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도에서
* * *
현재가 가게를 떠나고 나서 잠시동안 문신사들은 눈치를 보았다. 현재가 가게에서 멀어질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들여 기다린 것이었다.
'이런 상등품을 갖다 바치면 보스가 아주 좋아하시겠지.'
미아는 너무 탐나는 여자였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에 맞지 않게 커다란 가슴, 잘록한 허리에 발달한 골반은 너무나도 평범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몸매였다.
'어떻게 피부가 이렇게 깨끗한지.'
현재의 팔에 문신을 새겼던 문신사 여자가 문신침과는 형태가 다른 기다란 침을 미아의 팔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미아는 그 기척을 느끼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침을 잡아 막아냈다.
"갑자기 무슨 침을 꽂으려고 하는 거죠?"
"마취 침입니다. 문신을 새기는 게 너무 아프실까봐서요."
문신사는 침을 잡혀 당황했으나 태연함을 가장하며 침착하게 설명했고 그건 일단 맞는 말이었다. 독침에 발린 마취약은 투약된 상대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었다. 너무 편안해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문신사들은 미아를 납치해 팔아넘긴 후 현재에게는 그녀가 알아서 도망쳤다고 거짓말을 할 속셈이었다. 그러기엔 미아가 너무 눈치가 빨랐지만 말이다.
"이미 시술이 진행된지 한참인데 이제 와서 그러는 이유가 뭐죠? 하필, 공교롭게도 내 주인님이 자리를 비운 뒤에 와서야?"
'노예치고는 너무 날카로운데?'
노예란 말 그대로의 노예라서, 대개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명령을 받들어가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토록 날카로운 통찰과 당당한 모습을 보이다니. 이런 반응은 문신사의 원래 계획과는 상당히 다르게 틀어지는 것이었다.
"얼굴 표정이 좋지 않으시기에, 많이 아프신 줄 알았죠. 그래서 지금이라도 마취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신사는 그리 말하며 손을 뒤로 한 채 손가락을 움직여 수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장막 뒤에 대기 중이던 조직원들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잠시 후, 무장한 조직원 남성 둘이 덮쳐들었다.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아가씨. 우리들은 조금 많이 거친 편이거든?"
"아픈 꼴을 보기 싫다면 말이지. 나는 기왕이면 저항해주면 좋겠어. 여자에게 아픈 꼴을 보여주는 게 내 취미거든!"
미아는 문신사가 제 몸에 더 손을 대지 못하게 침을 빼앗고 멀찍이 밀어냈다. 그리고는 제 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문신에 들어온 잉크 자체에 독을 타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들이 좀 더 치밀하게 행동했다면 잉크를 바꾸는 척 배 안에 독액을 집어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무리 미아라 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약에 절여져 의식을 잃었겠지. 다행히도 문신사들이 미아를 평범한 여자 노예라고 오판한 덕분에 그 정도까지 공을 들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는 미아가 한 번 엘릭서를 마시며 완전히 깨끗한 피부로 환골탈태한 덕분이 컸다. 전사의 상징인 흉터들이 온몸에 남아있었다면 문신사들도 훨씬 더 신중을 기해 그녀를 잡아들이려 했겠지.
허나 너무나 곱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미아는 주인의 총애를 받아 귀하게 취급 받은 성노예처럼 보여서 문신사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칼을 잡기는 커녕 청소나 빨래 같은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에.
"역시 이런 뒷골목이 멀쩡할 리가 없지."
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나 나쁜 짓을 할 거요 하고 음지에 모인 녀석들이 정상일 리 있을까. 현재가 원하는 일이니 그냥 묵묵히 따라오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트러블이 생길 것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덤벼. 미안한데 나는 너희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을 거야."
"꼬챙이 하나 들고 있는 주제에! 건방 떨기는!"
칼을 든 조직원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미아의 손에 들린 무기라고는 침 하나가 전부. 자신들의 손에 들린 장검에 비하면 리치도 파괴력도 하찮은 수준이다.
"최선을 다해 발버둥쳐라! 네가 지면 그 하얗고 큰 젖탱이가 체리처럼 빨개질 때까지 괴롭혀 줄 테니까!"
시술 도중에 덮쳐진지라 알몸이었으나, 미아는 순진한 마을 처녀처럼 꺅꺅거리며 몸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저 다가올 공격에 대비해 싸움에 맞는 자세를 취할 뿐.
'내 알몸을 훔쳐본 대가는 크게 치르게 될 거야.'
속으로는 잔뜩 열을 올리면서. 요즘 현재 앞에서야 조신하고 순종적으로 굴어왔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천이 넘는 생명을 베어가른 대단한 학살자고 영웅이다.
이런 뒷골목에서 만만한 노예들 상대로 작업을 치는 뜨내기 조직원들 따위에게 겁 먹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그 손에 들린 게 문신침 하나 뿐이고 상대는 검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두 남자가 동시에 덮쳐들었다. 미아는 제 자리에서 합공을 맞는 대신 강하게 한쪽으로 돌파하며 잽싼 몸놀림으로 닥쳐드는 검을 피하고 그 검을 쥔 팔의 힘줄 부분에 문신침을 쑤셔박았다.
