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47화 (47/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황도에서

* * *

경비대를 벗어난 두 사람은 의상점에 가서 겉에 걸칠 수 있는 여성용 로브를 하나 샀다. 경비대에서 받은 칙칙한 회색 로브를 버려버리고 화사한 빛깔에 아름다운 문양이 염색된 로브를 입으니 꼭 잘 나가는 마법사 같은 느낌이었다. 아쉽게도 이 세계에 마법사는 없지만.

"로브 위로도 확실하게 그려지는 가슴, 정말 최고다."

허리끈을 동여맨 덕에 로브로 얇은 허리라인과 그로부터 달라붙는 골반의 라인, 그리고 허리 윗쪽에 자리잡고 있는 가슴의 라인이 모두 드러났다. 현재는 곧장 로브 위로 보이는 가슴 라인 위에 손을 잡고 주물거렸다. 미아의 커다란 가슴은 언제 만져도 질리지 않고 마음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효능이 있었다.

"왜 남자들은 하루 종일 가슴을 만지고 싶어하는 거야?"

미아가 묻자 현재는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곳에 가슴이 있기 때문에?"

"하아……."

미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가슴을 못 만지게 막지는 않았다. 현재가 충분히 만족한 이후에 두 사람은 간만에 육지의 식당을 방문하고 후식으로 달달한 케이크도 한 조각씩 챙겨 먹었다.

"이제 또 맛집 기행이 시작되는 거야?"

현재는 새로운 곳에 가면 되도록 많은 요리를 먹어보고 싶어했다. 본인부터가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요리사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요리사로서의 직업병인지 선후관계는 명확히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현재가 서민 음식을 닥치는대로 먹어보는 일은 이제 무슨 통과 의례처럼 느껴졌다.

"아니, 지금부터 갈 곳은 이미 정해져있어."

하지만 현재의 오늘 일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현재는 마차 대기소에서 마차를 하나 잡고선 목적지를 입에 담았다.

"17구역 15번가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마차에 탄 미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디 가는 거야? 황도에 와봤을 리는 없고……. 케이트한테 물어봤어?"

미아는 그 말을 꺼내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케이트는 아주 이상하고 변태적인 여자다. 그녀가 알려준 곳이 멀쩡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주 이상한 것만은 아닐 것이었다. 케이트가 잘 나가는 길드의 간부라고 해도 영 신용이 안 가는 것은 다 그녀의 업보가 아닐까?

"미아야, 사랑한다."

"응?"

"사랑해."

"어어?"

미아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몇 번이고 했었지만 그럼에도 애정 표현이란 할 때마다 사람을 쑥쓰럽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완전히 뻔뻔스러워지기에는 그녀가 감정을 죽이고 산 기간이 너무 길었다. 이제서야 싹 틔워서 표현하기 시작한 감정은 늘 새롭게 그녀의 마음을 다시금 설레이게 만들었다.

"사랑한다고."

"너 뭔가 이상한 거 시키려고 그러지?"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 사랑의 증표를 남기려는 거야."

"뭔데? 말을 해줘. 그래야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냐."

"그냥, 배 위에 문신 하나만 새기자는 거야."

미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또 얼마나 부끄러운 걸 시키려는 거야. 진짜, 남 못 보여줄 그런 거 하려는 거 아니지? 문신은 지워지지도 않는 건데."

미아의 눈가에는 자그마한 물방울이 맺혔다. 3년동안은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면 참 눈물이 많은 소녀구나 싶어 현재는 조금 흠칫했다.

"아니, 진짜 예쁘게 잘 할 거야."

"내 배를 도화지로 써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물론이지. 가서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그만 둘테니까."

"그래. 내 몸은 다 네 거야. 마음대로 해."

미아의 말에 현재의 남성기에 피가 마구 몰려들었다. 바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자극이 너무 컸다.

'마차 안에서 하기는 좀 그렇지.'

현재는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불렀다. 대한민국의 무궁한 투쟁의 역사를 떠올리니 비장함과 함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현재는 그제서야 말을 이어 했다.

"그리고 사랑의 증표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나도 새길 거야."

"배 위에?"

"아니, 오른팔에."

"뭔가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데?"

"남자 배에 그림 그리는 건 좀 그렇고, 뭣보다, 이렇게 생겼는데."

현재는 웃통을 살짝 들어 배를 드러내보였다. 미아는 꽤나 자주 봐서 익숙한 복근이 보였다.

보여주기 위해 헬스를 통해 가꾼 아름다운 복근이 아니다. 실전에서 짐을 나르고 고블린을 죽이며 온갖 생고생을 하면서 만들어진 복근은, 여덟 조각을 가뿐히 넘었을 뿐 아니라 흉터와 잔근육의 발달로 인해 수십 조각으로 쪼개져 있었다.

