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 위의 흡혈귀
* * *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터질 지뢰였다. 미아가 사랑을 고백하던 날, 나만 봐달라는 그녀의 말에 다른 여자를 안아야 하는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그냥 얼렁뚱땅 갑을 관계로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전에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네가 더 사랑하니까 그냥 참고 넘기라는 잔인하기까지 한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지 않을 리가 없다.
미아는 계속,
'다른 여자는 보지 않으면 좋겠는데, 내가 매력이 부족한 걸까?'
아파하고,
'그렇지만, 나한테 그러지 말고 나만 보라 할 자격이 있을까? 현재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죄인 주제에.'
자학하고,
'정말 끔찍하고 이기적이네 나. 역겨울 정도야.'
자조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사랑하는 만큼 사랑 받고 싶다.'
그럼에도 사랑을 갈구했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순환하는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속부터 썩어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겨우 그저께에 자신과 했던 약속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을 보고 자존감이 산산조각 나서 마음이 망가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네, 나 같은 걸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네.'
여기까지가 마음이 깨지게 된 계기였다.
와락!
현재는 일단 미아를 꼭 끌어안고서 최대한 두뇌를 회전시켰다. 지금 여기서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결과는 하나 뿐이다.
미아의 마음을 영영 잃든지, 아니면 미아 밖에 못 보는 금욕 생활을 하게 되어야 하든지. 어느 쪽도 고를 수 없는 지뢰밭이었다.
이쪽 세계의 평민들 사이에서 일부일처제는 매우 보편적이었다. 그야, 여러 여자와 자식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자는 드물기 때문이었다. 귀족이나 대부호, 황족 등은 일부다처제를 하기도 했으나 그런 삶은 평민들 사이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
미아는 그 강함과 달리 꿈은 꽤나 소박해서 도시에 섞여들어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그녀가 그렸던 미래의 청사진에 여러 아내에 둘러싸인 남편을 두고 총애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그림은 없었다.
대궐 같은 저택이나 수많은 하인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고, 작지만 예쁜 집에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있으면 그게 최고이리라고, 그렇게 쭉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사상 최대의 설득을 시작한다.'
머리를 다 굴린 현재는 미아에게 하렘의 필요성을 어필하기 위한 설득의 준비를 마쳤다. 그는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미아, 지금도 전에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 뿐이야."
이건 거짓이 아니었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들 중 사라졌을 때 허전하고 가슴 아플 사람은 미아 밖에 없었다. 이것을 사랑 이외의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세계보다도 네가 더 중요하다고 우리 분수대 앞에서 이야기했었잖아."
바로 어제의 기억이다. 두 연인은 그렇게나 알콩달콩한 사랑의 맹세를 나눴는데, 겨우 하루 지나 이런 상황이 된 건 말이 안됐다.
"그러면 왜 자꾸 다른 여자를 원하는 거야? 역시 나로는 부족한 거 아니야?"
자꾸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리는데 그 맹세의 신빙성이 뚝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아는 심지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전에도, 현재가 다른 남자의 성기를 애무하라 시켰을 때 절대 싫다며 완강히 거부했을 정도니까. 그녀의 생각에 정절 만큼 확실하게 사랑을 증명해주는 증표는 없으리라 여겨졌다.
"그건 내가 미아를 너무 아끼기 때문이야. 알잖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멋대로 해버리면 미아 몸이 못 버티는걸. 그러니까 미아가 다치지 않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욕을 배출해줘야 하는 거야."
확실히, 몇날며칠을 가는 긴 정사가 벌어지면 먼저 완전히 방전되는 것은 미아였다. 그때부터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의식도 깨어있는지 기절한 건지 혼미한 상태로, 살아는 있는 건지 시체가 되어버린 건지마저 헷갈리게 되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미아는 그래도 불안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현재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계속해서 머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미아, 내가 살던 세계에서 일부다처제는 아주 당연한 거였어."
거짓말은 아니다. 저어기 이슬람 국가 어딘가에 가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은 법으로 정해진 일부일처제지만.
"내가 아직도 그쪽 세계의 사고방식으로 너한테 상처를 준 건 정말 미안해."
현재는 필사의 설득을 시작했다. 아무튼 치트키인 '내 세계에선 그랬음'을 꺼내들기까지 수백 가지 생각의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컷은 최대한 많은 암컷에게 씨를 뿌리고 싶어 하게 설계되어 있고, 우리 세계에선 그 본능을 매우 훌륭한 것으로 보고 존중해줬어. 아이를 책임질 능력만 있다면 말이야."