"그아악!"
힘으로는 결코 버틸 수 없는, 힘을 통제하는 힘줄 부분이 망가져버려 힘을 줄래야 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 후에 미아는 남자의 손을 쳐 칼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그 칼을 받아들었다.
많은 동작과 정확도를 필요로 했지만, 그럼에도 무기 탈취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미아의 몸놀림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 대단한 위협을 느낄 만큼.
'안돼, 물러서긴 늦었어! 이대로 벤다!'
그러나 두번째 남자는 너무 가까이 다가왔기에 도망칠 기회 따윈 놓친지 오래였다. 그러니 베어 죽여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그 강박과 위기감이 남자의 손을 더 빠르게 했다.
……그렇게 빨라진 손조차 늦었다. 이미 공격의 기척을 느끼고 있던 미아는 몸을 돌리며 칼을 휘둘러 남자의 칼을 쳐냈고, 너무 커다란 힘의 차이에 남자의 칼이 하늘로 튀었다. 그렇게 된 순간 남자의 몸을 지켜줄 방어수단은 모두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
미아는 검을 꽂은 뒤 남자의 배를 가르며 몸을 발로 차냈다. 순식간에 내장이 전부 반토막이 난 남자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절명했다. 이어 미아는 처음에 칼을 빼앗았던 남자의 목을 쳐 숨통을 끊었다.
자비? 그런 거 모른다. 타협의 여지를 생각해? 그 따위 것이 가능했다면 이렇게 살아왔을 리가 없다. 이 인간들은 자신에게 칼을 겨눈 순간부터, 아니, 자신을 약에 절여 납치하겠다는 생각을 한 그 시점부터 완벽하게 적이었다.
적은 절멸한다. 그것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미아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까 멈출 수 없다.
'이 놈들이 독단으로 벌인 일이라면 좋겠지만.'
단 둘을 죽인 것으로 끝난다면 너무나 행복하고 평온한 일이겠지. 그러나 그 따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싸우는 새에 도망친 문신사 여자들이 증원을 불렀는지, 어디선가 체중이 상당한 전투원들이 몰려드는 발소리가 났다.
'계속 알몸으로 싸우기는 그렇고.'
그들이 몰려드는 사이의 아주 잠깐의 여유. 미아는 쓸 데 없는 일을 하는 대신 옷을 챙겨입었다. 현재가 주문제작한 바니걸을 제대로 된 옷이라고 생각해도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내 몸은 현재 건데 허락도 없이 외간 남자에게 막 보여줄 수는 없잖아?'
약간 비틀리고 일그러진, 그런 연인으로서의 애정을 보이면서. 그녀는 여태까지 살아오던 중에 가장 절실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져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 싸움은, 현재가 바깥에서 포위 당한 미아를 발견할 때까지 이어졌다.
* * *
"살려주세요! 저희는 그냥 보스께서 기뻐하실 거라 생각해서!"
"싫어! 죽고 싶지 않아!"
동료인 조직원들의 손에 붙잡혀 온 문신사 2인방은 울며 루스키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결국 그들의 위를 타고 오르다 보면 최종적으로 지휘를 내리는 보스는 루스키였다.
"이것, 참. 괜히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저질러가지고는."
루스키는 말성을 부린 딸을 멋쩍게 혼내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곤란을 표시했다.
"참으로 면목 없는 부탁입니다만, 이 아이들의 목숨 정도는 살려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조직의 우두머리란 자가 제 부하를 휙휙 제물로 던져줬다고 소문이 나서는 곤란해서 말입니다."
조직의 위신, 보스의 권위가 손상되면 보스는 보스로서 있을 수 없었다. 적이 얼마나 강하다고 한들. 그렇기에 루스키는 어쩔 수 없이 현재에게 타협을 종용했다.
"그거야 네가 바치는 아티팩트에 따라 다르겠지."
"오, 마침 오는군요. 제 공물이 부디 마음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조직원이 가져온 아티팩트는 현재의 주먹 크기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구슬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스노우 글로브, 흔히 스노우 볼이라고도 불리는 투명 구슬 안쪽의 눈 날리는 미니어쳐를 보고 즐기는 장식품이었다.
'이런 걸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구에 있을 적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파는 한정판 전기쥐 스노우 볼이 대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현재는 그걸 보고 즐길 취미도 같이 좋아할 여자친구도 없어 그냥 넘어갔었지만 말이다.
루스키의 부하가 가져온 스노우 볼은 안쪽에 눈 날리는 설산이 들어있는 투박한 디자인의 물건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대자연의 장엄함이 느껴지는 듯해 나름의 멋이 있었다.
"그냥 예쁜 게 다는 아니겠지? 이 아티팩트의 능력이 뭐냐?"
"항상 차갑습니다."
"흠."