"이런 데다가 그림을 어떻게 그리겠어."

"그건 그러네."

미아는 현재의 흉터를 쓰다듬으며 안타까워 했다.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연인의 몸에 그렇게 많은 흉터가 있다는 건 결코 즐거울 일은 아니었다.

"너무 부드럽게 쓰다듬지 말아줄래? 간신히 재워놨는데 또 서잖아."

현재의 성기가 반쯤 발기하려고 피가 몰려 딱딱해지고 있었다.

"미안."

미아는 손을 떼었고 현재는 다시 심중에서 애국가를 완창해야했다.

'내 몸엔 이제 흉터 하나 없는데, 현재는 저렇게 흉터 투성이네.'

미아는 이전에 죽을 뻔 했을 때 엘릭서를 마시면서 몸에 새겨졌던 모든 흉터가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질병도 고쳐준다는 신의 영약은 오래된 흉터도 예외 없이 고쳐버렸던 것. 베테랑 모험가임에도 그저 뽀얗기만 한 속살의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기가 마셨으면 좋았을 것을.'

모든 질병을 낫게 해줄 뿐 아니라 신체를 극상의 상태로 만들어준다는 엘릭서, 그렇다면 그걸 마시는 건 분명 어떻게든 수명을 늘려주겠지. 미아는 그런 귀한 엘릭서가 온전히 자신에게 사용된 것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로서는, 그녀 자신보다도 현재가 오래 살기를 바라였기 때문에.

'그런 귀한 것을 받았으니까, 내가 더 잘 해야지.'

엘릭서의 가치를 떠올린 미아는 이번 현재의 억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실은, 이러면서도 커플 문신을 새긴다는 것에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었다. 꺼려지는 점은 외모를 상당히 신경 쓰는 여성으로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배에 남는데 혹시라도 망쳐질까 두려운 것 뿐이었다.

'한 쌍…….'

불안과 두근거림을 품은 채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현재는 뒷골목을 따라 오래도록 걷기 시작했다.

"현재야? 왜 이렇게 깊숙한 곳으로 가? 나 왠지 뭐에 속고 있는 거 같은데."

"속고 있는 건 아니야. 물어보질 않았잖아."

현재는 작게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아니, 어디 가는지 물어봤었는데 네가 말 돌렸잖아. 왜 멀쩡한 대로변에 있는 가게가 아니라, 이렇게 안쪽으로 가는 거야?"

"가장 실력 좋은 기술자는 음지에 있는 법이지."

미아는 발밑에 채이는 전단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예 사고 팝니다.

이곳은 황도의 그림자 같은 곳. 가장 음침한 욕망이 모이는 거리인 블랙 마켓이었다.

* * *

현재는 슬쩍 깃털이 달린 가면을 꺼내 썼다. 가면이 그 덩치까지 가려주지는 못하겠지만, 일단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가려주었다.

뭐, 그 정체도 대충 숨겨주면 좋았겠다만은 이곳에서 가면을 쓰는 진짜 목적은 그와 다른 두번째 효과,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징표였으므로 그 효과만 누릴 수 있다면 정체는 다 숨기지 못한다 해도 좋았다.

그리고 아쉽게도 미아에게 줄 가면은 없었다. 사실은 현재가 신분이 없는 불법 체류자고 미아는 도시 아르젠타의 자유민이었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블랙 마켓에서 '그쪽 신분'을 물어볼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대부분의 마켓 이용자들이 바깥에서 귀족이면 여기서도 귀족, 바깥에서 노예이면 여기서도 노예였지만, 현재 만큼은 그 반대 역할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었다. 여기서 미아를 노예처럼 다룬다고 해서 바깥에 가서 상황이 역전될 일도 없으니.

미아는 목줄에 끌려 가는 수인 성노예를 보고 나서야 이곳이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눈치 챘다.

"현재야, 나,"

"여기 있는 동안은 주인님이라 불러."

"……."

왠지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미아는 작은 한숨을 쉬고 체념했다. 노예 취급을 한다고 자존심이 긁혀 발작할 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그냥 남자친구의 너무 하드한 성벽이 조금 버거울 뿐.

"로브도 다시 벗고."

미아는 허리끈을 풀고 로브를 벗어 현재에게 넘겼다. 여전히 속에는 그 문란한 바니걸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토끼귀를 흉내낸 머리띠. 그걸 보고 지나가던 가면 신사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다.

"이건, 대단한 취미군. 멀쩡한 인간 여자에게 수인 흉내를 내게 하다니!"

"신조차 모독하는 사상 최대의 신사야!"

"멋져. 정말 완벽하게 멋져!"

변태 신사들 사이에서 현재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어찌 저렇게 악독한 짓을 하는지 놀라 박수를 칠 정도였다.

현재는 우쭐해하며 미아를 데리고 마켓 안쪽의 건물로 들어갔다.

