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65화 (165/171)

〈 165화 〉 흔들리는 연기, 찰랑거리는 술잔(1)

* * *

서로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은 아시카가 가(家)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

“……크흠!”

물론, 주변의 냉담한 시선은 여전했으나 대충 상황을 파악한 일영은 사무라이들에게 적당한 경계만을 유지하도록 하곤 쓸데없는 위협으로 보일 행동은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시선은 냉담했으나 그 기저에 깔린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에 더 가까웠으니 말이다.

‘하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던 시대니까.’

오죽하면 훗날 교토의 화법이 비꼬는 것처럼 바뀐 이유가 교토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바로 목숨이 달아나서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할까?

아무래도,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머지않아 아시카가 가문의 문양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고, 가문의 거처를 본 일영은 내심 새삼스러운 얼굴로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교토는 지난 시대 동안 수없이 많은 분쟁이 일어난 곳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보수를 하긴 했으나 여전히 곳곳이 무너지고 불탄 흔적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헌데, 그 중심이나 다름이 없는 쇼군 가(家)의 거처임에도 예상보다 깔끔하지 않은가.

“여러모로 누추하지만, 큼. 그래도 그 시바 씨의 무너진 전각보단 나을 거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보다 낫다는 거지 오다 가문의 거처인 기요스 성과 비교하면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말고는 크게 빼어난 점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시카가 요시테루도 어느 정도는 그 점을 자각하고 있는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을 내뱉으며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런 점을 쓸데없이 지적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가 내뱉을 말은 그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쇼군이 거처로 초대했다는 점부터 정상적인 시대라면 큰 영광이었으리라.

“쇼군을 뵙습니다.”

“쇼군을 뵙습니다.”

그래도 쇼군은 쇼군이라는 것일까.

그녀가 기거하는 구획으로 들어서자 밖의 떨떠름한 시선과 대비되는 충성심 가득한 목소리들이 귓가를 뒤덮는다. 그들 중 태반은 사무라이들이었다.

‘실력이 꽤 대단했지.’

물론, 아시카가 가문 사무라이 모두의 실력을 견식 한 건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평균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습격한 사무라이들과 검을 섞어보곤 얼마나 당황했는지. 찰나였지만 오와리의 사무라이는 사실 강병이 아니었을까를 고민했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 자신들을 구원하러 나타난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사무라이들의 수준은 헛된 망상을 막아준 좋은 비교 대상인 것이다.

‘직접 검을 섞어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기세 만큼은 진짜다.’

일영은 곁에서 자신들을 호위하며 걸음을 옮기는 아시카가 가문의 사무라이들을 힐끔 흘겨보곤 확신했다.

……단순히 전장을 겪은 이들이 아니라, 닳고 닳은 이들이라는 걸 말이다.

“이놈들입니까?”

“그래. 데려가서 심문해. 어설프게 하지 말고.”

“예. 쇼군.”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문득 뒤따라 오던, 포로로 잡힌 사무라이들이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명령에 따라 한쪽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미 발을 담갔다고 보는 편이 옳겠지.’

귀찮거나 머리가 아픈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게 속마음이었지만, 교토에 발을 들인 순간 피할 수 없는 싸움이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뒤에서 따라오던 이츠키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당분간 이코마 총단주를 호위해.”

“예. 주군.”

“네?”

그의 명령에 어떤 반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츠키였으나 정작 이코마 키츠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물론, 일영이라고 그녀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츠키는 비록 성도 없는 하급 사무라이이긴 했으나 그 실력만큼은 히라테 가문 사무라이 중 상위권에 속하니 그만큼 일영의 호위가 허술해지는 걸 걱정하는 것이리라.

“나름 날붙이를 다루는 데에는 이골이 난지라.”

“아.”

일영의 말을 들은 이코마 키츠노는 무심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일영이 휘두른 검에 죽어간 사무라이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걱정 마라. 내 사무라이도 조금 내어줄 테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거기에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무심한 배려가 더해지자, 이코마 키츠노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건 당연히 일영도 만족하는 결과였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 이코마 키츠노의 가치는 매우 높았으니.

