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54화 (54/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좋은 하루!

황도에서

* * *

"무기를 사러 가자."

식사가 끝난 직후 현재는 그렇게 말했다. 파탈리테는 사로잡혀 봉인되어 있던 몸, 그녀에게는 어떠한 소지품도 없어 가진 거라고는 정말 몸뚱아리와 그 몸을 살짝 가릴 노예 의상과 로브 하나 뿐이었다.

옷도 무기도 생존용품도 모두 새로 사야했으니, 기왕이면 커다란 수도에서 구하는 것이 물건의 질이 더 좋으리라 판단한 현재는 일행을 이끌고 무기점으로 향했다.

"어서 옵쇼. 손님들. 어떤 무기를 찾으십니까?"

30대쯤 되어보이는 남성이 양손을 교차해 비비며 비굴할 정도로 친절한 태도로 일행을 맞이했다. 그는 바로 이 무기점의 주인이었는데, 현재의 덩치와 분위기를 보는 순간 막강한 전사라는 것을 깨닫고선 장사를 할 겸, 그리고 몸을 사릴 겸 해서 굽실거리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와, 일행들 생긴 것 좀 보소. 대체 어디서 저런 여신들이 튀어나왔지?'

현재의 위압적인 덩치와 터질 듯한 근육, 그 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흉터들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무기점 주인이었지만, 그럼에도 감히 시선을 향하고 말 만큼이나 현재가 데리고 온 두 여성의 미모는 빼어났다. 신이 확실히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속마음이긴 해도 감히 여신의 이름을 빌려 미모를 표현해야 할 만큼이나.

비록 한쪽은 어린 소녀인 듯 키가 매우 작았지만, 그 은빛의 속눈썹 아래 자리한 어딘가 슬퍼 보이는 핏빛 눈동자에서는 어린 아이라고 얕잡을 수 없는 퇴폐미와 요염함이 풍겼다. 그녀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꼭 혼이 빨려나가는 것 같아 괜시리 경계심을 키우게 됐다.

다른 한 쪽은 제법 큰 편인 키, 그리고 당돌한 의지가 깃든 눈빛과 어딘가 힘이 넘치는 모습에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분위기였다. 무얼 맡기든 잘해줄 것 같은 믿음직함이 있었고, 동시에 그녀가 품은 아름다움은 서있기만 해도 주변인들의 의욕을 고취시켜줄 것 같았다. 주로 남자들의 의욕을.

현재는 무기점 주인이 보내는 선망의 시선을 눈치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시선이 쏠리지 않을 리가 없기는 했다.

'부러운가 본데? 그러면 더 부럽게 만들어주는 게 맞겠지?'

현재는 슬쩍 미아에게 다가가 그 큰 가슴을 밑에서부터 손으로 감싸안았다.

"히얏! 왜 이래?"

은근슬쩍 유두를 쓸린 미아는 야릇한 느낌에 깜짝 놀라며 현재에게 따졌고, 현재는 싱긋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무기점 주인에게 들릴 만큼 충분히 큰 목소리였다.

"너는 내 거니까 좀 만져도 상관 없잖아?"

"그건, 그래도, 다른 사람이 보잖아……."

미아는 얼굴을 붉히며 현재의 팔을 소심하게 밀어내보았지만 역시 꿈쩍도 안했다. 괜히 전력을 다해봤자 남의 눈에 보이는 그림만 이상해질 테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채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또 경비병에 끌려가긴 싫으니……. 그나저나 정말 변태라니까.'

성이라는 게 은밀하고 둘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미아의 생각과 달리, 현재는 자신과 미아의 관계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컸다.

'그만큼 내가 자랑스럽다는 거겠지?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고.'

미아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애써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도 없는 정확한 사실이었다. 자랑할 만한 여자가 아니었다면 자랑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당연한 사실.

"파탈리테, 애용하는 무기 종류가 있어? 있다면 여기서 구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여자친구를 자랑하러 온 게 아니라 무기를 사러 온 것이었으므로 현재는 본래의 목적을 찾아 파탈리테에게 물었다.

"활, 그리고 단검."

'활잡이였어! 바라던 것 이상의 소득인데?'

파탈리테와는 아직 서로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사이. 현재는 엘프 소녀가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궁수라는 것에 상당한 호감을 느꼈다.

'원거리 사격이 가능하면 취할 수 있는 전술의 선택지가 늘지.'

비록 좁고 어두워 활을 써먹기 어려운 던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활을 쏘는 사용자가 초인이라면 또 얘기가 달랐다.

