결의하며 현재는 동굴을 거슬러 올라갔다.

캠프파이어의 불꽃은 다행히 아직 타오르고 있었고, 두 여자는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곤히 자고 있었다.

"깨워."

현재의 명령에 드래곤이 들고 있는 지팡이 안쪽 구슬이 빛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기지개 켜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깨어났다.

"으흐으암. 잘 잤다."

평소에는 잘 않던 잠꼬대를 하며 일어나는 미아. 파탈리테도 몸을 꾸물거리며 침낭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크흑."

그 모습을 본 현재의 눈가에 자그마한 물방울이 맺혔다. 정말로 패배해서 두 사람을 영영 못보게 된 줄 알았던 현재에게는, 그 아침마다 볼 수 있었던 두 사람이 깨어나는 장면이 마치 기적처럼 아름답고 꿈결처럼 사랑스럽게 보였다.

'다행이다.'

새어나온 눈물을 닦아내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현재 앞으로 미아가 다가왔다.

"현재야, 우리가 잠든 곳이 아니네? 그리고 옆에 계신 여자분은 누구셔?"

"반갑습니다! 주인님의 충실한 노예 벨딜입니다!"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 그 공포감 탓에 미아는 현재의 몸 안쪽으로 스윽 숨어버렸다.

'왜 이렇게 무섭지?'

사람을 보기만 했는데 겁이 난다니 굉장히 생소한 감각이었다. 심지어 벨딜은 흉악한 전사의 모습도 아니고 토끼 하나 못 죽일 것 같은 부드러운 몸매의 미인이었다.

'가슴이 엄청나네.'

특징이라 하면, 한 짝마다 자기 머리통보다 큰 가슴을 달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예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나 말고도 새 노예를 구해오다니 그런 취향?"

새로운 미녀의 등장에 견제하는 미아, 그리고 두려움을 애써 숨긴 채 농담조로 현재를 놀리는 파탈리테.

"이런 곳에 노예 시장이 있겠냐고. 이 녀석은 드래곤이다."

"드래곤?"

"전설의……."

당황하는 미아와 유심히 벨딜의 모습을 살피는 파탈리테.

"드래곤이 실존하는 생물이였어?"

"역시, 가슴을 본 순간 인간이 아니리라 생각했어."

파탈리테는 자신의 완전히 평평한 평원과도 같은 가슴과 머리통보다도 큰 벨딜의 가슴을 비교하면서 그리 말했다.

'인간 같지 않은 크기기는 해.'

현재도 속으로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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