‘전쟁에서 물자를 빼놓으면 쓰나.’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점은 바로 보급과 물자의 중요성이다. 일당백을 하는 장수와 병사들이 있으면 뭐 하는가? 군인들에게 먹일 밥과 들릴 무기가 없으면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거나 투항하는 수밖에 없는데.

‘물론, 노부나가에게 미움받기 싫어서도 있지만.’

이코마 키츠노는 노부나가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런 그녀가 동행했는데 죽거나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주군이자 애인인 그녀를 볼 낯이 있겠는가.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낫나?’

긴가민가하는 그였다.

그리고 그때.

“그럼, 이쯤에서 처소를 안내해주면 되겠군.”

“아, 그러시죠.”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노곤한 목소리가 일영의 귓가를 스쳤고, 일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 시종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처소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꾸나.”

어린 나이임에도 꽤나 싹싹함이 느껴지는 모습에 일영은 옅게 웃음을 흘린 채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세 걸음 정도 걸었을 즈음.

“아.”

일영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려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바라보며 물으니.

“끌려간 사무라이들. 심문하실 생각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 그런데.”

“만약 배후를 캐내면 제게도 귀띔을 해주시지요.”

“……흠.”

일영의 당돌하다면 당돌한 말에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연갈색 눈동자에 이체가 흘렀다.

흥미인가. 아니면 불쾌함인가.

누구도 단정 짓지 못하는 그녀의 감정을 뒤로한 채, 찰나의 묘한 침묵이 스치고 곧 그녀는 되물었다.

“이유는?”

“그야.”

일영은 화답했다.

“제 적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저도 검을 똑바로 휘두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의 입꼬리는 비스듬하게, 그러나 눈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영의 답을 들은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는지 입술을 몇 번 들썩거리곤 이내 떼어내니.

“그래.”

그녀의 입가에도, 비슷한 미소가 차올랐다.

*

일영과 일행들이 안내받은 처소는 그들이 느끼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이묘도 아닌 일개 하타모토, 그리고 상인이 받기엔 다소 융숭하다 싶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호위는 됐으니, 좀 쉬도록 해.”

때문에, 일영은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와리와 교토의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다지만, 오는 길에 하치스카 당과 조우한 것도 모자라 교토에 들어서자마자 습격을 받지 않았는가.

‘안 피곤할 수가 없지.’

그들이 느낄 노곤함과 피로감을 모르는 일영이 아니었기에 내린 나름의 배려였다.

‘겸사겸사 술 한잔도 하고.’

가뜩이나 이코마에게 얻은 파이프 담배가 썩 입에 달라붙은 덕에 오랜만에 풍류를 느껴볼 생각이었다. 그래, 분명히 그랬는데…….

“가서 쉬라니까.”

“아닙니다.”

일영은 조금 퉁명스러운, 그러나 노기가 없는 눈으로 자신의 옆에 무릎을 꿇고 묵묵히 앉아 있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뻐끔.

파이프 담배 특유의 묵직한 연기가 입안에 맴돌다가 허공에 흩어진다. 연기 덕인지 살짝 가려진 아케치 미쓰히데의 얼굴을 묵묵히 응시했다.

은빛과 선홍색이 뒤섞인 머리카락.

정갈하게 차려입은 경갑과 꿇은 무릎 바로 옆에 두어 언제든지 뽑을 수 있도록 준비된 카타나까지.

흔히 말하는 사무라이의 외견과 똑 닮아있는 정갈하고 절제된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 일영에겐 딱히 달가운 모습은 아니었다.

“술을 마시는 데 방해되는데.”

“제가 미움 받는게 하루 이틀도 아닌걸요.”

“……큼.”

어딘가 뼈가 담긴 말에 일영은 달리 답을 내뱉지 못한 채, 조촐한 술상에 놓인 술을 한 모금 꺾어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첫 만남이 피차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

일영은 묵묵히 술을 두어 잔 더 삼켰고, 아케치 미쓰히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가 술을 기울이는 모습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그렇게 얼마나 침묵이 흘렀을까.

조르륵.

다시금 잔에 술을 따른 일영은 시선을 돌려 살짝 숙인 고개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그럼, 대작이나 하자.”

“……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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