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13화 (13/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아르젠타의 영웅

* * *

"너 재능 있네."

"?"

현재의 말에 미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녀는 잘 못 느낀다던데."

이어지는 말에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다만 이전과 같이 두려운 눈빛은 아니었다. 달라진 건 현재였는지 미아였는지, 아마 둘 다이겠지만.

자신보다 약한 소녀의 눈빛은 정도 이상으로 무서울 수는 없었고, 하룻밤을 함께 한 여인의 눈빛은 그저 새끼 고양이처럼 앙칼지고도 귀여울 뿐이었다.

"가자. 돌아가야지."

다 뜯어진 원피스 대신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은 미아와 현재는 꼬박 나흘이 걸려 던전 바깥으로 나왔다. 괴물은 모두 죽고 함정은 다 파훼된 던전, 그곳에서 나오는 데에 괴물과 싸우고 함정을 탐색하며 들어갈 때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 것은, 현재가 시도때도 없이 미아를 덮쳐든 탓이었다.

"적당히 좀 해……. 헐겠어, 진짜……."

질렸다는 듯 가는 눈매로 매도의 시선을 보내는 미아의 얼굴마저 현재에게는 사랑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떡정이란 게 있다더니 그게 든 모양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던전 바깥에 나오니 스무 명의 도적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에서 보상을 가지고 나온 모험가를 급습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모양이었다. 던전을 직접 깰 실력이 안 되니까 안에서 싸우고 지친 모험가를 습격해 보상을 빼앗겠다는 아주 단순한 발상에서 벌이는 행위로, 현재는 이 세계에 와서 이런 도적들을 다섯 번은 만나보았다.

서걱, 그리고 그 모두는 미아의 손에 목이 떨어졌었는데, 오늘은 현재의 손에 목이 떨어졌다.

"죽여!"

두목이 두와 목으로 나눠졌는데도 도적들은 당황하지 않고 습격을 계속했다. 허나 그들이 가진 무기들로는 현재를 해치울 수 없었다.

현재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도적은 도와 적으로 나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도적이 도/적이 되었다. 가끔은 ㄷ ㅗ ㅈ ㅓ ㄱ이 된 녀석도 있었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겨 널부러진 시체를 보고 현재가 느낀 건 죄책감도 역겨움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래, 그는 이 정도 살육에는 아무 느낌도 들지 않게 되었다. 상대가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랬다. 적만 만나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싸우고 나면 그 감촉에 몸서리 치던 유현재는 죽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각오가 아니라 힘 뿐이었기에.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강해진 거야?"

미아는 뒤늦은 질문을 입에 담았다. 현재는 답했다.

"그냥, 나도 뒤늦게나마 은총이란 게 찾아왔다는 거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힘이었다. 갓 은총을 얻었다면 가질 수 없는 힘이 현재에게선 흘러넘치고 있었다. 도시의 최강자인 미아를 단숨에 때려눕히고 짓누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그러나 현재가 그렇게만 대답했기에 미아는 더 물을 수 없었다. 말하기 싫은 비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강자만의 특권이었고, 미아는 이제 현재보다 약했다. 그런 힘의 서열이 둘 사이에 명확하게 세워져 있었다.

'3년을 함께 한 정으로 말해달라 하면, 죽겠지.'

미아는 자기 생각이 우스워서 실소를 흘렸다. 절대로 정을 주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다그치고 괴롭히고 선을 그었던 건 자신. 이제 와서 그딴 생각을 하다니 사죄의 뜻으로 머리를 박고 죽어도 모자랐다. 그나마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었다.

"상태창!"

현재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했다. 마치 정신이 육체에서 분리된 듯이 동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혼의 세계 위로 낯설지만 익숙한 그림이 보였다.

회색의 암벽에 새겨진 문자들이 현재의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 레벨 19 ]

[ 근력 110 ]

[ 체력 110 ]

[ 솜씨 108 ]

[ 민첩 107 ]

[ 마력 100 ]

[ 여분 90 ]

단촐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절대 단촐하지 않았다. 인간이 맨몸으로 곰을 때려잡고 초인적 면모를 발휘하게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신의 은총인 상태창이었다.

