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순애조교 위강력간물-8화 (8/119)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이런 스포하기 뭣하지만 고구마 파트는 9화에 끝납니다.

비축분은 좀 많고 토요일 0시 되는 순간에 10연참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르젠타의 영웅

* * *

설마했던 설마였다. 마차가 진작에 돌아가버렸기에 도시로 돌아오는 길에 네 사람은 도보를 이용해야 했다. 걸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짐은 가벼워지기는 커녕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더욱 무거워졌다. 현재는 갖지도 못할 던전의 보상이 가득 실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짐을 내팽개치고 싶은 충동을 천 번도 넘게 느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의 옆에 걷는 여자들은 그 목을 쳐내는데 일 초도 걸리지 않는 살육 기계들이었으니까.

힘이 겨우 그것 밖에 안되냐는 두 여자의 조롱이 마치 허리에서 솟은 꼬리처럼 계속해서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재는 탈진하듯 잠들었고, 깨어난 후에 이번 여정 내내 쌓여왔던 역정을 미아에게 토해냈다.

"이제 날 좀 놔줘. 보면 모르겠어? 난 뭘 꾸밀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해! 은총조차 없는 약해빠진 인간이라고. 던전 같은 곳 가고 싶지 않아.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싶지 않아! 이게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차라리 노예가 되는 게 낫겠어!"

현재는 한심하게도 미아가 자신을 동정하기라도 바랬다. 안쓰러이 여겨서 처우를 좀 개선해줬으면, 그런 소망을 가졌다.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 반 작은 소녀의 자비라도 구걸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힘겨운 여정이었다. 게다가 그 소녀는 검 한 번 휘둘러 수십의 적을 베어낼 수 있는 괴물이니 이젠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강하다고 말을 듣기만 하는 것과 실제로 보고 오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노예가 어떤 삶을 사는지, 정말 알고서 말하는 거야?"

그러나 기대했던 연민은 오지 않고, 시베리아 벌판마냥 매서운 냉기가 서린 목소리로 훈계가 돌아왔다. 그 말에 현재는 멈칫했다. 이 이하의 삶은 있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노예는 이보다도 더한 고통 속에 살아간단 말인가? 법이 없으면 어쩌니 하고 허세를 부렸던 이주일 전의 자신이 죽이고 싶어졌다. 한국의 법과 사회가 너무나 그리워지는 현재였다.

"아무튼, 이만큼 했으면 됐잖아. 난 도시에 해를 끼치러 온 사람이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어. 지나가는 아무 사람보다 약한데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놓아줘. 내가 아무 식당에나 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진 않아도 되니까 그냥 용납만 해줘."

"……."

미아는 대답 없이 현재의 얼굴을 살폈다. 현재는 화가 났다. 그 끔찍한 노동 후에 나온 보수가 겨우 은화 하나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은화 하나는 미아가 하루 쓰는 식비보다도 적었다! 일주일의 지옥 같은 노동의 대가로 받을 보수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너 같은 괴물은 될 수 없어! 은총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죽이는 걸 직업으로 삼을 만큼 피에 미치지 않았단 말이야! 쥐새끼보다 큰 건 죽이고 싶지도 않아! 하나 살을 가를 때마다 역겨움에 토할 것 같단 말이다."

현재는 억지로 강요당했던 살육이 떠올라 속이 메슥거렸다. 머리도 어지럽고 뜨거운 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억지로 참았다. 이 세계는 끔찍한 곳이었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죄가 있길래 이곳에 떨어졌는지 너무 억울할 정도로.

"그렇게 물러서는 금방 죽을 거야 너."

미아는 다시금 충고를 했고, 현재는 부정했다.

"나를 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건 너 뿐이야. 도시는 안전하잖아. 이 성벽 안으로는 괴물이 찾아오는 일도 없고,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잖아. 나도 그 안에 끼고 싶다는 게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원이야?"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모험한다? 그딴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이곳에 갑자기 날아온 것처럼 갑자기 지구로 돌아가기를 기도할 뿐. 싸우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모험한다는 것은 평생 피와 폭력으로부터 박리되어 살아온 현재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그냥 요리나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가 여지껏 목표로 해왔고 꾸준히 노력해왔던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었다. 어울리지도 않고 생각도 해본 적 없던 싸움을 생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이 집을 나가도 좋아. 하지만,"

"검과 방패 값은 확실히 치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옷값도."

