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88화 (88/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두들기다는 두드리다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 표준어입니다.)

산맥의 주인

* * *

"인간들은 아티팩트처럼 강렬한 신의 기운도 느끼지 못하는 거구나."

파탈리테는 당혹스러운 듯 했다. 천재가 바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색맹이 색맹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능 하나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뚜렷한데."

그녀는 현재가 가지고 있던 무구, 거인을 가르는 검과 타워실드의 겉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엘프들만 느낄 수 있는 거지?"

"엘프들이 영원한 신의 저주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들이 주신들 중 하나인 불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인가? 짚이는 이유야 이것저것 있다만, 뭐가 진짜일지는 모르지."

현재의 질문에 대해 파탈리테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가설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현재는 그 궁금증은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그래, 이유가 어떻든 상관 없지. 중요한 건 이것들이 아티팩트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냐는 거야. 알아낼 수 있어?"

"아티팩트의 주인되는 신의 이름을 알아내는 의식이라면 내가 할 줄 안다. 다만, 그에 걸맞는 제물이 있어야만 해."

아티팩트의 힘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그 주인되는 신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유명한 신의 아티팩트라면 알려진 이름들을 불러보는 것으로 시험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잊힌 신들의 이름도 있기에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혹시, 고블린으로 대체할 수 있나?"

"가능하다."

"좋아. 아주 좋은 소식이야."

현재는 노획한 창 뿐 아니라 지니고 있던 검과 방패까지 세 개의 아티팩트가 동시에 새로 생긴 기분이었다. 아주 째지는 기분이란 뜻이었다.

"야호!"

산 정상에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현재는 신이 나서 소리 질렀다.

"일단 어서 산을 넘도록 하자. 추적자가 올 염려는 적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아티팩트를 되찾기 위해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 아티팩트의 소유자를 쓰러뜨리고 빼앗아 온 것이니 더 강하다고 생각되는 전력이 없는 이상 쫓기 껄끄러울 테지만, .만일의 일을 대비하는 건 나쁠 리가 없는 일이었다.

세 사람은 꾸준히 걸어 산맥을 건넜다. 높이가 4천 미터쯤 되는 지점을 지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는 아주 거대하고도 웅장한 산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의 신체능력이 있다면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죽을 일은 없다는 점 정도.

그는 혹시 미아나 파탈리테가 고된 산행에 지쳐 다치지 않을까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도 절벽에서 떨어지면 모를까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 다치지는 않을 정도의 뛰어난 체력과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암벽을 타고 오를 때도 그랬다. 로프 하나와 곡괭이 하나를 들고 바위를 파내며 오르는 것은 흡사 신기와도 같았다.

* * *

산의 중턱, 만년설이 쌓여 있는 곳, 그리고 산맥을 넘을 수 있는 곳 중 가장 낮은 통과점.

세 사람은 불을 피우고 만년설을 녹여 끓인 물과 챙겨온 식재로 스프를 해먹고 있었다. 현재는 캠핑장에서 카레를 만드는 느낌이 들어 조금 들떠버렸다.

"이러니까 꼭 놀러온 것 같네."

"너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이구나."

"그게 현재 장점이지."

파탈리테와 미아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위험한 여행이라고 내내 풀죽어 있으면 너무 분위기 칙칙해지잖아. 어차피 해야할 일이면 어디서든 재미를 찾는 게 좋지 않겠어? 무거운 책임이 등에 있다고 자기 생각도 무거워지면 잘될 일도 망친다니까."

파탈리테를 저격한 말에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너는 그 정도가 심하다. 조금은 긴장해다오."

"아니야. 현재라면 어떤 위기도 잘 넘길 수 있어. 여태까지도 다 잘됐잖아?"

중심을 잡아주려는 파탈리테와 기운을 북돋아주는 미아. 어느쪽도 그를 응원하기에 그러는 것이란 사실을 현재는 잘 알고 있었다.

"현재야. 정말 너 혼자 서도 괜찮아?"

두 사람은 휴식을 필요로 했고 최고의 수단은 잠이었다. 적당히 추웠다면 텐트를 쳤겠지만, 너무 춥기 때문에 불을 피워야 해서 오히려 텐트를 쓸 수 없었다.

