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5연참 끝....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응애 추천조
배 위에 올라탄 독사
* * *
케이트가 챙겨온 것은 아주 귀한 술인 브랜디였다. 포도주를 증류해서 맛과 향, 알코올의 순도를 높이고 다시금 숙성시키는, 한 마디로 포도주의 진화 형태인 술이었다.
'엄청 비싼 거지만,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겠어?'
이 세계에서 브랜디란 대상인이나 귀족의 식탁에나 겨우 올라가는 물건. 케이트 또한 대상단의 간부인 만큼 일반인은 구하기도 힘든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애주가는 아닌 그녀이기에 사실 마시기보다는 팔기 위해 가지고 있는 상품이었으나, 때로는 선물이 판매보다 더 큰 이득을 안겨준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나를 꼬셔보고 싶은 모양이니 구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잡아먹기 위해 시작한 싸움, 잘못하면 잡아먹힌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지 아니하던가? 케이트는 기사가 전장에 서는 마음가짐으로 이 술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로 다채로운 과일 안주와 질 좋은 육포가 깔렸다. 이 이상의 안주는 사족이라고 느껴지는 듯 심플한 구성. 그러나 귀한 술을 뜯는 이상 안주보다는 술의 맛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케이트의 생각이었다. 현재 또한 그렇게 느꼈고.
"자, 먼저 한 잔 따라드릴게요."
정장 비슷한 느낌으로 조이는 치마를 입은 케이트는 테이블을 기준으로 현재의 90도 정도 꺾인 위치에 앉아 술을 따랐다.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여자의 위치라기엔 너무 멀었고 동등한 대화 상대라기엔 너무 가까웠다. 제대로 대등한 관계였다면 아마 마주보고 앉았겠지. 그러니 저런 애매한 위치에 앉아있는 것은 그녀 나름의 줄타기였다.
선을 넘을 듯, 말듯, 여지를 줄듯, 말듯.
'발을 빼지도 않지만 대신 쉽게 넘어오지도 않는다는 건가? 재밌네.'
그 모습이 흡사 애완 고양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았다. 다가가려 하면 도망가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와서 툭툭 건드리는,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거리감. 밀고 당기기라는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케이트가 생각하는 매력이라는 것.
"나만 먼저 마시면 재미 없지. 같이 건배하자."
현재 또한 케이트의 잔을 채워주었고 두 사람은 건배를 했다. 짠. 유리잔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객실을 채웠다.
그 와중에 미아는 침대에 앉아 케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술 자리에 낄 수는 없었다. 현재는 침대를 등지고 있어 그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케이트는 확실하게 그 시선을 느꼈다.
'자기가 남편을 간수 못하는 주제에 왜 나한테 눈을 부라려? 기분 나쁘네. 이런 남자 줘도 안 가지거든.'
케이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으나 입 밖은 커녕 얼굴 표정에도 드러내지 않았다. 한 편 미아는 이 상황이 매우 껄끄러웠으나 경거망동하기에 애매한 것이 현실이었다.
'윽, 속도 울렁거리고……, 최악이야.'
부인도 아니요, 애인도 아니요, 친구조차 아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따라야 한다는 그녀가 만들어 강요한 철칙 탓에 미아는 현재를 말릴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정의를 따르라느니 선을 지키라느니 하는 말을, '이제 와서' 한다면 그건 역겨움 이외의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 테니까. 첫 단추를 잘못 꿰었으나 그 뒤 단추도 모조리 비틀어 꽂힌 까닭에 되돌리기가 불가능한 그런 지경이었다.
어쩌면, 조금만 용기를 내어본다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므로 미아는, 오히려 케이트를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홀딱 넘어가지 말라고. 아니, 잠들거나 쓰러지지도 말라고. 그리 하면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훤히 보이는 듯 했으니까.
'그래도 길드장 님이 보내신 사람인데,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지. 않겠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케이트는 그런 미아의 속도 모른 채 경계를 하고는 있으나, 어설픈 정도의 경계 밖에는 하지 않았다. 화간이 아닌 강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치 않은 것이다. 술김에 슬그머니 몸을 허락하는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괜찮으리라고 어정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현재의 본색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저 터질 듯한 치마 아주 느낌이 좋네. 한국에 있을 땐 질리도록 보던 건데. 이곳에 와서는 전혀 본 적이 없으니까.'