현재는 미아가 할 말을 선수쳤다. 그녀가 빚을 사해줄 만큼 착해빠진 인간이 아니라는 건 철저하게 느꼈다.

"조금은 성장했네. 아직 멀었지만."

"내가 다른 곳에 취업하는 거 방해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래. 능력껏 해봐."

현재는 검과 방패, 자신의 옷가지와 은화 한 닢을 챙겨 집을 나섰다. 홀로 서기의 시작이었다.

* * *

하루는 완전히 공쳤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나 신분 없는 이방인을 냅다 취업 시켜주는 편리한 식당은 도시 안에 없었다. 미아의 집에 머무는 거인의 소문이 돌았음에도 그랬다. 그렇다고 염치 없이 미아의 집에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그는 여관에 묵었다.

하룻밤 방을 빌리는 건 동화 두 닢이었다. 은화를 내고 거슬러 받은 동화 여덟 닢이 남았다. 식사는 동화 세 닢이었는데, 식사비로 그리 큰 돈을 쓰면 당장 내일 잘 곳도 불안해지는 탓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은 농가에 일용직으로 고용되어 성벽 바깥에 가 하루종일 감자를 캤다. 그리고 하루 일당으로 동화 세 닢을 받았다. 그나마 점심으로 찐 감자를 많이 먹었다는 게 위안이 됐다. 하루를 통째로 굶은 탓에 너무 많이 쳐먹는다고 욕을 먹었다. 여관비로 다시 동화 두 닢을 내야 했기에 하루 일당으로 남은 것은 동화 한 닢 뿐이었다.

하루 동화 한 닢 씩을 저금하면 금화 스무 닢을 모으는데에는 2000일, 즉 6년 가까이가 걸렸다. 이대로는 안됐다.

'미아네 집이 편하기는 했는데.'

숙식 제공에 음식도 질이 높았다. 이 세계에서 고기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비싸서 도저히 지금의 처지에는 손을 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싼 편인 계란이라면 겨우 입에 댈 수 있을까. 미아의 집에 있는 동안엔 매일 종류별로 고기를 입에 넣었었는데.

'아니, 다시 그 지옥에 끌려갈 수는 없어.'

그러나 던전은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다. 다시 한 번 그 일을 겪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었고, 무엇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미아는 말했다. 나는 당신 부모가 아니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현재는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꼭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현재는 매우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험한 사람이며 또 위험한 일을 하는 미아 옆에 있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내일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지.'

현재는 애원에 가까운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겨우겨우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했다.

"잠은 헛간에서 지푸라기 깔고 자면 되고, 먹을 건 빵 정도는 주도록 하지. 그리고 하루 일당은 동화 다섯 닢이야. 어떤가?"

"좋습니다."

현재는 제법 큰 빵집에 취업했다. 제빵사인 중년 남자와 그 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빵집 주인은 가게 따로 집 따로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인물이었는데, 가게의 숙성실 겸 창고로 쓰이는 헛간에서 자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매우 오랜만에 느끼는 호의였다.

'미아였다면 분명 어떻게 믿고 창고를 맡기냐고 했을 텐데……. 아니, 어째서 자기 집에서 재워준 거지 그 애?'

현재는 이 세계의 인심이 얼마나 각박한지 지난 이틀간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의심이 가득한 경계의 눈초리로 봤고, 무엇 하나 제대로 믿고 맡기지를 않으며 항상 감시했다. 그러지 않은 건 지금 만난 이 아저씨와, 처음에 만났던 미아 정도.

'아니, 분명 금방 찾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던 거겠지.'

심부름이나마 돈을 맡기고 집안에서 자게 허락해줬던 이유. 그건 분명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거다. 현재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루 동화 다섯 닢이면 금화 스무 닢까지 일 년 조금 넘게, 스물 일곱 닢까지도 일 년 반 정도면 된다. 검과 방패는 억지로 떠넘겨진 거니까 늦게 갚는다 해도 뭐라 할 수 없겠지. 그러니까 자유민까지 딱 일 년만 버티면 돼.'

