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16화 (16/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오늘밤 12시 10연참갑니닫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아르젠타의 영웅

* *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떠날 거야."

현재는 말했다. 던전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사항이었다. 여신에게 갚아야 하는 총 레벨 210 분량의 능력치, 아무리 모으기 힘들다고 해도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아낼 셈이었다. 기껏 얻은 힘을 일년만에 도로 잃는다니,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걸 갚고도 남을 힘을 모아 다 갚은 후에 떵떵거리며 살아가리라. 그리 다짐했다.

그렇다면 끝없이 레벨을 올려야 한다. 레벨을 올리려면 싸워야 한다. 어설프게 빈둥대며 가끔씩 나타나는 던전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안됐다. 걸어가야 할 것은 여섯 윤회도 중 수라도에 해당하는 끝나지 않는 싸움의 길.

'약한 채든 강해지든 고생길이 훤한 신수라는 거지.'

현재는 실소했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약한 채로 비참하게 바닥을 기느니 끝없는 싸움의 중심으로 던져지는 게 나았다. 게다가 기약 없는 고생길도 아니다. 딱 1년, 실패하든 성공하든 1년이 지나면 그 지옥은 끝난다. 그 뒤에 천국이 기다릴지 그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릴지는 현재가 하기에 달린 일이었다.

그렇게 떠나가기로 결심한 현재의 말에, 미아는 대답했다.

"그래. 그럼 중요한 것만 챙길게."

그리 말하고 그녀는 이삿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주 긴 여정, 어쩌면 아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기에 평소보다 더욱 많은 것을 챙겨야 했다.

"따라오려고?"

현재의 질문에 미아는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렇게 물으면 꼭,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여기 놓아주고 가겠다는 것 같지 않은가?

두 사람은 말 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현재의 눈에 증오나 복수심은 끓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어떠한 감정들, 구체적으로 형태가 잡히지 않아 알기 힘든 어렴풋한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다만 미아는 눈치챘다. 여기서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면, 아마 현재는 자신을 놓아주리라고. 3년간 쌓여온 응어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덜어내고 갈 수 있을 정도로는 가벼워진 상태이리라고 확인했다.

그렇기에 미아의 대답은,

"그래. 내가 네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

그럼에도 미아의 대답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대장간에 좀 다녀올게."

현재는 집을 나섰고 미아는 그에게 그다지 많은 돈이 있지 않음을 알았지만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 더는 도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충고하는 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 같았다. 그녀는 믿는 수 밖에 없었다. 현재가 아직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쾌락 살인마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고. 않았기를 비는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집을 나서자마자 병사들에게 포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미아의 집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는 평화가 아니라 모두가 도망치고 없는 공백이었다. 소문은 분명히 돌았다. 마당에서 빨래를 말리는 아낙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전부 다 겁 먹고 도망친 건가.'

그것은 정답이었다. 이 도시의 영주 아르젠타 남작은 미아가 현재에게 엎드려 자비를 구걸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잽싸게 병사들과 일부 가신들만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평소에도 미아에게 도시 치안을 일임하다시피 했던 그였기에 미아를 굴복 시킨 강적과 싸운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재빨리 피난길에 올랐던 그는 며칠이 지나도 도시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듣고서야 다시 돌아오지만, 그것은 현재는 볼 수 없는 광경이요 듣지 못할 이야기였다.

현재는 사람 없는 거리를 걸어 대장간에 도착했다. 모루 옆에서 쇠를 두드리느라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오랜 대장장이 생활로 귀가 먹어버린 것인지. 대장장이는 그 안에 있었다.

"어서 오시게. 무얼 사러 왔는가?"

"거인을 가르는 검."

현재는 대장장이가 몇 번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던 검의 이름을 불렀다. 던전에서 발견된 신의 안배, 그러나 누구도 다룰 이가 없었던 괴물 거검.

검날의 길이만 2미터를 넘고, 양손으로 쓰게끔 길게 늘어진 손잡이의 길이를 더하면 총 길이가 2.5미터에 달했다. 그것은 이미 검이라고 부르기 힘든 길이였다. 평균 신장이 확연하게 작은 이 세계에 그런 거검을 다룰 이는 마땅히 없었다.

현재라면 그 검을 다룰 수도 있었겠지만, 은총이 없는 현재로서는 근력의 부족으로 그렇게 무거운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신장과 팔길이 근력 모두를 만족한 현재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무기를 찾기도 힘이 들리라.