개구라다. 그딴 문화는 한국에는 없었다. 부모님 세대에서야 알음알음 능력 있으면 첩을 둬도 되지 않느냐 넘어가줬다지만, 지금 세대에서 그랬다간 당장 뺨따귀를 맞고 이혼 서류를 받은 뒤 막대한 위자료를 물어주기 마련이었다. 양쪽 여자 모두에게 양육비를 보내는 노예 신세가 되는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매우 뻔뻔스레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여자는 일 년에 하나의 아이 밖에 낳지 못하잖아. 그에 비해 수컷은, 안은 여자의 수 만큼 동시에 씨앗을 뿌릴 수 있고."
이 세계의 인간 여성도 지구의 여성과 같이 임신 10달을 꽉꽉 채워야 출산을 할 수 있었다. 쌍둥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은, 1년에 하나의 아이 밖에 낳을 수 없다.
"그래선 곤란해. 나도 수컷인 이상 살아가는 동안 최대한 많은 자식을 보고 싶어. 그도 그럴 게, 내 자식은 이 세계에 아무런 연고도 혈족도 없는 완전한 이방인이잖아? 그러니까 내 자식끼리라도 서로 도울 수 있게 되도록 많이 낳아 키우고 싶어."
그것은 미아의 약한 부분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친척도 가족도 없는 천애고아 출신의 그녀는, 시끌벅적한 가족이란 관계에 대해 상당한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의지할 구석 없는 이방인만 보면 도와주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도 모두 그때의 흔적이었다.
십 년이 넘게 지나도, 가슴 안에 너무나 깊숙히 새겨진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 세계로 뚝 떨어져 기댈 곳 없는 현재와 조금 이상한 인연을 맺게 된 것 또한 모두 그런 과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상상해봐. 내 자식이 수십 명 쯤 있어서, 엄청 시끌벅적하게 뛰놀고 공부하고, 가끔은 싸우고, 그래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거야. 어때? 조금 괜찮은 거 같지 않아?"
"현재의 아이가 잔뜩……?"
그건 미아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현재와 미아 자신 사이에서 낳은 두 사람의 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역시 인간 여자는 일 년에 하나의 아이 밖에 낳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피는 섞이지 않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피가 반이나 섞인 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지구의 한국에서라면, 남의 배에서 나온 남편의 자식 따위 파국의 효시가 되기 쉽상이었지만, 미아는 그런 아이조차 사랑스러울 거라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현재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와서 많이 이상한 나지만, 이런 나라도 사랑해줄 수는 없겠어?"
현재는 자신의 사상-사실은 그렇게까지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심-을 강요하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말을 섞어서 미아의 이해와 사랑을 구하는 척 자신을 낮추는 듯 들리게 했다.
"……무서운 거야, 나는. 현재가 나보다 예쁘고 좋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가서,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면 어떡해?"
미아는 드디어 진짜 마음 속의 불안을 꺼내놓고 드러내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까봐 불안하다는 마음. 그것은 몇 번이고 지워보려 해도 미아의 마음에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한때 현재를 학대했던 죄인이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이라는 여자친구를 두고서도 현재가 자꾸 다른 여자를 탐하고 있었으니.
애널을 허락하면서 다른 여자 엉덩이를 만지지 말라고 금지했던 건, 그런 사소한 부분이라도 다른 여자들보다는 자신에게서 찾기를 바라는 작은 보험 같은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너 밖에 없어. 다른 여자랑 섹스하는 도중에도 그건 절대로 안 바뀌어. 걔네들은 그냥 아이를 낳아주면 되는 모체일 뿐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미아 하나 뿐이야."
"정말로?"
"그래. 진짜야."
"앞으로도, 계속 내가 첫번째일 거라고 약속해줄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애초에 3년 넘게 쌓인 인연이라, 이제는 여자친구를 넘어 꼭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질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몸을 섞게 된 것은 이제 한 달 남짓 됐을 뿐이라 아직도 잔뜩 새로운 느낌이다.
가족이란 것은 그런 얘기였다. 그녀가 없어지면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플 것이라는 것.
"미아, 우리 세계에서는 처첩 제도라는 게 있었거든? 처는 하나 뿐인 정실 부인을 얘기하는 거고, 첩은 여럿 있는 씨받이를 얘기하는 거야. 내가 몇 명의 여자에게 아이를 배게 하든, 내가 진짜로 사랑하는 건 너 뿐이야. 유일한 정실 부인이라는 거지."
