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황도에서
* * *
이어 세 사람은 옷가게에 왔다. 파탈리테에게 입힐 새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로브 아래에 노예 의장만 입고 있는 노출광 변태 같은 복장은 현재의 취향에는 꽤 알맞았지만 일반적으로 입고 다닐 만한 복식은 아니었다.
"자, 입고 싶은 걸 골라."
현재는 이번에도 파탈리테에게 선택권을 줬다. 그러나 아무 고민 없이 선호하는 최고의 무기를 척척 골라냈던 모습과 달리, 옷을 고른다는 일은 소녀에게 매우 어려운 듯 보였다. 아니면, 너무 쉽든지.
"여기부터 저기까지."
파탈리테는 아무래도 모르는 것을 사라고 하면 일단 전부 고르려는 성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다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별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말이 되냐. 그걸 다 사면 짐만 산더미처럼 늘어날 뿐이지. 우리는 지금 싸우러 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옷을 그렇게 많이 산다면 돈은 상관 없다 쳐도 배낭에 넣을 수 있도록 짐을 꾸릴 때 거의 다 버리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여기부터 저기까지."
파탈리테는 이번엔 훨씬 좁은 범위를 찝었다. 고르는 양을 줄일 뿐 방식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똑바로 고를 생각은 없는 거야?"
"의복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그 외의 무얼 고려해야하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노예 의장을 입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히 행동하던 소녀는, 아무래도 자신을 꾸미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경험이 없는 것 뿐인지도 모르고.
"리테, 내가 골라줄게."
미아가 파탈리테의 옷을 대신 골라주겠다고 나섰다. 현재는 조금 놀랐다.
'정작 본인도 항상 튜닉에 슬랙스만 입고 다녔으면서?'
물론 그게 티나게 끔찍한 패션은 아니었고, 워낙 예쁘고 몸매도 좋은 만큼 그것만 입어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가 배 안에서 다른 옷을 입기를 주문할 때까지는 항상 '모험가 전사'다운 차림을 했던 미아가 옷을 골라주겠다며 나선 행동은 상당히 의외였다.
'꾸미는 데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구나.'
어쩌면 자신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던 것 뿐일지도. 도시 사람들의 목숨은 그렇게 아껴왔으면서. 현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로브라는 게 마음에 든다. 사막에서 입던 옷들과 비슷해서."
"로브는 그냥 옷이 아니라 겉옷이야. 속에 다른 옷을 겹쳐입어야 한다구."
"어째서지?"
"그건 사회적 약속 때문인데, 음, 어떻게 설명해야 좋지?"
미아는 인간 세계의 상식이 없는 파탈리테에게 수치심이나 도덕 같은 쉬이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느라 머리를 잔뜩 굴리며 진땀을 뺐다.
"우리가 가는 곳은 인간이 거의 없는 땅, 그렇다면 그 도덕이라는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나?"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 길엔 지켜야지."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만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거야. 괜히 우호적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잖아?"
"그것이 인간이 택한 합리라는 것인가……, 이해하기 어렵다."
상당히 심오한 소리를 하는 파탈리테였다.
"조금씩 배워나가면 되는 일이야."
미아는 그런 파탈리테를 격려했다.
'역시, 아무리 겉모습이 닮아도 다른 종족이라는 건가.'
현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파티에 끼어든 작은 엘프 소녀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 했다.
* * *
"이제 나랑 미아는 어제 새기던 문신을 마저 마무리하러 갈 거야. 너는 어떡할래? 숙소에 가서 기다려도 좋고, 도시 구경을 좀 더 해도 좋아. 물론, 우리를 따라오는 것도 상관은 없지만. 꽤나 오래 걸릴 거야."
현재의 말에 파탈리테는 되물었다.
"나를 믿어?"
현재는 당당히 답했다.
"앞으로 등 뒤를 맡겨야 할 사이인데, 겨우 이것도 못 믿어서 쓰겠어?"
"그렇구나."
파탈리테는 납득했다. 서로 믿는 관계가 아니라, 앞으로 믿어야 할 관계. 그 첫 질문을 현재는 파탈리테에게 던졌다. 도망칠 거냐 아니냐.
"숙소에서 얌전히 기다리도록 할게."
