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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69화 (169/171)

〈 169화 〉 저랑도 하나만 약속해요(3)

* * *

“흠, 흠흠.”

일본 특유의 양식이 돋보이는 전각들 사이로 한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향했다.

“어머.”

“아, 저분이…….”

때때로 그녀를 보고 흠칫하거나 알아보는 이들도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외견은 일반적인 일본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으니까 말이다.

뭐랄까.

척 보기에도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

그러나 의외로 그녀를 적대적으로 보는 이들은 없다시피 했으니.

“아, 선교사님. 여기는 어쩐 일로?”

“별건 아니고, 이곳에 머무시는 분과 대화를 조금 나누고 싶어서요.”

“아하. 그러시군요.”

일전에 그녀를 적대적으로 보았던 쇼군 가(家)의 사무라이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허나 그들 중 다수는 그녀의 밝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과 일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 덕에 다소 어눌하긴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법한 일본어 등을 확인하고 마음을 열었다. 그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이들 역시 쇼군의 눈치를 본다면 그녀를 홀대할 수 없었다.

“……오늘도 신앙심이 넘치시는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물론, 그녀가 걸음에 따라 수녀복 안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은총을 보며 그녀에게 마음을 연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녀가 일영의 전각을 호위하는 무사들을 지나 더욱 안으로 향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시종이 고개를 조아리며 그녀를 반겼다.

“모시게씁……. 큼. 습니다.”

다만, 아직 성인이라기엔 어려 보이는 여 시종은 자다가 다급히 나왔는지 눈곱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루이스 프로이스는 싱긋 웃고는 말했다.

“졸리시나요? 자매님.”

“예?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비록 외모는 익숙하지 않은 그것이라고 한들 그녀가 자신보다 신분이 한참 위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시종이다. 거기에 교토 특유의 말투까지 합쳐진다면?

‘졸리시나요?’라는 말은 ‘어머, 졸려서 죽으려고 하네. 죽여줄까?’ 정도일 테니까 말이다.

‘수, 수습해야 해!’

그녀에 대해 특별하게 나쁜 말이 오가진 않았으나 서양인이라는 출신이 주는 공포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종이 느끼기엔 상당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할머니 때만 해도 서양인이라 함은 도깨비에 비유되지 않았던가!

‘주, 죽기 싫은데…….’

여 시종은 당장이라도 그녀가 부른 사무라이가 자신의 목을 베는 상상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머잖아 말없이 그녀가 자신의 어깨를 쥔 그 순간여 시종은 더 참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사, 살려주세요!”

“하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나 사무라이의 서슬 퍼런 칼날이 아니었고, 다만 이런 상황이 여전히 낯설기만 한듯한 루이스 프로이스의 난처한 미소뿐이었다.

“괜찮아요. 자매님.”

그녀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여 시종의 창백한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속삭였으니.

“피곤하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야밤에 찾아온 제 잘못이 크네요.”

“아…….”

그제야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일까. 여 시종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루이스 프로이스는 그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다독여주곤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일부러 조금 밝게 물었다.

“안내까지는 필요 없으니, 그분의 처소가 어디인지만 알려주세요!”

“그, 그게. 저쪽으로 쭉 가시고 복도를 한번 꺾으시면…….”

“고마워요! 잘자요!”

무거운 분위기는 달갑지 않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킨 채, 그녀는 뒤에서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여 시종을 지나쳐 그녀가 알려준 방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지만, 적응하기는 너무나 힘드네요.’

그렇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입가엔 쓴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토라는 영지는 이 나라에 대해 그리 잘 아는 것이 없는 그녀가 보기에도 정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시국가의 난립.

통일된 리더쉽의 부재.

사소한 것에도 목숨이 담보되는 불안한 치안…….

‘주님, 절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씁쓸함과 고뇌로 가득 찬 그녀의 푸른 눈에 일말의 확신이 차오른다. 그것은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이의 무언가였다.

이 땅에 주님의 가르침이 닿게 하리라.

그녀는 그런 마음가짐을 품고, 시종이 알려준 길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복도를 지났다.

그렇게 얼마나 복도를 거닐었을까?

하윽…….

“응?”

야심한 밤이 아니었다면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작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때문에, 그녀는 잠시 귀를 쫑긋거리다가 이윽고 나지막이 중얼였다.

