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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연푸른색 드레스 (6/48)

6. 연푸른색 드레스

“연푸른색 드레스 좀 가져다줄래, 유모?”

“벨라 아가씨 결혼식 때 맞춤한 그 드레스요?”

유모가 가져다준 드레스를 대 보며 내일 아침에 입을 거라고 하자 유모는 오전부터 입기에는 너무 화려한 것이 아니냐며 툴툴거렸다. 조찬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드레스를 입고 치장하려면 나도 나지만 유모도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투덜거리는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부터 입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옷이긴 했다. 그냥 대 보기만 하려고 옷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가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홀린 듯 보실 거면 그냥 입어 보세요.”

“시간 없다면서.”

“아이고, 언제 아가씨가 이 할망구 사정 생각해 주셨다고 그러세요. 안 입어 보면 숨넘어가실 거 같은데.”

구시렁대면서도 유모는 내심 내게 이 드레스를 입히고 싶은 눈치였다. 아무렴, 벨라 언니 결혼식 때도 이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우리 아가씨 이렇게 커서 곧 시집가시겠네 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유모 눈에야 내가 세상 제일가는 미녀면서 또 아직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어린 꼬마 아가씨니 말이다.

유모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를 몸에 걸쳤다. 어깨가 살짝 드러나는 에이라인의 연푸른색 오건디 실크 드레스는 심심할 정도로 단순했다. 새 신부 벨라 언니 옆에 서서 언니의 하얀 드레스를 돋보일 수 있도록 최대한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선택했다.

얇고 부드러운 실크가 상체를 휘감고 허리선까지 내려왔다. 오건디 실크는 아주 얇아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고급스러운 광택과 장인의 꼼꼼한 바느질선 덕분에 쉽게 주름지지 않아 아주 우아해 보였다.

허리 아래로는 프린세스 라인으로 살짝 퍼져 드레스 단이 발목 가에 똑 떨어졌다. 그 아래엔 섬세한 은사로 짜 놓은 레이스 구두를 신었다. 잠깐 잘못 디뎠다간 바로 망가지겠다 싶게 약해 보였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원래 모든 아름다운 것은 부서지기 쉬운 법이다.

이렇게 입으니 내 잿빛 눈동자도 썩 괜찮아 보인다. 언니 말대로 조금 푸른 보랏빛을 띠는 것도 같다.

가슴 선에만 촘촘히 수놓아진 작은 크리스털 비즈들이 방 안으로 스며든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제 벗어야 해?”

“어쩌겠어요. 하여튼. 내일 아침에 입으실 거라면서 왜 오늘 대 보신다고 하셨대. 이걸 입었다가 벗고 평범한 이브닝드레스가 가당키나 한가요. 그냥 입으세요. 아이고, 우리 아가씨 언제부터 이렇게 드레스 입는 걸 좋아하셨지. 이렇게 예쁜 옷을 밥 먹으면서 입는 경우가 어딨대요. 아가씨, 어린 시절처럼 또 드레스에 잔뜩 음식을 흘려 오시는 건 아니죠?”

“또 또, 벨라 언니는 다섯 살 때부터 하얀 옷을 입고 먹물 요리를 먹으면서도 한 방울도 튀지 않았는데 나는 입가에 묻히고 온통 먹물투성이가 되어서 왔다는 얘길 하면서 날 구박하려는 거지?”

유모의 단골 레퍼토리다. 그 후에는 레아 아가씨는 벨라 아가씨처럼 깔끔하지도, 차분하지도 못해서 걱정에 잠을 못 이루겠다는 기나긴 하소연이 이어진다.

“묻혀만 오면 좋게요. 어렸을 때는 불편하다고 툴툴거리시고 파티가 끝나자마자 오셔서 찢어지든 말든 벗어 던지셨으면서 이제는 저녁 만찬 가신다고 드레스를 다 찾아 입으시고! 처음부터 이걸 입으실 작정이셨죠? 빨리 앉으세요, 아가씨. 머리 장식 꽂을 시간밖에 안 남았어요.”

