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제 8화. 헌터.(4)
* * *
샤르 또한 린 처럼 로비 외곽으로 보낸 후에, 튤립 봉오리를 없애고 하나 다음으로 보미를 불러 세웠다.
"보미야. 너는 근접 타입이었지?"
그러면서 그림자 인형을 다시금 소환 해 보미의 한 열 걸음 앞 정도에 세워 놓았다.
"네. 맞아요. 아빠."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로 경쾌하게 대답한 보미가 열심히 제자리에서 스트레칭 하면서 승부욕이 가득한 눈으로 그림자 인형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열혈감이 느껴지는 스포츠 소녀 같은 타입이랄까?
아마 붉은색 슬라임 몸이 아니었다면 구릿빛 피부에 잔근육이 있는 건강한 스포츠 소녀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하나와의 테스트 끝에 어느 정도 나도 그림자 인형을 다루는 법이 익숙해져서 손가락을 딱 부딪치자, 그림자 인형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어렸을 적에 탐정 만화 영화에서나 범인의 비주얼로 나올 것 같은 검은 인형이 오락실에서 자주 보던 격투사들의 기본 자세처럼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보미 또한 그 모습을 얼추 따라 하듯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다만 내 그림자 인형이 취하는 자세가 태권도의 기본 자세와 비슷했다면, 보미의 포즈는 유도의 기본 자세와 비슷해 보였는데.
그림자 인형을 놀려 앞발차기를 하며 보미에게 빠르게 접근하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발차기를 피한 보미가 빠르게 그림자 인형의 다리를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대로 다리를 붙잡은 상태로 관절 꺾기를 들어가려는 듯 자세를 취하는 보미를 보며, 그림자 인형의 몸을 기괴하게 틀어 재빠르게 관절 꺾기에서 벗어났다.
다리가 비틀어지면서 고무처럼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검은 인형을 본 보미가 씨익 웃으며 발끝을 붙잡으려는 듯 아귀힘을 주는 것이 보였지만.
마지막에는 물처럼 분해된 그림자 인형의 다리가 보미의 손에서 벗어나 그대로 하체를 바닥에 뭉게듯이 착지한 후에 그대로 접근한 보미의 턱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그림자 인형의 몸을 본 보미가 그대로 어퍼컷 하는 손을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다가, 돌연 손바닥을 쫙 펴서 그대로 그림자 인형의 팔 자체를 후려치며 팔을 꺾어 버렸다.
촤악.
비산하듯이 흩어지는 그림자 인형의 팔과 함께 뒤로 튀어 오르듯이 몸을 물러나게 한 그림자의 인형을 다시금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다만 방금 전 공격으로 인해 그림자 일부가 파손된 만큼 보미의 체구만하던 그림자 인형이 에실리만큼 줄어들었다.
"쪼그매졌어."
내 옆에서 만드라고라를 만지작거리며 서 있던 에실리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더불어 저 멀리서 그런 에실리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샤르의 모습도 보였다.
혹시 저 자그마한 만드라고라에 샤르가 머무는 걸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확실하게 자그마한 만드라고라일 때 영혼은 샤르의 영혼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샤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말이다.
다시금 보미에게 시선을 옮기자, 이번에는 보미가 그림자 인형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 유도의 자세가 아닌 이번에는 확실하게 주먹을 쥐고 그림자 인형을 팰 듯이 자세를 잡는 보미.
옛날 오락실 게임에서 보았던 격투사들처럼 일자로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몸이 자석이라도 달린마냥 그림자 인형을 향해 날아가는데, 그림자 인형을 이용해서 살짝 몸을 틀어 피하자, 곧장 날아가던 자세가 앞으로 구르는 자세가 되더니, 이내 제자리에서 몸이 확 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옆으로 회치한 그림자 인형을 향해 날아오는 뒤돌려 차기.
화려하고 큼직한 움직임만큼 위력이 대단한지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어나면서 피한 그림자 인형의 몸에서 그림자가 또 한움큼 터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닿지도 않았는데, 저 정도라.
사실 그림자 인형 자체가 견고하거나 단단하지 않고 거의 물과 같은 경도를 가진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손쉽게 파괴 될 만큼 약하게 마력을 부여한 상태도 아니었다.
물과 같은 경도지만, 지금 마력으로 그 경도를 올려서 거의 바위 같은 경도를 가졌다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지금 보미의 격투술은 스치기만 해도 바위를 파괴할 정도라는 이야기였다.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독특하거나 대단하지도 않다.
