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덮밥 재료가 서로 비벼지는 건 NTR이 아니라던데....
물 위의 흡혈귀
* * *
어쩌다보니 현재는 황궁까지 도착했고, 거기서 병영 무기고를 급습해 제대로 된 칼을 찾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가 황궁까지 와버렸냐?'
분명 현재는 도중에 방향을 틀어 도시 바깥으로 나가려 했으나, 배가 언제 출발할지 확신이 없다 보니 최대한 오래 엘리를 붙잡아둬야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정말 황궁 안에 쳐들어오고 말았다.
'이거 진짜 도망 갈 수 있기는 한가?'
미아를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현재는 그리 생각하며 무기고 안의 검을 털어 두 검을 서로 부딪혀보며 강도를 시험했다.
챙강!
마치 엿가락 두 개를 부딪힌 듯 쉽게 부서져버리는 검들. 현재가 부순 검의 갯수가 벌써 서른 자루를 넘었다. 아무래도 엘리의 검에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좋은 무기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어어!"
병영의 일부 병사들은 도망쳤고, 일부 병사들은 덤벼들었다. 현재는 가볍게 덤벼드는 이들을 물리치고 다음 무기를 시험하러 떠났다.
"그만! 너희들은 물러나라! 너희가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다!"
엘리의 경고에 덤벼드는 병사들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제대로 된 무기를 찾지 못한 현재는 매우 불만스러운 상태였다.
'아티팩트를 모아둔 보물고가 따로 있으려나?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그것까지 찾아 털어볼까?'
"단장님!"
"지금 내가 쫓는 자는 특급 수배자 이상으로 강한 괴물이다. 모두, 가장 어려웠던 전투보다 더 어려울 걸 각오해라."
적의 홈그라운드로 뛰어든 덕분인지, 엘리의 부하인 기사단이 나타나 합류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이제 슬슬 정말로 발을 뺴지 않으면 위험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도 되려나?'
현재는 아티팩트 혼돈신의 뒤틀린 발걸음을 꺼내들고 자신을 향해 던지며 그 신의 이름을 외쳤다.
"카사아리!"
하지만 자신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인지, 기이한 빛을 뿜어내던 아티팩트는 현재의 가슴팍에 부딪히더니 그 빛을 잃어버렸다.
'플랜 A는 망했구만. 그렇다면 플랜 B로 간다.'
현재는 아티팩트를 다시 챙기고 무기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덮쳐드는 엘리의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한 다음, 새로 합류한 기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합을 맞춰라! 혼자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무려 세 명의 기사단원이 힘을 합친 연계공격. 현재는 이대로는 칼이 박혀 고슴도치 꼴이 될 거라는 것을 깨닫고 땅을 차며 공중으로 도약했다.
"지금이다! 공중에선 방향전환이 쉽지 않다!"
현재가 아까 했던 생각을 똑같이 했는지 엘리의 지시가 있었고, 기사단 중 일부가 활을 꺼내 쐈다. 기사는 단순히 칼 잘 쓰는 인간들이 아니라 온갖 무기의 달인인 살인 병기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황실 1기사단이라 하면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살인병기의 모임이었다.
"프로펠러!"
현재는 무기고에서 훔쳐온 할버드를 빙빙 돌려서 화살을 튕겨냈다.
'씨발 이게 되네.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나 너무 빨리 돌렸는지, 할버드의 창대가 버티지 못하고 도중에 부러졌다. 현재는 바닥으로 떨어지자마자 곧장 쏘아진 포탄처럼 돌격해 홀로 떨어져 있는 기사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검을 빼앗아 덮쳐드는 엘리의 검을 쳐내려 했다.
챙!
몇번째일지 모르는 칼 부러지는 소리. 현재는 왠지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씨발년아 부하도 좋은 칼 좀 주라고!"
"그건 충분히 좋은 검이다! 부러뜨렸으면 네가 잘 못 다룬 거겠지!"
상대를 도발해 평정을 잃게하는 것도 전술의 일부. 엘리는 제 검이 엄청난 명검이란 사실은 숨긴 채 현재를 비난했다.
"어쩔 수 없군! 비장의 아티팩트를 쓰는 수 밖에!"
현재는 그리 말하며 제 목에 걸려있던 클록을 뜯어내 하늘로 쳐들었다.
