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65화 (65/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황도에서

* * *

"도시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현재가 직접 한 요리가 좋겠어."

"굳이 내 요리를? 그런 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건데."

기껏 황도에 왔다. 현재는 이런 경우 황도에서 특별히 유명한 식당을 방문하는 게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는데, 미아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잖아? 그럼 역시 마지막도 현재에 대한 기억으로 장식하고 싶어."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누구와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미아의 그 말에 현재는 왠지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수줍음과 사랑스러움과 그 외의 어떠한 감정들이 잔뜩 섞인, 흡사 시원한 짬뽕 같은 그런 묘한 감정들이었다. 특히, 얼큰한 맛이 가슴을 화끈거리게 한다는 점이 그랬다.

세 사람은 장을 보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본래 이 여관이 주방을 손님에게 빌려주는 일 따위는 없지만,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주인에게 쥐어주었다. 고급스러운 주방에는 다양한 설비가 있어 비싼 돈을 주고 빌린 값을 했고, 현재는 주방 한 켠을 차지하고 서서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오래 걸린다고 미리 말을 해줬음에도, 미아와 파탈리테는 방 대신에 여관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이걸 한번 쯤은 써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

수도는 산과 운하 뿐 아니라 자연적인 하천도 끼고 있어 이것저것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 누구라도 감히 만들 수 없는 요리를 보여줄 셈이었다.

'이 아티팩트로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는 없으니까.'

루스키에게서 빼앗았던 냉기를 흩뿌리는 스노우볼. 이것을 사용하면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저께와 어제는 미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짬이 나질 않았지만, 이렇게 주방으로 밀어넣어진 이상 써볼 수 밖에 없겠지.

우유, 계란 노른자, 크림, 그 외에 얇게 저민 후 다지다시피 작게 만들어낸 초콜릿과 생과일, 이 계절에는 구할 수 없어 잼으로 대체한 과일첨가물, 그리고 단맛을 책임져줄 설탕까지.

이들을 섞어 잘 반죽해내고 잠시 뜨거울 정도로 가열한 후에 냉기가 계속 전달되는 철판에 굴려 잘 얼리면 천연 젤라또의 완성이었다. 물론, 그 냉기를 뿜어주는 것은 바로 아티팩트였다.

마법이 유실된 세계에서 신의 권능을 담은 아티팩트로 요리를 한다는 게 마치 신성모독인 듯 조금 건방져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신들도 아이스크림 맛 좀 보면 인정할 거다.'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본능 중 하나. 그렇기에 요리에 쓰이는 모든 것은 다른 무엇보다 가치 있다. 그것이 현재의 신념 중 하나였다. 그러니 신성한 아티팩트를 요리에 쓰는 일을 전혀 거리끼지 않겠다는 생각.

여러번의 작업으로 석류, 초콜릿, 블루베리 잼을 이용한 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준비했다. 각각 빨강, 갈색, 남색에 가까운 보라색을 띄는 아이스크림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게 당장 좌판을 깔고 장사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땐 내 가게 하나를 내보는 게 정말 소원이었는데.'

여신에게 모든 능력치를 갚고 나면 미아와 식당을 하나 차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현재는 잠시 생각했다. 바로 얼마 전 파탈리테에게 신조차 휘두를 수 없는 존재가 되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것 치고는, 너무도 작고 소박한 목표였다.

'참 우스운 일이지.'

인간, 새로운 자극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안전을 원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고, 대단한 야망을 품었으면서도 소박한 꿈을 꾸기도 하는, 그런 모순적인 존재.

'요리에나 집중하자.'

젤라또는 적당한 숙성기간이 필요하기에 미리 작업을 했다. 아이스크림은 당연하지만 디저트 역할, 제대로 된 코스요리를 준비하기로 한 이상 진짜 작업은 이제부터였다.

* * *

"윽, 매워."

미아는 아픈 혀를 빼꼼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생전 매운 것을 먹지 않던 그녀에겐 조금 자극적인 요리였다.

"미안, 시간이 좀 부족하길래, 밍밍한 맛을 채우려다 보니 마땅한 게 생각나지 않아서. 그래서 이런 요리가 됐네."

코스의 메인 요리는 매운 소스를 사용해 구워낸 로스트 치킨이었다. 두 시간 내에 우릴 수 있는 육수라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합성 조미료도 없는 세상에서 깊은 맛을 내기에 부족한 시간이었다.