현재는 한때 활잡이들이 파티에 끼었을 때 취했던 전술들을 하나둘씩 떠올려봤다. 미아라면 그 전술들을 잘 숙지하고 있겠지만, 이제 파티의 리더는 미아가 아니라 자신이므로 현재 스스로가 그것들을 판단해야 했다.

"좋아, 일단 있는 활을 다 보고 싶군."

무기점 주인은 현재 일행을 구석에 있는 활 진열대 앞까지 데려갔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활 아티팩트는 없나?"

"아티팩트가 그리 함부로 돌아다니겠습니까요. 아쉽게도 가게에는 활 뿐만 아니라 어떤 아티팩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요."

무기점 주인의 말에 현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무슨 활이 좋겠냐?"

파탈리테는 활을 몇 개 쥐어보고는 그 시위를 튕겨보았다. 전성기에 비해 상당히 약화된 그녀로서는 만족스럽게 시위를 튕길 수 없었다.

'비싼 걸 사는 건 좋지만, 괜히 환불하러 와서 트집을 잡으면 곤란한데.'

주인은 호의 아주 약간과 자기 보신을 위해 파탈리테를 말렸다.

"장력이 낮은 활을 쓰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쪽이 덜 큰 아이들도 쓸 수 있는 수렵용 활이지요."

"아니, 나는 이 활이 좋겠어."

파탈리테는 단호히 말했다.

"힘이라는 게 노력 좀 한다고 그리 쉽게 늘어나는 것이 아닌데……."

"이 활이 좋다고 했어."

'좆같은 꼬맹이년, 얼굴만 반반해가지고는…….'

고집을 부리는 파탈리테의 모습에 무기점 주인은 욕지거리를 입 밖에 내고 싶었으나 그녀의 일행인 현재가 너무 위압적으로 생겼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활을 골랐으면 다음은 단검인가?"

이어 파탈리테는 질 좋은 단검 두 자루를 골라 손에 넣었다. 그 단검을 담는 단검집과 그걸 몸에 결합하기 위한 허벅지 벨트, 화살통과 결합된 허리 벨트까지 구매하고 나니 뻣뻣하게 굳어가던 무기점 주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래. 많이 팔기만 하면 됐지. 엄청난 고급품들만 골라 사가잖아? 괜히 일어나지도 않은 환불 사태에 대해 걱정하지 말자고.'

활은 검보다도 만들기가 훨씬 힘든 고급품이었다. 무게 균형이 다소 어긋나도 어중이떠중이들은 느끼지 못하는 검과는 달리, 활이란 것은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발사조차 제대로 안되는 고급 기술의 집약으로 만들어지는 무기였다.

그렇기에 활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특히 파탈리테가 고른 물건은 던전에서 나온 마수의 뿔을 가공해 만든 것으로 이 무기점에서 가장 비싼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검도 가장 잘 만들어진 고급품들만을 쏙쏙 골랐다.

'설마, 무기 보는 눈이 엄청 좋은 건가?'

무기점 주인이 무려 10년 이상 무기점을 운영하며 겨우 익힌 지식들을, 갑자기 찾아온 의문의 어린 소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귀를 가린 탓에 소녀가 엘프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기점 주인은 대체 어찌 저리 어린 소녀가 이토록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마냥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우연이겠지? 아니 우연치고는 너무 망설임 없이 잘 골랐는데. 그냥 제일 멋들어진 무기들을 고른 건가? 그렇겠지?'

"이봐 주인장, 뭘 그렇게 고민해? 계산 안 해줄 거야?"

"아닙니다요! 금화 백 쉰 닢 되겠습니다!"

"뭐?"

현재는 당황했다. 그가 이 세계에 와 가장 처음으로 손에 쥐어본 한손검-아밍소드-은 금화 다섯 닢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반대편 손에 들었던 방패는 금화 두 닢이었다.

그런데 활 하나 화살통 하나 단검과 단검집 두 쌍 그것들을 끼울 벨트 두 개를 합친 것 뿐인데 금화 백오십이라니? 금화 백오십 개면 온몸을 철판으로 두르는 전신 판금 갑옷을 번쩍이는 신품으로 맞출 수 있는 금액이었다.

"덤터기는 아니겠지?"

현재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미아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아니, 좋은 활이라면 그 가격도 충분히 나올 수 있어. 마수의 뿔을 깎아 활을 만드는 건 서너달은 가뿐히 걸리는 작업이거든."

"맞습니다. 그렇지요."

미아의 말에 무기점 주인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

"흐음?"

'히이익……, 미친 살인귀 녀석!'

거짓이라면 죽이겠다는 듯 현재의 살벌한 눈빛에 무기점 주인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없는 거짓이라도 만들어 고해야할 정도였다.

"금화 열 닢 깎아드리죠! 백 마흔 닢만 받겠습니다!"