현재는 케이트의 옷차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잔을 채운 브랜디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현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좀 잘 나가는 모험가인데, 던전에서 찾은 보물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
그는 꼭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는 듯이 별 것 아닌 듯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초고가의 보석을 휙휙 꺼내들었다. 물론, 사실은 던전이 아니라 황녀의 짐마차에서 훔쳐온 장물들이었다.
장물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분해서는 안됐다. 특히, 중앙집권 국가는 아니라고 해도 일단은 만인지상이란 신분을 지니고 있는 황제의 보물이라면.
이렇게나 커다란 다이아몬드나 영롱한 사파이어 등, 값이 어마어마할 것이 확실한 보물들이다. 그 이름값이 있는 만큼 금방 그 정체도 유통 경로도 드러나고 말 것이었다.
그러니 현재는 이것이 장물이라는 것도 밝힐 생각이었다. 물론, 이야기가 잘 진행된 후에 말이다. 지금 그가 이 보물들을 꺼내는 것은 일종의 낚시 같은 일이었다. 미끼를 끼워 낚싯줄을 드리우는 행위.
그것이 독이 잔뜩 발린 미끼라는 것도 모른 채 케이트는 덥썩 물어버렸다. 물 수 밖에 없었다. 물지 않기에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보석들이었다. 세공한 솜씨마저 범상치 않아 결코 평범한 물건이 아니란 것은 알아챘으나, 던전의 보물이라는 말이 그 눈을 가렸다.
던전의 보물은 즉 신의 애장품이다. 어찌 인간이 신의 기술을 따라갈까? 그렇기에 던전에서 나온 보물이라고 하면 아무리 대단한 보물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대단하지 않은 경우에나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지 대단할 수록 더 잘 믿게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 대어다!'
케이트가 현재를 보는 눈빛에 애정이 잔뜩 묻어 뚝뚝 떨어져나왔다. 물론 여자로서 남자에게 보내는 애정은 아니었다. 장사치가 제 상품에게 보내는 눈빛, 성공적인 상행이 끝난 후에 돈을 세며 느끼는 그런 금전적인 애정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낚싯대를 들이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 그러나 주도권은 역시 현재에게 있었다. 케이트는 현재에 대한 정보를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리고 호기심에 가득 찬 상태니까.
'얼마나 더 많은 보물을 품고 있는 걸까?'
"일 얘기만 하면 심심하니까, 마시면서 하자고, 마시면서."
현재는 케이트에게 두번째 잔을 권했다. 호감을 사기 위해, 또 마시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으리란 확신에 케이트는 잔을 받아들었다. 술이라면 나름 경험이 있는 바, 브랜디가 그냥 포도주에 비해 독하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맨정신이라고 확신하는 그녀였다.
술이 넘어간 후, 그녀는 기대감을 부풀리며 물었다.
"혹시, 아티팩트인가요?"
신의 애장품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이제는 유실되어 그 어떤 인간도 다룰 수 없는 '마법'의 힘을 지닌 물건. 이 아름다운 외관에 마법의 힘까지 있다면 그 가치는 천정부지를 넘어 부르는 게 값인 수준까지 치솟을 것이 뻔했다. 이 목걸이 하나로 이 배 뿐 아니라 배에 실린 짐 모두를 사고도 모자라 같은 상선을 몇 개나 구매해 상단을 꾸릴 정도의, 그런 대단한 보물.
"아티팩트는 아니야."
현재는 부정했으나 그렇다고 케이트가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사실, 이게 아티팩트라는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아티팩트가 아니라도 이미 대단한 보물이네요. 이 정교한 세공, 꼭 황실의 전속 기술자가 새긴 것 같아요."
'눈썰미가 엄청 좋은데? 아니, 그냥 칭찬으로 띄워준 건가?'
현재는 잠깐 보석 어디에 황가의 문장이라도 새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일단 황녀에게서 빼앗아온 장물임을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사실 들키더라도 그다지 문제가 되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몸에 넘치는 힘이 있으니 감히 그 어떤 존재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이런 귀한 물건이라면 아예 상단을 하나 꾸린 후에 도시간 무역을 벌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죠. 그런데 그런 큰 돈을 저희에게 투자하신다고요?"
