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67화 (67/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물 위의 흡혈귀

* * *

미아는 현재를 믿었다. 그렇기에 뒤에서 폭발음이 나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든 신경 쓰지 않고 뛰었다.

배는 마침 떠날 준비를 마치기 직전이었고, 미아는 케이트에게 곧장 출발하라는 현재의 말을 전했다.

"어떻게든 따라온다니까, 믿고 출발시켜요!"

그리 전한 후 몸을 숨기기 위해 현재에게 배정된 선실에 들어온 미아는 그제서야 파탈리테를 향해 물었다.

"리테, 너 어째서 쫓기고 있는 거야?"

"엘프니까. 신에게 저주 받은 종족을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은 결코 적지 않다."

파탈리테는 미아도 현재도 모두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다. 신의 저주를 받은 종족인 엘프를 불길하게 여기지 않는 인간이란 명백한 비주류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만 존재하는 인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이상하다.

"정말 그게 다야?"

"본래, 서로 죽이는 것에 그보다 복잡한 이유 따윈 필요하지 않다. 너도 알지 않는가?"

"그게 다라면 조금 슬픈 얘기네."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미아는 파탈리테를 동정했다. 파탈리테는 살짝 양심이 찔렸으나, 현재가 살아서 합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불필요한 말은 더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 경우, 나약한 엘프 소녀를 연기할 수 있을 테니.

'그 남자가 돌아오지 못하는 게 내게 큰 이득이 되는 일이야.'

파탈리테는 그리 생각한 순간 몸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읍!"

"배멀미해?"

배는 아직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창백하게 질려가는 파탈리테의 얼굴, 구토감을 호소하는 그녀는 마치 배멀미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멀미 따위가 아니야. 저주. 엘프의 몸에 흐르는 피에 각인되어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깊은 저주야."

연기가 아니었다. 균형 감각을 온전히 상실한 파탈리테는 그대로 엎어져버렸다. 미아가 받아내주지 않았다면 선실 바닥에 머리를 쳐박았겠지.

"엘프는, 절대로 물 위에서 살아갈 수 없어."

물의 기운은 엘프를 좀먹는다. 약한 엘프일 수록 그 기운에 취약하고, 지금 파탈리테는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 물 위에 떠있다는 것은, 사실은 자살 행위와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황도를 빠져나갈 방법은 이것 뿐이야.'

협력자도 없이 약해진 상태로 성문을 넘을 방법은 없다. 소란이 일어나면 엘리가 움직여 이번에는 확실히 파탈리테의 목을 치겠지.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운하. 엘프는 절대 물 위를 지날 수 없다는 편견을 역으로 이용한다. 그것만이 황도를 탈출할 유일한 방법. 그렇기에 파탈리테는 이 배에서 내리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고 있었다.

"저주 때문에 몸이 안 좋아진 거야?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몰라. 하지만 배에서 내리느니 여기에서 죽는 게 나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파탈리테는 말이 극히 적고, 묻는 말에도 제대로 대답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 추궁하기에는, 지금 파탈리테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아보였다.

'배에 탄지 십 분도 안 됐는데 이 모양이면 어떻게 십오 일이나 배 위에서 버티겠다는 거지?'

일단 미아는 파탈리테를 침대에 눕혔다. 상태를 보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그때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현재, 무사하겠지?'

그 강한 현재가 어떻게 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떨어져 있는 지금 상황이 불안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미아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아무 일 없이 돌아올 수 있기를.'

* * *

'불길한 예감의 정체는 이 자때문이었나?'

엘리가 하필 그때 그곳을 순찰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죽인 인간의 숫자를 알 수 있는 아티팩트 '심판자의 눈'은 미약하나마 예지 능력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이 거리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분명 그녀의 손으로 쓰러뜨려 처형장으로 보냈던 괴물이 어찌하여 풀려난 채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황궁 내에 이 일을 꾸민 이나 협력자가 있었겠지.'

목적도 몰라, 수단도 몰라, 엘리가 아는 것은 누군가가 13만의 인간을 학살한 괴물을 빼돌렸다는 것 뿐.

'더러운 황궁의 암덩어리 놈들.'

어떻게든 색출해 그 죄를 물어야 하리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눈 앞의 적을 해치우거나 따돌리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이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왔지?'