"으흠?"

그러나 그 할인 선언에 현재의 눈빛이 한층 더 맹렬한 불꽃을 띄기 시작했다.

"백 서른 닢! 이 아래론 절대로 못 깎습니다! 차라리 절 죽이십시오!"

"이 새끼! 처음엔 금화 스무 닢을 넘게 남겨먹으려 했단 말이야?"

현재는 금화 스무 닢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자유민 신분을 살 수 있는 그 금액 때문에 가슴앓이를 한 것이 한 세월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폭리를 취하려 한 무기점 주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씨발, 나는 땅 파서 장사하란 말이냐? 더러운 씹새끼.'

무기점 주인은 너무나 그렇게 소리 치고 싶었지만 생존 본능이 입을 틀어막아주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게 제가 다 갖는 것이 아니고, 무기 유지관리비랑 세금까지 이것저것 계산한다면, 정말 밑지고 파는 거란 말입니다!"

무기점 주인의 변명에 현재는 일갈했다.

"지랄하지 마! 나는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아!"

그러더니 현재는 조금 후에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만 특별히 봐주도록 하지. 요즘 좋은 일이 많아서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거든."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지랄을 했냐!'

무기점 주인은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키고서 현재에게 말했다.

"고객님의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현재는 실에 꿰인 금화더미를 넘겼고 무기점 주인은 그걸 빠르게 세어보았다.

"저기 손님? 백 서른 닢이 아니라 백 스무 닢인데요?"

"많이 샀으니까 깎아줘야지. 묶음 할인 몰라?"

'아까 깎았잖아 미친 새끼야!'

무기점 주인은 현재와 더 엮이고 싶지 않아 정말로 손해를 보는 금액이 되었음에도 그냥 받아들이고 그를 보내기로 했다.

'내 칼밥 먹는 용병이랑 범죄자 새끼들을 잔뜩 봐왔지만 저렇게 대단한 괴물딱지 살인귀는 처음이야.'

현재는 사람을 죽여봤다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무기점 주인은 그것을 아주 확신하고 있었다.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겉으로는 그리 말하면서 속으로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절대 다시는 오지 마라! 제발!'

그 사이 파탈리테는 입고 있던 로브를 슥 들어올려 허리와 허벅지에 벨트를 차고 있었다. 로브를 들어올린 탓에 드러난 맨살에 무기점 주인의 시선이 끌어당겨져 박혀버렸다.

'아니 저게 속옷이야 그냥 천쪼가리야?'

로브 아래로 마이크로 비키니 같은 노예 의상을 목격한 무기점 주인은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마이크로 비키니는 정말 마이크로해서 파탈리테의 몸을 거의 가려주지 못했다. 정말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부위들만을 겨우 가려줄 뿐.

'이 미친 소아성애자 새끼!'

무기점 주인은 현재가 파탈리테에게도 손을 댔으리라고 무심결에 확신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빨리 가게에서 나가주길 빌 뿐.

"좋아. 다음에 또 오도록 하지."

현재는 두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무기점 주인은 십 분 사이 십 년은 늙은 기분을 느끼며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살았다."

한 편 밖으로 나간 미아는 현재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심하게 흥정하는 거야? 요즘에는 한 번도 돈을 아낀 적이 없으면서?"

그렇다. 현재는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숙소는 최고급 여관을 고집할 정도로 헤펐다. 미아가 오랜 모험가 생활로 벌어놓은 돈은 너무나도 많아 그런 사치를 즐기더라도 절대 떨어질 일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황녀에게 털어온 보물이 있으니, 혹여 돈이 떨어지더라도 장물을 처분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란 확신이 서있었다. 그 정도 되는 초월자에게 인간의 돈이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만들면 되는 가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끼가 널 야한 눈으로 보잖아.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지."

"흐응? 그거 다 네가 갑자기 가슴을 주무르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야. 이미 가게에 들어왔을 때부터 눈으로 싹 스캔하는 걸 느꼈어."

"스캔?"

"훑어봤다는 말이야.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핥듯이 바라봤다고."

"그래?"

미아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건 네가 좋아하는 상황 아니야? 너는 나를 밖에서 벗기지 못해 안달이 났잖아."

"그러게?"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예쁘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얼마나 야한 짓까지 다 받아주는지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남이 미아의 속살을 보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지금은 미묘하게 과시욕이 더 앞서고 있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는 또 모르는 일.

"인간은 모두 가슴 속에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야."

"갑자기 뭔 소리래. 쿡쿡."

미아는 어이가 없어 웃었고 현재는 상황을 대충 무마하고 넘기기 위해 따라웃었다. 그래도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제 현재가 무슨 황당한 일을 해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미아가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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