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40화 (40/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 위에 올라탄 독사

* * *

아득히 머나먼 곳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곳이나 사람을 생각할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미아는 심리학으로 그걸 배운 것은 아니었으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현재가 머나먼 기억, 이 세계로 떨어지기 전에 살던 세계를 떠올리고 있음을.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이.'

그 커다란 키와 근육질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미아는 현재를 붙잡지 않으면 마치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씨처럼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이렇게 물었다.

"전에 살던 세계를 떠올리고 있어?"

현재는 흠칫 놀랐다.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을 텐데. 미아는 어찌 그 사실을 알아챈 걸까. 독심술이라도 익혔나? 마법은 유실되었다 해도 그런 능력의 아티팩트가 대륙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표정이 그래서."

그러나 미아는 어림짐작이었노라 답했고, 현재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납득했다.

'하긴, 이 세계 생각 아니면 지구 생각일 테니, 찍으면 50% 확률로 맞추는 거지.'

확률을 그렇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았으나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었던 현재는 대충 그리 납득했다. 그리고 미아는 또 물었다.

"만약,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바로 돌아갈 거야?"

미아의 물음에 현재는 1초도, 단 1초의 유예도 두지 않고 곧장 답했다.

"당연하지."

그것은 미아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지만, 예상하고 있음에도 마음을 할퀴는 대답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인데?'

만약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 선택이라면, 그 전에 분명 이 세계에서 가질 수 있는 것들과 지구로 돌아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을 저울질해야 할 터. 그리고 이쪽 세계의 저울에 올라가있는 미아는, 현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그런 대답으로 들렸다.

"질문은 그게 다야?"

"그래."

"그럼 왜 계속 뚫어져라 쳐다봐? 내가 너무 잘 생겨서? 몸이 좋아서? 꼴렸어?"

"뭐래."

현재의 자아도취적 우스개에 미아는 그제서야 시선을 돌렸다. 마음은 잔뜩 착잡한 채로.

'단 한 순간 머뭇거릴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

알고 있었는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그냥 쓰게 웃음지었다.

* * *

사흘이 지났다. 어제 하루종일 미아는 피가 새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그로써 생리가 끝났음을 확신했다. 그렇지만 뭐랄까. 이런 새로운 의문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었다.

'그게 끝났다고 현재가 알까?'

옆에 여자가 미아 밖에 없을 때였다면 풀 곳 없는 성욕 탓에 발정나서라도 매일 확인했겠지만은, 케이트라는 완벽한 성욕 배출구를 찾아버린 현재는 미아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간만에 성처리 업무로부터 해방된 미아는 편안한 선박 여행을 즐기고 있었지만, 그건 해방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박탈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걸까?

'아니 끝났다고 알면 어쩔 건데.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은 거 아냐? 나는 변태가 아니니까, 전혀 하고 싶지 않은걸?'

미아는 질리도록 봤던 케이트와 현재의 정사를 떠올렸다. 인간적이지 않고 두 마리 짐승인 듯 추한 행위. 애정도 뭣도 없는 주제에 끝없이 반복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을 리가 없다. 미아는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면서 잡념을 떨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 없이 케이트는 찾아와 현재에게 안겼고,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끈질기게 정을 나눌 수 있는지 경이로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모험가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탓인지 성에 상당히 개방적이었고, 미아는 여자 모험가들과 파티를 꾸리면서 그녀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접할 기회가 꽤나 있었다.

주워 들어 알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녀가 알기로는, 아무리 쿵짝이 잘 맞는 커플이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몸을 섞는 것만 해도 많은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와 케이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밤낮으로 박아대고 있으니, 그게 엄청 신경 쓰이는 건 분명 신기함과 한심함 탓이라고 미아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그리 새겨넣었다.

두 짐승이 서로 몸을 섞는 꼴을 더 보기 괴로웠던 미아는 선실을 나와 갑판 위로 올라섰다. 운하 위를 부는 순풍은 잔잔했다. 돛을 밀어내 배를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서 노잡이들을 힘겹게 하는 선선한 바람은 부드럽다 해야 할지 잔인하다 해야 할지.