유모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줄리앙은 어찌 된 영문인지 내일 아침 산책 때 내가 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노라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은 마당에 다시 벗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내가 아니었다.

“머리 장식은 어제 로즈몬드 백작님이 주신 사파이어로 하면 되겠어요.”

“그 인간이 준 건 안 찰 거야.”

“어제 막 만난 사람한테 뭔 막말이래요. 무슨 마음 상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그런 게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제가 딱 봐도 아가씨 취향은 아니게 생기시긴 하셨더라고요.”

“유모가 보는 눈이 있네.”

난 유모가 준 사파이어를 뿌리치고 머틀 모양으로 된 머리 장식을 선택했다. 유모는 내 긴 머리를 땋아 올린 후 한 묶음으로 묶어 뒷목 아래쪽으로 단정히 묶어 주었다. 작은 머틀 잎사귀 은장식을 뒤에 꽂고, 언니 결혼식 때 했던 머틀 잎사귀 모양 머리띠를 티아라처럼 머리 위로 올렸더니 꼭 내가 결혼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너무 과해? 무슨 왕관 같다.”

“머틀 잎사귀 하나 올렸다고 과할 게 있겠어요. 번쩍번쩍 빛나야지.”

“유모가 나였다면 로즈몬드 백작이랑 결혼했겠네. 이렇게 보석을 좋아해서야. 이 보석들 다 유모 줄까? 가져가도 돼. 난 그 사람이 준 거 손도 대기 싫으니까.”

“글쎄, 아가씨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제가 이런 귀한 걸 가지고 있다간 도둑으로 몰려서 저택에서 쫓겨나기 십상이에요. 아가씨도 참. 돈 욕심이 없으시네.”

“돈 욕심? 나도 있었지.”

“언제요. 열 살 때요, 열다섯 살 때요? 아가씨는 아직 어리신데 요즘 자꾸 오십 년은 더 산 사람처럼 말하세요. 그럼 돈보다 좋고 보석보다 좋은 게 뭐래요?”

“글쎄. 함께 밤 산책 하는 거? 누가 등을 토닥여 주는 거? 끈적거리는 복숭아 껍질 까서 입에 넣어 주는 거?”

“아이고, 우리 아가씨 다정한 분을 만나 시집가셔야겠네.”

유모는 웃으며 내 옷매무새를 바로 해 주었다.

다정한 분? 한때는 앙투안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입 발린 말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다 좋게 흘러가고 있을 때 조금 다정한 척 구는 것쯤이야 아주 쉬운 일이다. 돈을 탕진하고 좋았던 때가 끝나자 앙투안의 꾸며 낸 다정은 곧 사라졌다.

그땐 나도 참 어리석었다. 하루하루 살아 내는 게 급급하다 보면 다정 타령만 하고 있기는 힘든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돈이 많은 로즈몬드와 결혼했다.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서로의 상식을 지켜 내며 예의를 갖추고 살아간다면 행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도 다 부질없었다. 결혼은 잠깐의 다정한 행동을 보고 선택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돈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럼 뭐가 중요한 걸까. 나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걸까.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또 금세 줄리앙이랑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싫어진다.

하지만 그 얘기는 참, 사람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다 큰 남자가 자신의 죽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렇게 따뜻한 목소리로 얘기해 주는 걸 듣고 있자니 그 전 생애들이 내게 준 팍팍함도 잠시 잊고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와 결혼하겠다는 건 아니다. 어차피 그가 내게 청혼할 일도 없다. 이 말도 경솔한 말일까? 나중엔 이렇게 말한 것도 후회하게 될까? 모르겠다. 불필요한 생각은 그만하자.

