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23화 (23/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갑자기 온 손님

* * *

"빡센 일정이 될 거야."

현재는 미아에게 말했다.

"강행군이지. 마음대로 쉴 일 따위 없어. 몸 상태도 안 좋은 네가 괜히 따라올 것 없다는 이야기야."

잠시 이별하는 것이 아니다.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길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매우 담담하게, 어디 옆동네로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따라올 거야?"

'이런 몸 진짜 싫다.'

여자의 몸이라는 게 미아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여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형편 좋은 부잣집 아가씨나 귀족 영애라면 모를까. 고아 출신이지만 끝까지 몸을 파는 일 따윈 택하지 않았던 미아에게 있어 이 몸으로 얻은 이득보다는 괜히 휘말린 트러블이 훨씬 많았다.

신의 은총 덕분에 남녀의 힘 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신장 그리고 팔다리의 길이 차이에서 기인하는 리치 차이나, 달마다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아이를 배기라도 하면 꼬박 일 년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패널티 따위는 미아가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겨우 달거리 따위를 빌미로 이렇게 밀어내지는 것은 그녀를 너무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난 괜찮아. 너도 알잖아. 몇 번이나 이런 상태로 던전을 정복했던 걸."

신의 진노, 괴물 고블린들은 미아의 몸 상태를 고려해 나타나주는 친절한 적수가 아니었다. 때문에 미아는 때때로 몸이 안 좋아도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던전을 정복해야 했다. 그러니까 익숙한 일이야. 미아는 그렇게 설명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두고 가지는 않겠지만,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해둬."

두 사람은 짐을 챙겨 여관에서 체크 아웃했다. 다음에 들른 곳은 백금화 자루 길드의 본부였다. 현재는 그곳에서 파리안에게 상선에 올라탈 수 있도록 소개장을 받고 대화를 통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언제쯤 돌아올 거에요?"

"별 일이 없다면 일 년 조금 넘은 후에. 하지만 모르지. 어딘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거기에 눌러살지도."

성의 없는 대답에 파리안은 약간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바람 같은 사람, 당신은 역시 인간보다는 오크가 어울려요."

"칭찬이야?"

"그래요."

놀랍게도 이 세계에서 전사에게 하는 오크 같다는 말은 칭찬이었다. 인간과 같이 신의 은총을 받은 종족이기에 두 종족 사이의 관계는 대등했다.

"불의 신께서 가호하신 인간은 집을 짓고 문명을 이룩하는 일에 능하게 되었지만, 바람의 신께서 가호하신 오크는 세상을 누비며 싸워서 빼앗고 정복하는 일에 능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전사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오크 같다는 말은 칭찬이에요."

"반쯤은 야만인이라고 빈정거리는 거기도 하고."

그 외에도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바람둥이, 한 땅에 느긋하게 눌러 살지 못하는 역마살이란 뜻도 있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아무래도 좋게 듣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헤어지는 게 섭섭해?"

"그래요. 돈이나 명예나 지위로 잡아둘 수 없는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내 몸으로도 잡아두지 못할 줄은 몰랐어. 자존심 상해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정말 대놓고 당당한 여자였다. 현재는 그런 파리안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도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꼭 가야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여기 눌러 살았을지도 모르겠네. 어쩌겠어. 내 운명이 원체 기구한 것을."

"언젠가, 꼭 다시 만나요."

"연이 된다면."

두 사람은 이별 키스를 나누었다.

"기다릴게요."

파리안은 그쯤에서 미련을 딱 끊었다.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상인으로서 살아갈 거다. 모든 걸 버리고 현재를 따라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아는 자신 앞에서 대놓고 애정 행각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도 약간 비틀린 우월감 같은 것을 느끼며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러냈다.

'마지막에 현재 곁에 있는 건 나야.'

이게 무슨 감정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때 외톨이였던 자신이 발견한, 돌봐주지 않으면 곧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자신이 없어도 죽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해졌지만, 그렇다 해도 옆에 있고 싶었다.

이런 것을,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미아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것에, 겨우 이런 관계에 승리감을 느끼기나 하다니. 한심하고 비참해.'

"영웅호색이라고, 절대 좋은 남편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잘 부탁해요."