'역시 아티팩트가 있었구나!'
엘리는 현재가 절대 순수한 힘으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가 가진 강력한 아티팩트가 해방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하자드!"
현재가 소리지르자 엘리와 기사단원들은 경계했다.
'하자드가 대체 무슨 신이지? 잊힌 신인가?'
그리고 현재는 클록을 엘리 쪽으로 던졌다.
'일단 피해야 한다!'
아티팩트의 효과가 뭔지 모르는 이상 범위가 얼마나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엘리는 크게 도약하며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고, 그 사이 현재는 황궁 바깥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그제서야 엘리는 현재가 던진 클록이 아티팩트가 아님을 눈치 챘다. 너무 경계한 나머지 페이크에 당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쫓아라!"
다 같이 현재를 쫓기 시작했지만 엘리 외에 현재의 등이라도 보며 쫓아갈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엘리조차 지구력 부분이 부족해 현재를 잡지 못했다.
'이 만큼 시간을 끌었으면 됐겠지?'
여태까지는 전력을 다하지 않던 현재가 온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황궁도 별 거 아니구만?'
긴장했던 것에 비해 대단한 강자는 없었다고 생각하며 현재는 황궁을 벗어났다. 당장 운하 쪽으로 뛰어가면 꼬리에 추적자를 잔뜩 달고 가는 꼴이니, 상당히 크게 돌아 나중에 배에 합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크게 도는 이상, 쉴 시간 따위는 없겠구나. 혹시라도 엇갈리면 큰일이니 말이지.'
현재는 꽤나 긴 마라톤이 되리라 각오하며 열심히 발을 놀렸다.
"젠장! 정말 믿을 수가 없어!"
한 편 결국 현재의 등조차 놓쳐버린 엘리는 땅을 치며 가쁜 숨을 정돈했다. 달리는데 힘을 너무 많이 써 기진맥진했다간 기습에 죽을 수도 있는 탓에,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남기고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온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누가 파탈리테를 빼돌렸고, 저 남자는 누구고, 그 엘프로 뭘 하려는 거지? 끔찍한 재앙이 재림한다면, 막지 못한 나의 책임이 크다.'
그녀는 분해 눈물이 날 것 같은 정도였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우는 것은 포기한 자나 하는 행동이고, 그녀는 남들이 눈물 흘리지 않게 막아야 할 입장이었으니.
그녀는 잽싼 발걸음으로 황궁을 향해 귀환하기 시작했다.
* * *
'내가 대체 뭘 한 거지?'
그날 밤 자괴감에 휩싸인 것은 엘리 뿐만이 아니었다. 상선에 탄 채 운하 위를 유람하고 있는 미아 또한 상당한 자괴감에 휩싸여 있었다.
'애, 애액을 먹인 것까지야 필요했다고 쳐도, 그 다음에 리테와 몸을 섞을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케이트와 레즈비언 플레이를 하도록 현재가 강요했을 때에는 억지로 합을 맞췄을 뿐 정신적 흥분 따위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쩌다가 파탈리테를 덮쳐버리게 된 것인지 그 마땅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너무 야해져 버린 건가? 현재한테 물들어 버린 거야?'
하지만, 몸이 쾌락에 절어버렸다 해서 여자에게도 흥분을 느끼게 됐다는 건 뭔가? 어딘지 앞뒤가 안 맞는 듯 하여 미아는 계속 고민할 뿐이었다.
'이 몸에 박힌 저주로 또 살아남았구나.'
미아의 생기를 빨아 훨씬 괜찮아진 파탈리테는 생각했다.
'또 몹쓸 짓을 하고 말았어.'
파탈리테의 몸에 이식된 흡혈신의 아티팩트 '칼라미르의 독니'는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해 제 것으로 만드는 능력 뿐 아니라 이미 생명력을 흡수한 상대가 더 기꺼이 제 생명을 바치도록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마저 있었다.
즉, 몸을 바치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인간 따위한테 미안해 했다고?'
파탈리테는 인정하기 싫었다. 그녀는 신의 은총이 닿은 모든 생물을 증오할지언데, 신의 은총을 받은 인간인 미아에게 미안함 따위를 느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왜 마저 빨아먹지 않았어?'