그래서 현재는 그 검을 '거둬가려' 왔다.

"마침내!"

그 사실에 대장장이는 환호했다. 여지껏 계속해서 한손검에 방패를 고수하는 현재의 태도가 답답했던 그였다. 은총이 없어 아주 약한 공격도 견뎌낼 수 없는 현재로서는 방패를 챙기는 게 매우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장장이는 그런 사정은 알 수 없었다. 가벼운 한손검과 다른 손의 방패를 고집하는 현재를 쭉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로망을 찾고 거인을 가르는 검을 쥐겠다는 현재의 말이 그에게는 매우 반갑고 또 기쁜 말이었다.

"그래, 처음 본 순간 알았지. 이 검은 바로 자네를 위해 존재하는 검이라는 것을! 올바른 주인에게 마땅한 무기를 건네주는 것, 대장장이로서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과장되게 호들갑을 떠는 대장장이의 말은 말끔히 무시한 채 현재는 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때 그 타워실드도 갖고 싶은데요."

"뭐? 그 거검을 든 채로 방패를 운용하는 건 무리일 텐데? 둘 다 들고 다니면 체력의 소모도 상당할 테고."

현재는 말로써 증명하는 대신 한손으로 거검을 쥐고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렸다. 두손으로 했다면 그나마 안정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한손으로 펜 대신 거검을 돌리는 건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가져오겠네, 가져올 테니까 멈춰!"

현재의 몸을 거의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통짜 철판 방패, 역시 던전에서 발견된 그 방패를 대장장이는 낑낑거리며 들고 나타났다.

미아 정도의 체구라면 뒤에 아예 숨어 없는 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방패였다. 심지어 두 끈에 팔을 끼워 다루는 엔암스 방식도 아니고 가운데에 손잡이가 달랑 하나 달려있는 센터그립 방식이었다. 하긴, 가죽끈 따위로는 이 엄청난 방패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을 터이니, 통짜 철 손잡이가 달린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대로 들고 다룰 수 있는 이가 없어 아무도 사가지 않았던 애물단지, 그러나 너무 훌륭한 만듬새 탓에 녹이지도 못하고 대장장이가 애지중지하던 물건. 거인을 가르는 검과 동급의 고물딱지라는 뜻이었다.

현재는 그 두 물건을 챙겨 대장간 밖으로 나서려 했다.

"잠깐!"

대장장이는 철을 두드리느라 도시를 휩쓰는 소문, 아니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강간 방화 살인마가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그래서 그는 감히 말하였다.

"돈은 내고 가야지."

"돈? 돈이요?"

현재는 웃으며 검을 들고서, 대장간 옆 건물을 베어갈랐다.

진흙과 벽을 굳혀서 만든 외벽이 꼭 두부 썰리듯이 깔끔하게 갈려나갔다. 그러고도 날이 상하지 않는 모습이라니, 거인을 가르는 검은 과연 명검이었다.

"잃지 않은 것은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이 검과 방패값은 네 목숨을 살려준 것으로 치르겠다."

현재의 말에 대장장이는 놀라 넘어진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려는 줄게. 살려는 준다면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현재가 사람을 죽이는 데에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 몸으로부터 단 한 치의 숨김도 없이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씨발, 이게 뭔 일이여?'

대장장이는 잔뜩 겁에 질린 채 현재가 완전히 눈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벌벌 떨어야만 했다.

* * *

쓸만한 검과 방패를 구해오는 사이 미아는 짐 정리를 다 마치고 있었다. 가구는 전부 버리고, 그 외에도 부피가 좀 크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전부 집에 버려둬야만 했다. 버린다는 말과 집에 둔다는 말이 얼핏 다르게 들릴 수는 있었지만, 이 집에 두고 가는 물건은 앞으로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었다.

미아는 도시의 영웅이고, 이 집의 소유권은 미아의 것. 존경 받는 미아의 집을 털어갈 간 큰 도둑은 한동안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녀가 아예 돌아오지 않으리란 확신이 든 후에도 집이 멀쩡히 남아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심히 낙관적인, 아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소중한 것을 모두 챙기고 싶었으나, 배낭 하나에 싣고 가는 이상 모든 걸 다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 배낭이 은총 없는 이들은 매지도 못하는 특대 사이즈의 배낭이라 해도 그러했다.

'많은 추억이 있었구나.'

