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별 거 아닌 잡학사전 : 튜닉 -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엄청 오버핏 티셔츠 쯤으로 생각하면 얼추 비슷할지도?
이처럼 미아 기본 복장은 수수하고요 대신 던전 갈 때 입는 원피스는 쫌 이쁩니다. 바니걸은 잠시 후에 재등장합니다. 많이 나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 위에 올라탄 독사
* * *
"당신은 주인님의 뭐죠?"
둘만 남겨졌을 때 케이트는 미아에게 대뜸 물었다. 미아는 꽤 당황스러웠다.
'진짜로 주인님이라 하는구나.'
현재한테 맞기 싫어서 복종하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짜로 주종 관계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한 패라고 생각해서 경계하는 건가?'
이쪽이 훨씬 그럴 듯한 가설이지만, 어째서인지 전자가 정답인 듯한 느낌은 무얼까. 그러나 케이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미아는 어제부터 계속 케이트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미안해요."
"뭐가요?"
"저 인간이 저렇게까지 삐뚤어진 것은 제 탓이라서, 쟤가 저지른 모든 죄는 저 또한 똑같이 짊어져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미안해요."
미아는 죄책감을 느꼈으나 그것을 속죄할 방법 따윈 알지 못했다. 저 만큼 상처 입은 사람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그 사과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사과하고 싶었다.
말하지 않으면, 케이트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현재에게 향하는 원망은 자신도 똑같이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인님께 영향을 잔뜩 준 건 나니까, 너 따위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데 미아의 말을 케이트는 아주 심각하게 곡해해서 알아들었다.
"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면 그렇게까지 뒤틀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 진심으로 묻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그 말이 그렇게 들리는 거죠?"
"저와 주인님이 맺어지는 내내 부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셨잖아요? 제가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할 줄 아셨나요?"
"아니, 내가 언제?"
미아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맞았지만, 그것은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것 밖에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게 왜 대체 어떻게 하면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버려질까 불안하신 모양이죠? 제 쪽이 훨씬 매력적이니까."
케이트의 말에 미아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이쪽도 어지간히 망가진 인간이구나. 여기도 저기도 다 상처 투성이인 사람들 뿐인가 봐.'
그래, 그림자 없는 인간이 얼마나 있겠느냐. 다들 하나 둘 쯤은 비틀린 부분을 안고서 살아가는 것을. 미아는 그렇게 케이트를 이해하기로 하고, 현재가 지목했던 옷가지를 들고 갈아입기 시작했다.
"흥, 시골 촌뜨기다운 복장 그 자체네요. 속옷까지도 빠짐 없이 말이에요."
케이트가 코르셋에 끈팬티라는 다소 파격적이고 세련된 속옷을 갖춰입은 것에 비해, 미아의 속옷은 그저 위생상 그리고 기능상으로 필요한 속바지와 슬리브리스라서 빈말로도 남자가 좋아할 만한 옷은 아니었다.
하루종일 걷고 움직이고 싸우는 미아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케이트가 보기에는 꾸밀 줄도 모르는 촌뜨기에 얼간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아는 살짝 열이 받았으나 역시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방금 현재의 죄를 같이 짊어지니 어쩌니 생각해놓고 조금 긁혔다고 발끈하기에는 무언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옷에 그런 속옷이면 벗기다 말고 팍 식어서 음심도 다 죽겠어요. 왜 주인님이 당신을 그냥 방치해두고 저한테 손을 대셨는지 아주 잘 알겠네요."
대꾸하지 않자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우쭐거리기 시작하는 케이트. 미아는 팍팍 긁히니 왠지 열이 받아 이렇게 대꾸하고 말았다.
"그냥 생리 중이라 배려해주는 거 뿐이거든? 피 나오기 전에 대체 얼마나 붙잡고 놔주질 않는지 정말 속이 다 허는 줄 알았다니까?"
미아는 말하고 나서 아차싶었다. 이걸 왜 자랑하듯이 말해버린 것이지? 자랑거리는 커녕 비밀로 숨긴 채 무덤까지 가져가도 모자랄 이야기였는데. 뭔가, 선택 받지 못하는 게 여자로서 실격이라는 듯 모멸하는 케이트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고 말았다.