환자라는 핑계로 빨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의 생명력을 빨았다면? 어쩌면 미아를 집어삼키고 그 힘을 온전히 빼앗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냐. 파탈리테. 너는.'
그녀의 핏빛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피비린내를 흘리는 듯 했다. 아니, 아까 피눈물을 흘렸으니 실제로 피비린내가 나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엘프 모두의 비원을 이 몸에 다 담고 있을 터인데.'
몸이 아파질 때면 그 비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해버리지만, 역시 정신이 들고 나면 그 비원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 비원은 파탈리테를 옭아매는 또 하나의 저주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 인간 몇이 죽든 아무 상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은총을 지닌 운 좋은 녀석들이니까, 태어날 때부터 저주 받아 괴로운 엘프들이 조금 죽여버린다고, 누구의 비난을 받은 일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저런 바보는 당해도 싸.'
몸을 씻으며 왜 자기가 파탈리테를 덮쳐버렸는지 아직도 고민하는 미아의 모습은, 파탈리테에게는 너무 멍청해서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미아, 너는 너무 아무나 막 믿는 경향이 있어."
그래서였을 거다. 그냥 두면 금방 죽어버릴 것 같은 불쌍한 생물에게, 많은 수라장을 헤쳐온 경험자로서 파탈리테가 조언한 것은.
"자기 검술 실력을 믿는 건 알겠는데,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단 말이야. 아티팩트라는 마법 같은 힘도 있고."
엘프 소녀의 조언에 몸을 씻던 미아는 하하하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왜 웃어?"
"내가 누굴 막 믿는다는 소리를 듣게 된 게 신기해서."
언젠가 제대로 당했던 배신은 미아를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만들었었다. 그때 그녀는 맹세했다. 절대로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그 맹세는 정말 오래도록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린 탓에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너를 믿은 적 없어. 현재를 믿은 거지."
"그 남자의 어디를? 방금도, 내가 약간만 다르게 생각했다면 너는 몸의 생기를 다 빨려서 죽어버렸을 거야. 알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래. 세상은 결과다. 아무리 많은 만약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은 일엔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미아가 현재를 믿은 것은 결과적으로 아무 잘못도 일으키지 않았다.
"아니야. 나는 분명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어. 너를 잡아먹고, 이 배를 다 집어삼키면, 어느 정도 힘도 회복될 테니, 거기서부터, 다시, 다시 힘을 모으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또 싸움이 시작되겠지. 계속, 영원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신의 저주를 끝내기 위해서는, 신보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에 현재가 터무니 없는 소리를 했을 때, 파탈리테는 약간 가슴이 뛰었다.
신의 변덕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가 되겠다고, 현재가 그렇게 이야기 했을 때.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인간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은총을 가진 인간 주제에 어떻게 나를 이해한다는 거야. 역겨워. 건방져. 짜증나. 왜 다 가진 녀석이 못 가진 나처럼 신을 미워하는 척 하냐고. 콱, 저주나 받아서 죽어버려라.'
파탈리테는 현재가 싫었다. 그가 처음부터 신의 은총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 어림짐작했기에. 아니, 어림짐작이라는 표현은 실례겠지.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은 불의 신의 은총을 타고 나며 물의 신의 저주 따위는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짐승 귀와 꼬리가 없는 현재가 신의 은총을 받고 태어났으리라는 파탈리테의 추측은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었으며, 다른 세계에서 날아와 한참동안 은총 없이 굴러다녔던 예외의 인간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지 않은 현재가 그 착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파탈리테는 현재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런 변태 거인이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파탈리테는 자신이 그리 생각한 근거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근거 따위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너무 오랜 싸움에 지쳤기에 누구라도 구원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면서, 모든 걸 포기했는데 포기하지 않은 척 자신조차 속이고 있었던 것은?
'엘리에게 패배하고 붙잡힌 시점에서 나는 죽었어야 했다. 괜히 빼돌려져 살아나버린 이 운명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그녀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 어디로 가야할지는 커녕 지금 자신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일단 쉬고 싶어.'
미아에게서 생명력을 빨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물 위다. 저주로 인해 깊은 피로감을 느낀 파탈리테는 그저 눈을 감고 잠들기로 했다. 그리해도 배는 흘러가리라.
배 위에 올라탄 이상 제 발로 걷지 않더라도 어딘가에는 도착하기 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