줄리앙 생각에 빠져 있느라 드레스 자락을 밟아 넘어질 뻔하며 서둘러 만찬 장소로 향했다. 내 서두름이 무색하게 저녁 만찬은 정시보다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내 첫 남편 앙투안 구엘이 못 말리는 게으름뱅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법이 없다.

우리 아버지, 리버런 공은 시간 약속 하나는 칼같이 지키시는 분이라, 만찬이 늦게 시작된 데에 다소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다들 어제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여정은 편안하셨는지요. 앙투안 구엘, 어제 조금 늦게 도착하셨나 봅니다.”

에둘러 그의 지각을 비난하는 소리인 걸 알아들을 턱이 없는 멍청한 앙투안은 신나서 대답했다.

“아뇨? 어제 아침 일찍 와서 따님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노래도 만들었는걸요?”

앙투안은 좋다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다. 이에 질세라 필 로즈몬드도 한심한 소리를 보태고 있다.

화려하게 꾸며진 길고 커다란 식탁의 정중앙에 우리 아버지, 리버런 공이 앉아 있다. 그 왼쪽으로는 나, 그리고 여름 방문객들에 들뜬 내 동생들 리디아, 마리안느, 제인 셋이 쪼르르 앉아 있다. 오른쪽으로는 앙투안과 로즈몬드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줄리앙은, 그는 자리에 없다. 아까 저녁 만찬에서 보자고 했는데 설마 안 온 건가 하고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접시가 날라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줄리앙이 와서 자리에 앉았다.

“오셨소, 레날 공작. 잃어버린 물건은 찾았소?”

아버지가 물었다. 줄리앙은 잠깐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다.

“네. 자리를 오래 비워 죄송합니다.”

“전 공작님이 오시지 않는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다. 줄리앙은 몸을 휙 돌려 나를 보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확 몰아쉬고 말한다.

“그대는 눈부시군요, 레아.”

“과찬이시네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맙다는 듯 인사를 했다.

“그 옷은 내일 아침에 입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줄리앙이 내게 묻는다.

“무슨 얘기오?”

아버지는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진행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반길 일이라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어 묻는다.

“별일 아니에요, 아버지.”

짧게 끊어 말하는 내 답변에도 리버런 공은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묘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유쾌해하고 있다. 나는 리버런 공이 무슨 표정을 짓는가보다는 줄리앙에게 더 관심을 두고 싶다. 다시 한번 고개를 줄리앙에게로 돌려 빙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레날 공작님,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흐르면 재미없는 법이잖아요.”

내일 입으라고 해서 내일 입을 내가 아닌 걸 줄리앙은 몰랐겠지. 줄리앙도 나를 마주 보고 웃는다. 그때 로즈몬드가 능구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드레스엔 내가 어제 준 사파이어 목걸이와 머리장식이 딱이었을 텐데. 너무 값싼 것이었나? 그 구하기 힘들다는 블루 다이아몬드라도 원하는 것이오?”

나는 어깨만 으쓱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머틀은 결혼을 상징하는 잎사귀지요. 제 눈엔 그것이 어떤 보석보다 이 자리에도 당신께도 어울려 보입니다. 레아.”

줄리앙이 그렇게 말하자 로즈몬드의 얼굴이 괜히 붉으락푸르락한다. 남이 자기 말에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는 걸 못 참는 성미는 저렇게 틈만 나면 드러난다.

나는 이번에도 싱긋 웃을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맞다. 머틀은 결혼을 상징하는 잎사귀였다. 벨라 언니의 결혼식 때문에 사들여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뻔한 얘기들로 흘러간다. 주로 아버지가 나서서 대화를 주도하고 앙투안과 로즈몬드는 멍청하게 맞장구를 치고 있다. 줄리앙은…… 글쎄, 줄리앙은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도 그 잘생긴 얼굴을 보고 싶지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라치면 바로 눈이 마주치고 마니까 민망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겠다. 메인홀로 자리를 옮겨 디저트를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그를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자꾸 쳐다봐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고는 나처럼 입 모양으로 뭐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뭐라고요?’