첫째로 근력, 말 그대로 근육의 힘이다. 다리로 땅을 박차는 각력이나 팔을 휘두르는 완력, 손을 꽉 쥐는 악력 등 힘이란 힘은 전부 이 능력치의 보정을 받는다고 보면 되었다.

둘째로 체력, 격한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과 충격을 받았을 때 버텨내는 생명력, 크게 보면 추위와 더위에도 지치지 않는 능력까지 '버티는' 것에 관한 것은 모두 이 능력치의 효과를 톡톡이 볼 수 있었다.

셋째로 솜씨, 손재주와 발재간 등, 정밀도가 필요한 일을 도와주는 능력치였다. 궁수가 활을 조준하는 일이나 도둑이 자물쇠를 여는 일, 뜨개질을 하거나 요리를 하는 일 등 전투와 생활 양쪽으로 두루두루 도움이 되는 능력치였다. 지금의 현재가 농구를 한다면 3점슛은 백발 백중에 4점슛 5점슛도 마음대로 넣을 수 있겠지. 그런 점수의 슛은 없지만 말이다.

넷째로 민첩, 동체시력과 반사신경, 즉 순발력에 적용되는 능력치였다. 단순히 빨라지는 것은 힘의 크기 즉 근력의 영향이었지만, 그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민첩할 필요가 있었다. 민첩이 높은 이는 화살, 혹은 그보다 더 빠른 공격을 잡아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집중 상태에서는 남들보다 시간을 더 길게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육체의 네 능력치는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어느 하나만 특출나게 높아서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고루고루 높아야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째, 마력, 현재 모든 마법은 소실되었기 때문에 마법사라는 인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아직 마법을 사용하는 존재는 다섯번째 지성체, 그러나 인류로 분류되지는 않는 '드래곤' 뿐.

그렇기에 마력은 다른 종류의 능력치만큼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아니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일부 던전에서는 마력이 없는 자는 절대 버텨낼 수 없는 저주나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현재는 이번 던전의 주인인 여섯 팔의 거인을 쓰러뜨리며 단숨에 레벨을 19까지 올렸고, 그 보상으로 90개의 여분 능력치를 받았다. 여신에게 상환해야 하는 능력치는 50씩 11달, 그리고 마지막 12번째 달에 500, 그렇게 총 1050개, 레벨로 따지면 210의 분량.

'아니, 이런 경우 보통 만렙은 99 아닌가? 레벨 210 분량의 능력치를 토해내야 한다고?'

현재는 조금 불안해졌다.

'미아는 19살이 되도록 레벨이 40이지?'

설령 99 레벨이 끝이 아니더라도, 210을 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난이 될 것이 불 보듯이 뻔했다.

'그래서 힘 없던 이전으로 돌아갈 거냐?'

현재는 생각했다. 만약 다시금 여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여신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인가?

'그건 절대로 아니지.'

무능력자로 짓밟히고 짓눌리며 땅을 기는 벌레처럼 엎드린 채 살아가느니, 차라리 불꽃처럼 강자로서 세상을 호령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게 나았다. 가늘고 길게 살아? 그는 그딴 것은 원하지 않았다. 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힘이 없던 그는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원하지 않았는가. 영혼이고 뭐고 다 바쳐도 좋으니, 제발, 이 순간 나의 손에 힘을 쥐어 달라고.

'설마 못 갚기야 하겠어? 그냥, 따서 갚으면 되잖아!'

현재의 눈이 독기에 차 일렁거렸다. 절대로 힘 없고 나약하던 그때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반드시 모든 빚을 정산하고 계속 강자로서의 삶을 누리리라.

현재는 집중해 여분의 능력치를 분배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질 뿐.

[ 레벨 19 ]

[ 근력 128 ]

[ 체력 128 ]

[ 솜씨 126 ]

[ 민첩 125 ]

[ 마력 118 ]

현재는 매우 단순하게 모든 능력치를 18씩 올렸다. 어차피 달마다 10씩 줄어들 능력치, 그렇게 깊게 고민하고 배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많은 능력치가 오르자 세계가 더욱이 선명해지고 몸에서 힘이 끓어넘치는 게 느껴졌다. 그는 사나운 늑대 같은 눈빛으로 미아를 쳐다보았다.

"안돼, 진짜 찢어진다고, 아직도 아프단 말이야."