케이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일에 열정적인 여자는 역시 매력 있구나. 현재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건 제법 하지만 돈놀이엔 젬병이라서. 파리안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그녀의 길드라면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럼 어째서 길드장님과 만나셨을 때 직접 얘기하시지 않으시고?"
케이트는 매우 합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잘 모르지만 파리안과 무슨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길드 간부인 자신보다 길드장인 케이트와 직접 얘기하는 게 훨씬 확실하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다기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물론 그 이유는 파리안과 만나던 도중엔 이런 보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 길을 가다가 마주친 황녀의 마차에서 강탈한 보물이니까.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었기에 현재는 그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너무 친한 사이니까 오히려 일을 맡기기 껄끄러운 거지. 혹시 일이 잘못됐다고 해서 사이가 틀어지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잖아? 사업 파트너는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 좋아. 신뢰는, 이제부터 쌓아가면 그만인 거고."
케이트는 현재의 흥미 본위로 일 벌이는 성격을 파악했다. 이런 모험은 보통 강심장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패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 전부를 내던질 수도 있는, 평범에서 많이 벗어난 미치광이 같은 사람. 그것이 케이트가 바라본 현재의 모습이었다.
실제로는 처리 곤란한 장물이라 딱히 맡길 곳도 알지 못하는 데다가, 황실에서 추격자가 온다 한들 가뿐히 물리칠 자신 있는 현재가 짊어지는 리스크는 0이었지만, 아직 케이트는 그런 뒷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흥미를 위해 다른 많은 걸 희생할 수 있는 성격이란 통찰은 그리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정확히 투자하실 견적과 투자하실 부분을……."
일 얘기로 넘어가려는 케이트의 입술을 현재의 검지가 지긋이 눌렀다. 상행 준비로 바빠 피곤했는지 약간 까슬하게 일어난 입술의 감촉은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입을 다물게 한 시점에서 현재는 손을 뗐다.
"술은 참 재밌지? 평소엔 철벽 같이 마음을 걸어잠그고 있던 사람도 이게 들어가면 속내가 술술 나오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일 얘기를 할 때 술을 마시나 봐. 상대의 속에 뭐가 있는지, 혹시 나를 속이려는 건 아닌지, 등 쳐먹으려는 건 아닌지,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 확인하고 싶은 거지."
현재는 이야기 하다가 미아가 어제 부린 주사가 떠올라 살며시 웃었다. 그건 정말이지 참 귀여운 광경이었다. 케이트는 현재가 쌓아가자고 한 신뢰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이해했다. 요약하면 술 먹고 놀자는 뜻이었다.
'취한 척은 하되, 진짜 취해서는 안돼.'
독한 브랜디를 큰 잔으로 두 잔 마셨다. 소주로 치면 한 병을 다 마신 셈이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고 있어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 이 너머로 가면 정말 알코올의 마법에 당하게 될 것이었다.
"알았으면 짠 하자."
현재는 다시금 잔을 채워 세번째 잔을 권했다. 그는 덩치에 맞게 술에 강한지 아직 멀쩡한 모습이었다. 개인 차는 있으나 어쨌든 몸이 크면 그만큼 피도 많고 장기도 커서 같은 술을 마셔도 덜 취하기 마련이었다.
케이트는 두 손으로 잔을 가리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척하며 슬쩍 발아래로 술을 흘렸다.
"잠깐! 동작 그만!"
그러나 현재의 눈썰미는 그 기술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그의 지적에 케이트가 손을 움찔거렸다.
"이 귀한 술을 그렇게 흘리면 쓰나. 흘린 만큼 채워줄 테지만, 조심하라고."
현재는 씨익 웃었다. 그건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케이트는 술에 취하지 않는 한 가지 비법이 막힌 것을 깨달았다.
이 남자는 기어코 자신을 취하게 만들 셈이었고, 그러지 않으면 일 얘기는 할 수 없으리라. 케이트는 그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지? 바로 들킨 걸 보니 다른 어설픈 속임수도 통하지 않을 듯 한데.'
큰 일을 맡아야 큰 이익이 떨어진다. 케이트는 현재의 투자를 꼭 잡고 싶었다. 그녀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