어린 시절 고아로서 마치 이방인 같은 삶을 살았던 미아, 그러나 검의 재능을 발견하고 도시의 영웅이 되고 나서는 좋은 일이 잔뜩 생겼었다.

이제는 그 추억을 다 두고 가야 하고, 일부는 이미 망가져 부서졌다.

현재를 만나 일그러진 이 삶에, 한 번은 그의 탓을 할 만도 하건만, 미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미숙하고, 사람 대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야.'

한국에서라면 이제야 갓 성인이 된 나이, 학생 시절의 어설픈 실수 따위야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겠지만은, 이 이피아 대륙에서 성인의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성인일 때에 시작해 여태까지 계속해온 잘못,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기에, 미아는 현재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이 도시를 떠나는 약간의 허전함과 서운함, 도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마저 떨쳐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그녀의 기분은 파랑, 약간은 무겁고 우울한 색깔이었다.

"가자."

배낭 두 개를 겹쳐맨 미아의 모습은 몸보다 짐이 훨씬 커서 흡사 껍질을 뒤집어 쓴 달팽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썩 귀여워서 현재는 미소지었다. 그는 자신의 짐, 무식하게 커다랗고 무거운 타워실드와 거인을 가르는 검만을 등에 맨 채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미아의 짐을 들어줄 생각은 딱히 없었다. 저 정도 짐에 지쳐 쓰러질 미아도 아니고. 마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편이 훨씬 빨랐기에 두 사람은 마차도 타지 않았다. 진작에 마부들도 다 도망친 뒤라 빈 마차를 훔치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만, 현재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조차 도망치고 없는 도시, 활달한 아이들마저 집에 숨어 몸을 꼭 웅크린 채 괴물이 떠나기만 바라는 도시 공간을 현재와 미아는 빠져나왔다. 언젠가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분명 많은 이들이 나와 약간의 눈물과 큰 웃음으로 배웅해주리라 생각했던 미아에게는, 그 텅 빈 공간이 많이 쓸쓸해보였다.

"아까 들었지? 우리는 대륙의 남동쪽으로 간다. 저주 받은 대지, 땅의 여신의 진노가 가장 깊게 뿌리 박힌 그곳으로."

이피아 대륙 북서부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의 나라는 대륙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었다. 때때로 여신의 단죄라는 던전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정말로 여신의 심판이 휩쓸고 간 대륙 남동쪽에 비하면 그야말로 태평성대요 천혜의 요새 안쪽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

제국의 동쪽에는 인간과 같이 신의 은총을 받은 종족, 오크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쪽으로 올라오는 고블린 무리는 모두 오크들이 처리하고 있었다.

제국의 남쪽에는 물의 여신의 진노를 사서 생명의 원천인 물을 잃어버린 엘프들이 살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그 사막을 지나오기 전에 모두 말라 죽어버렸기에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고블린도 없었다.

그래서 안전하고 그래서 평화로웠지만, 그래서는 강해질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었다.

'인간을 죽이는 걸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아.'

신의 은총은 서로 죽여서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사람을 학살하다가는 있는 은총조차 빼앗길 수 있었다.

그야, 인간을 사랑해서 내려준 축복으로 인간을 학살하는 걸 신이 좋게 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은총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신이 버린 존재, 배교자 혹은 엘프와 고블린을 퇴치해야만 했다.

'신은 믿지도 않는데 꼭 이단심문관이 된 느낌이네.'

현재는 자신에게 힘을 준 '약오름의 신'을 떠올렸다. 은총은 네 주신, 인간을 축복한 불의 신, 엘프를 축복했던 물의 신, 고블린을 축복했던 땅의 신, 오크를 축복한 바람의 신 넷 밖에는 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약오름의 신' 따위가 은총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싸가지 없는 놈들 좀 혼내준다고 은총을 거둬가지는 않겠지.'

실제로 도적 스물을 도륙했는데도 어떠한 언급도 없었고, 무엇보다 능력치라는 형태의 이자를 받아내려면 그 능력치를 벌 수 있게 해주는 게 맞았다. 아무리 사채업자가 악질이라도 버는 돈을 다 빼앗아가지 아예 돈을 못 벌게 막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도와준다면 또 모를까.

'그럼 이 정도 태도로도 괜찮을 거야.'

현재는 생각했다. 거슬리는 것은 모두 베어 죽이면서 나아가기로.

어느새 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유현재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