"역시 주인님께 집착하고 있었군요! 이 암캐가!"
'정신병자인가?'
뭔가, 말을 섞을 때마다 말려드는 느낌. 미아가 황당해 하는 사이 케이트는 미아의 뺨을 때렸다.
"엥?"
결코 힘을 빼지 않은 진심 싸대기였다. 생의 반을 던전 안에서 보낸 미아로서는 장난 같이 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케이트로서는 진심으로 때린 것이었다.
"이제 주인님의 총애를 받는 건 저니까, 알아서 기란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또 뭔가 우쭐하는 케이트. 미아는 너무 한심해서 뭐라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미아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그나마 대답이 될 만한 후보를 추려냈다.
'설마, 현재가 아침부터 내 옷을 챙겨주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질투라고 하는 감정. 그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현재에게 강간 당해 울분에 차 하는 행동이라기엔, 그 입에 담는 말들이 너무 심하게 어긋나있었다.
"……당신 정말 저 인간이 마음에 든 거야?"
"그래요. 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제게는 저를 소유해줄 주인님이 필요했었다는 걸. 그리고 주인님은 정말 완벽한 주인님이세요."
황홀한 듯 도취되어 중얼거리는 케이트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목을 졸라서 기절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한 탓에 뇌가 고장난 게 아닐까. 미아는 진지하게 케이트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네."
마저 원피스를 챙겨입는 미아에게 케이트가 또 시비를 걸어왔다.
"그 태도는 뭐죠? 꼭 자기는 주인님께 아무 감정도 없다는 듯이. 남을 볼 때 불쌍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내려다 보지 마세요. 같은 물건 주제에."
진작에 눈치 챘어야 했겠지만, 케이트는 미아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 이유는 현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인 모양.
'미치겠네 정말.'
미아는 현재와의 이 복잡하고 뒤틀린 관계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숨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좋고 싫음 따위로 구분해 나눌 수가 있을까. 이 관계는 너무 끔찍할 정도로 복잡하게 꼬여 있는 탓에 하나하나 풀어 설명하다가는 잘못 매듭지어져 이제 칼로 도려내는 수 밖에 남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그냥 현재에게 한 없이 미안할 뿐이야. 그 애가 처음 만난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말할 염치 따위는 없고, 그렇기에 그 마음은 영원히 몰래 숨겨야 한다. 하지만 케이트는 그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았는지 끊임 없이 미아를 추궁해왔다.
"정말로 미안함 말고는 아무 감정 없다고요?"
"그래."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냐."
"그럼 제가 완전 주인님의 마음을 다 빼앗아가 버려도 아무 상관 없는 거겠죠?"
"그래."
차라리 현재가 누군가와 사랑에 푹 빠져, 어딘가에 정착하고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미아는 그렇게 진심으로 바라였다.
이 어딘가 망가진 여자가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아니, 그런 여자가 진짜 현재 취향인가?'
전날, 케이트를 괴롭히며 환희에 찬 얼굴 표정을 지우지 않던 현재의 얼굴이 떠오르자 미아의 가슴이 바늘로 찔린 듯이 어딘가 콕 쑤셨다.
왜냐하면 자신과 할 때는 그런 즐거운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면, 정말로 자신이 여자로서의 매력에서 진 것일까?
'아니, 뭐 그런 걸 생각하고 그래. 지면 어쩔 건데. 어차피 사귀자고 할 것도 아니면서.'
그런 말을 할 거라면, 3년 전에 했으면 좋았겠지. 물론, 3년 전에 만나자마자 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러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다른 방식으로 그를 대해왔었다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진 않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미아는 그대로 방문 앞까지 뚜벅뚜벅 걸어가 문을 열고 기다리던 현재를 불렀다. 그는 복도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갈아 입었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미아가 입을 열고 나서야 현재는 눈을 떴다.
"그러니까 이제 좀 여자 같네."
여태까진 여자 같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여자에게만 있는 부분을 실컷 쑤셔놓았던 주제에, 현재의 너스레에 미아는 기가 찼다.
"만족했어?"
"그럼 그 옷은 일단 챙기는 걸로 하고, 다른 옷도 보자구."