갑판 바깥 쪽에서 넓은 운하의 푸른 물을 바라보는 미아에게 갈색 수염의 중년인 선장이 다가왔다. 항상 현재를 옆에 끼고 있었으므로 단둘이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외로워보이시는구려. 애인에게 소박이라도 맞으셨소?"

"……애인 아니에요."

"남녀 사이에 같은 방을 쓰시면서? 아, 애인이 아니라 부부시라는 뜻이신가?"

"부부도, 아니에요."

누군가 현재와의 관계를 물으면 미아는 항상 대답이 궁했다.

"그냥 모험가 동료랍니다."

지금 설명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 뿐. 그 이상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고, 그 이하로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려. 이렇게 아리따운 처자를 그냥 동료로만 볼 수도 있는 것이오?"

그래. 했다. 했어. 선장은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쓸 데 없는 소리만 해서 미아는 짜증이 났다. 주책 맞은 아저씨는 괜히 미아의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건 두 사람만 아는 일이겠지. 그렇다면 됐고. 외롭고 심심하시다면 선원들과 카드 놀이라도 해보시는 게 어떻겠소? 이렇게 바람 잔잔한 날엔 갑판을 많이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어서, 시간 떼우기에는 이골이 난 놈들이 잔뜩 있소. 같이 놀다 보면 분명 재미 있을 거요."

선장은 선원들이 노는 판에 미아를 초대했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하게 배 위에 올라탄 이방인에 대한 배려일까? 미아는 선장의 초대가 자신을 여자로 보았기에 찾아온 것이라고 어렴풋이 눈치챘다.

물론, 당연한 얘기기는 하다. 물은 물이니까 물로 보고 돌은 돌이니 돌로 보고, 여자는 여자니까 여자로 본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건 예쁜 여자로서 분위기를 띄워주길 바라며 초대하는 거라면 미아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배려해주신 건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러신가? 그렇다면야."

선장은 애초에 강권할 생각은 없었는지 시시하게 물러섰다. 그런 미아에게 선장에 이어 건장한 선원 남성 몇 명이 찾아와 말을 걸었지만, 미아는 시큰둥하게 단답을 하며 다 쫓아내버렸다.

겨우 모두 흘려보내고 혼자 남아 운하 너머로 보이는 산들의 윤곽을 보며 미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단 말야 바보야. 정말 내버려두면 누가 채갈지도 모른다고?'

그건, 여러 의미로 현재 앞에선 절대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쓰레기 같네. 나는 정말로.'

혼자 풍경을 보며 사념에 잠겨 있던 미아는 자학했다.

'죗값을 치르겠다고 따라왔으면서 애인이라도 된듯이 굴고. 아주 웃겨. 역겨워.'

현재가 그녀에게 마음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당연했다. 몇 번이고 품었던 친애 이상의 감정을, 철저하게 짓밟아 부쉈던 것이 바로 그녀이니까.

사람의 애정이란 무한한 것이 아니라서,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당연하게도 말라버리고 만다. 모두에게 무한한 애정을 뿌릴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신인 거겠지.

'아프다……. 아픈데……, 아픈 건 당연한 거야. 나는 아파야 해. 그게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이니까.'

미아는 조금 오래된, 현재가 눈에 총기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 * *

이것은 꽤나 먼 과거의 이야기. 현재가 이 세계로 떨어진지 1년 정도 됐을 때의 이야기였다.

신의 은총이 없는 탓에 남들 만큼 튼튼하지 못했던 현재는 풍토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그리고 그런 현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준 것은 미아였다.

죽을 먹여주고 땀을 닦아주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주며 심지어는 똥오줌까지 받아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현재는 스스로는 화장실도 가릴 수 없을 만큼 너무 크게 아파버렸던 것이다.

일주일의 사투 끝에 현재는 간신히 회복했고, 미아에게 무한한 감사함과 동시에 이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어떤 감정을 품고 말았다. 그동안 그녀가 현재를 대하는 태도는 꽤나 가혹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기반에 호의가 깔려있다는 것 쯤은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랑했다. 이 세계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 던전에 갔을 때였다. 미아의 파티는 도적들과 조우했다. 도시로 돌아가던 도중 노숙 캠핑을 했는데, 피워놓은 불빛 때문에 위치를 특정당해 습격 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가 인질로 붙잡혔다. 도적들은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걸 요구했다. 그래서 미아는 대답했다.