밤을 지새워 피곤한 몸을 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말을 남기고 엘프 소녀는 떠나갔다. 현재는 말했던대로 미아를 데리고 어제의 문신 가게를 방문했다. 많은 조직원들을 잃은 여파인지 거리에는 칙칙한 분위기가 흘렀고 문신 가게는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얼굴에 끔찍한 문신을 새겨진 문신사들 대신 못 보던 얼굴이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얼굴이라도 그녀가 현재를 알아보았기에 소란 없이 자연스레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구 좀 쓸게."
현재는 그리 말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도구들을 챙겼다. 도시를 떠나기 전에 미아 배의 문신을 완성해야 했다. 이 도시 바깥에 제대로 된 설비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만일 있다 해도 현재가 배운 방식과 맞으리란 보장도 없고.
"오늘은 진짜 문신만 딱 새기는 거야."
미아는 그리 말하면서 로브를 벗고 안쪽의 옷도 벗어 속옷만을 남겼다. 여유가 있는 것은 오늘 뿐. 내일은 다시 배를 타고 떠나야 하기에 오늘 안에 끝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문신만 새길 거니까 이 이상은 벗지 않아도 되겠지?"
어제는 괜히 바니걸을 입고 온 탓에 속옷이 없어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소중한 부위들을 가려줄 속옷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크흠, 그래."
현재는 헛기침을 하며 문신침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반대편 손으로는 미아의 아랫배를 꾹 눌렀다.
"히윽! 문신만 새기라니까. 이러다가 정말 도시를 떠날 때까지 못 끝내겠어."
"알았어. 그냥 한 번 장난쳐 본 거야."
현재는 집중하여 예술가의 혼을 불태웠다. 먼 옛날 미술 시간에선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현재였지만, 엄청난 손재주의 주인이 된 지금은 그림보다 말도 안되게 어려운 문신 새기기를 능숙하게 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현재는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다른 일에 한눈 팔지 않고 미아의 배에 문신을 새겨 모두 완성했다.
"자, 다 됐다."
네 시간이 넘는 긴 작업 끝에 미아의 배 아래에는 완벽하게 칠해진 문신이 자리잡았다. 자물쇠, 장미, 날개의 문신. 자물쇠 부분을 꾹 누르면 자궁을 복근 위에서부터 압박하여 야릇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런 위치에 존재하는 문신이었다.
현재는 거울을 들어 미아도 그 배를 잘 볼 수 있게 했다. 아랫배인 만큼 목을 잘 꺾으면 스스로도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거울을 썼다.
'이게 현재랑 이어졌다는 증거…….'
위치가 위치인지라 미아는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 얼굴의 붉음은 마냥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봐, 이렇게 해서 딱 맞는 한 쌍이라고."
현재는 제 오른팔의 열쇠 문신을 보여준 후 오른손을 자물쇠 위에 갖다대고 꾸욱 눌렀다. 그러자 미아는 얕게 신음하며 허리를 작지만 확실하게 부르르 떨어댔다.
'아, 가볍게 가버렸어…….'
문신을 새기는 동안 조금씩 성욕이 쌓였던 참이다. 참으로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배를 따끔따끔 아프게 하는 느낌과 그 행위자가 현재라는 사실이 합쳐져 미아를 계속해서 자극시키고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가득 쌓여있는 가운데 현재의 손이 부드럽게 아랫배 위를 쓸면서 그와 커플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새겼다는 만족감을 비롯해 여러 복잡한 심리적 요인이 더해져 가볍게 절정을 느꼈다.
'이제 하겠지?'
작은 절정을 느꼈으나 만족하지 못한 미아는 현재가 여느 때처럼 자신을 덮쳐오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현재는 배를 한 번 쓸어낸 것으로 만족하고 문신 도구를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 왜 안 하지?'
그건 미아로선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문신을 새기는 긴 시간동안 현재는 발기해있었고 또 미아를 사랑스럽다는 눈빛과 욕정이 담긴 눈빛이 반쯤씩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오래 세우고 있으면 힘들다던데? 그래서 지쳐버린 걸까?'
현재는 그렇게 눈치를 보는 미아를 알아보고선 씨익 웃었다.
"왜, 하고 싶어?"
미아는 사실 하고 싶었지만, 왠지 하고 싶다고 말하면 자기만 변태로 몰아갈 것 같아서 조용히 답했다.
"아니, 그냥 평소라면 분명 덮쳤을 텐데 가만히 있어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야 현재도 그렇게까지 맨날 할 수는 없겠지? 사람이란 건 지치기 마련이잖아."
