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아르젠타의 영웅
* * *
경비병들에게 포위 당한 현재를 처음 봤을 때, 미아가 느낀 것은 당연하지만 '크다'는 감상이었다. 그러나 그 커다란 몸짓에 맞지 않게 어설픈 자세와 위협에 대처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아 하니 꼭 덩치만 큰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을의 치안 유지는 정확히는 그녀의 관할은 아니었다. 그러니 괜히 나서서 현재를 데려온 것은 현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현재는 도망칠 줄도 모르는지 얌전히 뒤를 따라왔다. 도망친다고 놓쳐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 없이 뒤를 졸졸졸 따라온 게 꼭 거리의 강아지를 길들인 것 같아 귀여웠다.
현재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태도는 부드러우며 굉장히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매우 새로운 느낌이었다. 저만한 덩치의, 혹은 저만한 덩치가 아니더라도 사내들은 모두 약해보이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며 괜한 허세를 부리고는 했는데, 현재는 기꺼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냈다.
그가 전해준 다른 세계의 이야기는 정말로 신기한 것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싸워보지 않았다니. 그럴 수도 있는 건가. 그런 삶도 있는 건가. 괴물을 죽이는 모험가를 직업으로 삼았음에도 사실은 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아에게 그 세계의 이야기는 참으로 몽환적이고 또 아름다워서, 빠져버릴 것 같이 매혹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세계의 주민인 현재에게 조금 더 호감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재에게 신의 은총이 닿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은총이 없는 인간 따위 맨몸으로는 들개 하나 쉽게 이기지 못하는 약한 생물이다. 늑대 무리에 던져진 어린 양처럼 곧 죽을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현재를 도무지 혼자 둘 수가 없었다.
그 어린 양은 어린 양의 삶의 방식 외에는 몰랐다. 같은 무리의 양들이 지켜주는 삶, 풀이 가득한 산 위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 외에는 몰랐다. 자기 무리 안에 있었을 때야 그래도 됐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래선 안됐다.
이곳은 늑대들이 살아가는 곳, 그러니까 양의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 그러나 양은 여전히 양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였기에 미아는 그 양의 생각을 모두 뜯어고쳐야만 했다. 그 탓에 자신이 미움 받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양이 죽어버리는 것은 미움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플 테니까.
그저 낯설고 새로운 이라 그렇게까지 아꼈던 것은 아니었다. 동질감을 느꼈다. 외따로이 떨어진 기댈 곳 하나 없는 이방인이라는 처지에. 미아는 고아였고 뒷골목 출신이었다. 그걸 남들에게 자랑한 일은 없었다. 자랑할 일이 아니니까. 그나마 미아에게는 보통 사람과 똑같은 신의 은총이라도 있었지, 현재에게는 그것마저 없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약한 인간이 살아가려면 쓸 데 없는 것들은 버려야 한다. 자존심, 버리고, 자유? 포기하고, 기대를 접고 바짝 엎드려서, 모든 풍파들이 머리 위로 스쳐지나가길 기도하는 삶,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아는 그런 삶의 방식을 현재에게 가르쳤고, 그래서 미움 받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자신조차 믿어주지 않는 게 좋았다.
누구도 믿지 마라, 항상 의심해라, 한 번 더 생각해라.
친구도 가족도 동료도 기댈 곳도 없는 완전한 이방인의 생존 철칙은 조금 많이 외롭고 차가운 것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미아는 현재를 가여이 여겨 집 안에 데리고 보살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의심을 오랫동안 거두지 않았다. 밤에 잠들 때면 항상 어떤 일에도 금방 대처할 수 있도록 반쯤 각성 상태로 선잠을 잤다. 혹시 침대로 덮쳐들지 않을까 의심했던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놀라울 정도로 선을 지켰다. 혹시불구가 아닌가 한번씩 의문을 가지게 될 정도로.
던전행. 현재에게 세상의 냉혹함을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동료들의 괴롭힘을 방치했다. 미아는 모험가. 싸우고 죽이는 걸 업으로 삼은 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다. 언제까지나 현재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죽었을 때 정말로 버티지 못하고 따라죽을지도 모른다. 따라 죽지는 않더라도 혼자 살아가기 곤란한 상태가 되겠지.