"내가, 정실?"
"그래. 절대로 다른 여자를 너보다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 네가 나의 첫번째고, 가장 소중한 부인이야."
뭔가 잔뜩 이상한 얘기였지만, 미아는 다른 세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나? 하면서 설득당했다. 그 내용의 반절 이상이 거짓말로 채워져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어차피 지구에 갈 일도 없을 텐데 좀 꾸며내는 게 무슨 상관이야.'
현재는 아랫도리의 안녕을 위해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정말 그래도 될까? 현재한테 씻을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내가, 그렇게 사랑 받아도 될까?"
불안해 떠는 미아의 입을 현재는 키스로 막아버렸다. 혀와 혀가 섞이며 서로의 체온을 나눈 뒤에 떨어진 현재는 미아가 더는 우울해하지 못하게 단호히 말했다.
"옛날의 화났던 일 억울했던 일 따위 진작 잊어버린지 오래라니까? 미아가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저번에 벌써 말했었잖아? 똑같은 얘기 계속 다시 하게 하지 마. 또 그때 얘기를 꺼내면 말하지 못하게 입을 확 막아버릴 거다?"
"그럼, 현재랑 키스하고 싶으면 또 그때 얘기를 하면 되겠네? 있잖아, 2년 전에."
미아의 장난스런 도발에 현재는 다시금 그 입을 틀어막았다. 이번의 키스는 조금 더 열정적이고, 조금 더 길었다. 키스가 끝나고 떨어진 현재는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사랑해. 미아."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은 밀착한 채로 서로를 쪽쪽 물고 빨면서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몸을 섞기 시작했다. 미아는, 너무 절정해서 몸에 힘이 다한 뒤에도 어디다 숨겨둔 힘을 끌어 온 건지 계속해서 현재를 붙들었고, 현재는 이미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미아의 자궁에 다섯 번이나 사정할 때까지 풀려나지 못했다.
'죽겠다.'
파탈리테의 흡정으로 생명력을 상당히 빨린 현재, 그 상태로 미아의 입에 한 발 케이트의 장에 한 발 쌌고, 이후 미아의 다리에 허리를 꼭 붙잡힌 채로 자궁에 다섯 번을 쌀 때까지 풀려나지 못했더니 상태창을 얻은 이후 최초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의 피로가 몸 안에 쌓였다.
미아는 눈이 풀릴 정도로 연속 절정한 뒤에도 현재를 놓아주기 싫었는지, 아직도 옆구리에 찰싹 붙어 몸을 끌어안은 채로 현재의 가슴팍을 할짝이면서 머리를 또 부비적대고 있었다.
'진짜 강아지 같네.'
현재는 다 떨어져가는 체력으로 인한 기분 좋은 노곤함을 느끼며 미아의 핑크빛 단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눈 앞에 이상한 메세지가 떠올랐다.
[ 한 달 경과. ]
[ 이자 징수일 ]
[ 근력 10 포인트, 체력 10 포인트, 솜씨 10 포인트, 민첩 10 포인트, 마력 10 포인트를 징수해가겠음. ]
[ -약오름의 신 백- ]
"쒯."
어느새 한 달이 지나 현재의 모든 능력치는 10이 감소하고 말았다.
'2주 뒤 정도면 엠브리오 시에 도착하겠지. 거기서부터 제국령 경계까지 다시 며칠…….'
어기적거리다간 모든 능력치 10을 더 잃은 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마냥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초조해한다고 배가 더 빨리 가는 건 아니잖아?'
천천히 가기에 얻는 것도 있다. 빨리 가는 것에 온 신경을 다 쏟았다면 파탈리테와 만날 수 있었을까?
비록 파탈리테와 만난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고 해도, 현재는 그녀를 동료로 삼은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티팩트에 대해서 나보다도 미아보다도 훨씬 더 잘 아는 녀석이니,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미아는 어느 정도 강하기는 하지만, 제국 변방에 살았던 탓에 마법적 지식은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파탈리테는 신을 죽인 엘프의 후예. 큰 일을 벌이려고 보면 도움될 일이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예쁘고, 잘 느끼고.'
도움이 되는 게 1할 정도 된다면, 예쁘다는 이유는 9할 쯤 되겠지. 애초에 파티에 넣은 것은 엘프 소녀가 마치 여신 같이 아름다워서였으니까.
현재는 대충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누운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미녀들 사이에서 잠드는 것이니, 분명 좋은 꿈을 꾸리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