지붕은 없지만 자연적으로 바람을 막아줄만한 바위를 찾았으니, 뜨거운 불이 켜져있는 동안엔 적어도 얼어죽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불이 꺼지지 않나 감시하고 가끔씩 장작을 채워줄 불침번은 필요했다. 파티원 중 도드라지게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는 현재는 자신이 자지 않고 교대 없이 내내 불침번을 서겠다고 나섰다.

"나는 꼭 바꿔주고 싶은데."

"내가 싫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푹 자."

"그렇다면야……."

미아는 침낭 안에 들어가서 얼굴만 빼꼼 내민 채 이야기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미아가 눈을 감고, 현재는 파탈리테 쪽을 살폈다. 그녀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넌 왜 안 자냐?"

"알고 있느냐? 어지간한 생물은 접근조차 힘든 이 산맥에는, 드래곤이라 하는 주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갑자기 불길한 소리를."

드래곤이란 건 어느 이야기에서나 대체로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강적이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새하얗기만 한 세계에서 아무와도 만나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엄청나게 외로운 일이겠지."

"그래서?"

"내 곁에는 그대가 있어 다행이란 얘기다."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되는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데."

'혼자라는 건 많이 아픈 일이라는 이야기지.'

지하 창고에서 온몸을 구속당한 채 얼마나 오래 있었던가. 그런 기억을 가진 파탈리테는 만년설이 쌓인 영하의 구역에 들어서자 산맥 근처에 전해지던 드래곤의 전설이 떠올랐다.

지하 창고에 몇 달을 갇혀있던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주 긴 세월을 홀로 보낸 드래곤의 전설.

"주신들의 축복을 받은 종족은, 사실은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다고 한다."

"뜬금 없이 또 무슨 소리야?"

"오크는 힘을, 고블린은 풍요를, 인간은 빛을, 엘프는 기억을 얻기를 빌었다고 하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라, 현재는 얌전히 파탈리테의 옛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드래곤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현재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신의 은총이 없던 때에 어떻게든 은총을 받아보고자 애쓰고 신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닥치는대로 모았던 현재도 모르는 이야기.

'지역이 멀어서 그런가?'

현재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은 채 파탈리테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드래곤은 신들께 빌었다. 힘과 풍요와 빛과 기억을 얻기를.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거 참 성격 더러운 놈이네. 다섯 번째로 다른 녀석들을 도울 힘을 빌었어야지."

신화는 전했다. 축복 받은 네 종족은 서로 화합하기 위해 서로에게 없는 것을 빌었다고. 그러니까, 다섯 번째 종족 또한 그러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나 이 전설에서 드래곤은 그 암묵적인 합의를 어겨버렸다는 거다.

"그래서 신들은 화가 났고, 드래곤이 원했던 그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한다."

"화가 났다면서 모든 걸 다 줬다고? 무슨 이야기가 그래."

"그리고 힘과 풍요와 빛과 기억을 얻은 드래곤은, 다른 종족들에 의해 공포의 대상이 되며, 결코 다시는 함께 섞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네. 교훈은 욕심을 부리지 마라?"

"수천 년을 홀로 살아온 드래곤은 분명 엄청나게 외로울 거다."

힘을 갈망해 추구하고, 그로 인해 강해졌으나 외로워져버린 드래곤의 이야기. 파탈리테에게는 공감할 부분이 많은 이야기라, 어째서인지 같은 처지처럼 느껴져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만한 능력이 있으면 알아서 잘 살겠지. 부족한 게 아니라 넘치는 거라면. 뭐, 노예라도 부리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전설이다."

"뭔 전설이 그래. 대충 지어낸 것 같은데."

"내 곁엔……, 그대가 있어 다행……. 퓨우우……."

파탈리테는 말하다 말고 잠들어버렸다. 현재는 황당했다.

'뭐였던 거지? 스프에 조금 넣은 와인이 잘못이었나?'

재료의 잡내를 좀 없애려고 싸구려 술을 조금 넣었다. 알코올은 끓여 모두 날려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남아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미아보다 더 술에 약하다는 소린데. 예전에 권했던 술을 거절한 건 사실 약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약해서였나?'

현재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서는 불침번, 짧아도 4시간, 길면 6시간 정도는 자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야겠지.

