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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1. 완벽한 결혼식 (47/48)

비하인드 스토리 1. 완벽한 결혼식

줄리앙 아르디 레날과 레아델피나 루이스 리버런은 벌써 결혼식만 수백 번을 올렸다. 하지만 어느 결혼식이고 완벽하지는 않았다.

“꼭 무슨 일이 생겼지요.”

“무슨 일이라니?”

* * *

레날 공작저에서 성대한 대접을 받고 복숭아의 비밀을 밝혔을 때 카리안은 이것이 줄리앙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젊고 슬픈 공작은 제 아내가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복숭아를 먹이겠노라며 다시 한번 카리안을 찾아왔다. 그때 또 한 번 늙은 마법사는 이번에야말로 줄리앙과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작은 또다시 카리안의 예상을 벗어났다. 줄리앙 레날 공작은 다시 한번 카리안을 찾아왔다.

“내 결혼식에 와 주시겠소?”

너무도 행복한 소식을 들고 말이다.

그동안의 사정을 모두 들은 카리안은 체통이고, 공작과 자신의 신분 차이고, 며칠 동안 그를 애먹이고 있는 허리의 통증이고 뭐고 모든 것을 잊고 그와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카리안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레날 공작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해 그들을 축하해 주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해 줄 것이 많아요.”

그렇다. 그의 예상은 또 틀렸다. 공작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혼식 때마다 꼭 이상한 일이 생겼소.”

줄리앙이 하소연했다.

“이상한 일이라니?”

“최악의 결혼식은 단체로 배탈이 난 때였소. 음식이 다 상해 버렸지요. 어떤 때에는 베일을 밟아 레아가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내 아내가 다치는 데에 조금 예민하게 굴 이유가 있었지. 그래서 결혼식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말이오. 뭐, 그럭저럭 기분 좋게 결혼식을 끝마쳤지만, 레아, 그 착한 여자는 몇 년이 지나서야 내게 말하더군. 결혼식 때 내가 너무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속상했다고 말이야. 전쟁이 나서 전혀 결혼식 준비를 같이 해 주지 못했던 적도 있소. 그것도 레아 맘을 퍽이나 상하게 했지. 여왕이 보낸 따분한 음악이 죽을 것 같은 적도 있소. 한번은 숲에서 결혼하는데 웬 두더지가 갑자기 나와 하객들을 놀래켰지. 문제는 놀랜 하객이 지른 비명에 결혼식 케이크를 가져오던 하녀가 그만 그걸 떨어뜨렸다는 데에 있어. 어떤 때는 레아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떨어뜨려 잃어버리고 말았지. 그 생이 끝날 때까지 결국 찾지 못했소. 너무 레아다운 이야기 아니오?”

줄리앙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입을 내밀었다가 눈을 축 늘어뜨렸다가 마지막에는 덤벙거리는 제 아내를 생각만 해도 사랑스러운지 웃으며 결혼식 때 벌어진 참사들에 관해 설명했다.

카리안은 이 오래 산 친구가 자신을 찾아와 이렇게 수다를 떨어 주는 것이 몹시도 기분 좋았다. 이 친구는 어딘가 특별한 데가 있었다. 그렇게 오래 살았고 그토록 수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아직도 수백 번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짓는 저 변화무쌍한 표정이 그랬다. 그는 정답게 웃으며 줄리앙에게 물었다.

“그래서 불행했소?”

줄리앙은 스스럼없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다 행복한 기억뿐이었소.”

“그럼 이대로 괜찮지 않소?”

카리안이 물었다.

“아뇨. 이번에는 완벽해야 합니다.”

“왜 그러시오. 오래 산 양반, 정말 중요한 게 뭔질 모르는 거요? 몇백 년을 헛살았소?”

줄리앙은 몇백에서 몇천으로 카리안의 말을 수정해 주려다 말고 웃었다. 그렇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결혼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줄리앙 레날도 알고 있었다. 레아 역시 결혼식 같은 건 안 해도 괜찮다고, 안 하는 편이 더 좋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줄리앙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난 정말 많이 했소.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줄리앙의 말에 카리안은 가늠해 보았다. 대체 몇 번이나 결혼식을 하고 몇 번이나 결혼 생활을 한 걸까 하고 말이다. 정작 카리안 본인은 단 한 번을 하지 못한 결혼 생활이었다.