메스토크 시에서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요리들에 비하면 깊은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24시간 넘게 끓인 어린 송아지 스톡 따위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 현재는 대처법으로 매운 맛을 꺼내들었다.

아무튼 자극적이다 보면 밍밍하다는 생각은 안 나기 마련이다. 물론, 그때 향신료 범벅을 만들어서 요리를 망쳤던 그 남자와는 다르게 하기 위해 천연 재료로 매운 맛 소스를 만드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과한 짠맛이 없더라도 충분히 맛있다고 느낄 수 있게 심혈을 기울인 것이었다.

"아냐. 그래도 맛있어. 약간,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아는 현재를 격려했다. 그래도 한국식 매운맛은 무리이리라 생각해 상당히 자제한 것인데, 그 정도도 미아에게는 버거운 맛인 모양이었다.

'하긴, 매운 맛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못 즐기는 법이지. 요리사로서는 지양해야 할 맛이기도 하고.'

맵다는 맛은 사실은 통각이라, 자꾸 느끼게 하면 혀가 적응해서 미각이 둔해지고 만다. 현재는 요리사로서 그런 꼼수에 기댄 자신을 반성했다.

두 시간만에 만족스런 요리를 만들고자 하니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더 쓰기에는 배를 타러 가야 할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게 다가오고 있었고.

"아픈데, 계속 바라게 돼. 내가 이상해진 것 같아."

왠지 야하게 들리는 대사를 날리는 미아. 그 옆에서 파탈리테는 드물게 만족스러운 듯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탈리테, 너는 이게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네?"

"사막에서 구한 식재 중에는 독이 든 것들도 있었지. 그런 독 중에는 이런 알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다."

"……그러냐?"

매운 맛에 힘들어하면서도 맛있다며 열심히 음식을 먹어주는 여자친구, 그리고 독 맛 같다는 실례되는 소리를 해놓고 뭐가 잘못됐냐는 듯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엘프가 하나.

'나쁘지 않네.'

현재는 이 풍경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디저트 나왔습니다."

세 사람이 식사를 마치는 타이밍에 맞춰 주방장이 젤라또를 가져왔다. 현재는 주방을 빌린 김에 코스 요리를 시간에 맞춰 가져다 달라고 주방장에게 맡겨뒀었다.

처음에는 감히 외부인이 내게 명령을 하냐며 노발대발하던 주방장이었지만, 현재가 설계한 코스 요리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 방식을 배우고 싶다, 메스토크 시에서 무려 백작이나 되는 귀족을 매료시켰던 이 서빙 방식이 황도의 고급 여관 주방장 또한 매료시킨 것이었다.

꼭 배우고 싶습니다며 자존심도 던져버리고 고개를 숙이는 주방장에게 현재는 간단하게 코스 요리의 개념과 의의를 설명해주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 번에 먹기에 너무 많은 종류의 음식은 그 먹는 순서와 온도도 맛에 영향을 주기에 주방장이 그걸 모두 컨트롤하면 더욱 최상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 정도의 간단한 개념 정리였다.

어느 요리가 먼저여야 하고 어느 온도가 적절한지까지는, 주방장 스스로가 깨닫고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일일 거다. 모든 요리에 대해 하나하나 가르쳐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주방장이 가져온 젤라또는 매우 생소한 음식이었으므로 미아는 매우 궁금해했다.

"이건 무슨 요리야? 되게 특이하게 생겼네?"

젤라토의 비주얼은 딱 보기에 맛있어보이는 겉보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익숙한 사람들이야 아 아이스크림이고, 시원하고 달콤하겠구나 알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점토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젤라또라는 건데, 매워서 얼얼해진 입 안을 보듬어 주기에 딱 알맞은 디저트야."

그냥 냉장고도 냉동고도 구할 수 없는 시대에 냉기 아티팩트를 얻은 게 즐거워서 만든 것 뿐이지만, 어쩌다 보니 매운 입을 달래주기에 딱 좋은 구성이 되었다.

아예 안 맞았다면 메뉴에서 뺐겠지만, 이렇게까지 잘 맞는 구성이 된 것은 우연이라고 할까. 재료는 시장에서 사온 것이 전부고 요리 시간은 두 시간 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이런 구성이 된 것은 행운이란 것이었다.

'이런 작은 행운도 기분을 꽤 괜찮게 해주지.'