현재는 스노우 볼을 받아 손에 쥐어보았다. 꼭 영하 4도씨를 유지하는 냉동실처럼 차가웠다.
"얼음을 얼릴 수 있겠군."
냉동고는 커녕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는 세계. 이 아티팩트 또한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요리를 즐기는 현재로서는 매우 탐나는 기능이기도 했다. 박스 안에 넣어두면 냉장고 대용으로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를 만드는 데에도 써먹을 수 있겠지.
"근데 그게 다냐? 내 노예를 건든 년들을 살려달라는 것 치고는 터무니 없이 형편 없는 보상이로군."
그러나 많은 걸 받아내려면 절대로 만족한 티를 내서는 안되는 법. 현재는 일단 불만스러운 척을 했다. 미아를 덮쳐든 조직원들도 많이 죽었기에 루스키가 입은 피해도 상당했지만, 그럼에도 현재는 아주 뻔뻔하게 나갔다.
"설마 이런 정도로 내가 만족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엘프 노예 파탈리테를 공짜로 받은 것은 아예 잊어버렸다는 듯, 극한의 뻔뻔함을 보이는 현재.
"죄송합니다. 그림자에 숨어사는 별 볼 일 없는 늙은이인지라, 이것 이외의 아티팩트 따위는 가지고 있지 못하답니다. 대신, 귀빈께는 언제든지 이 거리의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즐기실 수 있게 이야기 해두지요."
밑천을 털릴 수도 있는 무리수였지만 루스키가 그렇게 판단한 것에는 근거가 있었다. 현재가 파탈리테를 만나기 전까지 그 어떤 노예에게도 깊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 거리에서 만난 노예가 아니라 진작부터 데리고 있던 미아라는 여자만 신경 쓰고 있다는 점, 괜히 처리도 곤란한 노예들을 대량으로 빼앗아가 팔 정도로 돈에 굶주린 인간은 아니라고 보이는 점 등이었다.
'이 아저씨가 아티팩트를 더 가지고 있을 것 같기는 한데.'
현재도 순진하게 루스키가 전부 진실만 말하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았으나, 이 이상 루스키를 자극해봤자 2차전이 시작될 뿐이라는 사실 또한 느끼고 있었다. 다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서야 파리안 소유의 상선을 타고 사흘 뒤에 다시 떠난다는 계획은 망가지겠지.
이곳이 황도이니 만큼 황실의 군대에 쫓길지도 모른다. 이만한 거리의 인원을 전부 도륙하고도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건 말이 안되는 생각이었다. 현재는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좋아. 하지만 저년들을 살려두더라도 아무 벌도 주지 않는 건 또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마침 떠오른 게 있는데, 이 정도 벌 쯤은 줘도 괜찮겠지?"
현재는 자신이 생각한 벌을 이야기했고 루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만족하신다면야."
현재는 일단 일행들을 바깥에 내보내두기로 했다.
"미아, 너는 얘 좀 데리고 바깥 거리에 나가서 뭐라도 사먹이고 와. 나는 그 녀석들에게 벌을 주고 있을 테니까."
현재는 미아에게 파탈리테를 맡겼다.
"얘는 누구야? 너무 귀엽다."
미아도 엘프 소녀를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파탈리테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리고 말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새로운 파티원, 겸 노예."
그렇기에 현재는 혹시나 싶어 경고를 더했다.
"혹시 피를 빨고 싶다고 해도 절대 대주면 안돼. 녀석은 인간을 잡아먹는 흡혈귀거든."
"흡혈귀?"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람을 덮치게 둬서도 안되고, 만약 못 막겠다 싶으면, 목을 쳐서 죽여도 좋아."
현재는 파탈리테에게 다 들리도록 경고성 발언을 덧붙였다. 아직 그녀의 성정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지만, 루스키가 했던, 생기를 빨아들이는 괴물이라는 경고는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나도 얘도 이 차림으로 나가면 다시 체포되고 말걸?"
미아는 바니걸, 파탈리테는 마이크로 비키니 차림이었다. 전례가 있는 만큼, 이대로 나가면 경비대에게 붙잡힐 게 분명했다.
"바니걸 장식품도 챙겨야 했지? 일단 들어가자."
현재는 미아에게 셔츠 소매를 본딴 커프스와 토끼 머리띠 등 미처 챙기지 못했던 바니걸의 풀세트를 챙겨주고선, 아까 샀던 로브를 입혔다. 파탈리테에게도 마찬가지로 대충 문신 영업소 안에 굴러다니던 로브를 주워입혔다.
'이거 왠지 코트 입고 야외 노출을 나가는 여자들 같아서 느낌 있는데?'
음흉한 속내는 입 밖에 내지 않으면서, 현재는 미아와 파탈리테를 거리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럼 이제 벌을 줘보실까."
현재는 굵고 기다란 손가락을 까딱이며 손을 풀었다. 문신사들은 그녀들의 몸으로써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히, 히익!"
"싫어어!"
그녀들의 비명은 가게 안에서 바깥까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