두 사람 사이에 케이트가 불쑥 끼어들면서 콧소리를 더해 애교를 부렸다.
"주인님~."
유현재(24세/성격파탄자)에게 주책을 부리는 케이트(25세/상업 길드 간부)의 모습은 꼭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그녀는 어느새 양손에 옷을 하나씩 집어들고 와선, 꼭 남자 친구와 쇼핑을 나온 아가씨처럼 이렇게 물었다.
"저한텐 어느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으세요?"
현재는 미아와 케이트를 번갈아봤다. 미아는 냉혹한 전투기계인 주제에 얼굴은 강아지 상에 가까운 어려보이는 얼굴이라 뭐든지 귀여운 옷이 딱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케이트는 얼굴만은 냉정하고 이지적인 고양이 상의 미인이라서 귀여운 옷보다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가씨 옷이 훨씬 잘 어울릴 듯 했다.
'이렇게 도도하게 생겨가지고는 속은 괴롭혀주면 좋아 죽는 마조히스트라니.'
현재는 새삼 겉모습 따윈 사람을 판단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노예 암컷한테 알몸보다 더 어울리는 복장이 있겠어?"
현재는 오른손의 검지 중지로 케이트의 이마를 퓩 밀어내며 그리 말했다. 그리 힘을 세게 준 것은 아니었지만 버티지 못한 케이트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물러서야 했다.
"정말, 너무하세요."
"너무하기는, 그럼 왜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현재의 말대로 케이트는 모멸 당한 것이 너무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녀는 지적 당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 주인님……. 저 몸이 아직 뜨거워요."
현재는 케이트의 꼴이 너무 우스워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렇게 쉬운 여자를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도 잡아 채가지 않고 있었다니? 겨우 하루 몸을 섞었다고 이렇게 패배 복종 선을 하는 미친 여자가 있을 거라고는 정말 단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참아. 언제 할지는 주인인 내가 정하는 거야. 노예인 네가 정하는 게 아니고.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말하면서 케이트는 허벅지를 배배 꼬았다. 아무래도 몸이 뜨겁다는 말은 정말로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러 애를 태울 작정으로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여전히 행거 위를 가득 채운 옷들을 둘러보며 살폈다. 미아에게 입힐 옷을 더 물색할 셈이었다.
'진짜 이상한 옷도 많네.'
비슷한 점도 정말 많지만 일단은 다른 세계인지라, 개중에는 현재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의 옷도 있었다. 어깨뽕이 럭비공만하든지, 바지가 무슨 시골 할머니들 입는 몸빼 바지처럼 생겼다든지. 아니, 이러면 정말 지구랑 엄청 비슷한 건가? 아무튼 현재의 관점에선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그런 옷들이.
"그럼, 이것도 입어봐."
"이게 평소에 내가 입던 옷이랑 뭐가 다른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시끄러워. 패션의 패 자도 모르는 녀석 같으니."
현재가 멜빵 바지를 들이밀자 미아는 의문을 표했다. 물론 현재가 패션에 대단한 조예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그가 말하는 패션의 기준이란 바로 자신. 그냥 자기 취향대로 미아의 옷을 고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주인님, 그럼 이 옷하고 이 옷은 어때요?"
케이트는 아직 포기 안했는지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옷 두 벌을 들고 와서 현재에게 물었다. 현재는 대답했다.
"노예한테 가장 어울리는 복장은 알몸이라 했잖아. 이제 됐으니까 침대 위에 가서 홀딱 벗고 엉덩이나 쳐들고 있어."
"녜에."
발음을 잔뜩 우그러뜨리며 대답한 케이트는 명령 받은대로 다 벗고선 엎드려 엉덩이를 쳐들고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현재는 미아에게 또 다른 옷을 대보면서 고르고 있었다.
케이트는 금방이라도 현재가 미아의 옷을 고르는 일을 끝내고 자신에게로 와줄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보고 꼴려서 덮치려고 그런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앵기는 게 귀찮아서 치우려고 기다리게 시킨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 어떻게 저렇게 무정하신지.'
그러나 놀랍게도, 중증 마조히스트인 케이트는 이렇게 심한 취급을 받는 것에 모욕감과 함께 흥분까지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