미궁에서 보았던 아우렌이나 아우라스 같은 미노타우로스 걸들을 떠올려 보면, 바위는 물론이고 무쇠 다발도 나무 젓거락처럼 부러뜨리는 괴력과 비교하자면 지금의 보미는 그에 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헌터로서 꽤 각광받고 있고, 높은 등급의 신체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들었는데. 내가 헌터들을 너무 강하게 생각한 걸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강함의 기준이 잘못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가 방금 전에 싸우기도 했던 세계수와 비교하자면, 지금 보미의 능력으로는 아까 전 세계수의 가지 하나도 감당 못 할 가능성이 컸다.
이거 어찌 보면 내가 세상을 구한 격이 되는 건가?
세계수가 가졌던 야망을 떠올리면서 뒤통수를 긁적이다. 샤르와 눈빛이 마주쳤다.
저 녀석과 제대로 이야기해볼게 생긴 것 같은데. 심상 세계라면 블랙마켓때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가 관여를 못 하는 공간이었으니까.
어쩌면 샤르는 지구에서 세계수가 적응을 못 하는 것을 블랙마켓에서 영향력을 키워, 지구를 침공하는 식으로 대신했을지 모른다.
그것도 엘프를 앞세워, 지금의 지구를 침략한 용사들처럼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괘씸해지는데?
"얍. 얍."
입에서 귀여운 기합 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위협적으로 내 뻗어지는 팔과 다리.
보미의 내구도를 체크하기 위해 그림자 인형으로 공격을 가할 때마다 어김없이 반격이 들어온다.
그림자 인형을 여기서 더 강화하기에는 어려워 다시금 보미의 주먹이 그림자 인형에 박히면서 터져 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전투를 마무리 짓기로 생각했다.
"거기까지."
사라져 버린 그림자 인형 대신 다시금 내 그림자 안에서 새로운 그림자 인형을 만들어냈다.
검은 마력과 근원은 같으나 결이 다른 마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림자 마력이라고 통칭한 마력이 그림자 안에서 새로운 그림자 인형을 만들어내 그림자 위로 올려보냈다.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그림자 인형이 만들어져서 올려보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익숙해지면 그림자 마력을 더 사용해서 그림자 인형을 하나가 아닌 여럿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우. 아빠 어때요?"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뒷짐을 쥐고 서 있는 보미에게 따봉을 날려 준 후에 옆에 서 있던 에실리를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만드라고라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에실리가 나를 스윽 쳐다보더니 다시금 그림자 인형을 바라보았다.
"아빠. 아까처럼 작게 만들 수 있어요?"
그 말에 그림자 인형을 향해 마력을 반쯤 거두자, 검은 인형의 몸에서 물처럼 검은 그림자가 콸 콸 새어 나왔다.
그러자 곧바로 보미에게 처음 얻어맞았을 때처럼 에실리 만큼 줄어든 검은 인형.
하지만 에실리는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만드라고라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그림자 인형에 있던 마력 절반 정도를 거두자 이번에는 딱 에실리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그림자 인형이 되었다.
그러자 그림자 인형을 향해 다가가는 에실리.
에실리의 능력은 하나나 보미와 다르게 공격형이 아니라 치유형이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힐러였고, 내 경험으로 보자면 아마 엔젤 슬라임으로 진화했던 에슬리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미궁에서의 에슬리는 자기 슬라임 몸을 이용해서 빠르게 자연치유시키거나, 혹은 자기 채액을 섞어 만든 포션으로 나를 치료했다.
포션은 슬라임의 몸으로 치유하는 것보다 치유 자체는 느렸지만, 원할 때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 에실리는 엔젤 슬라임으로 진화는 하였지만, 내가 없을 때는 그냥 슬라임이었고. 분명 힐러 포지션이라고 했으니 별다른 치유법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라고 하자마자 에실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만드라고라를 내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좀 더 작게 해 줘. 아빠."
다시 한번 그림자 인형에 마력을 거두자, 이번에는 만드라고라 크기로 그림자 인형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그림자 인형으로 다가가 그림자 인형을 덥썩 집어 드는 에실리.
심지어 그 와중에 두 손으로 인형의 겨드랑이를 껴서 집어 드는 자세라 그런지 방금 전까지 조물락 거리던 만드라고라는 바닥에 털썩 떨어져 버렸다.
그 모습에 저 멀리서 샤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였는데.
내가 눈치를 주자, 일그러졌던 표정을 피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휘파람을 피는 모습을 보인다.
완전 마이페이스네. 준신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떠받들여지는 삶을 오래 살아서 그런가?
샤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림자 인형을 두 손으로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에실리를 보면서 옆에 다가온 하나와 보미를 향해 말했다.
"에실리는 평소에 어떻게 일해?"
"음. 아빠. 에실리는 일을 안 해요."
하나의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헌터 일을 같이 한다며?"
"에실리는 그러니까... 포지션은 힐러긴 힐러인데. 버프형 힐러거든요."
"버프형 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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