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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67화 (167/171)

〈 167화 〉 저랑도 하나만 약속해요(1)

* * *

그들이 앉아 있는 방 안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들 중 불편한 감정의 크기로 따지자면 당연히 아케치 미쓰히데 측이 수십, 수백 배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그게.”

“……흠.”

일영은 척 보기에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어지럽게 굴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흔히, 취한 모습이 진짜 자신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려나.’

만취한 상태가 아니라, 살짝 취기가 돌았을 때 내뱉는 말이 본심인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그러니 아케치 미쓰히데가 내뱉는 저 말도 그녀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삼켰던 불만이리라.

“내가 뭘 했. 큼.”

때문에, 일영은 반사적으로 내뱉던 말을 중간에 주워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녀는 확실히 일영에게 적잖은 서운함을 가질 법도 했으니까.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그런 일영의 머뭇거리는 기류를 읽은 걸까.

아니면, 이왕 술에 취해 실수한 김에 내뱉은 말을 끝까지 하겠다는 심정인지 그녀는 옅게 심호흡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첫 만남부터 저를 달가워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미노 출신이기에? 아니면, 사이토 가(家)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않아서? 그조차 아니라면 계집이라는 이유 때문에?”

직접 입에 담지는 않았으나 그간 그녀가 얼마나 일영의 눈치를 보았는지, 또 고민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미노 출신이나 사이토 가에 대한 의리 문제라기엔 모리 공의 가문도 따지자면 저희 가문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자이기 때문이라기에도 말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뭐 실수를 했습니까? 예?”

“큼. 그, 그건 아니지.”

“그런데 왜 저한테 그렇게.”

그녀의 목소리에 생각보다 더 쌓아둔 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느껴지는 거였지만, 결정적으로 눈가에 방울져서 맺힌 눈물이 일영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평소 아케치 미쓰히데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이미지는 감정이 풍부한 편보단 무뚝뚝한 편에 더 가까웠으니 말이다.

‘……내가 그렇게 너무했나?’

그러면서도 내심 자신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선 아케치 미쓰히데가 이토록 서운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되짚어볼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첫 만남 때라면…….’

아마, 당시 일영이 한창 조총 부대를 개편하며 장전용 화약 주머니를 선보였을 때였을 거다. 한창 훈련을 이어나가고 있을 당시에 그녀가 미노에서 오와리로 찾아왔었지.

‘그리고…….’

독대를 하고, 대놓고 가문이 몰살 당했냐고 물어보고, 어째서 아사쿠라가 아닌 오와리로 왔냐고 물어보고…….

“그러면서, 훌쩍. 막 죽일 듯이, 훌쩍, 노려보고…….”

우연의 일치인지, 일영의 회상과 그녀의 목소리가 겹치며 그의 정신을 다시금 현실로 끌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색과 분홍색이 적절히 뒤섞인 동공은 어느새 맺힌 눈물이 흐르며 깜빡이는 탓에 보이질 않았고, 그녀는 세상 서럽게 훌쩍거리며 웅얼거리듯이 말을 이어갔다.

“훌쩍! 막, 막 위험한 곳에는 맨날, 맨날 데려가면서 제대로 믿어주는 느낌도 없고. 훌쩍……!”

“어, 어어.”

당연히 일영으로선 당황을 넘어선 뇌 정지가 올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평소에도 이런 마음을 칭얼거리듯 들어냈다면 그러려니 하고 위로를 해줬을 테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그녀의 평소 이미지는 속된 말로 시크하고 도도한 축에 속하지 않았던가.

“훌쩍. 크흥…….”

그런 그녀가 무릎을 꿇던 자세도 흐트러져 아무렇게나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신을 탓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여자의 눈물에 약한 일영이 당해낼 재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미, 미안.”

때문에 일영이 내뱉을 말은 그것뿐이었다. 솔직히 원 역사의 그녀가 저지른 일 때문에 늘 곁에 두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녀를 경계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흐아앙…….”

물론, 이미 감정이 복받쳐버린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그런 일영의 사과가 곧바로 와닿을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스윽.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일영을 바라보았다.