제국 1기사단 단장 엘리는 파탈리테를 감싸며 등장한 현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만한 강자가 대체 어디 숨어있었길래 그 이야기 한 번 들어보지 못했을까.

제국의 강자들은 물론이고 오크의 강자들까지 폭 넓게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녀였기에 갑자기 등장한 알려지지 않은 강자의 존재는 매우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맨손으로 이미 나와 대등해. 저 손에 제대로 된 검이 들려있었다면 어땠을지. 지금쯤 벌써 내 목이 바닥을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있잖아. 내 레벨은 119거든."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현재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너는 레벨이 몇이야?"

"웃기는 소리."

당황시켜 빈틈을 만들기 위한 심리전이리라. 엘리는 그렇게 판단했다.

1기사단 단장 엘리의 레벨은 85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레벨이 높아질 수록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것은 어려웠다. 제국 최강의 기사인 엘리보다 강한 인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역사에조차 레벨 100을 넘는 인간의 존재는 기록된 적이 없었다.

'설마 진실은 아니겠지?'

일단 레벨 자체는 85지만, 황실의 진귀한 아티팩트들을 몸에 두르고 능력치의 보조를 받고 있는 엘리다.

1기사단장인 그녀에게는 제국 곳곳에서 구해온 가장 뛰어난 아티팩트들이 제공되어서, 이미 가장 강한 상태에서 가장 귀한 아티팩트들의 힘을 받고 더욱 강한 존재로 거듭난 것이었다.

그런 엘리를 맨손으로 대적할 수 있다면, 정말 눈 앞의 사내가 그 어떤 아티팩트의 보조도 없이 맨손으로 대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레벨 100이 넘는 인간이라고 해도 말이 되지 않을까?

'아니, 분명 아티팩트를 숨기고 그 힘에 도움을 받고 있는 거다.'

엘리는 역사서에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강자의 출현이라 생각하는 대신, 눈 앞의 사내가 거짓을 늘어놓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깐 떠보려 했는데 안 알려주네.'

그러는 현재의 실제 레벨은 19에 불과했지만, 정확히 100 레벨에 달하는 능력치를 신에게서 빌려온 상태였다.

'이런 낮은 레벨에서 멈춰둔 것이 아쉽다.'

효율적인 레벨 업을 위해 싸움이 끊이지 않는 땅으로 가고 있지만, 대충 10 레벨 정도만 더 높았어도 눈 앞의 기사를 쉽게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현재에게 남았다.

'아니, 없는 걸 바래봤자 의미 없는 짓이야.'

그는 저주 받은 대지로 가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고, 그 판단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대처해 극복하는 수 밖에 없다.

'무기, 제대로 된 무기는 정말 하나도 없는 거냐?'

현재는 엘리를 쓰러뜨릴 수 있는 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서로 비무장 상태가 되는 건 어떨까? 그녀가 기사라는 점에서 인질을 잡고 무장을 해제하라는 협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십만 단위의 목숨을 논하던 도중에 인간 하나둘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리란 판단이 섰다.

'어설픈 여자가 절대 아니야.'

불꽃 같이 일렁이는 엘리의 푸른 눈동자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걸 쓸까?'

현재에게는 전투에 쓸 수 있는, 정확히는 전투 회피에 쓸 수 있는 아티팩트가 하나 있었다. 혼돈신의 뒤틀린 발걸음. 상대방을 무작위 방향의 수십 킬로미터 바깥으로 추방해버리는 전투 회피용 아티팩트. 그러나 일회성이라 여기서 쓰기엔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나보다 강했다면 첫 격돌에 바로 써버렸겠지만.'

대치는 길게 이어지지 않을 터다. 민간인을 인질 삼아 위협했던 현재가 실제로는 학살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판단되면, 엘리는 도로 파탈리테를 쫓아가기 시작하겠지. 그렇다면 정말 죽여서 증명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충분히 학살을 벌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 파탈리테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야. 그 녀석에게서 알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학살자든 뭐든 되어 엘리의 시선을 끄는 수 밖에. 하지만 정말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 녀석이 황실의 기사라는 걸 생각하면, 굳이 민간인을 학살할 필요는 없지 않나?'

조금 더 머리를 굴린 현재는,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 이렇게 선언했다.

"좋아. 결심했다. 나는 지금부터 황궁에 가서 황제를 죽이겠어."

"뭐라고?"