내가 다시 입 모양으로 묻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다. 뻔뻔스럽게도 시치미를 뗄 참인가 보다.

메인홀의 벽 한편은 전면이 유리문으로 되어 있다. 사용인들은 유리문을 밀어 전면 개방해 두었다. 발코니로 나가면 바로 저택 앞의 가장 커다란 라벤더 정원으로 연결된다. 정원에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다시 아까 줄리앙과 복숭아를 먹었던 응접실이다.

정원의 라벤더 향이 실내로 밀려 들어왔다. 초여름, 아직 덜 만개한 라벤더 꽃 무리는 컴컴한 밤에도 유월의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그러나 쾌적한 밤이라곤 할 수 없다. 아버지와 로즈몬드, 앙투안이 나누는 따분한 이야기가 공기를 이지러뜨린다. 슬슬 졸음이 올 지경이다.

“문을 열어 놓으니 좀 춥네요. 방으로 가서 걸칠 것 좀 가져올게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가씨.”

하녀장 마거릿이 눈치 없이 끼어든다.

“그래. 레아, 손님들이 계시니 너는 앉아 있고 마거릿에게 가져오라고 해.”

아버지도 한마디 거든다.

“레아, 제 옷을 당신에게 걸칠 수 있는 영광을.”

“레아, 제가 가진 흑담비털 망토가 더 따뜻합니다.”

앙투안과 로즈몬드가 앞다투어 내게 자기 옷을 내민다. 아버지는 안 받고 뭐 하냐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죄송하지만 여자에게는 여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랍니다. 잠시 제 방에 가서 걸칠 것과 함께 다른 것도 가져오는 결례를 허락해 주세요.”

“레아, 그럼 제가 당신 방이 있는 오른쪽 별관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밤길이 어둡습니다.”

줄리앙이 일어선다. 이제 아버지도 말리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줄리앙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흡족한 눈치다. 세 명의 구혼자 중 가장 아버지 마음에 든 자는 줄리앙이었으니 말이다.

리버런 섬이 왕국의 최북단에 있는 만큼, 본토 중심 세력과의 연결은 아주 중요했다. 왕국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레날 가문과의 혼인은 아버지에게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아버지가 당신을 맘에 들어 하시네요.”

“네? 저를요?”

줄리앙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내게 둘러 주며 묻는다.

“당연하죠. 그럼 앙투안같이 멍청한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아니면 로즈몬드 백작같이 아첨만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줄리앙은 유쾌한 소리를 내며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저는 아첨하거나 멍청하지 않습니까? 리버런 공은 왜 저를 맘에 들어 하십니까?”

“글쎄요. 당신이 잘생겨서?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그런 이유로 맘에 들어 하시는 건 아니겠죠. 당신 어머님이 왕족 혈통이시고, 레날 가문은 왕국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고, 뭐 그런 이유일 거예요. 아시잖아요.”

“보통 다른 분들과 얘기할 때도 그렇게 말하십니까, 레아?”

“아뇨. 당신한테만 이렇게 말하죠.”

“왜 저한테만입니까?”

“모르겠어요. 아까 그 얘기를 털어놓고 나니 당신이 좀 편하게 느껴져요. 또―.”

“또요?”

“사실 아깐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차피 복숭아 한번 주고 나서 석 달 내내 날 싫어하다 떠날 사람인데, 뭐 내가 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또 어떤가 하고요.”

줄리앙은 내 말을 듣더니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이 여자는 좀 돌았나? 하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얼굴이 참 근사하다.

나는 더 말을 거는 대신 가만히 그의 옆을 걸었다. 줄리앙의 날카로운 콧날에 달빛 그림자가 비쳤다. 참 섬세한 생김새였다. 초여름 밤의 침묵 속에 우리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더해졌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그가 갑자기 내게 질문했다.

“레아 당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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