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22화 (22/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오늘은 내가 요리사

* * *

아침에 눈을 뜬 현재는 침대 시트 위에 묻어난 핏뭉치를 발견했다. 저렇게 많은 피가 나도록 미아의 속이 찢어질 때까지 박은 기억은 없는 바, 그녀의 생리가 시작된 것이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대충 할 때가 되기는 했나. 임신은 안 했구나.'

3년을 같이 살았다. 빨래를 포함한 가사는 모조리 현재가 도맡았기에 미아가 제 생리대 정도는 몰래 챙겨 빨았다고 해도 그 사실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무얼 숨긴다면 숨긴다고 티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그녀도 생리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어딘가가 흐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무언가에 동요하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면 이 며칠간 상태가 이상했다. 안하던 짓을 계속하는 게 희안하던 참이다. 혹시 진짜로 성교 중독이 되어 음란해진 게 아닐까 하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게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고 현재는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섹스까지 한 사이에 숨겨봤자 별 의미 없다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토록 오래 지킨 처녀를 잃은 이후 섹스에 거의 저항이 없어진 것처럼, 일선을 넘어버린 이상 그 아래 있는 많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현재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던 미아를 위해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생리 중에는 단 걸 먹이면 좀 나아진다고 하던데.'

대부분의 여자는 단 것을 좋아하고, 애초에 단맛 자체가 인간을 기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맛이기도 하다. 화학적  생물학적인 영역에서부터.

현재는 그 효과가 미아에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 위의 참상은 못 본 척 해주기 위해 미아의 몸에 이불을 잘 덮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아주 쓸만한 주방이 필요했고, 상업 길드장 파리안의 집에 달린 주방을 빌리기로 했다. 요리 경합에서 대활약을 펼친 덕분에 그 집 사용인들은 모두 현재의 얼굴을 잘 아는 바, 현재는 그녀가 부재중임에도 어렵지 않게 주방을 빌릴 수 있었다.

"요리사 님이라면야, 당연히 환영입니다."

일단 건물은 파리안의 소유이지만, 그럼에도 주방의 주인은 주방장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파리안을 요리 경합에서 승리하게 하여 길드장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현재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주방을 빌려달라는 현재의 요청을 쉽게 받아들였다.

"대신, 제가 좀 견학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현재는 견학을 시키는 김에 단순 노동 몇 가지를 떠넘겼다. 몸이 두 개가 아니기에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을 동시에 하니 요리 시간을 상당히 단축시킬 수 있었다.

"오, 이건 정말 아름답군요!"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별로 맛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훌륭한 기술입니다. 파티의 개회를 축하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요리는 없을 정도로."

현재는 주방장의 찬사를 받으며 작품을 완성시켜갔다. 그리고 커다란 쟁반 하나와 그 위를 덮는 푸드 커버를 빌렸다. 이 경우 은색의 식기로 인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어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 수 있었다.

"주방 잘 썼습니다."

현재는 길드 일로 바쁜지 요리를 만드는 몇 시간 내내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파리안의 집을 뒤로 한 채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녀는 길드에 있는 모양이었다.

여관에 현재가 돌아왔을 때, 미아는 울고 있었다, 그것도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수준이 아니라, 호흡까지 흩뜨려가며 펑펑 울고 있었다.

'생리통인가?'

미아가 아프다는 티를 낸 적은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강자로서의 카리스마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버텨왔던 거라면? 이제는 더 강한 척을 할 필요가 없어 숨기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현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현재는 여관 방 구석에 놓인 책상 위로 가져온 음식을 올려놓은 채 미아의 상태를 살폈다. 끙끙 앓거나 신음하지는 않는 게 그렇게 아파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미아가 운 이유는 완벽하게 심리적 요인 탓이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낼 수 없었다.

'네가 날 버리고 간 줄 알았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버리고 가도, 이상하지는 않으니까.'

미아가 눈을 떴을 때 현재는 밖에 나가고 없었다. 그의 짐가방이 여전히 여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 떠난 것은 아니리라고 생각했으나, 그가 애초에 몸만 달랑 이 세계로 떨어진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올 때처럼 갑자기 떠난 줄로 알았어.'