그런 미아에게 파리안은 대범하게도 악수를 청했다. 여태까지 파리안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던 미아도 그 악수는 받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굉장히 속 좁고 질투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파리안은 정말이지 열린 사고관을 지닌 여자인 듯 했다.

"아, 네."

서로 부부는 커녕 연인 관계도 아니다. 상당히 비틀린 종속 혹은 계약 관계이다라고 미아는 말하지 못했다. 헤어지는 마당에 미주알고주알 풀어놓을 이야기도 아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평범하게 그런 남녀 관계로 보이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딱히 그것에 대해 뭐라 하지는 않았다. 이별 선물로 그 이상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는 건 썩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럼 갈게."

"꼭 늦지 않고 가길 바랄게요. 우리 상단 배보다 빠른 배는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감 넘치는 건 좋네. 그럼 힘내볼게."

현재는 미아를 품 안에 안아든 채 말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파리안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 자신이 있어야 할 서류더미 옆으로 복귀했다.

'뭔가 대단한 파문을 불러일으킬 거 같은 사람이야.'

그냥 솜씨 좋은 요리사라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한 전사라는 것을 알고 나니 왜인지 대륙을 들썩이게 만들 대단한 영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저 한 명의 여자로서 자신을 품었던 남자를 괜히 더 대단하게 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파리안은 왠지 자신을 길드장의 자리까지 올려준 안목이 발휘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믿었다.

'혹시 이상한 곳에 눌러 앉았다는 소문이 돌면, 내 쪽에서 찾아가 볼까.'

넓은 대륙이기에 확실하지 않은 재회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살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로 삼기로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해도, 저런 재미 있는 남자를 알아버렸으니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이었다.

'나도 정말 이상한 데 코가 꿰였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평소보다도 더 맑은 듯 했다. 그래서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했다.

* * *

자유도시 메스토크로부터 운하도시 카디악까지 이어지는 가도.

주변의 질 좋은 광산 덕에 제조업이 발달해 여러 품질 좋은 금속 제품이 나오는 메스토크와, 항상 운하를 따라 상선이 오고가는 카디악 사이에 물자 수송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물자 수송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호위를 고용하는 것은 상식이었고, 그래서 어중간한 도적 무리는 절대 이 가도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제국은 비록 계속해서 생겨나는 던전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으나 행정 기반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커다란 도적 무리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했다가는 나 죽여줍쇼 하고 광고하는 꼴, 제국의 토벌대에 의해 모조리 목이 달아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도적들은 큰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야금야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도적질을 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너무나 이상한 광경이었다. 백 명이 넘는 무장 도적 패거리가 마차를 습격하고 있는 모습은. 그 와중에 마차의 호위병 숫자도 백에 달해 일견 전쟁이나 다름 없는 전투가 뜬금 없이 메스토크-카디악 가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인구수 3천 명의 소도시 아르젠타의 영주 아르젠타 남작이 지닌 병사의 수가 오십이었다. 인구수 4만인 자유도시 메스토크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병의 숫자도 겨우 삼백 남짓이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거의 영지와 영지의 전쟁이나 다름 없는 거대한 규모라는 뜻이었다.

"뭐냐 저건."

현재가 그 전투를 발견한 것은 전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피어오르는 모래 먼지와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 비명, 기합, 절규, 그리고 단말마가 섞인 그곳은 현세에 강림한 지옥과도 같이 보였다.

"왜 뜬금 없이 대로변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

미아를 데리고 열심히 달리던 현재는 멈춰 서서 그녀를 내려주었다.

"저게 무슨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겠어?"

"나도 모르겠는데……."

이 세계 토박이인 미아로서도 전혀 듣도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어쩔까, 조금 옆으로 돌아서 갈까?"

전후 관계를 모르는 일 따위는 무시하는 것이 상책. 어느 쪽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알지도 모른 채로 끼어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임이 당연했다.

"저만한 규모가 싸우고 있다면 뭔가 귀한 물건이 엮여 있다는 건데."