“……잘못 들었나?”

아마 제대로 들었다고 해도, 잠시 쪽잠을 자던 사무라이나 시종이 잠결에 낸 소리일 확률이 높으리라.

‘그, 그렇겠죠!’

그렇게 확신한 그녀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과 표정으로 발을 옮겼다. 물론, 왜인지 묵주를 쥔 손의 힘은 더욱 거세지고 식은땀이 목 뒤를 적셨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아.”

다행히도. 조금씩 걸음이 빨라지던 그녀의 앞에 일영의 거처로 보이는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곳과 달리 홀로 불이 켜진 방을 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방의 앞으로 향했다.

“……응?”

아니, 향하려 했다.

하, 하아아……. 흐그윽…….

안에서 들려오는, 척 듣기에도 무슨 상황인지 쉬이 짐작이 가는 여자의 신음과 함께, 복도의 벽에 미친 듯이 일렁거리는 두 남녀가 합쳐진 그림자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O que é isto(이게 무슨).”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포르투갈어가 그녀의 당혹감을 대변했다. 잠시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침을 한번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설마.’

낮에 보았던 히라테 히카게의 얼굴을 떠올린다. 입술을 세로로 그은 흉터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아플 정도로 생각이 깊고 여러모로 흥미가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경우없는 짓을 할 리가…….’

그래, 아무래도 거처를 잘못 찾아온 모양이리라. 그런 생각을 한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이미 몸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화, 확인만…….’

혹시 모를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의 오해로 선입견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부터 확인해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꿀꺽.

침을 삼키고,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지 아주 살짝 열린 문틈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그리고 곧 눈에 담기는 한 폭의 살결의 물결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애써 비집고 나오려는 목소리를 삼키곤 읊조렸으니.

‘아아. 주 아버지.’

그런 그녀의 얼굴은 아주 벌겋게, 벌겋게 변해 있었다.

*

“헤으으브…….”

입술과 입술이 겹친다.

타액이 점철된 입가가 번들거리고, 둘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혀와 혀를 오가며 미친 듯이 서로를 탐했다.

“하아, 하으읍…….”

일영의 손이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흘러가듯 미끄러지다 머잖아 굴곡진 둔덕에 도착하자, 그녀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이미 예상하긴 했으나 생각보다 더욱 젖어있는 감촉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만족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질척거리는 그곳에 손을 가볍게 겹친다.

“흐, 흐윽!”

따스한 온기와 더불어 그녀의 백탁액이 일영의 손을 따라 손목을 적혔고, 그는 애타는 얼굴과 황홀감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소리가 점점 커지네.”

“어, 어쩔수가아……. 하으윽!”

일영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그녀의 옷을 끌어 내린 후 가슴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잡아 흔들 뿐이다.

손안에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이 한 움큼 잡힌다. 동시에, 일영은 조금 전까지 그녀의 음부에 대고 있던 손을 들어 그녀의 뺨에 부비고는 입안으로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으부으.

옆으로 당겨진 입술 때문에 발음이 새고 그녀의 침이 흘렀으나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일영이 입안에 집어넣은 엄지손가락을 핥으며 그가 쥐지 않은 반대 가슴을 모아 새는 발음으로 속삭였다.

“쥬구운……. 저어 모미……. 모미 이상해애…….”

달아오른 열락에 뇌가 녹아내려 유아 퇴행이라도 온 것인지. 아니면, 이제까지 보인 냉철하고 조용한 모습 속에 치녀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생각하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 그녀는 일영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 뿐이리라.

아케치 미쓰히데는 일영이 엄지손가락을 천천히 빼어내자 아쉽다는 듯이 혀를 내밀었고, 그가 지그시 자신을 내려보자 눈동자를 굴리다가 머잖아 볼을 붉히곤 입을 동그랗게 벌린다.

아.

벌린 입술 사이로 가드런한 치열과 무언가를 갈구하는 혀가 허공에 흔들리고, 곧 그녀는 말로 해보라는 듯한 일영의 모습에 수치심인지, 아니면 기대감인지 모를 떨림과 함께 속삭였다.

“배, 뱉어주세요오. 주, 주인님의 침…….”

그런 그녀의 눈을 본 일영은 확실했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사랑하게 되어버린 모양이라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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