미아는 거의 울먹이면서 도리질을 쳤다. 현재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심하긴 했다. 아무래도 끓어넘치는 힘은 다른 방향으로 해소해야 할 것 같았다.

* * *

현재는 등 뒤에 짐가방 두 개를 맨 채 앞쪽으론 미아를 안아들었다. 은총이 없던 시절 태산을 등에 짊어진 듯 그를 짓눌렀던 가방은 이제 와서는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정도로 가볍기만 했다.

그는 뛰었다. 이곳은 소도시 아르젠타로부터 마차로 꼬박 하루가 걸린 거리. 걸어서 돌아간다면 그 배는 걸리는 게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은총이 내린, 인간을 초월해버린 현재에게 있어 마차보다 빠르게 달린다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나, 속 안좋아, 읍!"

마차라는 것은 상당히 흔들림이 심한 것이었다. 특히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는 그게 마차인지 음료를 섞는 쉐이커인지 헷갈릴 정도로 흔들렸다. 그러나 미아는 마차를 탄다고 멀미를 한 적은 없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그녀에게 그 정도 속도와 흔들림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훨씬 빠르고 훨씬 흔들리는 현재에게 안겨 있으니 멀미 기운이 확 올라왔다. 그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비유겠지만, 현재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와 비슷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자제한 속도였다. 여신에게 받은 능력치로 체감 레벨 119를 달성한 현재는 초월자의 면모를 지니게 되어, 은총을 받은 인간들과도 또다른 생물이라 보는 게 좋았다.

"멈춰! 멈춰! 진짜 토할 거 같다고!"

미아가 현재의 가슴팍을 퍽퍽 치며 버둥거렸다. 그대로 놓치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날 텐데, 그녀는 그런 것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현재는 멈춰서서 미아가 호흡을 가다듬는 꼴을 구경하였다.

"좀, 천천히 가자……. 내가 내 발로 걸을게……."

그녀는 과한 어지러움에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런 약한 모습이 귀여웠다. 현재가 약할 때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미아의 괴로워하는 모습. 현재는 뒤에서 다가가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히익!"

몸을 앞으로 숙이고 괴로워하던 그녀는 등을 쫙 피면서 깜짝 놀랐다. 순발력으로 슬쩍 몸을 빼 충돌을 피한 현재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는 얼굴 귀엽네. 더 울리고 싶게."

약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억눌려 있던 현재의 가학심이 오랜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계속해서 피어올랐다.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기라도 할 기세로. 그 피해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아였다. 아무리 그 모든 게 정말로 현재를 위하는 그녀의 진심이었다고 한들,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 있는 응어리가 아니었다.

"으으응! 으으응! 흐응!"

미아는 꼭 말을 모르는 아기처럼 싫은 소리를 내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현재는 자비가 없었다. 그는 다시금 미아를 안아들고서, 이번에는 조금 더 가속한 채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흡사, 멈출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 같았다.

* * *

"윽……, 그윽……, 흐으윽……."

양 눈에 눈물 한 방울 씩을 매단 미아는 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현재가 자기 멋대로 속도를 내며 달린 덕분에 소도시 아르젠타에 있는 미아의 집까지 하루는 커녕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도의 반동 만큼 미아는 피곤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그녀는 올라오는 토악질을 최대한 참으며 집에 들어가 침대 위에 엎어졌다.

"코오."

작은 콧소리를 내며 기절하듯 잠든 미아. 현재는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아는 아마도 이 도시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온갖 위협으로부터 이 도시를 지키고 있었겠지. 인구수 3천 남짓, 영주는 별 힘도 없는 남작, 그 사병의 규모는 겨우 50, 주변 농가들에서 수확한 잉여 작물로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세워진 시장 때문에 탄생한 이 작은 도시에서 가장 강한 소녀는, 온갖 것들과 싸우면서 계속해서 도시를 지켜왔다.

그렇게 소녀가 사랑한 도시를, 현재는 증오했다.

짓지 않은 죄로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억울하다고 소리 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그 끔찍한 기억이 꼭 흉터처럼 마음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도저히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걸 지우는 방법은 단 하나.

복수 뿐이다.

여태까지는 힘이 없어 억눌려 있었으나 이제는 풀어헤쳐진 짐승을 그는 통제할 수 없었다.

아니, 통제할 생각이 없었다.

복수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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