그렇기에 현재는 혼자서 살아갈 정도로 강해야 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태도를 익혀야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그걸 피할 수 있는 감각을 길러야 했다. 그래서 현재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벌레보다 큰 것을 죽여본 적 없던 청년은 한때 사람이라고 불리었던 생물을 베어가르며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이 보였다. 순수함, 선함, 그와 관련된 긍정적인 많은 감성들을, 그러나 그것이 미아가 바라마지 않던 바였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살아남을 만큼 녹록치 않은 세계이기에. 그런 것들은 빨리 버릴 수록 좋았다.
그녀가 반했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선량함을 뜯어내면서, 그녀는 슬픔에 가까운 감정과 함께 작은 희열감을 느꼈다. 너는 이 방식으로 점점 나와 같아지고 있구나. 그렇게.
그러나 현재는 그걸 거부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거부했다. 그녀의 집을 박차고 나가 싸우지 않는 평화로운 삶을 찾고자 했고, 빵집에 취업했다.
너무 작은 도시, 서로 얼굴을 다 아는 사람들, 그렇기에 빵집에 취업한 거인의 소문도 도시 곳곳까지 퍼져나갔다. 미아는 굳이 그 빵집을 찾아가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응원했다. 부디 그 이방인이 기적 같이 도시에 녹아들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잘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다만, 도시는 언제나와 같이 이방인에게 잔혹한 곳이었다. 이 도시, 이 건물, 이 사람들은 모두 너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듯이. 이 도시에 현재의 편은 없었다. 현재는 겨우 금화 세 닢으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자신이 훔친 것도 아니라 누명인 채로.
현재가 범인이 아니리라 확신한 미아는 발품을 팔아 빵집의 딸 아이가 저지른 범행이란 걸 밝혀냈다. 운이 좋았나? 아니, 발이 넓은 그녀가 온 도시를 하루종일 뛰어다녔기 때문에 빵집과 한참 떨어진 보석 가게에서 그 증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현재를 꼭 살리고 싶었던 만큼 노력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현재에게 미아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검과 방패 값을 받지 못했으니 살려준 것 뿐이라고. 돈은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모험가.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게, 내일도 그렇다는 보장이 되어줄 수는 없었다. 이 목숨 언젠가는 끝날 것이며, 그게 내일일지도 모른다고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가 자신에게 정을 붙이지 않기를 바랬다. 자신 같은 게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계속 차갑게 대했고 그래서 계속 사지로 밀어넣었다. 항상 죽을 수 있다는 압박을 느끼고 버려질 수 있다고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미움을 사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럼 미아가 죽더라도 전혀 슬퍼하지 않고, 강하게 살아갈 테니까. 그거면 됐다.
살을 에는 겨울 바람에 벽난로 하나만으로는 소파에서 홀로 잠드는 추위에 버틸 수 없게 되어, 처음으로 현재가 미아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됐을 때, 현재는 차렷 자세로 천장을 보며 정말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꼭 대단한 죄라도 지은 것처럼. 아니면 짓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지. 그 자세로 잠을 잘 수는 있는 건가 궁금할 정도였다.
그날 미아는 처음으로 선잠을 그만두고 푹 잠들었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으리라고, 방심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미아는 점점 더 현재를 믿고, 현재는 미아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3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번 던전 탐사. 여태까지와는 다른 많은 일들이 미아의 가슴을 불안하게 했다.
네 명이 들어와 둘이 죽었다. 던전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몇 번이나 봤으나 이번에는 특히 불안했다. 던전이 무언가 전보다 특별했는가? 아니면, 염치 없게도 현재를 더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어 죽게 놔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버렸는가?
보스룸 앞에서 미아는 현재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여섯번째 감각, 직감이 그러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미아는 자신을 계속해서 살아남게 만들어준 직감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었다. 직감이란 여태껏 살아온 경험의 총체가 내린 판단, 어쩌면 이성보다도 훌륭한 위험 감지 도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아는 현재를 쫓아내려 했고, 현재는 오늘따라 쫓겨나지 않았다.
3년동안, 충분히 마음이 닳고 닳아왔음에도, 많은 죽음을 보고, 또 많은 괴로움을 겪고, 배신 당하고, 맞고, 욕 먹고, 짓밟히고, 그런 수많은 경험을 겪었음에도, 오늘 또 반항을 하고 있었다.
잘못됐음을 미아 또한 어렴풋이 느꼈다. 현재를 위해라고 변명하며 해왔던 많은 일들은 현재를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망가뜨리고 있었다. 주먹 다툼 한 번 해보지 않은 어린 양이 적응하기에 이 세계는 너무 잔혹하며 미아의 방침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하지만 미아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방식 밖에는 몰랐다. 이제 와서 전부 그만두고 친구라도 되자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만이 아닐까. 꼭 현재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만약에, 미아는 세상의 모든 만약에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면서, 그럼에도 만약을 생각했다.