마치 흩날리는 꽃잎처럼, 파도에 스러지는 모래성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쩌면 이 세계에 떨어진 그날처럼 갑자기 다른 세계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덮쳐들었다.

'영영, 떠나간 줄로.'

현재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 감정은 흐르는 개울에서 커다란 강처럼, 이내 떨어지는 폭포처럼 거칠어져 미아는 점점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정말 이대로? 단 한 번도 잘해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상처만 남긴 채로? 그건 싫어. 그건 안돼.'

이윽고 폭포는 눈물이 되어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로부터 쏟아져나왔다. 그것이 미아가 대성통곡한 이유.

미아는 앞에 다가온 현재의 튜닉 아랫부분을 꼭 잡고서, 뱃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쥐어짜듯이 절실하게 말했다.

"어디 갈 때는 말하고 가."

현재는 그 말에서 뜬금 없음을 느꼈다. 하루도 한 나절도 아닌 겨우 몇 시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무슨 분리불안을 느끼는 강아지처럼 그것 때문에 울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럴 리가 없지. 분리 불안은 애착 대상에게나 느끼는 건데.'

현재는 결코 미아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기대는 기대하는 만큼 깨졌을 때 아픔을 야기한다. 그렇다면 기대하지 않는다. 그게 그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익혀야 했던 삶의 태도이다.

"그럴게."

그렇지만 굳이 싫다고 말할 이유는 찾지 못해서 현재는 그리 말하며 미아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조용히 안긴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여전히 표정은 어두운 채로. 역시 생리 때문에 괜히 우울해진 것이리라 현재는 대충 결론지었다.

"내가 먹을 걸 만들어 왔는데."

"만들어? 사온 게 아니고?"

다행히 현재의 말에 미아는 큰 호기심을 보였다.

"응. 주방을 좀 빌렸었거든."

요즘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 너를 위해서. 현재는 의도적으로 뒷말은 짓이겼다. 그런 말을 자연스레 건넬 만큼 평탄한 관계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현재는 울음을 그친 미아의 앞에 아까 가지고 온 요리를 가지고 와 푸드 커버를 치우고 그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초코 생크림 케이크였다. 파리안의 주방장과 열심히 구워낸.

"꽃?"

그리고 그 위에는 설탕 공예로 만든 장미가 올라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 세계에 와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그것도 먹는 거야, 어때, 예쁘지?"

"이게, 먹는 거……?"

신의 은총 중 솜씨는 섬세한 작업 즉 요리에도 영향을 준다. 요리 중에서도 더욱 섬세한 작업인 설탕 공예는 더욱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에 현재가 만든 설탕 장미는 그 누구의 솜씨와도 비할 바 없이 매우 정교하고, 그렇기에 진짜 장미에 비견될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미아는 뚫어져라 설탕 장미를 바라보더니 손에 그것을 집었다.

"딱딱해……."

"진짜 장미가 아니라 설탕 공예야. 사탕 같은 거라 생각하면 돼."

"잠시만……."

미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현재는 의아했으나 굳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왜인지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미아는 뭔가를 등 뒤에 숨기더니 그대로 짐 사이에 넣어버렸다.

'어디서 유리병이라도 얻어왔나?'

바보가 아닌 이상 설탕 공예를 보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나갔다 왔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버리거나 깨부숴 짓밟고 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랬다면 뭘 숨기고 가방 안에 집어넣지는 않았을 테니.

'그렇게 신기한가.'

어떻게 생겼는가보다는 누가 줬는지가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현재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이런 생각이나 할 뿐인 그였다.

'그다지 귀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좋은가?'

그리 만들기 어려운 물건도 아니다. 설탕은 비싸지만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고, 식용 색소란 것도 그렇게까지 흔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역시 구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금전적으로 굉장히 여유로운 미아가 아낄 만큼이나 대단한 보물은 아니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들.

물론 요령을 알고 솜씨가 좋은 현재가 아니면 힘들겠지만, 반대로 현재 본인이라면 정말 넘치도록 만들어 장미 화원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굳이 그렇게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당장 그녀의 기분이 조금 풀린 듯이 보였고, 또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미아가 그 설탕 장미를 몰래 챙겼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물론 전혀 몰래가 아니었지만.