여러모로 현재는 꽤 즐거웠다. 미아에게 뭐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허락한 것치고는, 오히려 현재가 즐기게 된 부분이 많았다.

'그렇구나. 애초에 미아는 자유이용권을 자신을 위해 쓸 생각이 없었어. 그 상황에서도 내가 즐겁기를 바래서 이런 요구를 해준 거였어.'

현재가 사랑이 담긴 그윽한 눈빛으로 미아를 바라보는 사이, 미아는 젤라또를 스푼을 써서 반으로 잘라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으로 스윽 가져가 집어넣었다.

"앗? 엄청 차가워?"

신기한 온도, 신기한 식감에 미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방이 잔뜩 들어간 젤라또의 풍부한 식감은 아이스크림이 아닌 것에서는 느끼기 힘든 느낌이었다.

"부드럽고, 달아. 맛있다."

"미아 마음에 들었다면 정말로 다행이야."

두 연인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이, 파탈리테 또한 스푼으로 반을 쪼개 젤라또를 입에 가져갔다.

또르르, 그리고 파탈리테는 눈물 흘렸다.

"엥?"

미아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요리사의 버릇으로 젤라또를 처음 먹는 파탈리테의 반응을 살피고 있던 현재였다. 그런데 젤라또를 입에 넣고 녹여 먹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파탈리테의 반응을 현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냐, 너?"

"별 거, 아니야."

웃지도 화내지도 찡그리지도 않던 엘프 소녀가 또르르 눈물 흘리는 것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여신에 빗대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 세상 아름다움을 가진 엘프라면 더욱이.

"아니, 왜 우는지는 알려줘야지. 설마, 차가운 걸 먹으면 눈물이 나냐? 더운 사막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가 생각하는 사막이란 기온이 50도에 달하는 삭막한 곳. 그러나 내륙의 사막이 밤에는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지는 곳임을 현재는 알지 못했다.

"낙타 젖이 얼어붙은 것을 먹은 적이 있었지."

어딘가 아득히 먼 곳을 떠올리는 것처럼, 파탈리테의 눈동자가 깊은 어딘가로 빨려들 것 같은 빛깔을 띄었다.

"그래서?"

"그것 뿐야. 그냥, 그것 뿐."

'낙타 젖을 얼려먹은 거랑 우는 게 대체 뭔 상관인데?'

이것도 엘프이기 때문인가? 현재는 이종족이라 이상한 건지 아니면 그냥 파탈리테가 이상한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엘프들을 만나보지 않은 이상 그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은 것은 그냥 젤라또를 먹고 우는 파탈리테가 일단 이상하다는 그 사실 하나 뿐이었다.

* * *

여신의 저주로 인해 한곳에 정착할 수 없는 엘프들이, 사막의 어딘가를 헤매던 때의 이야기.

물을 찾지 못해 말라죽기 직전에 엘프들은 낙타의 살을 갈랐다. 그 피를 마심으로써 몸에 부족한 수분을 채우고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고기는 모두 요리되어 동족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정을 준 생물이 죽은 것에 어린 파탈리테는 마냥 우울했다. 하지만 그 우울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많지만 비릿한 피 대신 매우 적지만 가장 맛이 나은 낙타 젖이 제공되었다. 왜냐 하면 파탈리테는 이 엘프 무리를 구할 유일한 희망이며, 그를 위해 아주 험하고 끔찍한 싸움을 반복해야할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장 고결한 이를 위해 바친 공양이며, 가장 위대한 전사를 위한 싸움 삯이었다.

그 젖을 아껴두었던 파탈리테는 깊은 밤 중, 버틸 수 없이 타는 갈증에 가죽 부대를 열고 낙타젖을 들이마시려 했다. 잔혹할 정도로 싸늘한 사막의 밤에 얼어붙은 낙타 젖은 잘 나오지 않았다.

애써 부대를 흔들어 긁어내서 입에 머금은 낙타 젖은, 살얼음이 껴 서걱서걱해서 소름 끼칠 정도로 맛이 없었다. 무리에서 가장 귀하며 가장 불쌍한 전사를 위해 남겨진 몫은, 그렇게나 가치 없고 끔찍한 맛이었던 거다.

그들이 가진 건 모두 그런 것 뿐이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모두 그런 것 뿐.

그런 것들은, 어느 이국에서는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 너무 하찮아서 쓰이지 않고 버려지는 것들이었다.

파탈리테는 그것이 견디기 힘겨웠다. 그때에도, 먼 훗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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