그건 꽤나 심심하고 외로울 일이라, 현재는 파탈리테와 미아의 침낭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외투를 덮고 불을 쬐고 있으니 찬 공기와 불의 따스함이 앞뒤로 다가와서 졸립고 나른해졌다.

'나는 잠들면 안된다.'

사실은 그도 피로했다. 체력도 정신력도 극한까지 깎아먹는 힘든 전투 후,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뛰어서 미아와 파탈리테를 따라잡고 곧장 산에 들어와 등산을 했다.

지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책임져야할 여자들이 있다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미아도 파탈리테도 굉장한 미인이니까,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시간이 잘 갔다. 지킬 보람이 있었다. 현재는 가끔씩 장작을 보충하면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지만, 깨우면 안되겠지.'

대신 그는 가죽부대에 만년설을 퍼와 끓였다. 추운 곳에서 따뜻한 물을 마셔 몸을 데우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 중독성이 있었다.

찻잎도 없는 맹물이지만 만년설이라 하니 왠지 더 특별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떼워보아도 홀로 불침번을 서야하는 시간은 길었다. 현재는 아까 들은 드래곤의 전설에 대해 생각했다.

'드래곤이라. 다른 세계니까 분명 있을 법한 이야기야.'

지구의 사람들에게 있어 엘프도 오크도 고블린도 익숙한 이름이지만, 드래곤보다 더 익숙한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엘프와 오크와 고블린이 아무리 익숙할 정도로 등장하는 게임이나 소설의 단골 소재라고 해도, 드래곤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드래곤은 그야말로 세계의 모든 신화에 다 나오는 존재였으니까. 억지로 드래곤 아닌 것 같은 것들도 드래곤이라 묶어 부르는 느낌도 좀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드래곤이 신화에 출현하는 빈도는 매우 높았다.

'이야기대로 겁나 세서 나보다 더 강하면 어쩌지?'

파탈리테가 들려준 전설 때문에 현재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인간계 최강자로 추측되는 엘리는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었지만, 드래곤도 그 수준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들은 전설대로라면,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모양인데.

'대체 갑자기 왜 그런 전설을 이야기한 거냐?'

현재는 파탈리테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미아처럼 침낭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채 눈을 감고 잘 자고 있었다.

'뭐 산에 온 김에 떠올랐을 수도 있지.'

현재는 고민을 지우기로 했다.

'그런데 만년설도 결국 물 아닌가? 근처에 만년설이 쫙 깔렸는데 녀석은 괜찮은 건가?'

현재는 파탈리테를 살폈으나 그녀는 괴로운 기색 없이 곤히 자고 있었다.

'얼음은 괜찮은가? 얼음이 물이고 물이 얼음인데, 얼음은 괜찮은 건가.'

현재는 역시 신들의 기준이란 알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투명한 얼음 결정체 하나가 파탈리테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눈!"

눈이었다. 눈이 내리는 곳에서 자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리라. 지붕이 되어줄 구조물이 전혀 없는 곳이라면 더욱이. 현재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깨우기로 했다.

"일어나."

툭, 툭. 그러나 파탈리테도 미아도 아무리 건드려도 깨어나지 않았다. 현재는 억지로 눈을 벌려봤으나 분명히 자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결코 깨어났으면서 자는 체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야, 미아? 파탈리테? 일어나라니까? 눈 온다고?"

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상황. 갑자기 캠프파이어의 불꽃도 꺼져버렸다.

"뭐야? 왜 이래?"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에, 현재는 일단 두 여자를 한 팔에 하나씩 끌어안았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짐은 어떻게 챙기지?'

아무리 배낭이 메기 좋은 형태라 해도 양팔을 못 쓰는 상태에선 하나를 짊어지는 게 한계였다. 가져가야할 배낭은 세 개. 세 사람의 몫이라 세 개였다.

'아니, 두 개는 포기한다. 중요한 건 배낭 따위가 아니야. 생존 물자를 잃어버리는 건 입이 쓰지만, 이 녀석들의 안전이 훨씬 우선이니까.'

현재는 자신의 배낭만 챙기고 양 팔에 여자들을 끼운 채 산 위를 걷기 시작했다.

'살려야만 한다.'

잃어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된 두 사람이라, 현재는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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