좆까. 죽이고 싶으면 죽이지 그래?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얼간이는 구해줄 생각도 없는데?

그리고서 시작되는 학살. 미아는 표리일체인지라 항상 말했던대로 남을 베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싸움 안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만! 그만 움직이라고! 정말 네 동료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

절규하는 도적을 무시한 채 미아는 도적의 동료들을 갈아버렸고 그는 절망에 빠졌다.

너라도! 너라도 데려가야겠다!

그리고 후벼파는 칼, 현재는 목에 바람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의 목에 바람 구멍을 뚫어준 남자의 허리춤에 목숨 구멍이 뚫렸다. 그곳으로 생명이란 것이 빠져나가버린 탓에, 남자는 스르르 허물어지듯 자세를 낮게 했다.

현재는 몸이 떨렸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죽을 뻔 했다. 목에 바람 구멍이 뚫린 위치가 조금만 옆이었다면, 목의 동맥을 깊이 패이기라도 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황천행 익스프레스가 예약된 상황이었다.

그 목숨을 구해낸 것은 미아의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자비 따위 베풀지 않는 손속의 잔인함 덕분이었다. 어설프게 도적을 죽이기를 망설였다면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 중에 현재도 포함되었었겠지. 비록 현재가 죽을 확률이 반절 정도는 되는 도박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선택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이었으리라.

고마워.

그래서 현재는 목에 바람 구멍이 뚫려 숨을 색색거리는 와중에도 간신히 힘을 끌어모아 감사를 표했다. 훈훈할 뻔도 했던, 어쩌면 훈훈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장면이었다.

그러나 미아는 상황이 그렇게 훈훈하게 돌아가게 두지를 않았다.

고맙다고? 미안한 게 아니라 고마워? 이렇게 아군의 짐덩이가 되어 놓고, 여유롭게 고맙다는 말이 나와?

여유로울 리 없었다. 목에 바람 구멍이 난 상황. 당장 치료가 필요함에도 일단은 고맙다고 말했다. 쥐어짜낸 용기로 간신히 침착하며 말한 감사에 미아는 너무도 잔인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고마우려면 일단 한 사람 몫은 하고 말했어야지. 붙잡혔으면 어떻게든 알아서 탈출했어야지.

하지만 난 은총도 없고.

은총이 없으면? 그렇다고 이 도적이 괴물이라도 됐어? 약점 많은 인간이잖아. 붙잡힌 채로 불알을 차든 옆구릴 찌르든 약점을 노려 벗어났어야지. 붙잡혀 구해주기만 기다린 주제에 고맙다는 말이 나와?

도적은 살인을 저지를 각오가 있었고 현재에게는 없었다. 도적에게는 싸울 용기가 있었고 현재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현재는 혼났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마음이 부서질 정도로 욕을 먹었다.

목에 바람 구멍이 났다.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고 절망에 가까운 공포를 느꼈다.

겨우겨우 찾아온 안도감에 감사를 말했는데, 돌아온 건 모욕과 멸시 뿐이었다.

미아는 정말로 현재를 혐오하는 듯 보였고 정말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나 싸늘한 지적이었다.

아무리 미아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들, 방금 정말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사람에게는 조금은 친절해도 좋았을 텐데.

여태까지 단단히 벼려 오기라도 했다는 듯이 냉철하게 모욕을 퍼부었다.

현재의 마음이 꺾였다. 그 너무 잔인한 말들에게.

'약하면 안돼 약하면 안돼 약하면 안돼. 기대면 안돼 기대면 안돼 기대면 안돼.'

사람의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겁먹어서는 안된다. 누군가에게 기대서는 안된다. 사랑해서는 안된다.

약한 자에게 그 모든 것은 사치이기에, 현재는 자신의 마음을 도려내야했다.

미아가 시키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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