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난놈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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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대낮의 습격은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빠른 대처로 큰 피해 없이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이코마 측 낭인 중 절반이 다치고 셋이 죽었으나 그걸 탓하는 이들은 누구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로닌, 즉 낭인들의 기본적인 생태는 돈에 따라 주군이 바뀌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단지 보수만 잘 주었다면 고용주에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었으니까.
“죽은 분들의 고향이나 연고는 대략이나마 파악하고 있으니, 돌아가면 위로금을 전달해야죠.”
물론, 이코마 키츠노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생각이라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제 사비도 조금 보태겠습니다. 요즈음 가문의 여력이 괜찮아져서.”
“기꺼이 받죠.”
둘은 그렇게 읊조렸고, 곧 투항한 사무라이들의 포박을 끝마친 이츠키가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다 끝냈습니다. 주군.”
“그래?”
일영은 고개를 돌려 한쪽에 몰려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무라이들을 바라보았다.
“…….”
“……끅.”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직감할 수밖에 없기에 그들 중 몇몇은 눈물마저 터트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켜보는 일영의 시선에 담긴 감정은 안타까움이나 연민이 아닌, 머잖아 사그러질 무언가를 보는 무미건조한 시선일 따름이었다.
……물론, 그 자신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그럼, 슬슬 자리를 옮기지. 아무리 혼란스러운 세상이라고 해도 대낮부터 이러면 다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말에 일영과 이코마 키츠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말마따나 처음 그들이 습격받은 그때부터 주변 민초들의 발걸음이 싹 끊겼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긍정적인 일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저들은 어쩌실 겁니까?”
“아, 저놈들?”
그렇게 골목을 지나 대로로 나온 때, 일영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뒤따르는 사무라이들을 바라보며 묻자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이 간결하게 화답했다.
“누가 배후인지 캔 후에, 싸그리 목을 베어 효수해야겠지.”
“아, 그렇습니까.”
예상대로 지극히 ‘상식적인’ 결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고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침묵이 자리한 지 몇 초나 흘렀을까?
“그래서, 먼저 올라온 이유는?”
“예?”
툭하고 던진 듯한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말에 그녀보다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 걷던 일영이 반문하자,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일영과 시선을 마주치곤 되물었다.
“네 주군보다 먼저 교토에 올라온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다.”
“아.”
그제야 일영은 그녀에게 전해졌을 정보라곤 자신이 교토로 올라간다에서 끝났으리라는 걸 깨닫고 화답했다.
“일전, 시바 씨의 족속들이 사용하던 저택을 저희가 보수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머잖아 다이묘께서 쇼군과 천황 폐하를 알현하기에 부족함이 있으면 안 되는지라…….”
“시바 씨라. 그러고 보니 오와리의 원래 다이묘가 시바 씨였지.”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이젠 아니지만요.”
둘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로 대화를 이어나갔으나 정작 곁에서 그 대화를 듣는 다른 이들의 심장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쿵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이 나눈 대화는 해석하기에 따라 서로에게 쌍욕보다 더한 정치적 견제를 내뱉는 거라고 판단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놈 봐라.’
‘말이 긴데.’
당연하게도 일영과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속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둘의 대화를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과거에 우리가 오와리 관리하라고 보낸 시바 씨 치워버리고 지역 대장 한다며? 팔자 좋다?’
‘예. 그런데 어쩔 건데? 우리 도움 필요 없어?’
조금만 견식이 있다면 둘의 말 아래에 숨겨진 본의를 꿰뚫기엔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주변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머. 교토가 참 예쁘네요? 그래서 그 예수회라는 건…….”
“열성적인 자매님이시네요!”
이코마 키츠노는 얼굴에 태연하게 미소를 띤 채 곁에 선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뜻밖의 관심에 루이스 프로이스는 밝게 웃으며 아직 서툰 일본어로 해맑게 화답했다.
……물론, 그런 이코마 키츠노의 등은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고 말이다.
“크흠. 거기, 똑바로 걸어!”
