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제 17화. 영혼의 그릇.
* * *
격과 영혼의 그릇.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반신에 이르러서 격의 차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는 느낌.
그 느낌 하나 만으로 격이 상승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영혼의 그릇이라는 안드레아의 말에 살짝 의문이 들었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벙긋 열었는데,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영혼의 그릇이란 무릇 격에 맞춰 상승하는 법인데, 너 같은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격이 끌어 올려지고, 영혼의 그릇이 그에 맞지 않아 헛도는 느낌이구나."
영혼의 그릇이란 무엇일까?
단어 그 자체로는 무언가 영혼에 질 같은 걸 말하는 걸까?
지금 내가 단순하게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반신이라는 격에 맞게 상승 시켜야 한다는 걸까?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빠르겠지."
스윽 내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안드레아의 모습에 따라 뒤로 몸을 돌려 세웠다.
두 손을 들어보았다. 투명하게 변한 손과 팔.
분명 감각은 있는데,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더욱이 권능 때문인지 투명한 상태가 되었는데도 오감이 발달하여 모든 것이 선명하고 뚜렷하게 보고 느껴진다.
천천히 안드레아를 따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갔다.
상처 하나 없는 맨발에 기계처럼 같은 보폭과 같은 자세로 걸어가는 안드레아의 뒷 모습.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기계나 인형에 가까워 보이는 그녀는 계속해서 길을 걷던 도중 복도 형식이 끝나고 조금 넓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좀 전이 보통 학교의 복도 같이 좁았다면, 지금은 지하철 통로 같이 넓다고 해야하나?
넓은 길이 펼쳐짐과 동시에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주변이 환해졌다.
원래부터 하얀 대리석이었던 탓에 정신병이 걸릴 정도로 주변이 환했는데, 공간까지 넓어지면서 뭐랄까?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오히려 너무나 깨끗하고 밝은 공간에 신성함마저 든다고 해야하나?
인간치고는 땀 한방울 몸에 티끌 하나 없는 안드레아가 정면을 향해 계속 걷다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좁은 통로때와 다르게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 대신에 신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기둥과 독특한 문양이 장식된 벽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멈춰선 안드레아는 그런 기둥들과 벽들을 천천히 두리번 거리며 살피다가 이내 바닥에 주저 앉았다.
가느다랗게 새아햔 등허리 라인이 드러날 정도로 가냘픈 그녀의 뒷모습.
새하얀 프릴 원피스를 걸쳤다고는 해도 거의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했기 때문에 그녀의 처량한 나신이 그대로 시야에 비춰졌다.
그런데 그 순간 다리를 한쪽으로 구부린 상태로 처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안드레아의 머리 위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빛이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라고 해야 하나?
새하얀 대리석으로 온통 칠해진 공간에서 유난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 빛줄기와 동시에 주변이 무대 위처럼 암전되듯이 시커멓게 변했다.
정말로 연극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처럼 처량하게 주저 앉아 있는 안드레아의 곁으로 무언가가 서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평범한 여성보다 훨씬 큰.
안드레아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장신의 여신상이 안드레아를 향해 걸어왔다.
딱 보아도 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이질적으로 커다란 키에 유일하게 감정이라는 것을 가진 것처럼 움직이는 표정을 가진 여신상.
평범한 조각상들과 달리 여신상이라고 느꼈던 것은 뭐랄까? 신성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이 내 눈에도 보일정도로 이질적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운에 휩싸여 있는 여신상.
좀 전에 몸이 비춰질 정도로 얇은 재질의 천을 두르고 있는 안드레아와 달리, 명주로 만든 것처럼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신상이 안드레아의 앞에 섰다.
다른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여신상의 시선이 안드레아를 향했다.
얼굴이 움직이며 슬퍼보이는 표정을 짓는 여신상.
그리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고장난 인형처럼 바닥으로 시선이 향해 있는 안드레아.
천천히 내 몸을 움직여 그 둘의 옆으로 다가가자, 주저 앉아 있는 안드레아와 여신상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보였다.
새하얀 대리석, 그것도 마치 구체관절인형처럼 인간의 마디와 관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움직일수 있도록 균열이 가 있는 여신상의 손길이 안드레아의 머리 위로 향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안드레아의 시선이 여신상을 향했다.
여러가지 감정들이 섞인 표정.
그리고 여신상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그녀의 표정이 흉측한 반쪽짜리 피부가 하얀빛으로 휘감기더니 묘하게 정화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안드레아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자, 곧 반쪽 짜리 피부에 머물던 하얀빛이 사라졌다.