"목줄, 산책하기 좋게 긴 걸로."

간이 상점에서 노예용 목줄을 산 현재는 그것을 미아에게 채웠다. 목에 감기는 부분은 가죽이고 손에 잡고 끄는 부분은 체인으로 된 물건이었다. 미아는 얼굴도 다리도 겨드랑이도 다 까고서 이러고 있다는 것에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주인님, 취향이 너무 변태 같아요."

"그래도 사랑하지?"

"진짜 악질."

투덜대면서도 하라는대로 다 따라주는 미아를 보며 현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현재는 상점 주인에게 물어 원래 목표로 했던 문신사를 찾아갔다.

"그래서 여기는 누가 알려준 건데요. 혹시 케이트 그 여자?"

"아니. 친해진 선원 하나가 알려줬어."

"친해질 시간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요."

"너 잘 때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하길래 궁금해서 물어봤지."

미아가 너무 격한 정사에 지쳐 낮부터 기절하듯 잠들었을 때의 일. 그 과정에서 현재와 선원 사이에는 은화 한 닢이 오고갔다. 우정보다 더한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법이었다.

'의외네. 분명 케이트 그 여자 취향일 줄 알았는데.'

현재가 덮치기 전까진 순결한 처녀였던 케이트지만, 미아의 머릿속에선 이미 답도 없는 변태년으로 자리 잡았다.

"어서 오세요."

문신사는 젊은 여자였다. 자기 몸이 무슨 그래피티 용 담벼락이라도 되는지 온몸 곳곳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 퀄리티를 보니 이 가게의 실력이 확실히 보장되는 바, 현재는 바로 이곳에 일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또 이 곳은 문신사가 여자이기 때문에 자기 여자의 알몸을 다른 남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현재도 남자들에게 미아의 윗가슴이나 허벅지를 보여주는 정도는 괜찮았지만, 진짜 은밀한 곳까지 다 보여주거나 손을 대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커플로 문신을 새기고 싶은데."

현재가 얘기하자 문신사는 도안을 여럿 보여줬다. 하지만 현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던 바로 그 디자인은 도안 중에 없었다.

"내가 직접 그려도 될까?"

"그려요? 여기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내가 그리지 않으면 모르잖아?"

"그러시다면야."

문신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종이와 펜을 넘겼다. 현재는 종이에 대고 일필휘지로 미아의 배에 새겨질 문신과 자신의 팔에 새겨질 문신 도안을 그려냈다.

"오……."

"이런 재주도 있었어?"

문신사와 미아 모두가 놀라 감탄했다.

신의 은총인 상태창, 그 중 솜씨라는 능력치는 손으로 부리는 거의 모든 재주에 관여한다. 요리에도 그랬고, 그림에도 그랬다. 그런 솜씨가 초월자의 반열에 든 현재는, 디자인의 창의성은 몰라도 그림을 그리는 기술 하나 만큼은 초일류라 부를 수 있는 영역에 있었다.

문신 디자인은 이미 이전에 인상 깊게 봐두었던 것이 있었으므로 굳이 창작해낼 필요는 없었다. 기억대로, 아니면 기억 이상의 것을 그려낼 뿐.

현재의 팔에 들어갈 문신은 열쇠, 현재의 팔이 크고 굵다고는 하나 배에 비하면 협소한 공간이기에 화려한 특색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대신, 짝이 될 문신과 같이 아름다운 날개가 옆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아의 배 위에 들어갈 문신은 자물쇠, 하트 모양의 자물쇠 아래로 교차하는 장미 문양이 들어가고 양 옆으로 펼쳐지는 날개를 표현했다.

"좋은 도안이네요. 새기는 보람이 있겠어요."

"일정은 비어있나?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건가?"

"돈만 지불하신다면야."

"운이 좋네."

현재는 선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시술실에 들어갔다. 배에 문신을 새겨야 하는 미아는 바니걸 복장을 벗고 침대 위에 누워야 했고, 팔에 문신을 새기는 현재는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받침대 위에 팔을 받치고 있었다.

마침 노는 문신사가 한 명 더 있었기 때문에 둘은 동시에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문신을 새기는 건 꽤 아프실 수 있답니다."

"괜찮아."

아픔을 참는 데에는 이골이 난 두 사람이었다.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을 때 두 사람 모두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에 문신사들은 놀랐다.

'이거 진짜 엄청 아픈 건데? 팔에 새기는 남자야 그렇다고 치고, 배에 새기는 여자도 이걸 참아?'

배는 거의 모든 동물이 급소로 여기고 되도록 숨기는 부위, 그런 부위에 아픔이 잔뜩 들어가는 데에도 참는 미아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심상치 않은데? 정말 그냥 노예일까?'

문신사의 그 궁금증은 얼마 안 가 해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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