그러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손익을 따져본다면? 현재는 너무나 강해졌고 이 근처에 적수가 있을 수 없는 실력이었다. 그렇기에 가세한다면 백중세로 평평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저 전쟁을 단숨에 종식 시킬 수가 있겠지. 그리고 따라오는 보상이, 어쩌면 대단한 물건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던전에서는 보물이 나온다. 그 보물이란 단순히 비싼 물건이 아니라 눈 돌아가는 효과를 지닌 신물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신의 비약. 엘릭서의 경우 세상 모든 질병과 상처를 치료해주어 죽기 직전이라도 아직 죽지만 않았다면 살릴 수 있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 그 외에도 몸을 가볍게 해준다는 검, 힘을 세게 해준다는 장갑, 아무튼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마법 같은 물건이 던전에서는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괜찮은 보물을 얻을 수 있지도 모르겠어."

거기까지 생각한 현재는 끼어들기로 했다. 실은 그것 뿐만은 아니었지만.

강해진 자신이 괜히 저런 사건 따위 때문에 옆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존심이 가장 큰 이유였고, 손익이니 보물이니 하는 것은 갖다 붙인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여기서 구경하고 있어. 그래도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미아는 억지로 따라가겠다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이미 현재의 실력은 경험해본 바, 자신이 오히려 방해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 쯤은 알았다. 아무리 도시 최강의 검사라고 하더라도 저만한 인원이 있으면 어디서 어떻게 다칠지 모르는 것이었다.

"조심해."

그래서 미아는 현재를 격려하는 것에 그쳤다. 현재는 배낭을 풀어 짐들을 미아에게 떠맡기고는, '거인을 가르는 검'과 '타워 실드'로 무장한 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뭐야!"

"거인이다!"

"오크 아니야?"

"인간! 인간이다!"

전쟁의 비명과 함성과 절규와 단말마 광소 울음 포효가 울려퍼지는 와중에도 현재의 존재감은 묻히지 않았다. 서로 싸우던 두 세력은 갑자기 나타난 여행객의 모습에 잔뜩 긴장하며 경계했다.

"누구냐!"

"어느 편이냐?"

그들은 두 세력 다 모르는 제 삼의 세력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황당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혈혈단신의 사내가 쳐들어오다니? 지나가던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도망칠 숫자였다. 그런데 대체 이 사내는 누구이길래 정면으로 달려들어 이목을 끈단 말인가?

"제시!"

현재가 커다랗게 소리 질렀다. 흡사 무협지의 사자후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울림이 전장을 흔들어놓았다. 두 세력은 모두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제시?'

'뭘 제시하라는 거야?'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하자 현재는 다시금 외쳤다.

"보수 제시!"

그의 방패가 땅을 찍자 충격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믿을 수 없는 위용, 신과도 같은 품격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매우 천박하고 속물적이기 짝이 없었지만.

"더 세게 부르는 쪽에 붙음!"

이 미친 사내의 기행에 모두가 경악했다. 전후 사정도 모르고 숫자도 이 숫자인데 갑자기 뛰어들어 몸값을 흥정하다니? 기인, 아니 광인이라고 밖에는 평가할 수 없었다.

"나는 통일 휘렌스 제국의 위대한 황가의 혈통의 적법한 계승자 케루비아다! 제8 황녀의 이름으로 명한다! 마차를 습격한 검은 옷의 사내들을 모두 죽여라! 그리 하면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으리라!"

머나먼 마차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는 어느 쪽에 가담할지 결정했다. 지금 들려온 목소리의 황녀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검이 자신을 경계하던 검은 옷 사내들을 검째로 갈라 죽였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삶 속에서 생명의 무게가 어찌 가벼운지 뼈저리게 느껴왔던 현재기에 어떠한 망설임도 가책도 없었다.

"겨우 그 말을 듣고 저 편을 든다고?"

"아 꼬우면 빨리 더 좋은 얘기를 가져오든가."

"미치광이야! 이건 다 제국을 위해서다!"

"그래서 너희가 누구고 뭘 줄 수 있는데?"

검은 옷 사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황녀는 진짜이고 습격자들이 악역인 모양이었다. 저 황녀가 좋은 인간일지 피에 미친 살인귀 부패 황족일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대답 못하면 됐어."

현재는 다시금 적들을 베어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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