'정말 저걸로 숨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꼭 멍청한 다람쥐 같아서 귀엽네. 설탕 공예가 잘 썩는 것도 아니고, 년 단위로 보관이 가능하니까 그냥 둬야겠다.'

현재는 실소했다. 요리는 먹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설탕 공예 정도는 예외로 빼줘도 좋았다. 솔직히 빈말로라도 맛있는 부분은 아니고, 예뻐보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의 전부였으니. 보기에도 화려하지만 맛에도 크게 관여하는 플람베(불쇼)와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였다.

이후 현재가 가져온 요리의 맛있는 부분,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며 미아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나한테 줄 선물을 만들러 나갔다 왔구나. 나를 신경 써준 거야.'

현재는 그 반응을 보고 생각했다.

'이 애도 단 것은 좋아하는구나. 여자애 답게.'

이전에는 일부러 미아의 비위를 맞추겠다고 달콤한 요리를 해다 바친 적은 없는 현재였다. 그건 꼭 강자에게 빌붙어 알랑거리는 잡배가 된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현재가 훨씬 강자였고, 그렇기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강해졌기에 더 잘 대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관계는 변했다.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두 사람 모두 알았지만, 그 종착역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채였다.

* * *

'역시 걸어서 대륙을 횡단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지.'

현재가 걷는 속도는 마차보다 확연히 빨랐으나 미아에게 그 속도를 하루 종일 따라오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내 발이 멈추면 이동도 멈춘다는 게 생각보다 엄청 큰 단점이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제 발로 걸으면 발이 멈추는 순간 이동도 멈춘다. 그러나 마차에 타고 있으면 자신이 멈춰 있어도 마차는 계속해서 이동한다.

그 너무 당연한 사실을 현재는 도시 하나를 건너고서야 이해했다.

'사실 내가 좀만 자제하면 되는 문제이긴 한데.'

이동이 느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가 시도때도 없이 미아를 덮쳤기 때문. 그러나 이제부터라고 잘 참을 자신 따위는 없었다. 요구 하는대로 다 받아주는 절세 미녀를 옆에 두고 흥분하지 않으면 그건 남자가 아니라 고자라는 성별일 거다.

'탈 것을 구해야겠어. 하지만 마차는 느려터졌지.'

현재는 두 발로 걸어 대륙을 횡단한다는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 위해 상업 길드에서 길드장 직무를 보고 있는 파리안을 만났다.

"저주 받은 대지에 간다고요? 왜요?"

상당히 대범한 성격의 파리안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의 목적지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강해지기 위한 수련을 떠날 거거든."

"요리 수행은 아니죠?"

파리안의 농담 같은 말에 현재는 웃으며 답했다.

"아무튼 레벨을 올려야 해. 대충 200 정도."

"재밌는 농담이네요."

파리안도 웃었다. 그리고 잠시후 되물었다.

"농담이죠?"

"농담 아냐. 그러니까 저주 받은 대지 외의 목적지는 있을 수 없어. 제국 어딜 가도 그만한 레벨을 올릴 수는 없을 테니까."

"왜 그래야 하는데요?"

"사내로 태어났으면 대륙 최강자 정도는 되어봐야 하지 않겠어?"

"최강자가 아니라 신이잖아요, 그 정도면."

'이미 절반 정도는 이뤄져 있는데.'

달마다 깎여나갈 능력치기는 하지만 이미 빌린 레벨이 100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가야 하겠지.'

달마다 약해진다면 최대한 빨리 레벨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일이 필요했다.

"말린다고 듣지는 않겠죠? 그곳에 가서 살아돌아온 사람 따위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해봤자 아무 소용 없겠죠?"

"그래."

"붙잡지 못할 바람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몰랐네요."

"칭찬 고마워."

"대륙 중앙까지 갈 거라면 운하를 통해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게 제일 빨라요. 배멀미는 안하죠?"

"모르겠네. 배를 타본 적이 없어서."

"그럼 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네요. 나흘 뒤에 운하도시 카디악에서 우리 상단의 배가 출항하는데,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겠어요?"

"그게 어딘데?"

"도시에서 가장 빠른 말로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

"충분 하네."

그렇게 현재가 탈 배편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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