만약에 우리가 네 평화로운 세상에서 만났더라면.
만약에 네가 내 동료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모험가가 아니라 동네 빵집에서 일하는 점원 아가씨였다면.
그러면 우리 관계는 좀 다를 수 있지 않았을까?
모두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에라는 말에는 그 어떠한 의미도 없으니까. 그저,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토해내기 위해 존재하는 말일 뿐.
미아는 이 세계의 사람이었으며, 현재에게는 신의 은총이 내리지 않았고, 미아의 직업은 모험가였다. 빵집 아가씨가 아니라. 그래서 그 모든 만약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미아는 현재를 철권으로 제재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때리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하고서. 현재가 이 세상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차라리 내 손으로 끝내버릴까?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계속 괴로워하는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워서, 안락사마저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꼭 개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현재를 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이 죄인 것을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쌓인 죄의 무게가 짓눌려 죽어버릴 정도로 커져버렸다. 기뻐할 일이었다. 마침내 현재는 강해져서, 이렇게 일격에 미아를 죽여버릴 정도가 됐다.
무슨 조화인지, 무슨 기적인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현재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일. 그것은 미아가 정말로 바라마지 않던 바로 그런 일이니까.
'마침내 강해졌구나.'
미아는 순수히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저런 식으로 강해지는 것은 그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신, 혹은 그에 필적하는 존재가 개입했기에 일어난 일이겠지.
즉 그녀의 노력은 닿지 않았고 보답은 없었으며 현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힘을 손에 넣었다.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했노라고, 그렇게 생각해도 틀릴 것은 없었다.
"야, 반항 안 하냐?"
"……."
미아는 그런 허탈감, 텅 빈 공허함으로 현재를 보았다. 어린 양은 어디 갔는지 잔뜩 상처 입은 늑대가 자신을 물어뜯으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파……."
"당연하지! 아프라고 때렸으니까!"
늑대는 웃으면서, 혹은 울면서, 울분을 손에 담아내면서 찰싹찰싹 미아의 뺨을 쳐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너는 진짜, 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단 말이야?"
잔뜩 상처 입은 현재에게 다 너를 위해서였노라고 뻔뻔스럽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얘기할 수는 없는데,
"……미안해. 내가 아는 사는 방식은 그런 것 밖에 없었어……."
결국 뻔뻔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한 탓에 현재의 격노를 샀다. 미아의 작은 배 위로 커다란 주먹이 내리꽂혔고, 인간이 인간을 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굉음이 울렸다. 미아는 피를 토해냈고, 현재는 또 소리질렀다.
"나는 너 때문에 몸을 다치고 마음을 다치고 이렇게 끔찍한 인간이 되어버렸어. 근데 그게 나를 위한 거였다고? 웃기지 마! 이딴 식으로 살아서 행복해질 리가 없잖아!"
이것은, 잘못됐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그 한 가지 태도를 고수한 어리석은 인간에게 내리는 단죄.
그렇다면 그 죗값은,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겠지.
허나,
"그렇지만, 그게, 죽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허나 다시 한 번 염치 없이 그 입이 열려버린 것은,
"살려줘……, 죽기 싫어……."
이제서야 강해진 현재 옆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바래버렸기 때문이었다.
'계속 함께 있고 싶은데, 곁에 머물고 싶은데.'
언젠가 놓쳐버렸던, 삶에 대한 애착이, 오늘따라 뼈에 사무치고 혼을 울릴 정도로 강렬하게 끓어올랐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너무 멀리 왔다.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그 수많은 선택지를 미아는 전부 무시하고서 계속해서 현재를 몰아붙였고, 그 대가는 지금에 돌아왔다.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멍청한 소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여기까지였다.
……여기까지여야 했다.
갑자기 배를 채우는 생명의 충만감, 안정된 호흡, 각성하듯 점점 또렷해지는 의식, 그 모든 청신호 속에서 미아는 눈을 떴다. 입안을 흐르는 비약의 비린내, 맛은 별로 좋지 않았다. 다만, 죽음에서 소생했다는 것에서 그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엘릭서, 신의 물약, 세상 그 어떤 질병도 상처도 고쳐준다고 하는 전설의 비약.
"그거, 엄청 비싼 건데……."
미아는 그리 말하며 쓰게 웃었다. 현재의 얼굴은, 3년간 덥수룩해진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