특유의 은색과 분홍빛 동공 위로 맺힌 눈물 때문인지 번들거리며 흔들리는 눈동자에 일영이 가득 차고, 벌겋게 달아오른 뺨과 눈두덩이에 난 눈물 자국을 손등으로 닦아낸 그녀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 가족도 친척도 친구들도 다 죽고, 진짜, 진짜아……. 힘들게 오와리로 왔는데에……. 의지할 곳도 없는데에…….”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감정은 지독한 외로움과 더불어 서러움이었기에, 일영은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실수였나.’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일영, 그 자신만큼 쓰레기인 새끼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미노에서 가문이 사실상 멸문당하고 겨우 사촌 동생 한 명만 살려 오와리로 몸을 의탁하러 온 그녀를 난생처음 보는 일영이 멋대로 의심하고 또 굴리면서도 그녀는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여태까지 눈치만 본 격이 아닌가.

그것도,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후.”

입이 썼다.

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편협한 사고에 그간 상처받았을 그녀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스윽.

일영은 묵묵히 술병을 채로 지었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앞에서 단번에 병 하나를 통째로 기울였다.

적절히 데워진 술이 식도를 뜨겁게 달구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곤, 결국 병을 통째로 치워버린 그는 어느샌가 취기가 뒤섞인 눈으로 그녀에게 성큼 다가섰다.

터벅.

일영 쪽에 있던 촛불 때문일까.

그의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오늘따라 유달리 가녀린 그녀의 몸이 겹쳤고, 일영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울음으로 엉망이 된 뺨에 제멋대로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며 물었다.

“미안하다. 아케치.”

“……아?”

일영이 낮게 내뱉은 숨결에 뒤섞인 술 내음 때문일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뺨을 스치는 그의 손길 때문일까.

아케치 미쓰히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버렸지만, 일영은 개의치 않고 살짝 풀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답했다.

“내 너를 편견으로 홀대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

그의 목소리는 나긋하지도, 중압적이지도 않고 평이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대를 끌어당기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끄덕.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일영은 만족했다는 듯이 그새 다시 흘러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엄지손가락으로 떼어 내주곤 속삭이듯이 덧붙이니.

“절대 날 배신하지 마.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배신하지도 말고.”

원 역사에서 그녀가 저지른 배신.

그것은 어쩌면 원죄가 되어, 일영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이젠 자신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이것 한 가지는 확답을 받아야 한다.

“그럴 수 있어?”

“아.”

어느샌가 일영의 얼굴에 맴도는 옅은 미소를 눈에 담는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그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 네에.”

울음기로 점철되어 있었던 탓일까.

매인 목에서 내뱉은 답은 살짝 갈라지며 허공에 울려 퍼졌고, 그녀의 답을 들은 일영은 다행이라는 듯 눈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그녀의 뺨에서 손을 떼어냈다.

턱.

아니, 떼어내려 했다.

“아케치?”

손이 움직이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의 손목을 양손으로 틀어쥔 그녀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그게…….”

더 하고픈 말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바라본 일영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의 상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것이었으니.

“여, 여기가……. 이상해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린다.

그러자, 머지않아 그녀의 시선 끝에 닿은 곳은 다름이 아니라.

“잠, 잠깐.”

“막, 마악……. 쿵쿵거려서…….”

일영이 눈치채기도 전에 젖어버린 허벅지 안쪽의 그곳이었다. 경갑이 미처 가려주지 못하는 곳이던 탓인지 그녀의 은밀한 그곳은 눈물과 체액이 뒤섞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의원이라도.”

때문에, 일영은 당혹감을 애써 숨기며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브레이크가 고장나버린 그녀가 내뱉는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주군……. 그럼, 저랑도 하나만 약속해요.”

그녀의 눈동자에 묘한 광기가 맴돈다.

술기운에 달아오른 뺨.

눈물로 엉망이 되어버린 눈가.

입술을 잘끈 깨물었는지, 살짝 핏물마저 배어 나오는 입술까지.

츄르읍.

그녀는 선홍빛의 혀끝으로 입술에 맺힌 핏물을 살짝 훑고는.

“이제 주군도……. 저 배신하면 안 돼요?”

굳어버린 일영의 목덜미에 천천히 다가서며 속삭이듯 읊조렸으니.

“그러면, 확 죽이고 할복할거니까. 헤.”

“하, 하하…….”

그제야 일영은 떠올렸다.

……그녀의 ‘혼노지’를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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