현재는 괜히 남자의 정력에 대한 자부심을 자극하며 따먹어달라고 돌려 말하는 미아가 참 귀여웠다. 그러나 오늘은 그동안 아주 많이 즐겼던 평범한 섹스를 할 예정이 아니었다. 예정이 없는 것은 아닌데, 조금 특별한 행위 이후에나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미아, 또 네게 선물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선물?"
미아는 그 말에 혹했으나 이전에 저런 태도를 취하고서 준 것이 노예용 목줄과 배 위의 자궁 문신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분명 또 이상하고 변태적인 거겠지?"
"어쩌겠어. 진작에 태어나길 변태로 태어난 것을. 그리고 미아가 너무 예쁜 것을. 이렇게 예쁜데 괴롭히고 싶지 않을 수가 없잖아?"
"괴롭히지 말고 사랑으로 보듬어달라구."
입을 삐죽이는 미아. 그러나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가학심을 자극했기에 현재는 그녀를 데리고 문신 가게를 나가 전에 눈도장을 찍어두었던 가게로 이동했다.
"어서오세요. 귀인분."
루스키가 이미 지시를 쫙 돌린 것인지 가게의 주인은 매우 정중하게 현재를 맞이했다.
"유두에 피어싱을 하면 감도가 점점 올라간다지? 그걸 두 짝 하고 싶은데."
"노예 쪽을 말씀하시는 거죠?"
미아는 지금 멀쩡한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어제의 사건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현재의 노예로 인식되는 모양이었다. 현재는 대답했다.
"그럼 설마 내 가슴에 박겠냐. 헛소리 말고 준비나 해줘."
"남성 분 중에서도 원하시는 분이 있기에 여쭤본 겁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시길."
'대체 어떤 변태 새끼가 남자 가슴에 피어싱을 박는단 말이야? 소름이 끼치는군.'
현재는 얼굴 모를 누군가를 속으로만 씹었다.
"현재야? 너는 정말……, 머릿속에 그런 것 밖에 없구나?"
"그래, 나는 항상 네 생각 뿐이야."
"은근슬쩍 달콤한 말인 척 넘어가려고 하지 마.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
21세기 현대 문명의 정수인 범세계적 초거대 기록매체, 인터넷에서 현재는 이 시대 사람들은 쉽사리 접하기 힘든 여러 가지 취향들을 두루두루 섭렵했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경험이 그렇게 많았던 거야? 이런 변태 취향이 아니면 질려서 더 못해먹을 정도로?"
미아의 추궁에 뚝뚝 묻어나는 질투에 현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 첫 여자친구가 너야."
살짝 부끄러운 소리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답할 말이 없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매주 변태적 성행위가 들어간 성인 동영상으로 폭넓은 지식을 갖췄다고 말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도, 첫 남자친구가 너야."
미아가 조금 머뭇거리며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물론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첫경험으로 찢어진 처녀막이 자지에 부벼지던 그 감촉까지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미아 네가 더 잘 느끼고 더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어. 이런 내 맘 알아주겠니?"
"그냥 자기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뿐이면서. 말은 잘해요. 흥."
"그래서 안해줄 거야?"
미아는 잠깐 고민했다. 요즘, 너무 성욕에 휩쓸려다니지 않나 스스로 고민하고 있을 정도였는데.
'여기서 더 잘 느끼게 된다고?'
그건 상당히 두려우면서도, 너무나 탐이 나는 그런 제안이었다.
'이러다 나도 현재 만큼 변태가 될지도 몰라.'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상당히 컸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 또한 결코 작지는 않았다.
'그러면 현재가 날 그만큼 더 좋아해주겠지?'
미아는 우물쭈물하면서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모기 기어가는 듯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게."
현재는 곧장 미아를 끌어안고 뺨에다 키스를 했다.
"고마워."
미아는 그 키스를 받고 심정이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렇게 다 받아주다가 진짜 말도 안되는 것까지 받아주게 되면 어떡하지?'
왠지 그 상상이 현실이 될 듯한 불길한 느낌.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가게 주인은 생각했다.
'노예 사랑이 아주 지극정성이구나. 이러다가 아주 결혼까지도 하시겠어?'
노예를 가지고 하드한 플레이를 하면서 노는 이 암흑가에 저렇게 순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취향은 거리에 걸맞게 변태적이었지만, 제일 중요한 노예를 다루는 부분에서 사랑과 교감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이 거리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했다간 큰일 나겠지. 엄청나게 강한 상대라는 모양이고.'
어제 일어났던 조직원들과의 싸움과 루스키의 엄한 지령이 그 입을 간신히 틀어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