“얼마나 하셨소?”

궁금증을 못 참고 카리안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요.”

“그런데 아직도 의욕이 불타오르시니, 당신이 아직 젊기는 젊구먼.”

카리안의 농담에 줄리앙은 씩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했으면 좋겠소. 하나의 실수도 없이 다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으면 좋겠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야말로 아무런 결핍 없이 행복해지기만 하고 싶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이오.”

카리안은 이것을 단순히 젊은 완벽주의자의 까다로운 강박이라 치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줄리앙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완벽한 결혼식을 위한 마법이라, 그쯤이야 그리 어렵진 않았다. 열심히 결혼식을 지켜보다가 불이 나면 꺼 주고, 두더지가 오면 얼른 차원이동을 시켜 주고, 케이크가 떨어지면 냉큼 다시 공중부양을 시켜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좋소. 그럼 결혼식 때 보면 되겠소? 언제 어디서 있는 거요?”

“지금 나와 함께 출발하면 됩니다. 그 전에 이걸 먼저 봐 주시오.”

줄리앙이 내민 것은 낡은 종이 한 장이었다. 꾸깃꾸깃한 종이에 어린애가 서툰 솜씨로 정성껏 그린 그림이 있었다.

“레아의 것이오?”

“그렇소.”

줄리앙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주 귀엽지요?’라고 덧붙이고 싶은 듯이 신이 나서 말이다. 카리안은 한숨을 푹 쉬고 줄리앙에게 물었다.

“대체 언제 것이오?”

“글쎄요. 103번째인가 105번째였나. 레아가 직접 보여 주었던 그림이었소.”

“그때는 이 그림대로 결혼식을 했소?”

“아뇨. 못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결혼 생활을 한참 하고, 그녀가 죽고 나서야 이 그림을 발견했으니까요.”

‘죽고 나서’라고 말할 때 줄리앙의 어조는 단조로웠다. 하지만 카리안은 예리한 사람이었다. 줄리앙이 ‘그녀가’라고 말한 후 조용히 한 호흡을 내신 후 말하기 싫은 단어를 억지로 말할 때 누구나 그러하듯 휘몰아치듯 빠르게 그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보았을 때, 카리안은 또 줄리앙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이 마음 착한 마법사는 이미 줄리앙이라는 슬픈 미남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터였다.

“그럼 그다음 생에는 이대로 하였소?”

“아니오. 그때 리버런 섬에 태풍이 불어 레날의 영지에 와서 결혼식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소. 레날의 영지에도 비가 왔고요. 최악이었소.”

‘최악’이라고 말하면서도 줄리앙은 다시 한번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당신 표정을 보니 최악이었지만 행복했겠군.”

“그럼요. 아, 하지만 이번은…….”

“그래요. 이번은 완벽해야 한다고. 알았다오.”

카리안이 말을 마치자마자 줄리앙은 종이를 한 장 더 내밀었다. 거기에는 그림 대신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여러 가지 것을 두서없이 적어 둔 목록이었다.

[저녁 늦게

라벤더 숲

수국으로 만든 부케

수풀을 헤치고 걷기

꽃들을 엮어서 만든 아치(레아의 그림 참고)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만 초대할 것

음유시인의 노래]

“노래는 뭐요?”

카리안은 그 아래로도 한참은 더 있는 목록을 읽다 말고 줄리앙에게 물었다.

“아, 카리안. 음유시인을 한 명 찾아주셔야겠소. 레아가 어려서부터 듣던 노래가 하나 있는데 말이오. 이상하게 이 노래만 들으면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이다. 내일은 달라질 거라고, 그런 기분이 든답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내일이야말로 달라지겠구먼. 그래, 이걸 언제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지금이요. 당신만 괜찮다면 한 시간 후에 함께 떠납시다. 카리안, 이 근방에 사는 음유시인 있지요?”

카리안은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있기는 있었다. 줄리앙은 예의 그 근사한 미소를 보이며 카리안의 손을 턱 잡았다.

“감사하오. 카리안. 참석해 주실 거지요?”

카리안은 다시 한번 그 목록을 읽어 보았다.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만 초대할 것.]

그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며 노인은 말했다.

“참석하고말고. 이번에야말로 정말이지 완벽한 결혼식이 될 터이니.”

그리고 정말로 그 말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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