"고치지도 못할 거면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당황해하는 여신상의 모습.
하지만 이내 안드레아가 거칠에 그녀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신상이 마치 신기루처럼 그녀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빛줄기와 함께 암전되었던 시야가 다시금 밝게 변하며 새하얀 대리석 벽과 통로를 만들어냈다.
좀 전에 지하철 같이 넓은 통로 대신에 처음 내가 안드레아를 보았던 것처럼 교실 복도처럼 좁아진 통로.
그 안에서 안드레아는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다만 신기한 점이 걸으면 걸을 수록 그녀의 몸이 자그마해지며,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점이었다.
계속해서 걸을때마다 작아지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에 맞춰 통로의 길이 좁아졌다.
대리석 기둥과 바닥, 그리고 돔처럼 둥근 천장, 간간히 보이는 조각상들은 대부분 발가벗은 여인의 상체를 조각한 조각상이나, 전신을 조각한 모습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안드레아가 어려질 수록 그 조각상들 대부분이 미완성이거나, 팔 다리가 없거나, 혹은 얼굴에 눈, 코, 입이 없는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미완성이라기 보다는 실패작이라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인간보다는 만들다 만 인형처럼 보이는 조각상들의 모습.
이윽고 그녀의 보이는 모습이 10살 소녀 정도의 모습으로 변하자,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어려졌음에도 반쪽은 대리석처럼 새하얀 피부에, 한 쪽은 검붉은 피부로 흉측한 몰골.
다만 어려졌기 때문일까? 색이 어른이 됐을 때 보다 좀 더 연했는데, 그녀가 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좌우를 살피는데, 뭔가 움직임이 어설퍼 보였다.
맨발에 바닥까지 닿는 치렁치렁한 밤하늘빛 머리카락.
옷은 좀 전에 입고 있던 새하얀 원피스 대신에 연한 흑색의 무릎까지 닿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딱 보아도 이 곳하고는 이질적이라고 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앳된 목소리를 내 뱉으며 주위를 살펴보는 그녀에게 좀 전에 보았던 그 여신상이 다시금 눈 앞에 나타났다.
아까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마치 신기루 처럼 눈 앞에 나타난 여신상은 다시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여신상이 소녀 안드레아에게 손을 뻗었다.
"히익."
그러자 뒤로 벌러덩 넘어지면서 안드레아가 놀란 토끼처럼 여신상을 올려다 보았다.
과거로 돌아간 걸까?
왜 라는 의문보다 그럴싸한 결과를 추측한 나는 다시 한번 안드레아와 여신상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누...누구세요?"
주변에 미완성된 조각상들과 달리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한 여신상이 허리를 수그려 안드레아를 내려다보니, 그녀가 두 팔과 엉덩이로 뒤로 기어가며, 거리를 벌렸다.
"저기요?"
완전히 어린 소녀가 된 안드레아가 겁에 질려서 앞에 있는 여신상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앞으로 넘어질 것 같은 자세로 뒤로 달리기 시작하는 안드레아.
그녀를 뒤따라 움직였다.
조금 전 교실 복도보다 훨씬 더 좁은 통로를 달리는 안드레아.
먼지 한톨 없는 이 공간 자체가 무언가 신성하게 느껴졌는데, 그녀를 따라 달리며 뒤를 살짝 바라보니, 조금 전 안드레아의 앞에 나타났던 여신상이 허공에 붕 떠오른 상태로 안드레아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건 뭐... 공포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비쥬얼에 잠시 흠칫 거렸다가, 이내 안드레아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다시금 안드레아의 뒤에 따라 붙었다.
마치 유령이 되어 안드레아를 살펴보는 것 같은 느낌.
안드레아의 고사리 같은 손이 허공에 허우적대고, 반쪽짜리 흉측함에서 벗어난 두 다리가 계속해서 쉼 없이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얼마나 달렸을까?
복도가 좁아지면서 안드레아 같은 작은 소녀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출구가 앞에 나타났다.
어느 순간부터 안드레아를 뒤따라 오던 여신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지만, 안드레아는 그런 여신상이 떠올랐는지 다급한 얼굴이 거의 앞으로 넘어지다시피 출구로 빠져나왔다.
출구 밖.
순식간에 눈부실 정도로 샛노란 햇빛이 안드레아의 앞에 쏟아지며, 출구로 발을 내딛은 안드레아가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린 채 인상을 찌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