그 외에도 아케치 미쓰히데는 괜히 뒤에서 따라오는 포로가 된 사무라이들에게 호통을 치며 특유의 은빛과 핑크빛이 섞인 눈동자를 굴렸고,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사무라이들은 아예 모른 척을 하거나 건방지게 화답하는 일영을 노려보곤 했다.
“어쭈? 저새끼들 눈동자가 이상한데요? 안 그렇습니까?”
“……제발 닥치십시오. 이츠키.”
다만 모두가 눈치가 있을 수는 없기에 일영을 향한 아시카가 가(家) 사무라이들의 불손한 눈동자를 본 이츠키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나지막이 속삭이긴 했지만, 돌아오는 건 입술을 잘근 깨문 아케치 미쓰히데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렇게나 오와리를 걱정해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래서…….”
“아니, 나야말로 이런 혼란하고 무도하며 개판, 큼. 아니. 어려운 시기에 교토를 찾아와 준 점에 대해…….”
물론, 그 사이에도 일영과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피 튀기는 논검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논쟁은 머지않아 끊길 수밖에 없었다.
“…….”
“……퉤!”
그들이 대로를 지나 전각과 민초들이 사는 구획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일영과 아시카가 요시테루 뿐만이 아니었다. 이코마 상단의 낭인들은 물론, 히라테 가(家)의 사무라이들 역시 느껴지는 주변의 시선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으니까.
“주군. 이건…….”
조금 전까지 괜히 묶여서 뒤따라오던 포로들을 꾸짖던 아케치 미쓰히데. 그녀는 조심스럽게 일영의 뒤에서 속삭였고, 일영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사무라이들에게 명령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평시에도 주변 경계를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불과 몇 분 전, 도시의 한복판에서 습격을 당했으니 당연히 경계의 수위는 일전보다 배 이상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게 웃고 말았으니.
“괜히 피곤하게 해서 미안한데.”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꽤나 복잡했기에 일영은 구태여 덧붙이지 않고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고, 그녀는 이윽고 푸념하듯 읊조렸다.
“뭐, 보았듯이. 권력을 빼앗긴 핏줄의 현 주소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할 생각도 없고. 선조가 어지간히 병신들이었던 건 부정할 생각이 없으니.”
그녀라고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그녀였기에 더더욱 처절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교토의 백성들이 날 미워하는 것도 당연해. 어쩌면 빠르게 뒈져서 우리 가문의 대가 끊기는 걸 바랄지도 모르겠군.”
때문에, 일영은 이전과 달리 그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런 일영의 배려를 느낀 걸까. 잠시 말을 뱉어내던 그녀는 잠시 일영을 흘겨보곤 주제를 돌렸다.
“……히라테 공(?)에 대해선 예전에 아버님께 들었다. 꽤나 조예가 있는 분이시라지. 좋은 아버지를 두었군.”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그땐 독녀라고 들었는데. 위로 누이가 있나?”
“예?”
그녀의 뜻밖의 말에 일영은 반문했고, 그때 곁에서 그녀를 보필하던 사무라이가 그녀에게 조심히 속삭였다.
“, .”
“아. 그럼 소문이…….”
그의 말을 들은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잠깐 놀란 듯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곤 일영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문이 진실이었다니. 그저 흐르는 풍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조선 사람인 걸 들으셨나 봅니다.”
“……큼. 많이 받는 오해인가 보군. 미안하다.”
“별 말씀을.”
그녀는 너무나도 너그럽게 넘기는 일영의 모습에 아주 살짝 상기된 뺨으로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하가 이미 입수한 정보가 있음에도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한 셈이 아닌가.
권위를 지키는 것과 무례를 저지르는 건 궤가 다르다.
그런 생각을 가진 그녀였기에 일영의 신분이 자신보다 한참 낮음에도 사과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허나, 그런 그녀의 내면에선 더욱 더 큰 무례가 쌓이고 있었으니.
‘조선 왕비의 끈질긴 구애를 매몰차게 거절했더니, 왕비가 자결해서 가문은 물론 주변까지 풍비박산 났다는 그 소문도 사실이렷다. 허. 여러모로 난놈이로고.’
그가 모르는 곳에서 또 다시 오해가 쌓이는 순간이었다.
* * *