황족 모독죄, 물을 것도 없는 사형감이다.

황족 시해죄, 역시 물을 것도 없는 사형감이다.

황제 시해기도, 즉 반역대죄, 제국 모든 영주와 군인을 적으로 돌리며 모든 곳에 수배지가 쫙 깔리게 될, 제국 안에서 가장 커다란 대죄.

황실 기사라면, 황제 시해기도만큼은 무조건 막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제1의 의무이다.

"막지 못하면 네가 자결해도 갚을 수 없는 대죄가 되겠지? 그러니까 나를 따라와라. 와서 최선을 다해 막아봐라."

현재는 그리 선언하고 진짜로 황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헤맬 이유는 없었다. 거리의 높은 건물 지붕 위에서 본 도시 끝자락에는 어느 건물과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하고 웅장한 황성이 보이고 있으니까.

'젠장!'

13만의 학살을 저질렀고 앞으로 그 이상의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는 괴물을 쫓느냐, 아니면 황제를 죽이겠다고 선언한 너무나도 강한 괴물을 쫓느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파탈리테는 이미 약화되어 있어. 폐하께 향하는 위협을 제거한 후에 추적해 없애더라도 늦지 않는다.'

몇십만의 생명을 저울 반대편에 올리더라도, 황제의 목숨을 단 저울이 반대로 기울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제국이었고 그것이 황실 기사단이었다.

엘리는 현재를 쫓아 황궁 쪽으로 향했다.

* * *

울렁거림은 이내 격통으로 변했고, 저주 받은 몸에서는 그 몸에 담고 있는 물방울 하나마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송골송골 땀이 맺혀 나왔다.

저주 받은 몸은, 그 피부 위를 흐르는 땀마저 고통으로 느낀다. 이런 저주를 받은 주제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고? 그것은 잘못된 의문이다.

애초에 살아가지 말라고 저주를 내린 것이다. 물의 여신이, 제가 아끼던 종족에게 살해당하며 남겨놓은 너무도 원한 깊고 강력한 저주인 것이다.

그 저주에도 불구하고, 건방지게도 생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들, 엘프들이란 그 자체로 신을 모독하는 자들이다.

멸망의 저주를 짊어지고도 멸망하지 않은, 그런 삿되고 불경한 종족이 바로 엘프라는 것이다.

"윽! 그으윽! 흐으윽! 하아……."

물의 저주로 땀을 흘리던 파탈리테는 그 땀으로 인해 앓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이 있었다.

"괜찮아? 물은? 마시면 더 큰일 나나?"

미아는 파탈리테의 상태를 걱정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파탈리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나를 돌보려는 거야? 신의 저주가 두렵지 않아?"

전염병 환자보다도, 수인보다도 훨씬 배척당하는 것이 엘프였다. 그런 종족에게 다가오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글쎄, 현재가 널 동료로 삼겠다고 했으니까, 나도 현재의 뜻대로 너를 돌보지 않으면 안되니까?"

"신보다도, 그 남자를 의지해?"

"지금은 그렇네."

"바보 같은 짓. 그럼 너조차 은총을 잃고 짐승의 모습을 하게 될 수도 있어."

인간을 축복한 불의 신에게 외면 받으면, 인간은 그 모습이 일그러져 짐승의 형상과 섞이고 만다.

파탈리테는 신의 축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은혜를 알지 못하는 미아가 가증스러웠다.

'내게 신의 축복이 있었다면, 저렇게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내게서 은총이 떠나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 신을 섬길 거라고. 그런데 왜, 저 여자한테는 은총이 있고, 나에게는 저주가 내려 있는 거야?'

억울함, 분노, 슬픔이 파탈리테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그녀는 신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적이 없다.

그녀는 그저 신을 죽인 종족의 후예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짊어진 원죄 때문에 이토록 괴로운데.

왜 저런 감사할 줄 모르는 간절하지도 않은 이들에게는 축복이 있는 걸까?

"그러니까 나를 내버려둬."

그 어리석음에는 한심함과 역겨움마저 느껴져, 파탈리테는 미아의 손길을 거부하고자 했다.

"안돼. 네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그러나 거부하는 걸 거부당했다. 미아는 단지 현재가 필요로 한다는 이유 만으로, 신에게 저주 받은 종족인 파탈리테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파탈리테는, 그런 미아가 너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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