생에 대한 갈구. 현재는 다른 세계에 떨어졌다 해도 살아가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빵집 일은 고된 편이었으나 호텔 주방에서 단련된 그에게 못할 일까지는 아니었다. 때때로 가지고 있는 요리 센스를 사용하여 도움을 주면 빵집 주인은 크게 좋아했다.

'그래, 이게 착한 사람이고 선의지. 미아 그것은, 그냥, 그냥 그런 그거야, 그거.'

명확히 뭐라 칭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현재는 미아가 자신을 대했던 태도를 깎아내려갔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를 괴물이라 비난했던 자신이 잘못한 것 같으니까.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 * *

"내 호의로 너한테 믿고 맡겼는데! 그 대가로 돌아온 게 도둑질이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저씨!"

현재는 길거리로 내팽개쳐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빵집에 놓인 금고에서 금화 세 닢이 사라졌다. 그리고 빵집 주인은 범인이 현재라고 확신했다.

"아니기는 무슨! 한 달이 지났다고 금고를 맡긴 내가 병신이지! 맡기자 마자 돈을 훔쳐!"

현재는 가게 안에서 길거리로 내동댕이 쳐졌다. 그 소란을 보고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그 사람들을 향해 빵집 주인은 외쳤다.

"이보세요! 동네 사람들! 이 녀석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까지 준 은혜도 모르고, 내 금고에 손을 댔지 뭐요!"

"그거 아주 못된 놈이네."

"아니야! 난 범인이 아니야!"

"근데 저거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요? 생긴 것이 오거 급인데 난동이라도 부리면."

"걱정들 마쇼! 덩치만 곰만 했지 힘은 개새끼만도 못한 놈이니까. 어디 딴데서 먹을 걸 잔뜩 훔쳐먹고 큰 모양이지?"

"쓰레기!"

"죽어!"

몰려든 구경꾼들은 돌멩이를 주워 현재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하나라면 어떻게 달려들기라도 할 텐데, 십수 명이서 그러고 있으니 덤벼들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현재는 은총이 없는 몸. 은총이 있는 일반인을 상대로 덤벼봤자 죽도 밥도 안 됐다.

"윽! 그만!"

머리를 감싸고 있는 팔 여기저기에 돌에 맞아 긁힌 상처가 생겼다. 때로는 퍽 소리가 나며 나중에 멍이 들 것이 분명한 타박상을 남기기도 했다. 아직 죽이겠다고 온힘을 다 실은 돌이 날아오지는 않았으나, 점점 돌팔매가 강해지는 것을 보니 곧 어디가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덮쳐들었다.

"아냐! 내가 아니야!"

"이놈이 끝까지 거짓말을!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돈을 내놓으면 봐주려고 했더니만!"

현재는 범인이 아니었고 먹고 죽으려 해도 금화 세 닢이 없었다. 그러므로 내놓을 수도 없었다.

"억울합니다! 억울하다고요!"

그 외침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빵집 주인이 모함을 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야 거리의 행인들에게 빵집 주인은 같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웃이자 친구였지만, 현재는 낯선 이요 이방인이며 시민조차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유대고 인간 관계였다. 현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더 맞으면 진짜 죽겠다고 현재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한 소녀가 나타났다.

"여러분, 멈추세요."

"미아?"

현재는 한 달만에 나타난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마치 혼잣말처럼.

"미아 님! 이 녀석이 제 금고에서 돈을 훔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매질은 당연한!"

"돈을 훔쳤다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죠?"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방인 따위를 재판에 세우는 게 맞는지."

법정이란 신분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관. 무연고자인 현재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가 이 남자의 신분 보증인이 될게요."

"예? 미아 님이?"

빵집 주인은 매우 당황했다. 미아는 도시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며 그렇기에 권력이 있는 유력자다. 그런 사람이 현재를 싸고 돈다면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

"걱정 마세요. 확실하게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 뿐이니까. 정말 이 남자가 돈을 훔쳤다면 제대로 벌을 받게 만들 거에요. 저를 못 믿으시는 건 아니죠?"

"미아 님께서 그러시다면야……."

이제 와서 뺄 수도 없는 노릇. 빵집 주인은 미아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도시에 미아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이라고는 성에 있는 영주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미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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